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네이슨과 카터가 늦게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갱도를 던전화시킨 그들은 마수와 싸우느라 지친 초인을 사냥하기 위한 함정을 파놓은 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든 한세연을 두 사람은 독 안에 든 쥐처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대단하구나. 그 나이에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한세연을 기특하다는 듯 칭찬한 곱추 마인 카터가 입술을 핥았다.
마력의 질이 좋으면 좋을수록 마인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만찬이다.
카터가 보기에 한세연은 간만에 보는 극상의 먹잇감이었다.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마라. 얌전히 있으면 곱게 보내주마.”
푸스스스······
카터의 양손에서 시꺼먼 마기가 잿더미처럼 흘러내렸다.
그 잿더미에 닿은 마수의 사체에서 검은 원령들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크르르르르······
한세연을 향해 붉은 눈을 번뜩이는 마수의 원령들.
카터가 계약한 마족이란 바로 ‘원한의 악마’였다.
그의 능력으로 빠져나온 원령들은 자신을 죽인 대상에게 지독한 복수심을 품게 된다.
그렇기에, 주변의 사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죽음이 범람하면 할수록 카터의 힘은 강대해진다. 원령은 고스란히 그의 명령을 따르게 되니까.
이는 결코 평범한 능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터 역시 평범한 마인이 아니었다.
마인사회의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십혈(十血).
허리를 다쳐 곱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카터는 그 십혈의 일원이었으니······.
하지만, 추락한 뒤로 카터의 능력은 더욱 강대해졌다.
음지에 숨어 마기를 쌓아 올린 그의 능력은 이미 전성기 시절을 훌쩍 넘어섰다.
하물며 갱도에는 마수의 사체가 넘쳐났으니, 카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동료 마인 네이슨조차 카터에게서 흐르는 잿가루를 피해 멀찍이 물러난 뒤였다. 그만큼 그가 풍기는 기운은 위협적이었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를 바라보는 한세연에게서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인과 만난 것에 놀라 굳어버렸나 싶었으나 아니었다.
한세연은 그저 무감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카터는 왠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찜찜하군.’
분명 손만 대면 가벼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상대에게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카터에게는 불길하게 다가왔다.
그가 허리를 다치기 전에 느꼈던 께름칙함과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지.’
카터는 피식 웃으며, 제 감정을 떨쳐냈다.
냉정히 판단해봤을 때 자신은 그 당시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하물며 그의 허리를 이렇게 만든 생명체는 한낱 인간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 괴물은 심연의 깊은 곳에 자리한 어둠이었으니.
그러니,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제 착각에 불과했다.
‘평소대로 간다.’
생각을 마친 카터에게서 흘러내리는 잿가루의 양이 많아졌다.
─크르르르르!
갱도의 너머에 널브러져 있던 마수의 사체에서 원령들이 일어난다.
그 수는 정확히 한세연과 이해솔이 쓰러트리며 왔던 마수의 숫자와 동일했다.
이곳까지 들어오면서 카터는 쓰러진 마수의 원령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제 권속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캬르르르······
물경 200에 달하는 원령이 내뿜는 사기는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찟했다.
그러나 그 수백의 원한을 한 몸에 받는 한세연은 여전히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 모습이 카터에게는 기이할 정도로 불길하게 느껴졌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처리해!”
카터가 자꾸만 뜸을 들이자 지켜보던 네이슨이 답답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원령들이 한세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200여마리의 원령이 달려드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대의 장관이었다.
순식간에 한세연의 앞까지 도달한 거대한 늑대의 원령이 그녀를 짓누르기 위해 앞발을 내리친다.
퍼엉! 내리쳐지던 늑대의 앞발이 터져 나갔다. 이어서 머리와 몸통이 연달아 터져버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거대하게 벌어진 악어의 입이 늑대와 한세연을 동시에 집어 삼켜왔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은 늑대와 함께 악어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한세연은 담담히 총을 들어 올렸다.
총구에 마기가 어리는가 싶더니, 폭음이 울려 퍼졌다.
퍼어엉──!
그녀를 집어삼킨 어둠이 산산조각 터져 나간다. 악어의 머리통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이게···”
포말처럼 무너져내리는 원령들을 보며 카터가 당황으로 굳어졌다.
원령이란 이형(異形)의 존재다. 당연히 마력이나 마기 따위의 기운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갖추었다.
그런데, 그런 원령들이 고작 총탄 따위에 갈려 나가고 있던 것이다.
“흐랴아앗─!”
그때, 그의 옆을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기다란 장창을 든 키 큰 마인. 네이슨이었다.
“멈춰!”
놀란 카터가 소리쳤으나, 네이슨은 이미 달려나간 뒤였다.
휘이이이익─!
벼락처럼 질러진 장창이 원령을 분쇄하기 바쁜 한세연의 미간을 노린다.
그러나 그 예리한 창날은 한세연의 미간에 닿지 못했다.
우득─ 꽈드득─
무언가 짓뭉개지는 섬뜩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커어어······”
네이슨의 몸이 어느새 지면에서 솟구친 어둠에 붙들려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창날의 끝이 한세연의 미간에 닿으려는 듯 아주 느릿하게 뻗어진다. 하지만 그보다 마탄이 쏘아지는 게 먼저였다.
퍼어엉─!
네이슨의 머리가 날아가고, 창이 지면을 나뒹굴었다.
한세연은 마치 수많은 원령 중 하나를 처리한 것처럼, 밀려드는 원령들을 정리해갔다.
순식간에 터지고 갈려 나가는 망령들. 200에 달하는 망령들을 정리하면서도 한세연은 제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터의 이마에서 비질땀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카터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얼음처럼 딱딱히 굳어져 있었다.
네이슨의 몸을 집어삼키던 어둠을 보며, 그녀에게서 느끼던 불길함의 정체를 깨달아버린 것이다.
“모르도······”
“······.”
원령을 모두 처리한 한세연의 무심한 시선이 카터에게로 돌아갔다.
그 검은 눈빛을 마주한 카터는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져 내렸다.
“모,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바닥에 머리를 박은 카터가 미친 듯이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쳐 드는 발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가까워져 오는 발걸음을 보며 카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때였다.
돌연 그를 향해 다가오던 걸음이 뚝 멎었다. 이윽고 걸음소리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
카터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소리가 사라지고도 한동안 그렇게 엎드려 있던 카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살았구나.”
한세연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카터가 나직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저기는······”
한세연이 사라진 갱도 너머를 보며 카터가 침음을 흘렸다.
***
······나는 기력을 두텁게 방사해 달려드는 검은 그림자를 막아섰다.
쿠우웅. 기력으로 충격을 완화했음에도 내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11자루의 비도가 검은 그림자를 난도질했다.
───!
찰나에 수십 번을 휘도는 비도의 폭풍은 검은 그림자를 문자 그대로 찢어발겼다.
하지만, 잘게 다져졌던 그림자는 다시 원래의 형태를 이루었다.
“흥, 소용없어. 이건 그런 것 가지고는 못 없애.”
검은 그림자의 뒤편에서 나를 비웃듯 말한 여자는 바로 ‘채유나’였다. 아카데미의 생도인 그 채유나가 맞다.
‘한울’의 경쟁업체에서 벌인 일인 줄 알았던 광산습격을 주도한 것이 뜻밖에도 채유나였던 것이다.
“금갑어의 내단을 넘겨. 그러면 멈출게.”
“그러니까 주고 싶어도 못 준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다 먹었거든.”
“그, 그걸 벌써 다 먹었단 말이야?”
“어, 그러니까 이거 멈춰.”
내가 달려드는 검은 그림자를 찢으며 말하자, 채유나가 순간 당혹어린 포정을 지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해? 멈추라니까.”
“모, 못 멈춰.”
“···뭐?”
“사실은 저거 포, 폭주했어.”
내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폭주?”
“응, 하루만 있다 가려 했는데······”
그러니까, 채유나의 말은 이랬다.
그저 약간의 심술로 광산을 하루만 점령하고 빠지려 했는데, 지금 내가 상대하는 이 녀석이 폭주를 해버려서 말을 듣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내단을 주면 멈춰주겠다는 이야기는 뭐야?”
“그, 그건 이왕 이렇게 된 거 내단이라도 얻을 수 있을 까봐서······”
내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거 진짜 막나가는 년이네.’
아무튼 당장 중요한 것은 채유나가 아니었기에, 내가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어어어······
난도질해놓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제 형상을 갖추는 녀석.
이놈은 채유나의 말처럼 그람의 단검으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잠깐 싸워본 바로는 마법이나 물리적인 공격에 내성을 갖춘 크루트였으니.
심지어, 그 공격성조차도 어지간한 마인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위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없애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야 그저 내 늘어난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잠깐 놀아 준 것에 불과했다.
스아아악─!
달려드는 녀석을 향해 내가 기력을 검처럼 휘둘렀다. 녀석의 팔이 여지없이 흩어져버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녀석의 팔은 재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피아의 기프트. 【분쇄자】였다.
“왜, 안 재생해서 이상하냐?”
제 사라진 오른팔을 만지작거리며 의아해하는 녀석을 향해 내가 피식 웃어보였다.
그런데 이런 내 도발이 먹히기라도 한 걸까. 고개를 숙인 녀석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되다만 인간의 외양을 한 놈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형상을 바꾸었다.
인간의 외양을 벗어나 흉물(凶物)이 되어버린 녀석에게서 수십의 촉수가 자라나 꿈틀거렸다. 그리고 폭사했다.
───────!
땅이 뒤집히고, 돌기둥이 무너지는 등, 온갖 것들이 파괴되었다.
갱도로 이어진 철도, 수레, 돌멩이······ 흉물은 그 전부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집어삼켰다. 평범했던 공동이 폐허로 변하는데는 한 순간이면 족했다.
다만, 그 폐허가 내게 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었다.
떨어져내리는 암석도, 지면의 뒤틀림도, 흉물의 폭거도······
그 어느것 하나 내게는 닿지 못했다.
그것들 스스로가 일부러 빗겨 가는 것만 같은 기묘한 광경.
녀석도 이를 깨달았는지 촉수가 빗발쳤으나 애꿎은 풍경만 갈려 나갔다.
그 어떤 붕괴도 이질을 깨지 못했고 나는 느긋하게 촉수의 비를 거닐었다.
신체 가속, 천리안.
모든 게 정체된 회색의 세상에서 천리안으로 바라보는 내게 녀석의 촉수는 그저 굼벵이처럼 느릿하게 뻗어지는 어린아이의 손길이나 다름 없었으니.
결국, 자신에게 다가가는 나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던 흉물이 취할 행동이라곤 하나뿐이었다.
콰앙─!
돌진.
노면이 과자처럼 부숴지며 흉물이 쏘아졌다. 그 진격은 예상외로 빨랐고,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는 듯한 위압이었으나, 또한 단조로웠다.
우웅─.
하나로 뭉쳐진 그람이 순백의 나신을 드러낸다. 동시에, 머리 위로 그늘이 졌다.
스아아악─
뻗어진 촉수가, 짐승의 사나운 송곳이 나를 노렸다. 그러나, 그 끝이 닿기에 나는 너무도 멀었다.
쿠웅─!
반으로 나뉜 흉물이 뒤편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재생되지 못했다.
참격.
흉물을 가른 그람의 나신에는 한점의 이물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아니, 허용되지 않았다.
검이 청결이라니. 피식 웃은 내가 공동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공동으로 들어서는 입구. 한세연이 걸어오고 있었다.
***
······한편, 블랙마켓의 4층의 어느 저택.
머리를 긁적이며 보고서를 훑던 이리나는 제 집무실로 들어오는 마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보름 전 마력석 광산을 지키라며 보냈던 마궁 전준호였다.
“응? 너는 왜 왔어.”
“불러들이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이리나가 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