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화르르륵──
푸른 불길에 휩싸인 마인, 피에르가 재가 되어 사라진다.
“셀로스가 끼었다는 건가······”
성가시게 됐네. 내가 혀를 찼다.
피에르가 아는 정보나 좀 얻어보려 했는데, 뜻밖의 소득을 얻은 것이다.
질투의 마인, 셀로스.
녀석이 이번 아카데미의 최심부 탐사에 관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영멸의 밤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셀로스까지 끼게 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수가 있었다.
놈은 초인들 간의 다툼을 유발하는 까다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영멸의 마인이 지닌 목적은 최심부에 들어선 생도들을 제물로 받쳐 차원의 균열을 넓히는 것.
거기에 셀로스가 끼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가능한 대비를 모두 취해야 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기록부를 주륵- 내렸다. 그리고, ‘서하린’이라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아카데미의 필드 최심부에는 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 똬리를 튼 재앙, 지룡(地龍)의 존재 탓이었다.
토벌이 불가능하다 알려진 성급이 매겨지지 않은 괴물.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존재.
아카데미의 최심부는 바로 그 지룡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지성을 가진 지룡은 여타의 마수와 달리 인간을 적대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지룡의 위험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카데미에서는 매년 필드의 최심부 탐사를 고집했다.
그도 그럴 게 위험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컸던 것이다.
비이상적으로 기운이 풍부한 필드의 최심부에 들어서게 되면, 생도들의 마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덤으로 마력의 밀도가 높은 환경에 들어서게 되면 육체가 이를 견디기 위해 단단해지는 효과마저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최심부탐사를 포기하지 못할 수밖에······
이터니티 아카데미가 세계제일의 교육기관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던 비밀이었다.
아무튼, 최심부에 다다르기까지 지룡을 비롯한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아카데미에서는 생도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 썼다.
그렇게 해서 섭외된 것이 바로 여명의 성좌의 1팀, 백은의 기사 서하린과 그 팀원들이었다.
따로 새벽의 기사단(Knights of the Dawn)이라 불리는 그들은 팀원 모두가 상격 초인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그중 팀장인 백은의 기사 서하린은 전성기의 절정에 달했다고 알려진 최상격 초인이었다. 성마력이라고까지 불리는 백염(白炎)의 사용자.
아카데미가 배출해낸 최고 아웃풋으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여명의 성좌의 길드장이 될 것이 유력시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번 최심부 탐사에서 사망이 확정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 ‘영멸의 밤’이 직접 손을 쓰는 일이었으니.
······한편, 여명의 성좌의 본사 앞에는 1팀장인 서하린을 비롯한 길드의 수뇌부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마경의 주인’이 느닷없이 방문을 하겠다며 통보를 해온 것이다.
“몇 시에 온다고 했죠?”
“오후 3시에 온다고 했으니 이제 곧입니다.”
서하린의 물음에 팀원이 대답을 했을 때였다. 도로 너머에서 우렁찬 배기음이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음, 왔군요.”
“저것이······”
도로의 너머에 등장한 바이크를 본 여명의성좌의 수뇌진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칠흑의 날렵한 동체에 거친 포효를 내뿜는 바이크.
저것은 마경주가 타고 다니기로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이었다.
이윽고 바이크가 여명의 성좌의 본사 앞에 멈춰 섰다.
부르르르······
바이크에서 내린 두 남녀가 헬멧을 벗었다.
“소피아, 차를 몰아볼 생각은 없어요?”
“그건 어렵습니다.”
“···왜죠?”
“마스터의 호위를 위해서라도 바이크가 꼭 필요합니다.”
‘바이크? 호위?’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에 여명의 성좌의 수뇌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저 두 사람은 최근 가장 화제를 몰고 다니는 폭풍의 주인공들이었으니.
차가운 인상의 남자와, 몸에 달라붙는 검은 재킷을 걸친 은발의 여인.
마경의 주인과 그 호위인 소피아 포코르니였다.
“협회에서 이후로 또 뵙게 되네요. 여명의 성좌의 1팀장, 서하린입니다.”
서하린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경주입니다.”
“그 호위인 소피아 포코르니입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서하린이 미안하게 웃으며 말했다.
“길드장은 해외업무로 출장을 가 대신이지만, 제가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그쪽을 보러온 거니까요.”
“···저를 말인가요?”
“예, 1팀장님.”
뜻밖의 말에 서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앉아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아, 예. 가시죠.”
정신을 차린 서하린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인사를 하러 나와 있던 수뇌부들은 자신들을 지나쳐 본사로 들어서는 마경주를 보며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여명의 성좌, 1팀장의 집무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손수 커피를 타 내려놓으며 서하린이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아카데미의 탐사 호위를 맡으셨죠?”
내 물음에 서하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아셨죠? 그건 아직 이야기만 오갔을 뿐인데······”
아직 의뢰를 받기 전이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받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 탐사에서 영멸의 밤이 나타날 겁니다.”
느닷없는 폭탄 발언에 서하린이 커피잔을 잡아가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곤, 무언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멸의 밤은 죽은 게 아니었나요?”
노아 맥도웰이 영멸의 밤을 잠재운 사건은 초인의 역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였다.
그로인해 노아는 영국에서 국민 영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았습니다. 잠들었던 것뿐이죠.”
영멸의 밤은 죽지 않았다. 녀석은 말 그대로 ‘영멸’을 추구하는 마인이었으니.
제아무리 노아라도 그를 잠재우는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영멸의 마인은 다시 깨어났다.
물론,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의 상태는 아직 완전한 게 아니었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이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알려주어도 믿지도 않을 것이다.
노아조차도 영멸의 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녀석뿐 아니라, 질투의 마인 셀로스도 나타날 겁니다.”
거듭되는 믿기지 않는 발언의 연속에 서하린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만요.”
생각을 정리하듯 미간을 짚었던 그녀가 물었다.
“지금 그 말들, 증거가 있는 건가요?”
“그쪽 팀원 중에 이수학이라는 사람을 불러보시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수학이는 왜······”
“마인이거든요.”
“!”
갸웃거리던 서하린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그녀는 말없이 인터폰을 들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학이 좀 오라 해주세요.”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였다.
─이수학입니다. 팀장님.
“들어와.”
끼이익. 문이 열리며 1팀의 초인, 이수학이 들어섰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수학아.”
“예, 팀장님.”
“이분이 네가 마인이라는데, 맞아?”
찰나,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이수학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뿐이었고, 그는 이내 풀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하하, 마경주님은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
“······.”
웃어넘기려던 이수학은 받아주는 말이 없자, 표정을 지우곤 서하린을 바라보았다.
“제가 마인이 아니라는 것은 팀장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서 말하는 거야. 이분에게 증명해드리라고.”
“그걸 어떻게······”
“간단합니다.”
내 대답에 이수혁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화르르륵──
“······!”
내 손에서 푸른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사조의 성화였다.
“이 불길에 한 번 닿아보시면 됩니다.”
“···하하, 뜨거울 텐데요.”
“괜찮습니다. 마인이 아니라면 반응을 하지 않거든요.”
나는 증명을 하듯, 서하린에게 작은 불씨를 날렸다.
불씨는 서하린에게 닿자 잠시 타오르는 듯 하더니 꺼져버렸다. 내가 봤냐는 듯 이수학을 보며 말했다.
“그저 따뜻할 뿐입니다.”
“예, 따뜻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하린. 내가 품 안에서 적마석을 꺼냈다.
“하지만 마인에게 닿으면······”
화아악!
순식간에 적마석을 매개로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이윽고 꺼진 불길 속에서 적마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삭─!
바닥에 닿기 무섭게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리는 적마석.
“···이처럼 가루가 되어버리죠.”
“······.”
이수학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떻게 알았지?”
“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까악─
내 어깨에 앉은 파랑이가 그렇다는 듯, 부리를 까딱인다. 루비 수정처럼 붉은 눈이 이수학을 비추었다.
정말 감쪽같이 속이는 고위급 마인이면 모를까, 이수학같이 어중간한 녀석은 파랑이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이수학이 마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느긋하게 커피를 들어 마셨다. 순간, 이수학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익─!
시커먼 마기가 실린 주먹이 내 머리통을 부숴버릴 듯 날아들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느긋하게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퍼어억──!
둔탁한 소음이 집무실을 올렸다.
“······.”
이수학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제 가슴에 주먹이 박혀 있었다. 그의 주먹은 채 반도 뻗어지지 못한 채였다.
입가로 피를 주륵- 흘린 이수학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이수학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은 소피아가 손을 털었다.
커피잔을 내려놓은 내가 서하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제 말을 믿겠습니까?”
“······예.”
그녀의 표정은 차게 식어있었다. 믿었던 수하가 마인이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사실 그렇다곤 해도 이수학이 마인이었다는 사실이 내 주장의 근거가 되지는 못하지만, 충격요법이란 이처럼 잘 먹히는 것이었다.
“하아.”
한숨을 포옥 내쉰 서하린이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설령 그쪽 말이 전부 사실이라 해도 탐사의 호위를 거절할 수는 없어요.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가야겠네요.”
“죽는데도 말입니까?”
“그 말은 생도들도 위험하다는 말이겠죠? 그걸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백은의 기사 서하린.
그녀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성정의 사람이었다. 충격을 받았음에도 그 성정에 흔들림은 없었다. 아니, 더욱 하얗게 불타오를 뿐.
그렇기에, 믿을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작게 웃은 내가 물었다.
“그 의뢰에 저희도 껴줄 수 있겠습니까?”
“···예?”
“저도 그쪽이랑 같은 생각이거든요.”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차원의 균열은 생도들을 먹이 삼아 크기를 벌릴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같은 시각, 블랙마켓 4층의 어딘가.
여우털 카펫, 대리석 탁자, 화려한 샹들리에가 존재하는 고급스러운 거실.
색욕의 마녀, 이리나는 제 거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몸은 살집은 있으나, 군데군데가 움푹 파인 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아카데미를 나온 이후로 줄곧 간단한 스프나 음료만 마실 뿐, 음식에는 입도 대지 못했다.
무언가를 먹으려 하면,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리나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이게 다 그년 때문이야.”
“누구 때문이라고?”
“그년······!”
대답을 하던 이리나가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어, 언제······”
“지금 왔어.”
한세연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리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섰다.
한세연이 자연스럽게 이리나가 일어난 의자에 앉았다.
그 옆에 다리를 모으고 선 이리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한세연의 눈치를 보았다.
조금 전 자신이 말 한 ‘그년’이 한세연을 가리킨다는 것을 눈치챘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한세연이 슬쩍 바라보자 화들짝 놀란 이리나가 말했다.
“커, 커피 타올게요.”
그러곤 도망치듯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가 커피를 우려내왔다.
쪼르륵-
한세연은 이리나가 따라준 커피를 느긋하게 마셨다.
그때까지도 이리나는 그 옆에 손을 모으고 서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눈치를 보았다.
욕이라도 좋으니 뭔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온 뒤로 자신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한마디도 하지를 않고 있었으니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마치 그녀가 이실직고를 하길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찔리는 게 사실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끼이- 끼이-”
“크르르.”
한세연의 무릎에 올라앉은 작디작은 흑요와 요호가 애교를 부리듯 그녀에게 머리를 비벼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리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미, 미안.”
그제야 커피를 홀짝이던 한세연이 이리나를 돌아보았다.
“뭐를?”
“그, 그년이라고 해서······”
“······.”
“우리 애들이 셀로스한테 붙어서······”
“······.”
“···미안.”
이리나는 더 이상 미안할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잠시 말이 없던 한세연이 느릿하게 물었다.
“셀로스를 도왔어?”
이리나가 얼른 변명하듯 말했다.
“으, 응. 내가 시킨 건 아니고, 나랑 연락이 끊겨져 있어서, 그래서······”
이리나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모든 사실을 다 이실직고 했다.
그녀가 오거스트에게 당해, 잠수를 타고 있는 사이, 그녀의 세력이 질투의 마인 셀로스에게 가담했다는 것과, 조만간 벌어질 아카데미 필드의 최심부 탐사에 질투의 마인과, 영멸의 밤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생도들을 제물로 삼아 차원의 균열을 벌리려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한세연은 느긋하게 커피를 기울이며 이리나가 하는 보고를 전부 들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녀의 눈이 흑요석처럼 어둡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