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축하하네. 드디어 밖으로 나왔군.”
저택을 벗어난 최아린을 보며 차시우가 박수를 쳤다.
“개인적으론 그대로 저택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주기를 바랬네만.”
은가예가 갸웃거렸다.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니, 저게 무슨 말이야?”
그 의아한 모습에 차시우가 최아린을 돌아보았다.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
“······.”
그녀가 눈매를 좁히자 고개를 끄덕인 차시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칠악. 탐식의 계약자다.”
““······!””
은가예를 비롯해 최아린의 정체를 모르던 이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은 최아린을 이본느의 지인이자, 저택의 주인으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여태 잔뜩 부려 먹다가 당신들의 손을 벗어날 것 같으니, 없애겠다는 건가요?”
이본느가 드물게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협회에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없애다니, 아직 그럴 생각은 없네.”
차시우가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뭐,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
최아린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좁혀졌다.
“조금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저택을 나온 그녀는 위험하니 말이야. 어찌 됐든, 그 ‘탐식’의 계약자이니.”
“난 아무것도 한 적 없어.”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지. 안 그러나?”
최아린은 인상을 구겼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지금이야 ‘공복’이 느껴지지 않는다지만,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리라고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괜찮을 겁니다.”
그때, 돌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최아린의 눈이 커졌다.
“제가 장담하죠.”
그리 말하며 나선 건 바로 나였다. 차시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장담하는 건 좋지만 그 말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초인사회를 수호하는 협회장인 차시우로서는 내 단순한 말 한마디만 믿고 최아린을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 최아린이 허기라도 느끼는 날에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될 수가 있었으니.
공복을 느끼게 된 탐식이 우선적으로 탐하게 되는 것이 바로 ‘생명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츄아악──!
나는 단검으로 내 팔뚝을 길게 베었다. 붉은 피가 물처럼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내 돌발적인 행동에 차시우의 표정이 멍해졌다.
“탐식은 피에 반응하죠.”
“···맞네. 피는 녀석의 갈증을 자극하지. 그런데 괜찮겠나? 자네, 그러다 먹히네.”
“괜찮습니다. 안 그러니까요.”
나는 피가 뚝뚝 흐르는 팔뚝을 최아린의 앞으로 내밀었다. 코를 찌르는 혈향에 최아린의 눈이 찌푸려졌다.
피가 자신의 갈증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내 찌푸려졌던 그녀의 눈은 서서히 커졌다.
“······아무렇지 않아?”
지금도 팔뚝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솟구치고 있었으나, 최아린은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았다
화르륵──
그때, 푸른 불길이 일어나 내 팔뚝에 난 상처를 집어삼켰다.
말끔히 팔이 회복된 내가 차시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증명이 되었습니까?”
“···놀랍군.”
차시우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믿지 않을 수 없겠어.”
생명의 원천인 ‘피’는 탐식의 갈증을 자극한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저택의 안에서조차 피가 발생하면 최아린의 이성이 잠식될 정도였다.
그랬기에 저택에는 그녀의 심복인 이든을 제하고는,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택이 협회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대마법]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저택의 밖에서, 그것도 바닥을 적실 정도의 피가 발생했음에도 최아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탐식의 계약자’가 이터니티에 등장한 이래 처음 있는 사례였다.
‘버서커’라 불리는 광전사란 바로 탐식의 계약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헌데 지금 그 풀리지 않던 광증(狂症)이 해결된 것이다.
“어떤 마법을 부린 건가?”
“말하는 거 다 엿들었잖습니까. 탐식을 패줬다고.”
“···그렇군.”
한세연의 품에 부축된 채 주먹을 흔들어 보이는 나를 차시우가 경이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오거스트와 더불어 탐식의 광증마저 하루 사이에 해결해버렸으니.
이는 차시우가 수십 년을 들여도 결코 해내지 못한 놀라운 공적이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이다.
하지만 내 공적과 별개로 아직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정말로 자네가 오거스트를 대신할 수 있는가?”
바로 이 문제였다.
최아린도 최아린이지만, 오거스트가 사라진 것에 대한 후폭풍은 분명 어마어마할 테니까.
차시우의 의문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오거스트를 잡는 방식은 순전히 ‘계획’에 의존한 것이었으니까.
결코 무력이 뛰어나기에 오거스트를 잡았던 게 아니었다.
실제로 오거스트가 제 힘의 반만 낼 수 있었어도 죽는 것은 오거스트가 아닌 우리가 됐을 테니까.
그러니, 차시우는 내가 오거스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해는 가나,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대신이라 말해서 오해하셨나 보네요.”
“오해?”
“예. 전 녀석의 자리나 채우고 있을 생각은 없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나는 의아해하는 차시우에게 눈을 맞추고 말했다.
“없앨 겁니다. 위협이 되는 놈은 싹 다.”
“······.”
차시우는 입을 멍하니 벌리더니, 내 말이 진심인지 확인하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심이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된 차시우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만약 협회가 위협이 된다면 어떻게 할 건가?”
“말했잖습니까. 위협이 되는 놈은 싹 다 없애겠다고.”
“···푸, 푸하하!”
차시우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이내 웃음을 뚝 그치더니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말한 만큼의 능력은 있어야 할 거네.”
“물론이죠.”
그리 말한 나는 몰려오는 현기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연달아 무리를 했더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방에 갈까?”
“응, 그래줘.”
나는 한세연에게 부축된 채 저택의 객실로 향했다. 그런 내 뒷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던 차시우가 중얼거렸다.
“······판도를 새로 짤 때도 되었지.”
이내 스마트폰을 꺼낸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데몬메이커 오거스트 사망!]
[협회에서는 오거스트의 죽음을 마경의 주인의 소행으로 확인, 진상조사에······]
[협회장 차시우. 마경의 주민들을 공식적으로 인정. 많은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해······]
화국의 일로부터 하루가 지난 수요일. 매스컴에서는 연일 오거스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떠오른 것이 바로 나와 마경이었다.
차시우로 인해 오거스트가 내게 죽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오거스트에게 가 있던 관심이 모두 내게로 쏠려버린 것이다.
“이 아저씨, 발도 빠르네.”
나는 차시우의 대처에 혀를 내둘렀다.
매스컴에서 나는 무슨 마인의 대척점에 선 존재처럼 묘사가 되어 있었다.
오거스트의 공백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차시우가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오거스트가 했던 역할을 내가 대신할 것이라는 경고를 매스컴을 통해 마인측에 통보한 것이리라.
결국 마인들은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는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버린 셈이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라는 건가.”
말하지 않아도 그리할 생각이기는 했다. 언데몬의 존재 의의를 다지기에 이보다 확고한 자리는 없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현재 ‘화국’에 와 있었다. 전날 바다에 떨어진 그 ‘화국’을 말하는 게 맞다.
기실, 화국은 떨어졌고 가라앉았으나, 다시 부상했다.
오거스트가 사라지며 부유의 힘을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이 섬은 살아있었으니까.
‘탐욕’의 일부가 이식된 이 녀석은 긴 세월이 흐르며 하나의 ‘독립성’을 띈 개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섬’의 목적이란 말 그대로 ‘섬’이다. 사람을 수용한 대지.
그 목적성을 가진 녀석은 다시 부상했다.
비록 반전마법으로 인해 감정을 토해내긴 했으나 이미 마기로 치환된 생명력마저 토해낸 것은 아니었으니. 그 상당량의 잔존마기를 이용해 바다에 부상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거스트라는 주인이 죽은 섬은 ‘최아린’의 권속이 되었다.
최아린의 의지에 따라 배처럼 이동을 할 수도 있고, 외부로부터 모습마저 감춰버리는, ‘유령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 다시 부상한 섬에 기존 화국의 주민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수천이나 되는 이 사람들을 마냥 국제난민으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섬이 더 이상 사람들의 생명력이나 감정을 빨아들일 일도 없었고 말이다.
다만, 추락의 여파로 폐허가 되어버린 섬을 복원하는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네요.”
“그러게.”
아멜리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섬 곳곳에서 시작된 복원작업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사방에 다채로운 마법진이 새겨지며 땅이 일어나고, 부서진 잔해가 복원된다.
그 수준이 제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화국의 국민은 일개 시민이라 보기 어려웠다.
모두가 오거스트의 ‘선별’을 통해 화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여진 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존 데몬스폰이었던 이들 중에는 마법을 고도로 다룰 줄 아는 이들도 제법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오거스트의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웠으니······
괜히 이들이 고립된 공간에서 하나의 사회를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참고로, 기존에 화국에 존재했던 크루트들은 전날의 추락사로 인해 싸그리 다 죽어버렸다.
비행을 할 줄 아는 녀석들도 죄다 흩어진 모양이었고.
상당한 전력이 증발한 셈이었지만,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만큼 많은 숫자의 크루트를 동시에 다루는 것은 라우라로서도 굉장히 부담이 가는 작업이었으니까.
물어보니 하루 이상은 통솔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쟤는 왜 안 가는 거죠?”
─크르르······
한세연의 품에는 흑요가 몸을 말고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애초에 「그림자」에 기원한 녀석이기에, 그 크기의 늘고 줄음이 자유자재였다. 그런 녀석을 본 라우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건 제가 부리는 게 아니에요······. 애초에 부리지도 못하고요.”
그러곤 놀랍다는 듯 한세연을 쳐다본다.
“세연씨를 따르는 녀석이에요.”
그러니까 흑요는 백귀야행의 능력으로 복속시킨 게 아니라, 순전히 한세연에게 이끌린 녀석이라는 소리다.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전력의 증강이었다.
아무튼 화국 주민들의 보금자리는 스스로 알아서 마련할 듯싶으니, 내가 관여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소진의 말을 들어보면 협회에서도 인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하니.
“이 사람들 때문에 날 데리고 나온 거야?”
‘문’을 열어 모두를 섬으로 인도한 최아린이 물었다.
권속이 된 섬과 그녀는 ‘탐식’이라는 능력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기에 이처럼 문을 열듯 자유자재로 오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들 머물 공간을 마련해주자고 그녀를 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있고, 다른 일도 있고.”
“다른 일?”
“나 좀 도우라고.”
오거스트가 죽은 이상 곳곳에서 깽판을 치는 놈들이 나타날 거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국에 최아린이라면 큰 도움이었다.
***
······마경으로 돌아온 나는 이틀을 쉬었다.
소피아, 아렌, 이본느, 리디아, 니엘.
다섯 사람의 혼마력을 한 몸에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다.
정신체에 가까워졌다곤 하나, 기존의 내 몸은 그리 튼실하지 않았으니.
물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였다. 그런 것보다는 당장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손을 내밀어주세요.”
“예.”
갸웃거리면서 내게 손을 내미는 소피아. 내가 그 손을 홱 낚아챘다.
‘···해솔님?’ 하면서 당황하는 소피아.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러나 이윽고 소피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건······”
“됐네요.”
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융합력(S)]
+소피아 포코르니
오거스트를 잡으며 새로 얻은 능력.
오늘은 이것을 시험해 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