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탐식의 계약자에게 주어진 말로란 언제나 한결같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복에 시달리다 이성을 잃고, 종국에는 죽음을 택하게 된다.
정신이 멀쩡히 박혀 있는 인간이라면, 힘을 얻는다 해도 절대 택하지 않을 계약이다.
하지만 탐식이 원하는 대상은 정신이 멀쩡히 박혀 있는 인간이 아니다.
아사 직전에 놓인,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가 바로 탐식이 원하는 계약의 대상이었다.
탐식은 그러한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포만감을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꼬드긴다.
그리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라면 상대가 누가 되었건 손길을 뻗어주면 붙잡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최아린이 처한 환경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수용소.
사람들을 가둬놓고 마력을 착취하는 저주받은 시설.
죽으면 치워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는 그 생지옥에서, 하루하루 야위어가던 그녀에게 손길을 뻗어준 존재란 오직 탐식만이 유일했다.
[···배고픔을 잊게 해주겠다.]
머릿속에 들려온 그 말은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아아······”
최아린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진 처음 몇 년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단순히 배고프지 않을 뿐이었으나 최아린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 포만감은 어느 날 끝도 없는 공복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배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어 놓은 것처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복감이 정신을 갉아먹었다.
수용소가 오히려 더 낫다 여겨질만큼의 고통에, 최아린은 서서히 미쳐갔다.
마족의 계약이란 게 대개 이런 식이었다.
달콤한 말로 상대를 꿰어내고, 종국에는 절망을 선사한다.
그렇게 이지를 상실해가던 최아린에게 접근한 것이 바로 협회였다.
그들은 탐식이나 오거스트와 같은 말로 그녀를 꼬드겼다. 공복을 잊게 해주겠다고.
최아린은 내밀어진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으니까.
그리고 협회에게 제공받은 것이 바로 이 저택이었다.
이 저택에서 그녀는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 밖으로는 나갈 수 없으나 공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 대가로 협회는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그녀를 찾아와 무언가를 지워달라 요구했으나 최아린은 모두 받아들였다.
저택을 얻은 대가로 그 정도 요구쯤이야 당연했으니까.
그렇게 최아린은 협회의 도구로서 저택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변하지 않는 쳇바퀴가 굴러가는 삶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이제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가게 해줄게. 밖으로.”
왜 이리 심장이 뛰는 거지.
저렇게 쉽게 내뱉는 것이 기가 차서, 그런데 정말 저 말대로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났다.
그러나 작은 기대가 싹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안될 걸 알면서도 묻고 말았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할 수 있으니까.”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최아린을 향해, 내가 말했다.
“나를 먹어라, 최아린.”
***
일순, 현관에 정적이 감돌았다. 주위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미친 거야?”
최아린이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안 미쳤다.”
“안 미쳤는데 먹으라고?”
“어, 그래야지 네가 밖으로 나갈 수 있거든.”
최아린의 능력인 ‘탐식’은 공간에 구멍, 즉 ‘게이트’를 만든다.
이 게이트를 통해 흡수된 것은 뭐가 되었건 세계에서 지워진다. 말소당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최아린이 나보고 미쳤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내가 태연히 말했다.
“걱정말고 먹어. 먹고 싶어도 넌 못 먹을 테니까.”
최아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못 먹는다고?”
“못 믿겠으면 시험해 보던지.”
말과 함께 나는 내 옷자락을 내밀었다.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거머쥔 최아린의 눈이 이윽고 커다래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봐, 못 먹지?”
탐식에 먹힌 것은 세상에서 말소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탐식이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탐식은 마족이 아니라 신이라 불려야 하는 게 옳을 테니. 녀석의 분야는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니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내게 탐식의 능력은 통하지 않는다.
일례로 오거스트의 화국에서조차 섬은 내게서 감정을 빼앗아 가지 못했으니.
최아린이 느끼는 ‘공복’또한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에 기인했다.
그녀가 느끼는 공복은 정말로 배가 고프기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에 걸린 ‘금제’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취하고 싶어하는 탐식이, 계약자를 상대로 걸어놓은 일종의 저주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저택에는 정신을 강제로 안정화 시키는 마법이 걸려 있기에 최아린은 공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저택이 정신에 간섭하려는 것을 내가 느꼈기에 알 수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최아린의 금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그녀의 정신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었다.
‘대충 심층의 기저쯤.’
저 정도로 강력한 금제가 새겨지려면 표면의식의 너머에 존재하는 심층의 기저. 즉, 내의식(內意識)이어야지만 가능했다.
과거, 도서관의 동자귀로 인해 처음 들어가보았던 영역.
그리고 타인의 내의식까지 들어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아린의 경우는 굳이 직접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최아린의 ‘게이트’가 연결된 곳이 바로 금제가 걸린 탐식의 능력이 자리한 곳이었으니······.
즉, 그냥 먹히면 금제가 자리한 곳으로 알아서 이동된다는 이야기다.
거기서 아가리를 쩍 벌리고 받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녀석의 입에 지퍼를 달아주면 되는,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걱정말고 열어.”
“······.”
여전히 망설이며 찔끔찔끔 게이트를 여는 최아린.
나는 좁게 열린 구멍을 양손으로 잡고, 쫙 찢듯이 열어젖혔다.
“어, 어?”
“닫지 말고 계속 벌리고 있어.”
놀란 최아린이 당황하는 걸 뒤로하고, 내 영혼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
······내의식의 세계는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떠다니는 혼돈의 바다다.
물건, 감정, 현상, 생명 등, 온갖 것들이 잡다하게 섞여 어두운 공간을 떠다녔다.
보통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이 혼돈의 바다에 휩쓸려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나는 내의식의 세계에서도 또렷한 자아를 유지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자니, 중심에 똬리를 튼 기괴한 구멍이 보였다. 그것이 나를 잡아먹을 듯 느릿하게 다가왔다.
탐식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이되 어떠한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문자로 표현해보면 대강 이랬다.
‘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먹는다.’
[먹는다]라는 키워드가 끊임없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미친 새끼······”
대체 얼마나 많이 각인시켜놓았는지 그 열정에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이건 순수한 ‘노가다’의 산물이었으니.
이 녀석이 먹는 건 차원의 변경에 존재하는 ‘탐식’이 맛보게 된다.
방구석에 가만히 틀어박혀서 계약자가 물어다주는 것을 받아먹는 마족이 바로 탐식이었다. 이를 위해 계약자에게 ‘공복감’을 강요하는 것이다.
“내의식에 이딴 걸 박아놓으니 제어를 못하지.”
이런 키워드를 무작정 때려 박아놓으면 최아린이 아니라 누구라도 능력에 끌려다니게 될 터였다.
심지어 저건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나라도 지우는 게 어려웠다.
가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저걸 싹 다 지우려면, 나도 제법 긴 시간을 소비해야 했으니까.
대충 지우개 하나 들고, 50장짜리 노트에 새겨진 ‘먹는다’라는 글자를 일일이 다 지우는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걸 단번에 없앨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못하면 이걸 새긴 장본인에게 직접 지우라 시키면 그만이었으니.
그때, 탐식의 능력이 나를 먹어치울 듯 다가왔다. 입을 다무는 방법을 잊어버렸는지 아가리를 쫙 벌리고서.
“그래, 그렇게 계속 벌리고 있어라.”
스스스스스······
내 손에 어둠이 스멀거리며 일어났다. 그것은 오거스트의 기프트,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이렇듯, 내의식의 세계에서는 내가 직접 겪었던 능력을 구현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여기는 의식이 또렷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니.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오거스트보다도 강대한 힘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큰 거 한 방 들어간다.”
다가오는 능력. 녀석의 벌어진 아가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
수직으로 뻗어나간 검은 태풍이, 녀석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탐욕’이 자리하고 있을 차원의 변경을 향해서.
***
······최아린이 열어놓은 게이트를 통해 돌아온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한세연의 얼굴이었다.
“깼어?”
“응.”
올려다보이는 한세연.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무릎을 내어주고 있었나 보다. 나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탈진에 이어 ‘유체이탈’까지 하고 왔더니 정신이 멍했다.
내가 암만 부동의 각인을 지니고 있다지만, 탐식을 상대로 무려 기운을 13발이나 꽂아 넣고 나왔으니까. 정신이 아주 너덜너덜했다.
솔직히 그게 아니더라도 일어나기가 좀 그랬다.
화국에서 워프했을 때 마주한 한세연은 살짝 화가 난 듯해 보였으니.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인데 화가 난 것이 구분 가는 것도 참 신기했다.
한기가 느껴진다 해야 할지, 솜털이 선다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찔끔한 기분이라 화제를 돌릴 겸 최아린의 일을 곧장 처리한 것이기도 했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기도 했고.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은 거야?”
눈을 뜨자 최아린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를 본 내가 옅게 웃었다.
“나왔네.”
“나와?”
갸웃거리던 최아린은 내 시선이 닿은 발치를 내려다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어, 어? 이, 이게···”
그녀가 떠듬거리며 당황한 목소리를 토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지금 발을 내딛고 있는 곳은 현관의 ‘밖’이었다.
그것이 믿기지 않는지 최아린은 저택의 안과 밖, 주변을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그러고도 믿기지 않는지, 그녀가 붕 뜬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좀 패주고 왔지.”
“···패? 누굴?”
“탐욕.”
“······.”
최아린이 큰 눈을 깜빡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고마워.”
얼굴을 보자니, 탐욕을 패고 왔다는 내 말을 전혀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탐욕’이라는 건 개념에 가까웠지, 팰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
“축하해, 잘됐네.”
“응!”
이본느가 웃으며 축하해 주자, 최아린이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저택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곤 하지만, 협회에서 이를 달가워할 리는 없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로인해 유용한 ‘도구’를 잃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그 협회의 수장마저 자리해 있었다.
짝짝. 박수를 치며 걸어오는 남자.
“축하하네. 드디어 밖으로 나왔군.”
차시우를 본 최아린의 몸이 우뚝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