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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60화 (161/226)

§ 160화

······나는 쓰러지는 한세연을 안아들었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은 한없이 가벼웠고, 얼굴은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했다. 어깨에 닿은 숨결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었다.

“너······”

“괜찮아, 이러고 있으면 나으니까.”

한세연이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노골적으로 허리를 감아오는 손길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은 숨을 내쉬었다.

잘못 손대면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이런 몸을 가지고 영멸의 밤의 고유결계를 깼다는 건가.

‘모르도와의 적합성이 얼마나 좋으면······’

나는 놀란 눈으로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새근새근-

고른 숨결이 목을 간질였다. 그래도 허리를 감은 손은 꼭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꼼짝없이 붙들린 나는 뒤에서 터져 나온 굉음에 고개를 돌렸다.

소피아를 비롯한 기사들이 튕겨나가고 있었다. 나는 내 쪽으로 날아드는 소피아를 향해 기력을 망처럼 펼쳤다.

침대에 안착하듯, 부드러운 쿠션감이 그녀를 받아들었다.

소피아가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예,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나는 소피아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공동의 한 가운데. 영멸의 밤이 검은 피를 울컥 울컥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몸에서 숨이 막힐 듯 진득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상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는 어려울 것 같다 말했으나 기실 우리가 영멸의 밤에게 승리하기란 불가능했다.

비록 결계가 깨지는 바람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영멸의 밤이었으나, 우리 쪽은 그에 못지 않게 지친 상황이었으니까.

서하린은 체력이 한계에 달한 듯 숨이 거칠었고, 소피아도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팀원들은 퍼부은 화력만큼이나 마력이 바닥이 났을 터였고.

반면, 영멸의 밤은 200인분의 마력을 잃기는 했으나 본신의 마기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이윽고 검은 피를 슥- 닦은 녀석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니, 내게 기댄 한세연이었다.

“···모르도의 숙주인가?”

자신에게 타격을 입힌 이였음에도 이를 바라보는 영멸의 밤의 얼굴에는 조금의 원한도 서려있지 않았다.

되려 기쁘다는 듯, 입가에 은은한 미소마저 어려 있었다.

“크르르······”

“키이이!”

한세연의 그림자에서 나온 흑요와 요호가 영멸의 밤을 경계하듯 으르렁거렸다. 거기에 이전의 주인에 대한 감정은 섞여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영멸의 밤은 그저 필요가 없어졌기에 두 마수를 버린 것이었다.

“그 아이가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한세연을 따르는 두 마수를 영멸의 밤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문이 열리면, 한세연을 균열을 벌리기 위한 제물로 삼으려는 수작이겠지.

모르도의 계약자라면 그만큼 값어치가 높았으니······.

“하아.”

한숨을 내쉰 내가 혀를 찼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SP를 써야 했으므로.

[이상의 투영자]

─SP를 이용한 능력의 강화를 시행하시겠습니까?

‘하나만.’

─강화할 대상을 선택해 주십시오.

이어서 내가 가진 능력의 리스트가 상태창 화면에 주르륵 나열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나열된 그 어떠한 능력을 강화시킨다 한들, 내가 영멸의 밤을 상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기는 것은커녕, 시간을 버는 것 조차 무리다.

영멸의 마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란, 고작 8300SP만을 가지고는 좁혀질 수 없을 만큼 크나 컸으니.

아니, 좁힌다 하더라도 녀석과 내 전투에 대한 센스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선택할 것이라곤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람.’

[8300SP를 소모합니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일시적으로 4% 상승합니다.]

[그람◆이해솔 동화율 12%]

‘모자라.’

한참이나 모자라다.

고작 4%의 증가율 가지고서는.

[그람과의 감응을 시도합니다.]

순간, 몸이 붕 뜨는 감각이 엄습하더니, 돌연 주위가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세상이 펼쳐진다.

그곳에는 언제나 함께 했으나, 실로 오랜만에 보는 존재가 자리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의 고고했던 모습 그대로.

<오랜만이구나. 예언자여.>

시대를 거슬러 온 듯한 풀플레이트 아머에, 먼지 먹은 갈색 망토를 두르고, 부러진 검을 든 백금발의 미녀.

북유럽의 영웅들이 거쳐간 검의 대정령, 그람이었다.

“그람.”

<곤란한 모양이구나.>

나와 정신을 공유하는 그람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내 용건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백색의 공간에 떠오르는 ‘영멸의 밤’.

<지금의 그대로서는 저자를 상대할 방도가 없으니.>

영멸의 밤에 대한 그람의 평가는 대단히 높았다.

<우리 시대에서도 영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자다. 지그문트의 전성기와 비교해도 반수밖에 차이가 나지 않겠구나.>

수심 깊은 호수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이 나를 응시했다.

<허나 괜찮겠나? 나 또한 온전치 않다. 힘을 빌리더라도 그리 긴 시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잠깐이면 됩니다. 어차피, 시간만 벌면 그만이니.”

내 생각을 읽은 그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서 대가는?>

“용의 피.”

순간, 백색의 공간에 공동에 고인 지룡의 피둥덩이가 떠올랐다.

“공동에 쏟아진 지룡의 피를 대가로 지불하겠습니다.”

<찬탈자의 피라···.>

뚜벅─

나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오는 그람. 내가 의아해하는 순간, 내 심장을 향해 그람의 손이 쑤욱- 들어왔다.

이어서 그람의 입가에 어리는 아찔한 미소.

홀린 듯 그 미소를 바라보는 순간, 물이 번지듯, 시야가 흐려졌다.

귓가로 아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좋다, 힘을 빌려주겠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어느새 현실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상태창에 표시된 문구.

[그람◆이해솔 동화율 80%]

“됐네.”

내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세포 하나하나가 일어나듯, 전신에 충만감이 차올랐다.

이런 감각은 소피아와, 이본느, 아렌. 세 사람에게서 기운을 전달받은 뒤로 처음이었다.

한편, 내가 의식의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사이 한바탕 교전이 벌어졌는지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땅에 박힌 대검을 잡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소피아. 내가 그녀를 지나치며 말했다.

“소피아, 고생했어요. 이제 쉬세요.”

“예? 하지만······”

“괜찮아요.”

나는 믿어달라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내 얼굴을 놀란 듯이 본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세연이좀 데리고 있어 주세요.”

소피아에게 한세연을 맡긴 나는 영멸의 밤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

뚜벅─

그런 내 걸음을 지쳐 쓰러진 1팀원들이 당황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영멸의 밤은 내가 도망치지 않고, 되려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죽어.”

푸아하학──!

녀석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분출했다.

***

“······.”

영멸의 밤은 제 왼쪽 어깨에서 솟구치는 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피부가 예리하게 베어져 있었다. 무섭도록 빠른 칼날이 지나간 것이다.

뚝─.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붉은 핏방울. 피를 머금어 새빨갛게 물든 비도가 떠올라 있었다.

“빠르네.”

목을 노렸건만, 그새 반응해 피해내는 것을 본 내가 혀를 내둘렀다.

그때, 영멸의 밤의 상처 부위에서 검붉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아, 회복하려는 거면 소용없어.”

내가 녀석의 어깨를 보며 말했다.

“그거, 마기가 닿으면 오히려 악화 되거든.”

아니나 다를까, 마기가 가라앉은 영멸의 밤의 어깨에는 여전히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커졌다.

“항마력이군.”

“정답.”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람의 비도에 항마력을 담아두었다.

마기와 상극의 기운인 항마력이 상처 부위에 잔존해 상처 부위를 벌려놓은 것이다.

제 어깨가 회복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영멸의 밤이 나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푸아하학──!

반대쪽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또 한 자루의 붉은 비도가 어느새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영멸의 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수어 번 베이며 전신에서 솟구쳐 오르는 피.

“무슨 비도가······”

서하린을 비롯한 1팀은 그 모습을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지켜보았다.

내 뒤에 떠오른 수많은 비도. 그중 하나가 사라졌다 하면 영멸의 밤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것은 눈으로 쫓기 어려운, 음속을 방불케 하는 속도였다.

이게 바로 대보구로서의 그람이 지니는 위용이었다.

이제껏 내가 날린 건 종이비행 놀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 곡예는 차원을 달리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화려하게 비도를 연주하는 그람.

영멸의 밤은 그 비도의 선율 아래 계속해서 난자당했다.

아니, 마치 속도에 적응을 하듯, 일부로 베여가면서 감각을 익히는 듯했다.

갈수록 그를 스쳐지나는 칼날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었으니.

그리고.

휘이이익──

비도 한 자루가 처음으로 그를 스쳐 지나갔다. 영멸의 밤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군.”

“알겠다고?”

픽 웃은 내 등 뒤에서 수십의 비도가 사라졌다.

───────!

여지없이 솟구쳐오르는 피. 번개처럼 치달은 수십의 칼날은 영멸의 밤을 갈라놓았다.

다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부위는 모두 빗겨간 채였다. 정말 괴물 같은 반사신경이었다.

‘이게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니.’

혀를 내두른 내가 손을 휘저었다.

휘리리리리릭──

영멸의 밤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는 비도의 무리.

비도의 무리는 칼날의 감옥이 되어 영멸의 밤을 가두어두었다.

영멸의 밤이 스윽- 손을 뻗자, 손끝이 갈려나갔다. 이윽고, 회전하는 칼날에 푸른 불길이 번진다.

화르르르륵──

화려하게 회전하는 불의 폭풍. 영멸의 밤은 불길에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언제까지 나를 여기에 가두어 둘 수 있을 것 같나?”

“글쎄, 한 5분?”

아니, 어쩌면 5분은 무리일지도. 그람의 동화율이 조금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그람의 성능을 실험하며 내심 감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시간만 번다면 이 뒤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테니까.

‘문이 흔들리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지금도 차원의 균열로 이어지는 문의 쇠사슬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곳에 알림 장치 하나 되어 있지 않을 리 없었다.

원래는 영멸이 밤이 펼쳐놓은 격리된 결계로 인해 눈치를 채지 못해야 했으나, 한세연이 이를 부수면서 이곳의 상황이 바깥까지 알려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가 이미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공동의 입구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구원투수 등장이네.”

중세풍의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소녀가 무시무시한 기운을 흩뿌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문에 손을 댔지?”

사나운 어투로 물어오는 소녀는 바로 검의 마녀, 노아 맥도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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