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콰아아아아─!
새까만 칠흑의 마기가 광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기가 노리는 대상은 바로 오거스트였다.
“······뭣!?”
흑요의 공격이 자신을 향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오거스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느새, 마기는 그의 머리 위까지 치달아 있었다. 오거스트는 이본느를 노리던 기운을 돌려 황급히 흑요의 공격을 막아섰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리고, 오거스트가 뒤로 튕겨 나갔다.
느닷없이 일어난 일에 대응이 미진했던 탓에 오거스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뒤이어 그의 눈이 흔들렸다.
“!”
튕겨지는 와중에 뒤늦게 흑요의 등 위에 누군가 올라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심지어 상대는 자신이 무던히도 탐을 내던 인재였다.
그녀가 어떻게 흑요의 위에 올라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 찰나, 대검이 날아들었다.
카아앙─!
대검을 막은 오거스트의 인상이 슬쩍 찌푸려졌다. 마기로 막았다지만, 충격이 파고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육탄전을 반기지 않는 오거스트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소피아는 까다로운 존재였다. 하물며 소피아의 공격은 그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대검을 막음과 동시에 휘둘러진 발이 오거스트의 옆구리를 노렸다. 팔을 세워 막자니 다시 한번 대검이 내리쳐온다.
한 번 물어버린 이상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소피아는 오거스트가 끊임없이 몰아쳤다.
머리, 어깨, 주먹, 다리······
마치 몸 전체가 흉기라도 되는 양, 사용하지 않는 부위가 없었다. 그 일격 하나 하나가 철퇴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오거스트는 그런 소피아를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다.
소피아 외에도 그가 신경 써야 할 대상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나와 이본느는 물론, 상공의 흑요를 확인하느라 신경이 분산된 것이다.
흑요가 상공에서 내려올라 할 때마다 오거스트는 마기를 날려 녀석이 광장으로 접근하지 못하게끔 견제를 했다.
그렇게 흑요와 소피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한편, 오거스트는 마기로 전신을 보호하기까지 해야만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파랑이의 불길이 소피아와 오거스트를 집어삼키고 있던 것이다.
화르르르륵─
푸르게 불타는 정화의 불길은 오거스트에게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마기는 녹아들고, 공기는 지독히도 뜨거웠으며, 불길에 닿은 피부는 재생이 더뎌졌다.
하지만 어떻게 된 연유인지 함께 불길에 휩싸인 소피아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되려 불길에 상처가 재생되고, 활력마저 되찾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마인인 오거스트에게 신수인 불사조의 불길은 치명적이었으나, 나와의 계약관계인 소피아는 파랑이와도 간접적인 계약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융합체인 나와 파랑이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니 악영향을 받기는커녕 활력을 얻는 것이다.
내 육신이 파랑이의 불길에 닿으면 재생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되었다.
“소피아! 붙잡고 있어!”
그때 이본느가 소리쳤다. 그녀의 부채가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공간이 요동칠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운이 집약된 홍염(紅焰)은 마치 하나의 작은 태양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런 걸 무방비로 맞았다간 제아무리 오거스트라도 무사할 수 없었다.
표정이 굳어진 오거스트가 소피아를 떨궈내려 했지만, 소피아는 가일층 오거스트를 몰아붙였다.
“큭!”
소피아에게 발목이 잡힌 오거스트를 향해 홍염의 불길이 날아들었다.
화르르르륵─
지척까지 날아든 홍염에 소피아의 피부가 익으며 살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홍염이 더욱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버텼다.
그렇게 피할 수 없기 직전까지 다가오고서야 소피아는 내가 놓아준 기력의 발판을 박찼다.
‘탄성’을 지닌 기력은 고무줄처럼 튕겨 그녀를 멀리까지 날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홍염이 오거스트에게 작열했다.
──────!
일순 시야를 하얗게 물들일 정도의 가공한 폭발.
화광이 충천하며, 사방으로 열풍이 퍼져나갔다. 그 위로 흑요의 마기가 연이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거듭된 폭격에 지면이 꺼지며, 솟아오른 잿가루와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리었다.
생명체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듯한 괴멸적인 풍경.
하지만 누구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녀석이 죽었을 가능성조차 떠올리지 않았다.
피잉, 피잉!
아나스타샤가 망령의 재생을 계속해서 저지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오거스트의 생존을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소피아의 [분쇄자]로도 부술 수 없는 저주의 망령은 오직 본체인 오거스트가 죽어야지만 사라지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걷히는 먼지구름 너머로 검은 구체가 보여왔다.
구체 안에 존재하는 오거스트의 상태는 끔찍했다.
홍염에 직격당한 상반신은 날아갔고, 머리는 반절만이 남아 구체 속을 유영했다.
터지고 녹아내린 살점, 핏물, 하얀 가루, 검은 재 등, 신체의 잔여물이 가득했다.
도저히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모습. 그러나 오거스트는 살아있었다.
원천인 마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녀석은 몸이 조각나고 불타도 끊임없이 부활하는 괴물이었으니······.
파랑이를 대동한 소피아가 달려 나갔다. 그 뒤를 화염의 칼날이 따른다.
화르르륵──!
푸른 불길을 휘감은 대검이 오거스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꽈앙──!
검붉은 스파크가 튀기고, 소피아가 튕겨 나갔다. 화염의 칼날조차 허무히 막혀버렸다.
기력을 방사해 땅에 나뒹굴려는 소피아를 안전히 받아낸 내가 오거스트를 돌아보았다.
검은 구체 속 오거스트의 신체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러한 녀석에게서는 보기만 해도 불길한 어둠이 스멀거리고 있었다.
소피아를 튕겨내고, 이본느의 불길을 막은 그것은 기프트,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녀석은 흑요와 이본느의 공세 속에서 기프트를 발동시킨 것이다.
비록 그것은 현저히 불완전한 형태로 발현되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체의 공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음에, 소피아와 이본느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기프트를 발동하기 전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괴물이 오거스트였으나, 기프트를 발동한 후의 녀석은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오히려 호재로 받아들였다.
조금 전의 공세를 허용함으로 인해 오거스트의 마기가 대량으로 증발해버렸으니까.
원래라면 섬에 저장된 에너지로 인해 무한한 재생과 힘을 내보이는 것이 가능한 오거스트였으나, 섬과의 연결이 끊긴 녀석이 마기를 공급받을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마기를 기프트로 돌려버린 녀석에게 더 이상의 재생은 불가능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
궁지에 몰린 녀석이 내보이는 최후의 발악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 튀어야지.”
“······예?”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던 이본느와 소피아가 나를 얼빠진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눈을 깜빡거리는 그녀들에게 내가 오거스트를 가리켰다.
“저걸 받아주게요?”
“······.”
“······.”
오거스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에 영향을 받은 망령들 또한 사람의 형상을 취하며 일어나고 있었다.
저런 것들을 굳이 상대해줄 필요성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오거스트의 기프트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테니. 기프트가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라는 말이다.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이본느와 소피아도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어어······”
어느새 형상을 갖춘 망령들이 불길한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
아나스타샤는 언제 돌아왔는지 내 품에 쏙 들어가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튀죠.”
“···예.”
우리는 오거스트가 재생되기 전에 광장을 뛰쳐나갔다. 그 뒤를 사람처럼 변한 망령들이 우르르 쫓아왔다.
─그어어······
생긴 건 좀비처럼 생긴 것들이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순식간에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녀석들을 향해 이본느가 부채를 휘둘렀다.
화르르륵──!
불의 장막이 일어나 녀석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불길에 녹아내린 녀석들은 잠시 발이 묶였을 뿐, 다시금 재생되어 우리를 뒤쫓아왔다.
“그어어어어!”
우르르 뛰어오는 망령들이라니, 호러도 이런 호러가 없었다.
피잉, 핑!
내 옆구리 쪽으로 몸을 쭉 내민 아나스타샤가 뒤쫓아오는 망령들을 요격했다.
머리가 터져 나간 녀석들은 속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달려왔다.
─크아아아아아!
그때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흑요가 마기를 방출해 망령들을 쓸어버렸다.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으로 내려서는 흑요. 그제야 우리는 달리던 것을 멈추었다.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타 날아가면 그만이었으니.
“나이스!”
한세연에게 엄지를 치켜보인 내가 그녀의 뒤로 올라타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흑요의 등 위에 올라탈 필요가 없었다.
쩌저저적──!
돌연, 재생되던 망령들이 일시에 모조리 얼어버린 것이다.
불길에 녹고, 흑요의 마기에 맞아도 끊임없이 재생하던 녀석들은 얼어붙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냉기가 날아든 방향을 바라보았다.
텅 빈 거리의 한복판을 소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한 남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진짜 왔네.”
남자를 본 내가 중얼거렸다.
“또 보는군.”
반갑게 손을 들어 보이는 남자는 신검 차시우였다.
솔직히 그가 올 가능성은 반반이라 보았는데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올 거면 좀 빨리 오든가, 이미 다 끝나버린 상황이었으니까.
“놓치지 않겠다!”
어둠을 두른 오거스트가 상공에서 내려섰다. 그런 녀석의 힘은 처음보다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유통기한 끝나가나 보네.”
물론, 유통기한이 다 끝나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싶었지만 더 이상 도망 다닐 필요는 없었다.
스아악─
나를 향해 들어 올렸던 오거스트의 팔이 툭 떨어져 내렸다.
“뭐어···?”
오거스트가 멍청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차시우가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너는!”
오거스트의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차시우는 되려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저렇게 만든 거지?”
지금의 오거스트는 그가 알고 있는 오거스트의 5분의 1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오거스트를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지 차시우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빨리 해치우기나 하죠.”
“캬르르르······”
어느새, 우리의 주위에는 크루트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오거스트의 사역마인 녀석들이 제 주인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천우진, 은가예, 아멜리아, 일레인, 아렌, 라우라, 리디아, 니엘······
역할을 마치고 나타난 모두가 오거스트를 포위했다.
그리고, 때마침 오거스트에게서 피어오르던 용서받지 못한 자의 기운이 사라졌다.
“유통기한 끝났네.”
“이것들이······!”
당혹으로 굳어버린 오거스트를 향해 내가 입가를 들어 보였다.
“그럼 죽어야지.”
그 말을 기점으로 오거스트를 향한 총공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