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다음날 아카데미. 특별수업이 예정된 ‘정령의 요람’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한세연에게 전날의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어제 어디 갔다 온 거야?”
“정리를 좀 하고 왔어.”
“정리?”
나는 갸웃거리면서 한세연이 ‘정리’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학급 게시판을 관리하거나, 청소를 돕고, 창가의 화분에 물을 주는 광경.
마경에서는 흰 앞치마를 메고 식기를 치우기도 한다.
‘일’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피곤한 일과였으나, 한세연은 이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소화했다.
하지만 이는 매일같이 해오던 일이다. 따로 언급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그밖에 한세연이 정리라고 할 만한 일이라면······
‘방 청소?’
한세연의 기숙사 방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기에 특별히 청소할 것이라곤 없었다.
다만, 마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방치된 터라, 먼지는 상당히 쌓였을 것이었다.
“먼지 털고 왔어?”
“···응, 그렇네. 먼지 털고 왔어.”
잠시 갸웃거리더니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연.
그러고 보니 나도 기숙사에 안 들린지 벌써 두달이 넘어가네.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걷자니 우리는 작은 소강당에 도착했다.
[정령의 요람].
소환수를 불러내고, 또 소환수끼리의 대전을 치를 때 사용되는 장소였다.
“와아······”
“구름이 있어.”
정령의 요람으로 들어서자 펼쳐진 광경에 생도들이 나직한 감탄을 발했다. 강당의 내부는 ‘자연’이었다.
하늘에는 양떼구름이 떠다녔으며, 작은 호수를 중심으로 나무, 풀, 자갈 등이 존재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선 나는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움직이기가 편한데?’
이곳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몸을 가누기가 편해진 것이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공기가 빨려 들어왔으며, 몸은 가벼웠다. 바깥에서보다 족히 2배는 자유로워진 것 같다.
그때, 우리를 인솔해온 정령학 담당교수 윤선아가 입을 열었다.
“다들 움직이기가 불편하죠?”
‘불편해?’
내가 느끼는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에 나는 갸웃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생도들은 윤선아의 말처럼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필드의 최심부에서나 보이던 반응을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난 왜 더 가벼워졌지?’
내가 이유 모를 활력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다.
“‘간이 정령계’라는 겁니다.”
괴로워하는 생도들을 보며 윤선아가 입꼬리를 슬쩍 올려 보였다.
“이곳에서는 정신체, 그중에서도 정령만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움직이기 불편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죠. 그 말은 즉.”
딱─!
윤선아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투명한 소녀의 형상을 띄었다.
“정령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이란 뜻이죠.”
꺄르르─
투명한 소녀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풀숲을 날아다녔다.
“환경이 정령계와 흡사할수록, 정령들은 힘을 얻는답니다.”
윤선아는 이 간이 정령계가 왜 정령사들에게 유리한지, 그 이유를 면밀히 설명해주었다.
‘그런 거였네.’
나는 윤선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빛냈다. 내가 왜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낀 건지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몸은 정령체와 인간의 중간에 걸쳐 있는 상태였다.
간이 정령계에서 몸이 가벼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는 내게 희소식이었다.
이 정령의 요람처럼 환경을 바꿀 수만 있다면 내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마치 영멸의 밤이 ‘고유 결계’를 펼쳤던 것처럼 말이다.
“자, 그러면 정령을 불러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반과 2반. 각반의 대표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윤선아가 박수를 짝짝 치며 소리쳤다.
이번 수업이 ‘특별 수업’인 이유. 그것은 바로 ‘반 대항전’이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는 생도들의 경쟁심리를 부추기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 반대항전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생도들은 벌써부터 경쟁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의 환경을 둘러보기 바빴다.
간이 정령계. 이것의 흉내만 낼 수 있어도 내 무력의 상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
‘파랑이의 정령석을 응용하면 어찌 될 것도 같은데.’
정령석에는 이것과 유사한 기운이 함축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주머니 속에 넣어둔 정령석을 조심스레 꺼내 볼 때였다.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이어서 울리는 윤선아의 목소리.
“좋아요. 이해솔, 앞으로 나오세요.”
“우와아아아!”
“?”
생도들의 환호성에 나는 얼떨떨한 심정이 되어 내 팔을 들어 올린 사람을 돌아보았다.
“야, 너···”
“잘하고 와.”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어 보이는 생도는 바로 한세연이었다.
생도들의 웅성임 속에 그녀의 입가가 소리 없이 움직였다.
‘화.이.팅.’
“···하아.”
나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앞으로 나갔다. 이미 불리기까지 한 마당에 거절할 수도 없었으니까. 뭐, 사실 흥미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불러낼 수 있으려나.’
정령은 기본적으로 ‘최하급-하급-중급-상급-최상급’으로 그 격이 나뉜다.
그리고 사실상 최하급 정령은 정령이라기보다는 ‘원소’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정령사의 자질이란 이 최하급 정령을 얼마나 불러내느냐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최하급 정령을 불러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한 수 부탁할게.”
“···어, 나도 잘 부탁한다.”
내게 손을 내미는 생도는 최근 2반에 전학을 온 생도인 ‘채유나’였다.
참고로 채유나는 윤선아가 손수 가르친 제자다. 그 때문인지 아카데미 내에서는 윤선아가 조카인 윤진아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까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얜 왜 이래?’
맞잡은 손을 통해 은근히 마력을 불어넣어보이는 채유나.
무슨 의도인가 싶어 쳐다보니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려 보인다.
‘뭐 하자는 거지?’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머뭇거리고 있자니 내 손을 놓은 채유나가 당당히 자신의 위치로 간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싸움인가?
“압도당하겠네.”
어깨를 으쓱인 내가 자리로 가자 윤선아가 입을 열었다.
“둘 다 정령의 소환법은 잘 숙지하고 있겠지요?”
““예.””
간단한 확인을 마친 윤선아의 손이 휘둘러진다.
그녀의 마력이 허공에 방사되며 시꺼먼 구멍을 만들어냈다.
정령을 보다 용이하게 소환할 수 있게끔 하는 소환마법. ‘정령의 길’이었다.
“그럼 3분 동안 누가 더 많은 최하급 정령을 소환 하나로 승부를 판가름하겠습니다.”
***
최하급 정령을 소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정령의 길에 마력을 흘려보낸 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마력에 이끌린 정령이 알아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물론 나야 마력이 없지만, 아나스타샤의 기운을 사용하면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다만······
‘얘 좀 보게.’
정령의 길에 아나스타샤의 기운을 흘려 넣으려 하자 그곳을 푸른 마력이 가로막았다. 고개를 돌리니 채유나가 손을 흔들어 보인다.
“별짓을 다 하네.”
혀를 찬 나는 그냥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내가 포기했다 판단했는지 싱긋 웃어 보이는 채유나.
윤선아 또한 표정이 밝아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 제자의 승리라고 판단하자 웃음을 지울 수가 없나 보다.
하지만 그 둘에게는 안타깝게도 나는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기운을 흘려 넣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어, 어?”
채유나의 마력에 반응한 수십의 최하급 정령이 쏟아져나온다.
하얀 눈보라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은 몽환적인 풍경.
분명 좋아해야 하는 광경이건만, 채유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뭐, 뭐야, 그럼 왜 다 그쪽으로······”
“글쎄, 내가 더 좋나 보지.”
나는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그녀의 마력에 이끌려 나타난 최하급정령이 모두 내 주변으로 몰려든 것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채유나보다야 아나스타샤의 기운이 정령들에게는 더욱 친숙할 테니.
“정 의심 가면 네 교수님한테 물어보던가.”
뭐, 그 교수도 상황파악을 못하겠는지, 눈을 깜빡이고 있었지만.
“···이해솔 생도가 승리했습니다.”
이건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시합이었다.
***
“······으음.”
설마 제 제자가 단 1마리의 정령에게서조차 선택을 받지 못할 줄은 몰랐기에 윤선아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사실, 대항전이란 것도, 정령술 특기인 제자를 띄워주기 위해 마련한 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채유나가 그 먹잇감이 되어버렸으니······ 심지어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교수님, 정령이 한 마리도 안 오는데요?”
“그럴 리가요. 집중을 해보세요.”
“저도 한 마리도 안 와요.”
“벌써 30분째 집중하고 있어요.”
“······.”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음에도 정령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생도들이 울상을 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령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많이 소환되고 있는 편이었다.
“교수님, 저쪽에서 다 가져가니까 안 오는 거 아닌가요?”
“그래요, 저기는 정령이 넘쳐나요.”
윤선아가 당혹 어린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정령이 아주아주 넘쳐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정령이 죄다 한 쪽으로만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무주공산인 2반의 진영과 다르게, 1반에게만 편중되는 정령들을 윤선아가 당혹어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
“·········친구.”
주위를 가득 메운 정령들을 보며 내 가슴에서 고개를 내민 아나스타샤가 눈을 별처럼 반짝인다.
이 정령의 빈부를 만들어내고 있는 존재는 바로 그녀였다.
자연계 정령으로 평생을 홀로 지낸 아나스타샤는 이처럼 많은 정령을 보는 게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모아봐.”
“·········더?”
“응, 더.”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눈을 깜빡이는 아나스타샤. 나는 그에 아랑곳없이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처음에야 아나스타샤가 정령을 모았다지만 그로 인해 나는 이 간이결계를 모방할 방도를 찾아낸 것이다.
‘···정령이 많으면 환경이 바뀐다.’
비록 최하급 정령이 모인 것 뿐이기에, 그 변화는 미미했으나, 반정령체인 나는 그 미미한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극대화시키느냐지.’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최소 중급 정령 정도쯤 되는 무리가 모여줘야 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효율이 너무 나빴다.
그 짓을 하느니 차라리 그냥 싸우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으니······
‘정령석 쓰면 딱이겠네.’
해결책을 찾은 나는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았다.
“···큼.”
유독 1반, 특히 내 주변으로만 과도하게 몰려 들어있는 정령의 무리.
가볍게 헛기침을 한 나는 조용히 아나스타샤를 인장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돌려보내는 게 너무 늦은 탓일까. 아니면 타이밍이 겹친 탓일까.
삐이이이──
돌연, 위에서 긴 경고음이 울렸다. 뒤이어 이어지는 안내방송.
[금일 필드의 이용은 금지되오니, 생도들은 필드로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금일······]
“뭐야, 무슨 일 있나?”
“어디 사고라도 났나 보지.”
경고음에 생도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드물기는 해도 가끔 이런 일도 발생하곤 했었으니.
“······더 이상 수업은 무리일 것 같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령학 교수 윤선아가 빠른 수업의 종료를 선언했다.
수업이 끝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은 상황이었으나, 정령이 편중된 상황에서 수업을 이어갈 수는 없었으니.
“크흠.”
멋쩍게 헛기침을 하고 있노라니, 불쑥 고개를 내미는 노란 머리.
“이거 해솔이 한 거죠?”
마치 대단한 비밀을 속삭이듯 눈을 반짝이는 존재는 아멜리아였다.
“아니.”
“고마워요, 덕분에 정령 하나 잡았어요.”
“나 아니라니까?”
“글쎄, 이 정령을 보여줬더니 채유나 걔가 어떤 표정 지었는 줄 알아요?”
채유나의 구겨진 얼굴을 제 얼굴 근육을 움직여 묘사해 보이며 고소하다는 듯 재잘대는 아멜리아.
‘그러고보니 얘랑 사이가 안 좋았지.’
······내 말은 전혀 듣질 않는 아멜리아의 입에 주머니의 빵을 까서 물려주었다.
“가자.”
“응.”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연. 우리는 재잘대는 아멜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람을 나섰다. 그렇게 한가로이 교실로 돌아갈 때였다.
“음?”
문득 어딘가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그 방향이 필드인 것을 확인한 내가 뛰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천리안’을 발동하자 그 사람의 모습이 또렷이 잡혀 들었다. 이내 상대가 누군지를 확인한 내 눈이 커졌다.
‘김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