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8화 (139/226)

§ 138화

“소피아씨랑.”

느닷없이 소피아와 대련을 하라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천우진. 내가 그런 녀석을 보며 충고를 해주었다.

“이 악물고 하는 게 좋을 거다.”

“이를?”

“응, 잘못하면 나가버리거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하하, 알겠어.”

웃어?

“해솔이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맑게 웃던 천우진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를 바라보는 눈에 호승심이 가득하다.

과연, 방학기간 동안 진보가 있던 것인지 소피아의 강함을 어느 정도 인지한 듯했다.

그래봤자 소피아가 상대라면 몇 분을 버티느냐의 문제였지만.

“바로 끝내지 말고 실력을 봐주세요. 어떤지.”

“알겠습니다.”

내 요청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소피아에게 적당히 해달라고 요청까지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기에 나는 천우진이 극구 보호장비를 착용하게 했다.

왜, 권투에서도 하수는 헤드기어를 쓰고 싸우듯이······ 물론 이터니티의 최첨단 보호장구는 그보다 훨씬 안전하다.

천우진은 내 걱정도 몰라주고 요란을 떤다는 반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피아가 힘조절에 좀 많이 서툴거든···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마친 두 사람이 대련장에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이 각자의 검을 들어 올렸다.

소피아는 대련장의 중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고, 천우진은 그런 소피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내 충고를 받아들인 천우진은 방심하지 않고, 탐색전부터 이어나갔다.

가만히 선 소피아를 상대로, 마치 권투 선수가 견제로 잽을 날리듯, 가볍게, 툭, 툭. 검을 날리며 간을 본다.

원래라면 소피아도 이에 맞서서 검을 교환하며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지부진한 전개를 선호하지 않는 소피아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카앙─!

6합째에 천우진의 검을 튕겨내며 치고 나가는 소피아.

“웃!”

소피아의 거력에 당황한 천우진이 연신 대검을 빗겨내며 뒤로 밀려난다.

‘그래도 5합이나 받아준 거면 많이 참았네.’

내 부탁이 있어서 5합이나 받아준 거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사정없이 밀어붙였을 소피아였다.

그녀는 지루한 탐색전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시원하게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게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반면, 정석적인 수 싸움을 하는 천우진은 정석에서 벗어난 그녀의 움직임에 당황한 듯 보였다.

제대로 된 방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냥 힘으로 뚫고 들어오는 상대는 천우진으로서도 처음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피아가 마냥 저돌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그 움직임에는 파고들 틈이 없었다.

소피아도 나름 머리를 써가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수들을 특유의 위력으로 뚫는 게 가능했기에 수 싸움을 할 필요가 없을 뿐이었다.

소피아의 무서움을 단 한 합의 부딪힘만으로 깨달은 천우진은 바로 전략을 바꾸어 거리를 벌리는데 주력했다.

‘역시 난 놈은 난 놈이네.’

거리 싸움조차 뚫고 들어가는 소피아의 터무니없음을 무슨 묘기 부리듯 흘려버리는 천우진의 대응은 분명 천재적이었다.

물론 저조차도 소피아가 힘조절을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긴 했지만, 천우진이 대단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봐준다 한들 소피아의 대검을 저렇게 비스듬히 받아 흘리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검끼리 닿는 것만으로도 손아귀가 찢어지고, 뼈가 울리는 고통일 것이다.

천우진은 그러한 일을 수차례씩이나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는지 천우진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번 한 수로 끝을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한 방 승부. 천우진의 제안을 소피아가 시원하게 받았다.

우웅···.

소피아를 향해 겨눈 천우진의 검에 푸른 마력이 모여든다. 이윽고 검이 내질러지자 그것은 마력의 격류가 되었다.

파츠즈즈즛─

소나기가 떨어지듯 무수한 검기의 해일이 소피아를 향해 빗발쳤다.

격류는 하나하나가 독립된 마력이었으며, 예리한 칼날이었다. 마치 수십의 검이 내질러지는 듯한 환상이 일었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소피아의 대응은 지극히 단순했다.

위에서 아래. 어떠한 검술도, 기교도 없었다. 그저 대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단순한 ‘한 방’. 그 단순한 한 방에 쇄도하던 마력이 태풍에 휘말린 빗방울처럼 쓸려나갔다. ······천우진도 함께.

콰아아앙─!

묘사는 그럴싸했지만 실상 녀석이 처맞고 날아가기까지는 1초도 안 걸렸다.

‘엄청 아프겠네.’

대련장 구석에 처박힌 천우진이 벌레처럼 꿈틀거린다.

다행히,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소피아가 적당히 힘조절을 해준 덕에 부상은 크지 않은 듯했다.

“해솔님, 끝났습니다.”

처박힌 천우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소피아가 돌아온다.

“음, 수고했어요.”

힘 조절한다고.

“그래서 어땠어요?”

“검술은 쓸만해 보였지만, 그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피아가 갸웃거린다. 세계관의 주인공을 날려버린 것치곤 굉장한 저평가다.

‘그렇겠지.’

‘1초컷’을 해버렸으니···.

어디 능력을 느낄 시간도 없었을 거다.

그 전의 지지부진했던 수 싸움이야, 관심도 없는 소피아였으니. 얼마나 못미더웠으면 이렇게 물어오기까지 했다.

“정말 도움이 될까요?”

“예, 될 겁니다.”

능력은 아직 부족할지 몰라도, 검성의 가호를 지닌 녀석이었으니······

마릴의 빈틈을 노리기에는 분명 적합하리라.

‘이제 한 명만 더 데려오면 되겠네.’

가장 중요한 퍼즐이 남아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낸 나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

쏴아아······

도심을 벗어나는 차에서 소진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먹구름이 깔려 어두운 세상. 추적추적 내리는 비.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의자에 몸을 묻고 창밖을 내다보며 소진은 기억에 잠겼다.

소진.

그녀는 화국 태생의 고아였다. 아니, 고아였을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가족이 분명 ‘3명’이었다는 기억이 있으니.

다만 3명이었다는 것만 알 뿐, 그 외의 것은 무엇 하나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어쩌면 외로움이 불러일으킨 착각일지도 모른다.

다만, 기억을 시작할 무렵의 그녀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왜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 그녀가 고향인 화국을 떠나온 이유는 단순했다. 이상했으니까.

자신이 화국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소진은 너무도 확연하게 느꼈다.

당시는 그게 어떠한 차이인지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안다.

자신은 그들에게 결여된 ‘감정’이 존재했다. 그랬기에 소진은 화국을 도망쳐 나왔다.

‘세례’를 받은 이들이 사용하는 게이트를 통해서. 물론 그녀의 도주 사실은 금방 들통나 버렸고 추적자들이 따라붙었다.

쏴아아······

먹구름이 깔려 어둠에 물든 세상. 추적추적 내리는 비.

자신을 둘러싼 하얀 옷의 세례자들을 보며 소진은 죽음을 직감했다.

기적은 그 순간 일어났다.

털썩, 털썩, 털썩.

그녀를 에워싼 세례자들이 거짓말처럼 무너져내렸다.

그들의 뒤에서 첨벙첨벙 흙탕물을 밟으며 걸어오는 남자.

“덕분에 이놈들을 잡았구나.”

“······.”

죽음에서 구해진 소진은 나타난 남자를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어깨가 종이처럼 떨렸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남자에게선 생전 느껴보지 못한 자신과 같은 ‘감정’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음? 춥나 보구나.”

눈가를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귀여운 얼굴에 눈물을 흘리는 거 아니다.”

더러워지는 건 개의치 않는지 바지를 흙탕물에 적시며 앉은 남자.

타다다닥─

소진의 눈이 커졌다. 남자의 뒤로 수십의 세례자들이 몰려들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라.”

머리를 쓰다듬어준 남자가 제 커다란 겉옷을 씌워 준 채 돌아선다.

“금방 끝날 테니까.”

그리고, 남자의 말처럼 정말 얼마 안 있어 모든 것이 끝이 났다.

그게 소진이 기억하는 신검 차시우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화국과의 이별이었다.

끼이익─

차가 멈추는 반동에 소진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다 왔습니다. 실장님.”

“수고했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십시오.”

“예.”

우산을 든 소진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여기입니다.”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빙긋 웃으며 손을 들고 있었다.

섬을 부수겠다고 선언한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마경의 주인이었다.

***

“내 집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탐식의 마녀, 최아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의 저택에 때아닌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 저택이 만들어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섬 좌표도 갱신받아야 하는데, 너무 뭐라 하지 마.”

“알려줬을 텐데요?”

“지금이면 바뀌었겠지.”

뻔뻔하게 말하며 남의 집 쇼파에 멋대로 앉는 남자를 보며 최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하아.”

이 남자와 엮인 이후로 그녀의 일상에 비틀림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최아린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너가 데려왔지?”

“저택에 사람이 모이는 게 꿈 아니었어?”

“이런 식은 아니야.”

“후훗, 그래?”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 이는 이본느였다.

“이상한 놈들 그만 좀 데려와.”

신경질을 내는 최아린이 귀엽다는 듯 이본느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실 두 사람은 오거스트로 인해 종종 마주칠 기회가 있었고, 그로 인해 나름 두터운 친분을 지니고 있었다.

저택에 갇혀 지내는 최아린에게 가끔 방문해오는 이본느는 바깥 세상에 대해 말해줄 좋은 이야기꾼이었으니······.

“그래서, 저번에는 못 물어봤는데 너, 그 상태는 뭐지? 기운이 바뀌었어.”

일전에 최아린이 이본느를 뒤늦게 알아본 이유는 그녀의 기운이 완전히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종류로 말이다.

“갱신 좌표 알려주면 말해줄게.”

하아. 한숨을 내쉰 최아린이 섬의 위치를 다시금 알려준다.

좌표를 들은 이본느는 그대로 저택의 바닥에 워프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야! 누가 남의 집 바닥에 낙서하래!”

기겁을 하는 최아린. 그렇게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나는 저택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다 모였네.’

마경의 주민들, 내 학우들. 그리고, 협회장의 비서인 소진.

섬을 부수기 위해 내가 불러모은 이들이었다. 어지간한 길드나 단체조차 단숨에 무너트릴 수 있는 전력.

하지만 사실 이들만으로도 섬을 부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괜히 오거스트가 한 세기란 긴 세월 동안, 오마의 일각으로써 군림해온 게 아니었으니까.

전력으로 맞붙는다면 필패.

크루트나 녀석의 부하가 없더라도 오거스트 혼자에게 모두 쓸려버린다.

하지만 여기에 내가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패를 뒤집을 수 있는 전략을 짜내는 것이야 말로 ‘고인물’이었으니.

이를 위한 파츠와, 계획은 모두 준비가 되었다. 남은 건 계획의 정리와 실행뿐.

“그래서 섬을 어떻게 무너트릴 생각이죠?”

소진의 물음. 나는 아멜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설명해 줘.”

“제가요?”

“너가 가장 잘 말하잖아.”

“···하, 어쩔 수 없네요.”

내 칭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멜리아. 아닌 척 입꼬리가 올라간다.

참, 구슬리기 쉽단 말이야.

그래서 편하지만.

“흠흠, 잘 들어주세요.”

목청을 가다듬은 아멜리아가 일행을 모아놓고, 계획을 설명한다.

그렇게 설명이 끝날 즈음, 저택의 바닥에는 이본느가 그린 워프진이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그럼, 이제 가볼까?”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워프진에 올라섰다.

이제, 섬을 부술 시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