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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56화 (157/226)

§ 156화

······황량한 벌판이 지평선까지 펼쳐진 마경의 어딘가.

여명의 수호자의 1팀은 그곳에서 마경의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들은 대체로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아카데미 측에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외인을 끼어 들이면 문제가 될 겁니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아카데미에서 마경의 주민 같은 정체모를 신생 세력을 호위로 인정할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서하린이 아카데미측에 알리지 않고, 마경의 주민들을 호위에 끼워 넣겠다는 것이다.

이는 길드의 신용을 떨어트림은 물론이고, 아카데미측과의 마찰도 빚을 수 있는 중대사안이었다. 하물며 그 끼워 넣는 이유라는 게 너무 황당했다.

“팀장님, 설마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정말 믿으시는 건 아니시겠죠?”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야.”

왼쪽 눈에 안대를 한 외눈의 사수, 부팀장 이승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설사 영멸의 마인이 정말 부활했다 해도 지룡의 레어에서 무슨 짓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일이 안 벌어지면 좋은 거고, 있으면 대처하면 돼.”

말을 한 서하린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도 수학이를 봤으니 알잖아.”

“······.”

정적이 깔렸다. 그들도 마인이 된 이수학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믿기에 이번 사항은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질투의 마인에 뭐지, 영멸의 밤? 그게 정말 나타난다는 겁니까?”

“보면 알겠지.”

그때, 황무지 너머에서 거대한 괴성이 울려퍼졌다.

크허어어엉──

“······적어도 있으면 든든하긴 하겠군요.”

이승현의 중얼거림에 팀원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황무지 너머, 3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의 거인이 쓰러지고 있었다.

쿠아아아앙──!

마경의 무법자로 잘 알려진 최상위 포식개체, ‘오우거’였다.

그 오우거가 지금 단 두 번의 칼질만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들고 휘두르는 게 신기해 보이는 거대한 대검(大劍)이었다.

이윽고, 쓰러진 오우거의 너머에서 코에 상아를 매단 거대한 마수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쿠구구구구구─

보이는 것은 뭐든 들이박고 본다는 마경의 무법자, 5성급 마수, 무소였다.

다가온 무소의 위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대검을 휘두른 여성, 불타는 머릿결의 마녀, 금발의 청년.

서하린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그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마경의 주민을 호위에 가담시켜서는 안 된다며 회의적인 말을 쏟아내던 1팀원들은 아예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그만큼 마경의 주민들이 내뿜는 존재감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말없이 침만 삼키고 있을 때였다.

“와주셨군요.”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위로 올라갔다.

허공을 계단처럼 밟으며 한 남자가 무소의 등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땅으로 내려선 남자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웃는 낯으로 말을 건네오는 남자는 바로 마경의 주인이었다.

***

청명한 하늘,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초입.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학생광장.

500명의 1학년 생도들이 기대어린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필드의 최심부 탐사는 본교의 유구한 전통입니다. 탐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러분은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단상에 오른 늙수그레한 교장이 일장 연설을 했다.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선배이자, 여명의 수호자의 1팀장인 서하린양이 생도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질 것입니다.”

“백은의 기사다!”

“와아아아!”

서하린이 단상에 오르자 생도들 사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근래에 이터니티를 졸업한 생도 중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인 그녀는 생도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거기다 여명의 성좌라는 대형길드, 그것도 서하린이 이끄는 1팀이 직접 호위를 하기로 했으니 안전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매년 이루어지는 최심부 탐사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으니.

그저 마력이 늘어 나온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만 가득했다.

“잠자는 지룡의 코털은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하하.”

교장의 썰렁한 개그를 끝으로 탐사의 출정식이 끝이 났다.

“그럼 출발해주세요.”

그렇게 필드의 최심부 탐사가 시작되었다.

***

학년 주임 정해솔의 인솔에 따라 1학년 생도들은 아카데미의 지하로 향했다.

“다들 이곳은 처음 와볼 것이다. 이터니티의 ‘지하터널’이다. 필드의 최심부로 향할 때 이용되는 곳이지.”

이터니티의 지하터널은 ‘지하 신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한 장소였다.

깊이 80m 아래에 지어진 이 깊숙한 터널은 20m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떠받치는 광활한 세계였다.

편의점, 식당, 포션 매대 등, 다양한 시설들이 즐비했고, 현역 초인들이 팀을 이루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정해준을 따라 거대하게 뚫린 터널의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 박힌 마정석으로 인해 터널은 은은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최심부로 이어지는 통로다. 지하 마수가 출몰하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해라.”

콰앙─!

말과 함께 정해준이 천장을 향해 총을 쐈다. 돌가루와 함께 툭 떨어지는 시체.

“······쉐도우 뱃이야.”

시체의 정체를 알아본 생도들이 신음했다.

벽에 숨어다니며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3성급 마수가 바로 쉐도우뱃이었다.

여명의 수호자에서 호위를 해준다지만, 긴장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 뭐, 뭐야?”

“속이 울렁거려······”

지하터널을 얼마 걸어 들어가자 생도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배를 쓰는 둥,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 멀미’다. 마력의 밀도가 높아지면 발생하는 현상이지.”

말을 한 정해준이 씨익 웃어 보였다.

“모두가 최심부에 도달해서 힘을 얻어 나오리란 안일한 생각은 버려라. 최심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마력의 밀도를 견딜 수 있는 녀석들 뿐이다. 그럼 끝까지 잘 따라오길 바라마.”

말을 끝낸 정해준이 거침없이 터널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터널은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마력의 밀도가 점차 높아졌다.

최심부에서 흘러나오는 고밀도의 마력이 지하터널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도들은 멀미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어디까지나 감상이지, 나는 느끼는 바가 없기에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애초에 무마력자인 내가 마력의 영향을 받을 일은 없었으므로.

나는 아나스타샤나 파랑이의 힘을 빌려다 쓰는 것뿐이지, 실상 내가 지닌 것은 마력이 아닌 기력인 것이다.

“역시 여유롭군.”

“···아, 네.”

정해준의 의미심장한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고오오오오······

터널의 너머에서 기이한 소리와 함께 잔잔한 마력의 바람이 불어왔다.

“뭐, 뭐예욧, 이거?”

마력에 민감한 아멜리아가 흠칫 놀라며 팔뚝을 매만졌다. 불어오는 마력의 바람에 닭살이 돋은 것이다.

“지룡의 코골이야.”

“···네?”

아멜리아가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농담이죠?

“아닌데.”

“해솔생도의 말이 맞다.”

앞서 걷던 정해준이 내 말에 동의해주었다.

“이건 지룡이 코를 고는 소리다.”

고오오오······

“아니, 무슨 코골이에 마력이 불어요? 거기다 최심부는 아직 멀었잖아요.”

“그게 지룡이란 거다.”

지룡(地龍).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대의 존재이자 ‘재앙’이란 수식어가 붙은 마수.

재앙이란 원래가 다 이런 것들이었다. 인간의 상식을 가볍게 초월해버리는 존재들.

녀석들을 인간의 잣대로 재단하려 들어선 안 되었다.

나는 문득 내 옆을 말없이 걷고 있는 한세연을 돌아보았다.

그녀 또한 재앙을 담은 그릇이었으니.

‘괜찮은가 보네.’

터널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생도들의 움직임은 굼떠지고 있었다.

농밀한 마력의 밀도에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심지어 교수인 정해준조차도 바깥에서보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 그러나 한세연만큼은 평소 그대로였다.

모르도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녀석이 언제 다시 한세연의 몸을 빼앗으려 들지는 알 수 없었다.

최근에야 잠잠하다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때, 내 시선을 느낀 한세연이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어?”

“그냥 괜찮나 싶어서.”

“응. 괜찮아.”

방긋 웃어 보이는 한세연.

“그럼 다행이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깊숙이 들어와서 그런지 제법 강력한 마수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서하린을 비롯한 팀원들이 앞서나가며 위험을 미리 배제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콰아앙──!

대검이 한 차례 휘둘러지자 달려들던 수십의 쥐 떼가 일거에 갈려 나갔다.

화르르륵──!

뒤이어 부채가 휘둘리자 이름 모를 거대 마수가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호오. 여명의 수호자에 저런 실력자들이 있었나? 1팀. 소문으론 들었지만 이건 예상 이상이군.”

“·········.”

나직이 감탄하는 정해준. 나는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정해준이 눈치채지 못해서 망정이지, 저건 티가 나도 너무 났으니까.

정체를 숨기려면, 적당히 해야 되는데 이본느와 소피아는 본인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던 것이다.

“음, 대, 대단하군.”

처음에는 나직이 감탄하던 정해준마저 뒤로 갈수록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헛! 쉐도우 비스트가 한 방에······!”

“······.”

아무리 여명의 수호자가 메이저 길드라지만, 일개 길드원이라 치기에는 어느(?) 두 분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이다.

“야, 저거······”

“말하지 마.”

은가예의 기가 막히다는 반응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

이터니티의 1학년 생도들이 터널을 나아가는 시각, 필드의 최심부에서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으, 정말 괴물이군요.”

질투의 마인, 셀로스가 전방을 올려다보며 질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거대한 공동.

황금색 비늘을 지닌 거대한 존재가 몸을 만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똬리를 튼 거체는 10m를 상회했고, 상아처럼 고고히 뻗은 새하얀 뿔은 은은히 빛나며 공동을 찬연히 비추었다.

지룡(地龍).

옛 존재이자, 필드의 최심부를 레어로 삼은 재앙의 일축이었다.

쿠오오오오······

용이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주변의 마력이 태풍처럼 요동쳤다.

콰가가가각──

지면이 갈려나가고, 바람이 비명을 지른다.

그 거대한 기류를 셀로스는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괜찮겠습니까? 끔찍하게 강해 보이는데.”

“겁나나?”

“저 같은 놈이야 당연히 겁나지요. 이것 보십쇼, 콧김에 몸이 날아갈 지경입니다?”

파라라락······

지룡의 「마력풍」에 셀로스의 옷가지며, 머리가 마구 헝클어지고 있었다.

기실 두 사람이 이렇게 태연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칼날 같은 「마력풍」은 그들을 베어버릴 듯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으니.

“······게다가 나리도 아직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습니까?”

셀로스의 불신의 시선에 나리라 불린 청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 이, 이런 미친!”

셀로스가 황급히 공동밖으로 뛰쳐나갔다. 청년이 지룡의 앞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찰나, 휘몰아치던 마력풍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일어나는 황금색 벽.

아니, 그것은 벽이 아니라 지룡의 눈이었다. 그 재앙의 눈이 제 앞에 선 청년을 비추었다.

〔······.〕

“올드 원. 그 자리를 지나가고 싶은데, 좀 비켜주겠나?”

〔인간이여. 이곳은 그대 같은 존재가 올 곳이 아니다.〕

지룡의 마력은 언어가 되어 거대한 동공을 위진시켰다.

쿠구구구구──

피빗! 핏!

천장의 돌가루가 떨어지고, 자갈 따위가 터져 나갔다.

대기가 비명을 지르고, 마력에 휘말린 온갖 잡다한 것들이 동심원을 그렸다.

“어,엇!”

멀리서 지켜보던 셀로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로 떠밀려간다. 그러고도 모자라 시꺼먼 마기를 피워냈다. 그러자 지룡의 시선이 셀로스를 향했다.

〔돌아가라.〕

바로 그 순간──.

“뭐, 뭐야?! 으아악─”

푸른 기류가 전신을 휘감아오자 당황한 셀로스가 허둥거렸다.

이윽고 셀로스는 그 자리에서 강제로 전이당했다.

쿠구구구구······

서서히 잦아드는 지진.

마력이 휘몰아친 공동은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다만, 그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도 청년은 처음처럼 멀쩡했다.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태연히 지룡을 응시했다.

〔······.〕

지룡의 황금색 동공에 이채가 어렸을 때였다.

“비켜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청년, 영멸의 밤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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