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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58화 (159/226)

§ 158화

“이 안으로 결계의 기운이 이어져 있습니다.”

나와 소피아는 1팀 마법사의 안내를 받아, 결계의 시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지하동굴에 도착했다.

“그나저나 엄청나군요. 이런 밀도라니, 이곳에 대체 뭐가 있길래······”

안내하는 마법사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두운 길을 나아갈수록 마력의 파도가 더욱 진해졌던 것이다. 차원의 균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영멸의 밤.’

녀석을 떠올린 내 표정이 신중하게 가라앉았을 때였다.

“큭!”

안내를 하던 마법사가 돌연 이마를 부여쥐었다. 마법사뿐만이 아니었다.

정도는 다르나 나를 제외한 1팀원이 차례로 이상 반응을 보였다.

“이게 무슨······”

서하린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기 중에 정신이 아찔해져 올 만큼의 방대한 피비린내가 섞여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렸을 뿐이지만, 다른 이들은 머리를 부여잡거나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용의 피입니다.”

“······용의 피라고요?”

서하린의 놀란 반응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용의 피는 어지러움을 유발합니다.”

용의 피는 마력이 집약된 결정체와도 같았다. 정제하지 않은 채로는 초인에게 독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혈향을 맡으면 제아무리 강한 초인이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서하린이 무언가를 깨닫곤 눈을 크게 떴다.

“여기서 용이라면······”

“예, 지룡(地龍)입니다.”

“지룡이 왜 피를 흘린 거죠?”

“가보면 알겠죠.”

그리 말한 내가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소피아는 괜찮아요?”

“예, 저에게는 크게 영향이 없는 모양입니다.”

소피아가 태연한 얼굴로 갸웃거렸다.

‘기력 때문인가 보네.’

나는 소피아가 멀쩡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마인조차도 용의 혈향을 맡으면 아찔함을 느껴야 했으나, 내 기력을 받아들인 소피아의 기운은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형질로 변형이 되어버린 것이다.

혼마력은 마기나 마력과는 연관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운이었다.

그만큼 기력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소리이리라.

이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마력의 밀도가 높은 최심부에서 소피아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상대적으로 서하린이나 1팀원들의 움직임은 둔해져 있는 게 바깥에서 만큼의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화아앗······!

생각을 접은 내 손에서 새하얀 항마력이 일어나 1팀원들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모두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가죠.”

“아, 예.”

나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던 마법사가 얼른 앞장섰다.

그렇게 동굴을 한참 나아가자, 거대한 공동이 우리를 반겼다.

오우거의 무리가 살아도 될법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동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진 참상에 우리는 숨을 죽였다.

공동은 천장이며 벽 할 것 없이 무너져 내려 있었고, 붉은 피가 바다처럼 지면을 적시고 있었다.

그 피바다에 황금색 비늘을 지닌 물체가 곳곳에 섬처럼 널려있었다.

잘려 나간 뿔을 지닌 머리, 조각난 피막, 허연 뼈를 드러낸 근육······

지룡의 사체였다.

“우욱···!”

몇몇 비위가 좋지 못한 1팀원들이 허리를 숙이고 토악질을 해댔다.

근접거리에서 맡은 지룡의 혈향은 그만큼이나 초인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

하지만 나는 그들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룡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피바다의 너머. 거대한 돌문이 존재했다.

손잡이가 쇠사슬에 휘감긴 그 돌문을, 한 남자가 애처로운 손길로 쓰다듬고 있었다.

“······.”

눈을 가늘게 뜬 나는 그 남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선한 눈매에 마치 과거의 인물 같은 옛 느낌을 풍기는, 그린 듯이 생겼다는 게 어울릴 법한 잘생긴 남성이었다. 내가 그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영멸의 밤.”

순간, 돌문을 쓰다듬던 남자의 손길이 멈추었다. 스르륵- 내게로 돌아오는 얼굴.

“기다리고 있었네.”

남자, 영멸의 밤의 입가에 붓으로 그린 듯한 미소가 내걸렸다.

***

한편 그 시각, 수련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하.

풍마 보리스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전율하고 있었다.

스스스스스─

어둠보다 더욱 짙은 그림자가 지면을 검게 물들인다. 그 어둠에 닿은 것은 마기고 뭐고 집어삼켜졌다.

아니, 오히려 ‘마인’이기에 더욱 위험했다.

콰드득─!

어둠은 마기에 반응해 이를 우선적으로 잡아먹었으니까······

“크아악-!”

십혈(十血) 최고의 은신력을 자랑한다는 마인, 위난이 어둠에 붙들려 우그러진다.

촤아아아······

열매처럼 압착된 몸에서 몸에서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이윽고 어둠에 침잠한 위난은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피 한 방울조차 남기지 못한 채.

“······.”

보리스는 그 광경을 눈 하나 깜빡이지 못한 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오! 좋아, 좋아···!”

그때, 옆에서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늙은노파.

허리가 구부정한 노파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눈을 별처럼 빛내며 히죽거렸다.

“칼리파, 조심해라.”

“클클, 걱정 말아라.”

칼리파라 불린 노파는 상대의 정신에 환각을 일으켜 조종하는 조작계열의 능력자였다.

그녀는 벌써 둘이나 되는 십혈이 당했음에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환희했다.

그런 칼리파의 눈에는 은은한 붉은 기운이 음영처럼 어려있었다.

칼리파가 정신에 착시를 일으킬 때 나오는 독특한 아우라였다.

그 아우라는 주변 마력의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강대해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차원의 균열이 존재하는 이터니티 필드의 최심부.

현재 칼리파가 내뿜는 아우라는 주변마저 일렁이게 할 정도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윽고, 칼리파의 눈은 어둠의 중심에 있는 여인과 마주쳤다.

칼리파의 눈에 반응하듯, 여인의 동공에 붉은 기가 어린다.

“오오! 됐다···! 됐어!”

부르르 떨며 환희하는 칼리파. 찰나, 여인의 붉은 입술이 매혹적인 호선을 그렸다.

보리스는 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퍼억─!

이리오라며 펄쩍펄쩍 뛰던 칼리파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다.

쿠웅!

머리를 잃은 시체가 떨어져 지면에 피를 쏟아냈다.

“······.”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보리스의 시선이 어둠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둠과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를 지닌 청순한 여인이 서 있었다.

보리스의 시선이 여인의 양옆을 바라보았다.

“키리리······”

“크르르······”

그녀의 양옆에는 인간 크기의 검은 용과, 여우가 존재했다.

“우르크의 요괴······”

각각 흑요와 요호로 불리는 영멸의 밤의 수호마수들.

조금 전, 칼리파의 정신공격을 막은 것은 여인의 좌측에 있는 요호의 능력이었다.

요호는 환각이나 정신계열을 무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리고 우측의 흑요는 저주계열을 무시하는 능력을 지녔다.

앞서 저주를 사용하던 마인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칼리파보다 더욱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 두 명의 죽음을 통해 보리스는 저 두 마수가 바로 영멸의 밤의 수호마수인 요호와 흑요라는 것을 확신했다.

‘상정하지 못한 변수다.’

영멸의 밤은 마경의 주민들이 이번 사건에 끼어들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랬기에 셀로스를 도우라며 그들을 이곳에 데리고 왔다.

하지만, 이 여인의 존재만큼은 영멸의 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오혈이 아니라, 칠악을 데려와도 모자랐을 테니······

휘이이익──

찰나, 누군가가 번개처럼 멀리 달아났다.

육체를 가속하는 십혈, 제노스였다.

신체를 가속시키는 마인답게 순식간에 50미터를 나아가는 제노스.

제노스가 도망가는 것을 여인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놓아주는 건가?’

의문을 품은 보리스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제노스를 바라보던 여인의 우측 팔이 올라갔다. 그 손에는 권총, 베레타가 쥐여져 있었다.

그 총구가 달아나는 제노스를 조준했다.

‘···이 거리에서?’

어느새 점이 되어버린 제노스를 보며 보리스가 설마 하는 마음을 품었을 때였다.

위이이이잉──

베레타의 총구에 맺히기 시작하는 칠흑의 마기.

파아아앙──

하얀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자, 마탄이 쏘아졌다.

보리스가 마탄을 쫓아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점이 되어 달아나던 제노스의 신형이 픽- 고꾸라진 것이다.

“······.”

보리스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굳어졌다. 여인의 고개가 보리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검은 어둠이 밀려들었다. 그게 보리스가 본 마지막이었다.

“······.”

어느새 오혈이 모두 사라져 적막해진 공간.

스스스스스-

지면에 넓게 퍼졌던 어둠이 한세연의 발치로 흡수되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밀려드는 마기를 음미했다.

그런 그녀의 마기는 싸우기 전보다 더욱 늘어나 있었다.

오혈을 죽이며 그들이 지니고 있던 마기를 모르도의 어둠이 빠짐없이 흡수했으니.

푸스스······

마기에 함유되었던 불순물들이 검은 재가 되어 피어올랐다.

이윽고 조용히 눈을 뜬 한세연의 시선이 어딘가로 돌아갔다.

그녀의 걸음이 차원의 균열이 존재하는 최심부를 향해 움직였다.

***

“기다리고 있었네.”

그렇게 말하는 영멸의 밤의 시선은 정확히 나와 소피아를 향해 있었다.

왜 자신을 바라보나 갸웃거리는 소피아. 내 미간이 좁혀졌다.

“기다렸다고?”

“그렇네.”

“왜지?”

“오거스트를 쓰러트린 그대들을 직접 보고 한 번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네.”

그리 말한 영멸의 밤은 정중히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였다.

“고맙네. 그대들 덕분에 무사히 깨어날 수 있었네.”

“······.”

영멸의 밤은 이제껏 화신체(化身體)만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본체는 노아에게 받은 타격을 회복하기 위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으니.

그리고, 영멸의 밤이 깨어나는 것은 오거스트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그랬기에 영멸의 밤이 잠들기 무섭게 오거스트는 그를 봉인했다.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그런데 오거스트가 나로 인해 죽으며, 영멸의 밤이 봉인에서 풀려난 것이다.

‘예상하곤 있었지만.’

설마 최종보스한테 감사의 인사까지 듣게 될 줄이야.

쓴웃음을 지은 내가 물었다.

“고마우면 물러가 주면 안 될까?”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네.”

“말로만 고맙다는 건가?”

“다른 걸 원하면 들어주겠네. 문을 여는 건 나의 오랜 숙원이니, 이해해주길 바라겠네.”

“그럼 수련관의 결계를 풀어.”

“그것도 들어주기 어렵겠군. 미안하네.”

영멸의 밤이 대단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의 태도는 예스러웠고, 정중했다.

‘입’으로만.

“그 대신이지만, 자네들은 여기서 살아나가게 해주겠네.”

녀석의 입에서 자애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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