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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48화 (149/226)

§ 148화

······마수사냥은 보통 4인 1개조, 혹은 5인 1개조로 팀을 꾸려 진행된다.

교수가 직접 지정한 인원은 아니고, 고득점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머릿수가 적당히 많으면 그만큼 사냥이 쉬워지고, 마수 몰이도 편해지니까.

“1명 남았다! 딜 제대로 넣을 수 있는 사람만 와!”

“저격수! 저격수 구합니다!”

“누구 샷건 필요 없어? 나 데려가!”

들판을 뛰어다니며 팀을 꾸리는 생도들.

처음으로 필드의 중입부에 들어서는 생도들은 다들 쫄아 있어서 그런지, 머릿수를 불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10명이 파티를 이루어 들어가는 녀석들까지 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석인 나에게도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해솔아, 팀 아직 못 구했으면 우리랑 할래? 100위권 안쪽으로만 모였어.”

100위권 안팎으로 이루어진 3명의 엘리트 사수들.

니콜라이와 종종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기에 함께하면 점수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

나는 대답을 하기에 앞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한세연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얌전히 서 있었다. 내 시선을 알아차린 생도가 얼른 말했다.

“둘 다 와. 5인팟으로 가자. 다들 상관없지?”

“오히려 좋아.”

“무조건 찬성. 없으면 난 안 간다.”

고개를 끄덕이며 열렬히 환호하는 생도들.

‘이 새끼들, 사실 내가 핑계였네.’

나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게 내가 슬며시 빠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이건 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이었으니.

한세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은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넌 어때?”

“해솔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옅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한세연.

“그럼 같······”

생도들에게 답을 주려니, 문득 한세연의 웃음이 짙어졌다. 아니, 표정은 그대로인데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이거, 거절하라는 뜻 맞지?

여기서 말실수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같이 못하겠다. 미안.”

“왜? 너희도 점수를 따려면 우리랑 같이 하는 편이 좋지 않아? 저격수도 없어 보이는데.”

이분은 권총으로 저격도 한답니다. 그것도 쌍권총으로요. 라는 말을 꾹 삼킨 내가 완곡히 거절했다.

“나중에 같이하자.”

“그래? 쩝, 어쩔 수 없지. 알았다.”

아쉬움을 표한 생도들이 돌아갔다. 내가 한세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자.”

“응.”

역시 이쪽이 정답이었던 듯 환하게 웃으며 내 옆에 나란히 서는 한세연.

그렇게 우리는 단둘이 숲속으로 들어섰다.

***

사실, 마수사냥이라면 한세연과 함께 하는 편이 지름길이었다.

마력을 쓰면 알아서 마수가 모여드는 게 바로 마수자체였으니까.

장담컨데, 내가 하루종일 사냥해도 얘가 1시간 동안 사냥한 양에 못 미칠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팀원을 데려가려던 이유는 단지 머릿수가 많으면 그만큼 사냥이 편해질까 봐서였다.

어차피 마수를 잡으면 차등 분배할 게 뻔한데, 귀찮게 손을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우리 핵심 멤버가 싫다니, 따를 수밖에.

그런데, 숲길을 거니는 한세연은 어째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무슨 좋은 일 있어?”

“단둘이 이렇게 나오는 건 오랜만이잖아.”

“그런가?”

“응.”

나는 갸웃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은 마경에, 오거스트에 이래저래 바빴기에 한세연과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도중에 누군가가 끼어들거나, 그도 아니면 짧은 시간이었으니.

겨우 이런 것 하나 때문에 기분이 저렇게 좋아진 건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가벼운 걸음걸이에 픽 웃고 말았다.

마수 사냥이라는 수업의 목적 따위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째 아까부터 계속 안으로만 들어가는 기분이다.

‘아니, 기분만이 아닌가.’

드물지만 종종 보이던 생도들이 아까부터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중입을 너머 그 안쪽 지대까지 들어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긴 했지만, 금방 지워버렸다.

‘뭐, 어때.’

얘만 좋으면 그걸로 되었다.

그동안은 줄곧 도움만 받아왔으니 오늘 하루쯤은 한세연이 하자는 대로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중입의 숲은 어마어마하게 넓다. 하지만 우리는 숲을 거니는 내내 단 한 마리의 마수와도 조우하지 않았다.

한세연이 모르도의 기운을 은연중에 흘려 마수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카데미의 관계자가 봤다간 식겁할 모습이었으나, 주변까지 다가오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는 어려웠으니 상관은 없었다.

“와······”

숲을 빠져나오자 펼쳐진 광경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맑은 하늘. 따사한 햇살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난 다채로운 꽃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다.

땀을 식혀주듯 기분 좋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드문드문 보이는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쌀쌀한 가을이 시작된 바깥과는 전혀 다른, 봄의 산뜻함이 사방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터니티의 필드는 이처럼 지역에 따라서는 환상적인 풍경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는 사시사철 유지되는 「마력적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절경을 찾아 필드로 들어서는 초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은 필드였다.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여도 저것들은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필드의 「마력적 공간」이란, 즉 「던전」을 의미했으니······

─가든.

이곳은 ‘정원’이라 불리는 던전인 것이다.

그리고, 가든에 피어난 꽃과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마수였다.

환각을 일으켜 사람에게 뿌리를 내리는 꽃은 ‘리브레.’

그늘 아래의 쉬어가는 생명을 덮치는 나무는 ‘그랩 우드’다.

상당한 공격력을 지닌 것들이기에, 이만한 양이라면 나라도 함부로 들판에 들어서는 건 무리였다.

물론, 위험에 직면하면 아카데미에서 지급받은 브로치의 ‘자율 방어’가 가동되기에 여간해선 목숨에 지장을 받지는 않는다. 그 대신 수업을 포기해야겠지만.

그러나.

‘상관없겠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스스스스······

한세연이 지나가니, 마치 지나가라는 듯 꽃들이 몸을 눕히며 길을 터주고 있었다.

리브레가 스스로 길을 터준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나는 한세연이 이끄는 대로 나란히 가든을 거닐었다.

그러다 문득 꽃 하나가 슬그머니 나를 향해 간을 보았는데, 내가 대응하기도 전에 파삭, 죽어버렸다.

“······.”

오싹한 소름이 돋는 장면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세연은 모처럼 만에 주어진 이 시간을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어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문득 불어온 봄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바람결에 실려온 향기로운 체취가 가슴을 간질였다.

나는 흘낏 한세연을 돌아보았다가 그만 깜짝 놀랐다. 한세연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 가깝다.

고개를 뻗으면 서로의 입술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빨려들 것만 같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한세연의 숨결이 피부를 간질였다.

새삼스럽지만 가까이에서 본 한세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빨려들 것만 같은 검은 눈동자.

설원에 깔아 놓은 눈밭처럼 새하얀 피부.

도자기를 빚어놓은 듯 단아한 이목구비.

어둠을 수놓은 듯한 흑단 같은 머릿결.

“······.”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대했던 것들인데,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 가까이 마주보고 있자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꽁꽁 얼어붙은 나와 달리 한세연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아무렇지 않게 볼가에 손을 가져간다.

이윽고, 떨어진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는 노란 꽃가루가 붙들려 있었다.

“···아.”

살아있는 것처럼 징그럽게 꾸물거리는 녀석. 리브레의 꽃가루다. 좀 전에 죽은 녀석이 흩뿌린 것이었다.

내버려 두면 피부를 뚫고 들어가 체내에 꽃을 피워버리는 위험한 녀석. 이게 내 얼굴에 붙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나 보다.

멋쩍은 기분에 입매를 구부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니, 한세연이 물어왔다.

“배고프지?”

“···어, 조금.”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아침도 꽤 일찍 먹었기에 속이 출출했다.

“저기 앉아서 점심 먹을까?”

한세연이 가리킨 곳은 ‘그랩 우드’의 그늘이었다.

일반 생도라면 자율 방어 브로치가 있어도 가슴을 졸여야 하는 무서운 마수의 그늘을 마치 쉬어가는 벤치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리키는 한세연.

쓴웃음을 지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먹이가 오는 줄 알고 가지를 꿈틀거리던 그랩 우드는 한세연이 그늘에 발을 디디자 숨을 죽인 채 부동자세가 되었다.

우리는 나무를 기대고 나란히 앉았다. 점심은 한세연이 챙겨온 도시락이었다.

도시락통을 열어본 나는 멍하니 감탄했다.

‘엄청나네.’

네모반듯한 계란말이, 옥수수가 얹어진 군함. 불고기······

후식으로는 모양을 낸 사과, 토마토 등이 들어가 있다.

곧장 식당에 내놓아도 될 법한 퀄리티에 비쥬얼이었다.

‘배운 지 이제 두 달일 텐데.’

한세연은 못하는 게 없는지 한 번 손댔다 하면 금방 다 터득해버린다.

음식도 몇 번 배우더니, 이처럼 어려운 요리도 곧잘 하는 것이다.

매일 설탕만 때려 붓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소피아하고는 영 딴판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하더니 도시락을 싸느라 그런 모양이다.

한세연이 나를 쳐다보는 걸 본 나는 먼저 계란말이를 먹었다.

“어때?”

“맛있네.”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짭짜름한 게 간이 제대로였으니까.

내 평가가 만족스러운지 기쁘게 웃은 한세연이 그제야 본인의 식사를 시작한다.

옥수수 군함을 오물거리며 리브레가 펼쳐진 가든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세연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계속 있고 싶다. 그치?”

“응, 편하네.”

아늑한 그늘 아래, 선선한 봄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자니, 마음이 평온했다.

그랩 우드에, 리브레에, 간간이 위험해 보이는 식물형 마수가 무언가를 잡아먹는 게 상당히 신경 쓰이는 것만 빼면.

가든의 보스가 방금 눈 깔고 지나간 것 같은데······ 잘못 봤겠지.

그건 그렇고.

“저기, 세연아.”

“응?”

“···마수 잡아야 되는데.”

벌써 점심시간도 지나있었지만, 우리는 마수를 단 1마리도 잡지 않았다.

식물형 마수야 아무리 잡아봤자 사냥기록에 누적되지 않는 모양이었으니.

30마리 이상, 순위권에 들자면 못해도 50마리 이상을 잡아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쉬고만 있으려니 조금 불안했다.

내 이야기에 눈을 깜빡인 한세연이 마력을 퍼트렸다.

잠시 후, 숲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3성급 마수들. 그 공간을 마력탄이 빗발친다.

천리안이 가미된 마력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마수들의 머리를 모두 꿰뚫어 버렸다.

“됐지?”

“······응.”

문제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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