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9화 (140/226)

§ 139화

휘이이······

워프진을 타고 이동하기 무섭게 요란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아, 또······!”

상공임을 직감한 은가예가 반사적으로 아멜리아에게 엉겨 붙는다.

인상을 쓴 아멜리아는 마법을 쓸 준비를 시작하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전번처럼 무작정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에?”

지팡이를 들던 아멜리아는 느닷없는 발아래의 평평함에 갸웃거렸다.

“아!”

고개를 내린 그녀가 감탄을 터트렸다.

넓적한 실드가 지면처럼 그들을 받치고 있었다.

“내려요!”

아멜리아가 제 몸에 매달린 은가예를 있는 힘껏 떨궜다.

“으아아악! 떨어진다! 떨어······에?”

떨어진다며 요란법석을 떨던 은가예가 돌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떨어질 걸 각오했는데, 느닷없는 단단함이 몸을 받친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이본느. 그녀에게서 방출된 마력의 아우라가 실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시끄러워, 그만 난리 쳐.”

아기고양이처럼 단약을 오물거리던 일레인이 핀잔을 주었다.

“에헿, 미안.”

멋쩍게 뺨을 긁적인 은가예가 이본느를 돌아보며 순진한 물음을 던졌다.

“저번에는 왜 이런 거 안 하셨어요?”

“그편이 더 재미있잖아요.”

후후, 웃으며 대답한 이본느가 짐짓 아쉽단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게 이번에는 그렇게 했다간 정말 떨어져 죽을 사람이 꽤 있었으니까.

나는 가만히 앉아 상공의 정경을 구경했다.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하얀 구름. 그 위를 우리릍 태운 실드가 유영하고 있었다.

“꺄하하!”

“구름이야!”

리디아와 니엘이 소풍을 나온 것처럼 시끄럽게 실드 위를 뛰어다닌다.

떨어질 때도 신나 하더니, 쟤네는 안전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

한편, 소피아는 대검을 무슨 생명줄처럼 부둥켜 안은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비행 마수를 잡을 때는 놈들이 나는 것보다 더 높이 도약을 해서 사냥을 하는 강심장인데, 이런 쪽은 무서워하는 게 참 특이했다.

“다왔어요, 소피아.”

이미 지면에 내려섰음에도 대검을 부둥켜안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도착 사실을 알렸다.

“···아. 내려왔군요.”

안도어린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는 소피아. 마법이 어지간히도 무서운가 보다.

그런데 이 섬도 엄연히 말하면 마법으로 부유하는 비행섬인데 그쪽은 괜찮은 건가.

엉뚱한 생각을 접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가 내려선 곳은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이본느, 소피아. 두 사람만 저를 따라오세요.”

단 둘만 데리고 이동하겠다는 내 말에 의문을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전에 그렇게 계획을 해 놓았으니.

오거스트를 상대하는 것은 우리 셋만으로도 충분했다.

원래라면 모두가 덤벼도 녀석 하나를 상대로 승리를 점치기가 어렵겠지만, 그것은 놈이 전력을 다 끌어낼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나머지 인원들이 녀석의 손발을 잘라 놓아줄 것이다.

라우라와 한세연은 오거스트의 군단인 크루트의 무력화를.

소진과 일레인은 섬 전체에 반전마법진을 새겨 녀석의 능력 봉인을.

세오릭을 비롯한 주요 데몬스폰들은 아렌과 나머지 일행이 맡아주리라.

오거스트의 수족들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쪽의 승산은 충분했다.

대성당에서의 격전에서 녀석들의 강함은 질리도록 겪어보았으니까.

나와의 계약으로 모두가 강해진 지금의 언데몬이라면 무조건 이길 것이다.

그렇게 모든 계획이 진행되어 오거스트가 궁지에 몰린다면 우리의 승리였다.

“다녀올게.”

“있다가 봬요.”

일행은 내게 안부 인사를 전하곤 각자 조를 꾸려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던 내가 소피아와 이본느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도 가죠.”

“예, 마스터.”

우리는 오거스트가 있을 섬의 중앙. 관조자의 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나와, 이본느, 소피아가 섬의 중앙을 향해 느긋이 걸음을 옮긴 한편, 일행은 계획의 준비에 착수했다.

“나와.”

일레인이 작은 몸을 낑낑대며 옮긴 대형 캐리어를 열자 그 속에 잔뜩 들어 있던 인형들이 튀어나온다. 얼마나 챙겨왔는지 족히 100개는 되어 보인다.

“와아-!”

“신기해요오!”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을 보며 니엘과 리디아가 눈을 별처럼 반짝였다.

“애들아, 인형 건들지마.”

“니엘이 건드리라 시켰어요.”

“내가 언제!”

은근슬쩍 인형을 만지려다 아멜리아에게 제지당하는 두 아이.

“······.”

그런 아이들을 보며 소진이 불신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저 두 아이는 마법진을 그리는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이었다.

소진은 저 두 아이가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 믿기죠?”

“···예, 솔직히.”

그래서 아멜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디아와 니엘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제 또래의 악동들이었으니······.

“저래 보여도 엄청 강하니까 믿으세요. 오우거도 우습지 않게 사냥하는 애들이거든요.”

······오우거를?

쟤네가?

“리디아가 먼저 잡았어!”

“내가 찜한 거야!”

인형 하나를 붙들고 씨름을 하는 두 아이를 보며 소진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저 두 아이가 오우거를 잡는 장면이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를 않았으니까.

한편, 인형들을 부려 마법진을 그리려던 일레인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죠?”

“···마법진이 새겨지지를 않아요.”

과연, 그녀가 보니 인형이 땅에 마법진을 새기기 무섭게 그 ‘마력’이 섬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 섬은 감정과 생명뿐 아니라, 지면에 새겨진 마력조차 먹어버리는 게걸스러운 괴물이었던 것이다.

‘이래서였나.’

소진은 마법진을 그리는 걸 도우라던 마경의 주인의 말을 떠올리곤 내심 놀랐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때는 왜 자신을 떼어놓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걸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소진이 땅에 손을 얹었다.

스스스─

그녀의 마력이 섬의 지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일레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소진의 마력이 사라지지 않고, 지면에 그대로 새겨진 것이다.

“···어떻게 한 거죠?”

“제 마력이 음의 계열이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선천적으로 ‘서리의 마력’을 타고났다. 그녀의 마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얼려 버린다. 그리고 얼린다는 것은 ‘정체’를 의미했다.

즉, 탐식의 권능을 지닌 섬이라도 소진의 마력은 빨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진이 화국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유지하고, 도망쳐 나올 수 있던 이유였다.

“서리의 마력을 이용하면 섬에 마법진을 새길 수 있을 겁니다.”

인형들이 쥐고 있는 마력분필에 소진이 자신의 마력을 담았다.

이윽고 백에 달하는 인형들이 마력의 분필을 들고 섬 곳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섬이 빼앗은 감정을 되돌려줄, ‘반전 마법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

일레인과 소진이 섬에 마법진을 새기는 사이, 라우라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한세연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오오······.

눈을 감은 한세연에게서 일어난 마력이 섬 전체로 퍼져나간다.

고요한 수면에 조약돌을 던진 것처럼 아주 작은 파문. 단지 그뿐이었다.

과연 이런다고 크루트들이 반응할지 라우라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크르르르······”

돌연 울려오는 낮은 으르렁거림.

하나, 둘 나타나는 크루트들을 보며 라우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수지체라는 게 정말 있었네요······”

한세연이 던진 작은 파문에 섬 곳곳에 퍼져있던 크루트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두 사람이 있는 숲의 공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수는 처음에는 한, 둘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더니, 이제는 숲이 미어터질 듯이 넘쳐나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캬르르륵!”

녀석들은 한세연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공터의 밖에 모여 위협적인 울음만 토해냈다.

만약 이 녀석들이 일제히 덤벼든다면 그녀들은 무사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라우라는 놀랍다는 반응은 보였으나 겁을 집어먹지는 않았다.

“하암, 이젠 제 차례네요···.”

그저, 입가를 가리며 앞으로 나설 뿐.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백 쌍의 샛노란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물경 수백을 헤아리는 마수의 대군(大軍).

“조금 많지만··· 음, 많이 많네요··· 하지만···”

그리 중얼거리며 라우라는 느닷없이 아공간 가방에서 이불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영락없이 취침을 준비하는 모습.

베개마저 꺼내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가 깊은 심호흡과 함께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세상이 어둠에 침잠한다.

이윽고, 다시 떠졌을 때 잿빛이었던 그녀의 눈은 샛노란 금안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지독히도 ‘마수’의 것과 닮아 있었다.

“크르르르르!”

라우라의 눈을 마주한 크루트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울음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닌 공포에 잠겨 있었다.

[수안獸眼(A)] → [백귀야행百鬼夜行(S)]

데몬으로의 진화를 겪으며 그녀의 기프트 또한 진화했다.

마수를 조련할 뿐인 능력에서 마수를 다스리는 권능으로.

“마스터가 주신 이 눈이라면 괜찮겠죠···.”

번쩍-

그녀의 금안이, 공터를 둘러싼 마수의 대군을 비추었다.

***

나와 이본느, 소피아는 섬의 중앙을 향해 느긋한 여정을 시작했다.

도중에 눈에 띄는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 구경을 했으며 배가 출출하면 군것질거리도 사먹었다.

마치 화국에 여행을 온 관광객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이동했다.

그렇게 장장 3시간에 걸쳐 섬의 중앙, 관조자의 탑에 다다랐다.

“······.”

텅 빈 거리. 결벽증이라도 있는 듯 지독히도 새하얀 순백의 광장.

예의 정신 나간 사이비들의 종교집회가 벌어지던 곳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때, 광장으로 들어서려는 우리를 하얀 옷의 사람들이 막아섰다.

“세례의 시간은 되지 않았다···.”

“돌아가라.”

데몬스폰이었다. 그것도 스스로 오거스트에게 귀의한 녀석들.

오거스트가 부리는 수족이자 광신도인 저들을 협회에서는 하얀미치광이. 즉, 백광인(白狂人)이라 불렀다. 그중에서도 광장을 수호하는 이들은 정예다.

다섯이 모이면 상격초인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 그런 놈들이 지금 스물이나 모여있었다.

녀석들은 우리를 향해 지독한 ‘살기’를 뿜어냈다. ‘다툼’이 금지된 화국에서는 설령 상대가 누가 되었든, 싸움이 금지되어있지만 단 한 곳. 세례의 광장만큼은 예외였다.

세례가 벌어지는 시간이 아니라면 누가 오더라도 참수의 대상이 된다.

뚜벅뚜벅─.

나는 그 지독한 살기가 뿜어지는 공간의 한복판을 나아갔다.

“···즉참.”

“죽어라.”

백광인들에게서 순백의 마기가 아우라처럼 일어난다.

그리고.

털썩, 털썩, 털썩···.

내가 나아감과 동시에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내렸다.

녀석들에게 이어진 오거스트의 ‘지배의 끈’을 기력이 끊어버린 것이다.

계약이 파괴된 데몬스폰은 기절해버리기에. 그리고 기절한 자의 ‘영핵’을 부수기란 손가락을 비트는 것보다 쉬웠다.

“······.”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런 내 뒤를 소피아와 이본느가 따랐다.

침묵만이 흐르는 순백의 광장은 기분이 나쁠 정도로 새하앴다. 계속 보고 있다간 나까지 정신병이 옮을 것 같았다.

“소피아씨.”

“예.”

“좀 부수죠.”

“알겠습니다.”

소피아의 대검이 휘둘러졌다.

콰앙─! 콰앙─! 콰앙─!

세 차례의 참격이 광장을 할퀸다.

기둥이 무너지고, 동상이 부서지고, 땅이 패여 나갔다. 적당히 어질러진 광장을 보며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역시 사람은 어느 정도 어질러져 있어야 된다. 너무 깨끗하면 숨이 막혀버리거든.

소피아의 파괴행위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콰앙─! 콰앙─!

네 번째 참격이 패인 땅을 부수고, 다섯 번째 참격이 두 번째 기둥을 박살냈다. 그렇게 여섯 번째 참격이 관조자의 탑에 직격하려던 순간.

턱─.

참격이 막혔다.

“등장하셨네.”

그곳에는 한 손을 들어 참격을 막은 창백한 인상의 청년이 서 있었다.

평소의 인자한 모습은 어디다 내팽개쳤는지 무척이나 분개한 얼굴로.

“내 공간을 더럽히다니, 이게, 이게 무슨 만행이냐.”

결벽증 환자. 오거스트의 등장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