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필드로 헐레벌떡 달려간 김주혁이 향한 곳은 바로 ‘슬라임의 늪지대’였다.
습해서 푹푹 찌는 데다, 있는 거라곤 돈도 안 되는 슬라임뿐이기에 아무도 찾지 않는 곳.
“비켜라!”
걸리적거리는 슬라임들을 발로 걷어차며 늪지대에 도달한 김주혁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그가 바라보는 늪지대의 중심에서는 뻐끔뻐끔, 거대한 기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주혁은 곁을 지나던 슬라임 한 마리를 주워다가 그 기포 위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촤아악──!
기다렸다는 듯이 늪지대를 뚫고 솟구치는 거대한 괴어.
황금처럼 샛노란 비늘과 날카로운 등지느러미를 지닌 그것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송곳 같은 이가 번뜩인다.
슬라임을 한 입에 집어삼킨 괴어는 순식간에 늪지대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후후, 무르익었구나.”
늪지대 위로 솟구쳤던 녀석의 늠름한 자태를 확인한 김주혁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금갑어’.
바다의 보배라 불리는 마수.
금갑어는 체내에 ‘내단’이라는 자연의 기운을 쌓는 영물이었다.
5년 전, 관리차 들렸던 이 늪지대에서 우연히 금갑어를 발견한 김주혁은 녀석이 성체가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성체가 된 금갑어가 지닌 내단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의 어마어마한 보물이었으니.
오늘 있었던 필드의 출입 금지령은 바로 이 녀석이 원인이었다.
‘정령’이나 ‘슬라임’등, 자연적인 것을 주식으로 삼는 금갑어가 먹잇감의 기운을 느끼곤 거대한 마력을 방사했고, 그것이 아카데미측에 잡혀든 것이다······.
다행히 큰일 없이 넘어갔으나, 하마터면 금갑어를 들킬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쯧, 수업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윤선아를 떠올린 김주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드디어 기다리던 수확의 시기가 다가왔다. 금갑어의 크기가 성체에 달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잡는 것은 무리였다. 당장 잡지 못할 것은 없었으나,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오늘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룬어 수업’의 개강일이었다.
기껏 최심부 탐사 이후로까지 개강일을 미루면서 준비를 해왔는데 개강일부터 교수가 늦는다는 것은 김주혁의 체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말에 다시 오마.”
뻐끔뻐끔 기포를 발하는 늪지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 김주혁이 물러났다.
어디 회 잘 뜨는 장인이라도 물색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후.”
그렇게 금갑어를 맛 볼 생각에 흐뭇하게 웃으며 필드를 벗어나던 김주혁의 걸음이 돌연 멈칫 굳어졌다.
흠칫 놀란 김주혁의 시선이 필드의 바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생도 한 명이 서 있었다. 그것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마주치기 꺼려지는 인물이었다.
“···이해솔생도. 오늘은 필드 근처에 오시면 안 됩니다.”
“교수님은 왜 그곳에서 나오십니까?”
“크흠, 저야 당연히 확인차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위험이 있으면 큰일이니까요. 아무튼 곧 수업 시작할 테니 빨리 들어가 있도록 하세요.”
그리 말한 김주혁은 최대한 당황을 감추며 아카데미로 발길을 돌렸다.
한편, 잰걸음으로 사라지는 김주혁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가 나온 방향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다 됐나 보네.”
***
······채유나는 정령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상태가 좋지 못하다며 기숙사의 방으로 돌아왔다.
“으으······”
바닥에 앉아 침상의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토록 자신 있게 나섰건만, 무려 100명이나 되는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단 한 마리의 정령한테도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거 봐요, 얘 귀엽죠? 제가 좋다고 자꾸 따라다니네요.
─어머, 설마 그쪽은 한 마리도 얻지 못하신 건가요?
─자신만만이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기대했는데······ 대단하긴 하네요. 푸훗.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입가를 씰룩이며, 제 정령을 자랑하던 아멜리아를 떠올린 채유나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려왔다. 약올라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복수해 주겠어.”
분함에 베갯잎을 적시던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녀를 지원해주겠다며 자금을 대기 시작한 여자였다.
이른 바 스폰서.
자신을 블랙마켓의 상인 ‘벨’이라 소개한 그녀는 채유나의 창창한 장래성을 어찌 알아봤는지 선뜻 투자를 제안해왔다.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였기에 거절하려 했나, 그 금액이 부유하게 자란 채유나조차 놀랄 만큼 많았기에 그녀는 모른 척 스폰을 받아들였다.
곤란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던 벨.
그런 벨이라면 그녀의 복수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연락이나 해볼까.”
채유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벨’이라 등록된 연락처를 눌렀다.
뚜르르르─
─네, 전화 받았습니다. 채유나씨, 무슨 일이시죠?
통화음이 잠시 이어지더니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 저······”
그렇게 채유나가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내려던 때였다.
발칵─!
느닷없이 방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깜짝 놀란 채유나가 급히 통화를 끊으며,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 무슨일이시죠?”
노크도 없이 안으로 들어온 이는 그녀의 스승인 정령학 교수 윤선아였다.
“···울었니?”
채유나는 자신의 촉촉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잠깐 졸았더니 그런가봐요.”
“후후. 아니기는. 베개가 다 젖어있는데.”
은근하게 웃어 보이는 윤선아에게 채유나가 얼른 용건이나 말하라며 눈치를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시죠?”
“후후후후.”
말없이 웃어 보이기만 하는 윤선아. 그렇게 채유나가 눈살을 찡그릴 때였다.
“걱정 마렴, 유나야.”
“뭘 걱정 말아요?”
“이 스승님이 아~주 좋은 걸 알고 있단다.”
“아주 좋은 거요?”
“그럼. 아주 좋은 거지.”
그리 말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인 윤선아가 그녀를 찾은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 채유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하지만 그건 위험한 게······”
“후후, 이 스승님만 믿으렴.”
윤선아가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려 보였다.
***
······한편, 수업이 끝난 방과 후. 나는 아멜리아를 데리고 필드로 향했다.
“오늘 필드 출입금지 아니었나요?”
“어차피 확인도 못하니 상관없어.”
“그런데 필드는 왜 가자는 거예요?”
“몸보신하러.”
몸보신? 도무지 집히는 게 없는지 순진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리는 아멜리아.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금갑어’였다.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곳곳에는 주연들이 성장할만한 비밀 요소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금갑어도 그 일종이었다. 김주혁이 발견해 성장하기만을 기다리는 ‘영물’.
금갑어의 살은 무병장수의 보약이며, 내단은 마력을 초월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보물이다.
하물며 내게는 효과가 없는 다른 영물들과 다르게 이 금갑어는 내게도 아주 좋은 작용을 한다.
식성이 까다로운 이놈은 무조건 ‘자연식’을 고수하는 놈이었으니까. ‘슬라임’이나, ‘정령’같은 것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주식으로 삼다 보니, 이 녀석은 ‘정령체’에 아주 가까웠다.
즉, 정령체에 가까운 내가 녀석의 내단을 먹는다면 전체적인 능력의 상승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이놈은 ‘갑’이 들어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치도록 단단한 녀석이었다.
온몸을 감싼 비늘에는 검 하나 안 들어가며, 두들기는 충격은 죄다 흡수를 해버린다.
심지어 마법과 온도에 내성까지 갖췄기에 어지간한 레벨이 아니라면 통하지도 않는다.
아카데미로치면 교수급이나 되어야지 비로소 타격이 들어가는 수준. 하지만 이 녀석도 무적은 아니었다.
녀석의 몸체에는 마력이 흐르는 약점이 존재한다. 그곳을 공략한다면 사냥도 훨씬 수월해졌다. 아멜리아를 데리고 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아멜리아라면 녀석의 몸체에 흐르는 마력을 단번에 파악할 테니까.
내가 빌린 반쪽짜리 능력을 이용하느니, 그 편이 훨씬 수월했다.
“으, 이쪽으로 가는 거 맞아요?”
한편, 아멜리아는 주변에서 꾸물거리는 슬라임들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악- 저리 치워요.”
내가 슬라임 한 마리를 들어가져다 대자, 기겁한 아멜리아가 팔짝대며 물러났다.
“왜, 말캉해서 귀엽기만 하구만.”
“자꾸 이러면 저 그냥 갈 거예요?”
내 뺨에 슬라임을 비벼대자 아멜리아가 표정을 굳혀 보였다.
더 이상 놀렸다간 울상을 지을 것 같은 게 정말 갈 것 같았기에 혀를 찬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정말 몸보신 할 게 있어요?”
“가보면 알아.”
내가 그리 말한 순간, 눈앞에 어두운 늪지대가 펼쳐졌다.
슬라임들이 유영을 하듯, 둥둥 떠다니는 곳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정령체여서일까.
촤아악──!
때마침 늪지대를 가르며, 거대한 황색의 괴어(怪魚)가 솟구쳐 올랐다.
“뭐, 뭐얏?!”
“나왔네.”
드높이 날아오른 녀석을 보며 내가 씨익 웃어보였다.
송곳니 같은 이를 위협적으로 드러낸 채 떨어져 내리는 녀석은 바로 ‘금갑어’였다.
***
······아멜리아와 내가 금갑어와 마주친 그 시각. 슬라임 늪지대의 외곽으로 두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런 곳에 금갑어가 있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후후,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 믿어도 좋단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움직이는 그들은 바로 채유나와 윤선아였다.
윤선아가 이곳에서 금갑어를 찾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김주혁교수는 가끔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궁금히 여긴 윤선아는 제 바람의 정령을 붙여보았다.
그렇게 이곳에서 김주혁교수가 몰래 무언가를 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영물인 금갑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윤선아는 처음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애초에 필드의 마수들은 모두 아카데미의 재산이기에, 금갑어 또한 아카데미의 사유재산이었다.
하지만 김주혁은 이를 발견하고도 아카데미에 보고를 하지 않고 혼자 독식을 하려 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윤선아 또한 이를 아카데미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
‘김주혁교수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자신과 제자를 위해서 김주혁보다 먼저 금갑어를 가로챌 생각이었다.
영물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었으니까.
“다 왔단다. 요 앞에 늪지대에······”
금갑어가 서식하는 곳에 도착한 윤선아가 채유나를 돌아보며 설명을 해주려 할 때였다.
“왜 그러니?”
문득 채유나의 눈이 커진 걸 확인한 윤선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님, 앞에······”
“응? 앞에 뭐가- 엇!”
채유나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린 윤선아의 입에서 기함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늪지대.
거대한 황색의 괴어, 급갑어가 날카로운 이빨을 내민 채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녀석이 떨어져내리는 자리에 있는 것은 그녀도 익히 잘 아는 인물이었다.
“···이해솔?”
그녀가 생도의 이름을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스아아악──
“!”
떨어져 내리던 금갑어의 옆구리가 장검에 물처럼 갈려 나가는 걸 본 윤선아의 눈이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