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누가 문에 손을 댔지?”
무시무시한 기운을 흩뿌리며 등장하는 노아 맥도웰.
그녀의 사나운 시선이 공동의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이를 본 나는 영멸의 밤을 가두어 놓았던 비도의 무리를 치웠다.
그 안에서 나타나는 영멸의 밤. 내가 손을 들어 그쪽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요.”
노아의 고개가 내 손짓을 따라 세차게 돌아간다.
“!”
이내 상대를 확인한 노아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얼굴이 무섭도록 굳어졌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처음 본다고 해야 할까. 다시 보게 되어서 기뻐. 노-”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입에 담지 마.”
노아의 차디찬 목소리가 영멸의 밤의 말을 끊었다. 그러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봄날의 훈풍 같은 따스한 흑안을 바라보며 노아가 그의 이름을 씹어뱉듯 읊조렸다.
“‘유진’.”
“······.”
영멸의 밤. 유진의 입가에 붓으로 그린 듯한 미소가 맺혔다.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지. 영혼의 반이 소실되었으니. 하지만 보다시피 이렇게 회복되었다.”
“그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노아가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이번엔 확실하게 죽여줄게.”
순간, 노아의 몸이 자리에서 꺼지듯 증발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곳은 유진의 바로 앞이었다.
콰아아아앙─!
굉음이 일었다. 노아의 손에 검의 형상을 이룬 마력이 레퀴엠과 교차해 있었다.
노아는 검이 막힐 줄 알았다는 듯 반대 손으로 마력을 내뿜었다. 마력은 찰나지간 술식을 그려냈고, 공간을 뒤틀었다.
퍼어엉──!
뒤틀린 공간이 터져 나가며 유진이 뒤로 튕겨졌다. 하지만 유진은 튕겨짐과 동시에 다시 달려들었다.
노아의 활짝 펴진 손바닥이 공간을 내리누르듯 위에서 아래로 내려졌다.
콰아아앙──!
달려들던 유진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그가 있던 지면이 움푹 주저앉았다.
이어서 하늘로 거세게 올라가는 노아의 손. 땅에 처박혔던 유진의 신형이 그대로 수십 미터를 날았다.
콰아아앙──!
천장이 부숴지며 흔들리는 공동.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그 돌가루를 뚫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유진.
“흥!”
코웃음을 친 노아의 눈이 파랗게 번뜩였다.
쩌적-!
찰나, 검을 내리치던 유진의 신형이 그대로 꽁꽁 얼어버렸다. 지면을 박찬 노아의 발이 얼어버린 유진의 신형을 후려 찼다.
콰아아앙─!
산산조각 깨져나가는 얼음. 발끝에 어린 뇌전의 마력이 수증기를 일으킨다.
마법과 체술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유진을 몰아붙이는 노아.
그녀의 주위를 다채로운 색의 술식들이 호위하듯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 유진과 충돌하면 함정처럼 마법을 토해낸다.
공동에 있던 초인들은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저게 마법사라고?”
“나보다 체술이 더 뛰어난데?”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지.”
저게 바로 내가 아는 검의 마녀, 노아 맥도웰이었다.
술사와 전사의 구분히 모호하던 시대에, 양쪽 모두를 섭렵한 희대의 천재.
그녀는 현대 마법계의 한 장르인 ‘배틀메이지’의 모태가 된 존재였다.
물론 유진도 만만하지 않았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오히려 더욱 놀라웠다.
마치 낡디낡은 기계에서 녹을 벗겨내듯, 유진의 몸놀림은 공방이 거듭될수록 몰라보게 바뀌고 있었으니까.
콰아앙──!
이제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에서 벗어나 노아의 마법을 제대로 피해내고 있었다.
싸움의 감각을 되찾아가듯 진보하는 유진의 모습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서 발동하는 술진을 반사신경만으로 피해내는 수준이라니.
저걸 보자니, 나와의 공방이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분명 비도의 속도에 적응을 해버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어서 벌어진 접전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다.
공동의 곳곳을 누비며 쉴 틈 없이 공방을 벌이는 두 사람.
그들이 주고받는 공격은 눈으로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빨랐고, 치명적이었으며, 또한 완벽했다.
콰앙─! 콰앙─!
공동의 사방에서 푸르고 검은빛이 터져 나온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그 예술 같은 공방은 모두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마스터···”
“이게···”
마스터(Master).
최상격에서도 격을 달리하는 이들을 따로 존중해 부르는 호칭.
이건 마스터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후아아앙──!
사나운 광풍이 몰아치며 공동의 중심에 스륵- 나타나는 두 사람.
처음 등장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인 노아와 달리, 유진은 여기저기 얼어붙고 불타는 상흔을 입은 채였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내걸려 있었다.
“그럼 이제 제대로 가보지.”
스스스스스-
공동의 사방에서 시꺼먼 그림자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일어난다.
마치 땅에서 일어나듯 스륵- 스륵- 솟구치는 검은 그림자들.
“그어어······”
불길한 울림을 발하는 인간의 형상을 본 초인들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흐, 흑귀다!”
“진짜로······”
흑귀(黑鬼).
자신에게 죽임을 당한 이를 그림자로 부활시켜 일시적으로 조종하는 능력.
이는 한때 초인사회를 공포로 몰고 갔던 영멸의 밤, 유진의 상징이 되는 기술이었다.
이를 본 초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대가 정말 영멸의 밤이라는 이야기였으니.
그러나 이를 본 노아의 눈에는 아무런 감흥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리고.
퍼버버버버버벙──!
공동의 가득 일어났던 흑귀들이 일시에 터져 나갔다.
“!”
모두의 놀란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노아가 이죽였다.
“이딴 장난감이 통할 거라 생각해?”
주위를 둘러본 유진이 작게 감탄했다.
“흑귀를 단숨에 일거하다니, 강해졌구나.”
“그러는 넌 많이 녹슬었어.”
“그럴 지도 모르겠군.”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긍하는 유진. 그 여유로운 모습에 노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틀렸어.”
“틀렸다?”
“너, 지금 몇 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몇 년이 지났지?”
“한 세기야.”
“많이 흘렀군.”
“그래, 많이 흘렀지. 아주 많이.”
콰아아아아아아──!
순간, 노아의 몸에서 노도와 같은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대기가 울부짖고, 공간이 이지러지며 녹아내렸다.
“내가 과거의 그대로일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타닥─!
발치의 마력에 닿은 돌덩이가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린다.
“이번엔 확실하게 죽여줄게.”
푸른 죽음을 두른 노아의 새파란 광망이 유진을 비추었다.
***
“저게······”
공간조차 녹아내리게 하는 노아의 마력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저것은 마력을 넘어선 무언가였기에.
과연 세계관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어마어마한 위용이었다.
푸른 죽음을 두른 노아의 자태를 유진은 눈이 부시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터널, 그것을 드디어 완성시켰구나.”
이터널이란 과거 노아와 유진이 힘을 합쳐 토벌했던 재앙의 일각, 불의 거인 수르트가 둘렀던 죽음의 불길에서 고안된 기술이었다.
시전자의 육체마저 태워버리기에 당시에는 가닥조차 잡지 못하던 기술.
인간의 육체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인외(人外)의 기술이 지금,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찰나, 노아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앙──!
공기층의 뒤늦은 폭발. 푸른 섬광이 쇄도하며 공간이 부서져 나간다. 섬뜩한 인광(燐光)이 파랗게 번뜩였다.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극한의 속도. 그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유진의 감각이 반응했다. 팔이 들리고, 뻗어진 검이 진로를 막았다.
바로 다음 순간.
──────.
푸른 섬광이 벼락처럼 지나쳤다. 막아선 검과 함께 유진의 오른팔이 증발해버렸다.
그때, 등허리를 오싹하게 적셔오는 한기에, 유진이 번개처럼 몸을 틀었다. 푸른 섬광이 꼬리를 늘이며 유진의 곁을 지나갔다.
그의 초인적인 반사신경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섬광의 속도를 인지하고 학습했으며, 조금의 오차도 없이 충돌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왼팔과 가슴의 일부가 먼지처럼 증발했다.
후두둑──.
양팔의 단면에서 봇물처럼 쏟아진 핏물이 바닥을 붉게 적시었다.
닿지 않았음에도 마력의 영향만으로 육체의 일부가 증발해버린 것이다······.
유진은 마기를 일으키다가 일순 멈칫거렸다. 잔잔히 이어져 오던 200인분의 마력의 흐름이 뚝- 끊기었다. 그것은 질투의 마인, 셀로스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마력이 끊기었다는 것은 더 이상 ‘문’을 열 수 없음을 의미했다.
“···오늘은 여기서 물러가야겠군.”
쇠사슬이 걸린 문을 바라보며 유진이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내줄 것 같아?”
휘아아아악──!
심해처럼 어두운 마력의 파도가 유진을 향해 쇄도했다.
찰나, 유진의 발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자가 일어났다.
유진의 앞을 벽처럼 막아선 그것들은 제 몸을 희생해 마력의 파도를 막아섰다.
포말처럼 부숴져 나가는 그림자들. 범람하는 파도처럼 밀어닥친 마력이 유진을 덮쳐들었다.
어둠에 녹아들던 유진의 다리가 마력에 터지고, 어깨가 으깨진다.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만한 부상. 그러나 녀석의 얼굴에 어린 것은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진한 아쉬움이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그리 중얼거리던 녀석은 이윽고 어둠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노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석연치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유진은 재회를 기약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으니.
나는 녀석이 사라지면서 한 말에 이어지는 뒷 내용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진짜 너를 보러 가마.
대충 이런 내용이겠지.
지금의 노아는 본신이 아닌 그녀가 꾸는 ‘꿈’이었으니.
진짜 노아 맥도웰의 본신은 이 굳게 잠긴 돌문의 너머에 잠들어있었다. 무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상념을 지운 나는 지룡의 피웅덩이에 그람을 담갔다.
우웅─.
그람이 진동하며 용혈의 마력을 흡수해갔다.
***
적막만이 자리한 어느 넓은 침실.
타닥, 탁.
은은하게 타오르는 벽난로의 온기가 어둠을 살라 먹는 침대에, 검은 머리를 늘어트린 남자가 누워있었다.
“······.”
흐리멍덩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양팔과 왼 다리는 떨어져 나가 있었고, 머릿결은 피에 잔뜩 엉겨 붙어있었다.
끼이익─.
그때, 침실의 문이 열리며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순백의 드레스를 걸친 10대 후반의 아름다운 동양계 여성이었다.
또각─. 또각─.
바닥을 울리는 하이힐 소리에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치료를 하겠습니다.”
“부탁하마. 엔마.”
우웅.
엔마라 불린 여성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푸른 마력이 유진의 손실된 육체에 닿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잘려 나간 상처 부위에서 피가 멎더니, 양팔과 다리가 돋아나듯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치료나 마법과는 달랐다. 노아로 인해 소멸된 육신은 다시 재생되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엔마가 하는 것은 의료가 아닌, 상처 부위의 ‘시간’을 되돌리는 행위였다.
“복원이 완료되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이 재생된 손을 까딱여 보였다.
“완벽하구나.”
유진의 인자한 웃음에 엔마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자꾸나.”
“어디로······”
“제단으로 간다. 더 이상 바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을 수는 없으니.”
“모시겠습니다.”
영멸의 밤, 유진이 엔마의 안내를 받으며 침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