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54화 (155/226)

§ 154화

“감염자들은 모두 이쪽으로 모아주십시오. 마기에 전염되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예!”

“그어어······”

······해가 내리쬐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일렬로 늘어서 있다.

그 끝에 쳐진 천막에서는 치유에 특화된 초인들이 바삐 움직이며 감염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질투의 마인, 셀로스에 의해 전국에 대량으로 발생한 좀비 소동, 일명 ‘데드 존’의 피해자들이었다.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1학년 생도들은 데드존의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각 반으로 나눠져 ‘대민지원’을 나와 있었다. 우리 1반이 맡은 곳은 광화문 광장이었다.

“으, 무섭네요.”

마력에 억제된 좀비들을 인솔하며, 아멜리아가 께름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고로 좀 전까지 메론빵을 먹었다.)

“······그어어!”

“어어, 날뛴다! 이 사람 붙잡아!”

“누가 저기 음악 꺼!”

느닷없이 대열을 이탈하는 좀비들. 트로트를 크게 틀어 놓은 트럭이 지나가자 거기에 반응한 것이다.

“그어어!”

대열에 늘어서 있던 좀비들이 트럭을 쫓아가며 날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통제 불능으로 치달은 상황에 당황한 초인들이 안정화 마도구를 가지러 뛰어갔다.

숙주가 제거되지 않은 좀비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좀비들의 정신을 마도구로 안정시켜놓을 필요성이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뛰지 못해 멈춰 서야 했다.

피잉, 핑, 핑, 핑─

빛의 화살이 빗발치며 쓰러져나가는 좀비들.

“뭐, 뭐야?”

초인들은 뛰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금방 깨어나니까 빨리 제압하세요.”

“···아, 예!”

“빨리 붙잡아!”

“여기 깨어난다!”

내 말에 정신을 차리곤,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초인들.

빛의 화살로 좀비들을 제압한 내가 고개를 돌렸다. 곳곳에서 아카데미 생도들이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매직미사일을 다발로 날리며 좀비들을 제압하는 아멜리아.

주먹질을 하며 몸소 움직이는 은가예와 천우진.

니콜라이는 버디슈를 반대로 잡고, 봉대로 좀비들을 때려눕히고 있다.

역시 아카데미의 생도들다운 두드러진 활약상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따로 있었다. 대로로 시선을 돌린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자비가 없네.”

그곳에는 마력탄에 당한 초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수가 무려 다른 생도들의 배에 달한다.

나나 생도들이야 최대한 부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제압을 한 반면, 저쪽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절을 시켜버렸으니······

─데드 존이 발생했습니다. 인근의 주민분들은-

퍼엉─! 퍼엉─!

안내방송으로 나오던 스피커 두대가 마력탄에 부숴져나갔다.

저런 작은 소음마저 흥분한 좀비들에겐 자극이 될 수 있었으니······

물론, 그 가차 없는 손속의 장본인은 당연히 한세연이었다. 그리고.

콰앙─!

트로트를 빵빵하게 틀어 놓고 거리를 활보하던 트럭 뒷 칸에 실린 우버가 마력탄 한방에 폭발해버렸다.

끼이이익──!

“어떤 새끼야!”

급정거를 한 트럭에서 내린 칠순의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뒤이어 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어?!”

수십의 좀비들이 노인을 향해 달려들고 있던 것이다.

“그어어어!”

직장인 좀비가 입을 쩍 벌린 채 노인을 덮쳐들었다.

당황한 노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바로 그 순간──.

타앙!

덮쳐들던 직장인 좀비의 몸이 흔들리더니, 노인의 어깨를 타고 스르륵 흘러내렸다.

타앙, 타앙! 타앙!

달려들던 좀비들이 짚단처럼 우수수 쓰러져나갔다. 노인은 얼어붙은 채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노인의 앞은 널브러진 좀비들로 가득해졌다.

“크어-”

탕─.

마지막 한 발. 쓰러진 좀비가 바르르 떨다 축 늘어지자 사위가 조용해진다.

상황 종료였다. 뒤이어 커다란 호통이 정적을 깼다.

“이보세요, 할아버지! 여기 음악을 그렇게 틀어 놓고 지나가면 어쩌자는 겁니까! 이 근방 좀 전에 데드존 터진 거······어? 괘, 괜찮으십니까?”

멍하니 굳어있던 노인은 달려온 초인의 질책에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몸이 축 풀려버렸다.

하긴, 덮쳐들던 좀비가 제 어깨에 기대 쓰러져버렸으니, 기절할 만도 하다.

이윽고, 기절한 좀비들을 황급히 수습하기 시작하는 초인들.

“아카데미 생도분들이시군요,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노인을 질책하던 협회의 초인이 대표로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대피방송을 알리던 스피커 두 대와 트럭에 실린 우버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지만, 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트럭이 저대로 계속 도로를 질주를 했다면, 광화문에 있는 좀비란 좀비는 죄다 날뛸 뻔했던 것이다.

이곳에는 안정상태에 들어간 좀비들이 무려 수백 명이나 있었으니······

조기에 수습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난리가 날 뻔했다.

물론, 혼란은 막았다지만, 지금도 많은 일이 남아있기는 했다.

기절한 좀비들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기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했던 것이다.

제압이 다소 거칠게 이루어져 부상 치료도 해야 했고.

그렇게 초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기절한 좀비들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그어어······”

“잠깐 있어 봐.”

쓰러져 바동거리는 좀비의 입안이나 몸을 뒤적여가며 뒤틀린 마력을 풀어주는 한세연.

정신 감염을 일으킨다는 좀비를 아무런 내색 없이 만지는 모습에 아멜리아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저런 건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요.”

게거품을 물며 바동거리는 좀비는 외관상 무척이나 징그러워 보였던 것이다.

다른 작업을 돕겠다며 스리슬쩍 빠지려는 아멜리아.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불행하게도 담임인 하진우가 아멜리아를 콕 찝어 지목했다.

“아멜리아.”

“예?”

“넌 나와 천막에서 좀비의 안정화 작업에 들어간다.”

“······.”

아멜리아는 1학기 초부터 본인의 마력 조율실력을 열심히 어필해왔다.

그리고, 그건 좀비의 뒤틀린 마력을 푸는데 아주 적격인 능력이었다.

결국, 아멜리아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진우에게 끌려갔다.

나는 좀비들에게 항마력을 주입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으나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자면 ‘숙주’가 되는 좀비를 찾아 마기를 정화해야 했으니.

“소피아씨.”

─예, 해솔님.

귓가의 이어폰으로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뭔가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붕어빵 먹어요?”

─조금 먹었습니다.

‘한 봉투 더 줄까?’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내게 들리는 줄도 모르고 조용히 ‘예’라 대답하는 소피아의 목소리까지.

장담컨대 절대 ‘조금’은 아니다. 작게 혀를 찬 내가 물었다.

“아무튼, 잘 보고 있죠?”

─물론입니다.

현재 소피아는 광화문의 ‘숙주’가 있는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 광화문의 데드존은 나와 소피아가 맡기로 되어있던 것이다.

그게 우연찮게도 아카데미의 대민지원 장소와 겹쳐버렸다.

물론 소피아 혼자서도 숙주를 때려 눕히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숙주의 마기를 정화하려면 내가 필요했다.

그랬기에 소피아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치는 광화문광장에서 얼마 떨어진 공원. 마침 주변의 정리도 마무리되고 있겠다, 움직여도 될 듯했다.

“가서 만나죠.”

─알겠습니다.

‘또 오세요~’란 아주머니의 배웅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

······결과적으로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게 정리되어 있었다.

부르르르르──

공원에 널브러진 수많은 좀비 떼. 그 중심에서 할리데이비슨이 거친 으르렁거림을 토해내고 있었다.

“해솔님, 기다렸습니다.”

안장에 앉아있던 소피아가 나를 마중했다.

“···아, 예.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그분은 누구시죠?”

질문을 받은 소피아가 제 손에 쥐어진 얼굴이 퉁퉁 부은 호빵맨을 보며 갸웃거렸다.

“글쎄요, 주변을 얼쩡거리길래 일단 잡아뒀습니다.”

잡아두는 과정에 사람 얼굴이 저렇게 될 수도 있구나. 참고해두자.

“좀비들이 덤벼들어 제압해뒀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이미 제압했는데요, 뭘.”

선조치 후보고가 아닌, 선조치 후 질문을 하는 소피아.

잊고 있었지만 소피아에게 가서 보자는 건 먼저 가서 정리해놓으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뭐, 나야 편해서 좋았지만.

화아아아······

내게서 뻗어 나온 항마력이 쓰러져 있는 숙주의 몸에 스며들었다.

마기가 날아가며, 기절해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깨어나면 좀비였던 동안에 있던 일은 전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소피아가 팼다는 사실까지도. 왠지 모르게 몸이 찌뿌둥하고 아프다는 것만 알 뿐.

음, 완벽 범죄네.

그나저나 이건 누구지?

나는 소피아의 손에 붙들린 사람을 보며 갸웃거렸다.

얼굴이 퉁퉁 부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지만, 소피아가 붙잡은 걸 보면 수상한 사람인 건 확실했다.

소피아가 적아를 구분하는 촉 하나는 기가 막혔으니까.

그런데.

“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퉁퉁 부은 왼쪽 눈 밑에 새겨진 붉은 눈물점.

“이거 설마······”

나는 확인을 위해 오른쪽 눈밑도 확인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노란 별이 그려져 있었다. 틀림없었다.

이 녀석은 칠악의 다음가는 마인인 십혈(十血). 그중에서도 최고로 위험하다 알려진 마인, 광대의 악마, 피에르였다.

무려 칠악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피에르의 무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가 가진 기프트, ‘기운의 봉인’은 무척이나 두려운 능력이었으니까.

상대가 지닌 기운이 마력이건, 마기이건, 기운의 속성에 관계없이 봉인을 당해버리는 것이다.

한 번 기운을 봉인당한 자는 피에르가 풀어주지 않는 이상, 평생 기운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위험한 녀석을 소피아가 잡았다는 것은······

‘···분쇄자로 씹었다는 건가.’

분쇄자. 정말 터무니없는 능력이었다.

물론, 소피아가 사용하니 그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거겠지만.

내가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자 소피아가 갸웃거렸다.

“해솔님?”

의아한 눈초리가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마인을 잡았는지도 모르는 기색이다.

결국 헛웃음을 터트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소피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방긋 웃는 소피아.

“감사합니다. 그럼 새벽에 영화를-”

“그건 안 됩니다.”

소피아의 볼이 슬쩍 부풀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으니.

그나저나.

나는 기절한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얼쩡거렸다는 것은 무언가 아는 게 있다는 소리겠지.

그것도 십혈쯤 되면 많은 정보를 쥐고 있을 터였다.

‘일단 확인해 볼까.’

마침 피에르는 기절해 있었기에, 영핵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었다.

쩌엉─!

기력에 맞은 녀석의 영핵이 부서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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