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자요.”
자신에게 줄 것은 없다는 말에 짐짓 입술을 삐죽인 아멜리아가 손을 내민다.
“뭔데, 이건?”
그 손에 들린 노란 알갱이를 보며 내가 갸웃거렸다.
“금갑어의 내단에서 나온 사리에요. 길드에 보내서 가공시켰더니 나왔어요.”
사리란 내단 속에서 종종 발견되는 영약으로 ‘내단 속의 내단’이라 불린다.
이른 바 엑기스.
발견되는 경우도 적으나, 발견된다 하더라도 기술력이 없다면 얻을 수 없다.
추출해서 무슨 줄기세포처럼 배양관에 키워내야지만 나오는 것이었으니.
별의 성좌쯤 대는 대형길드니까 이런 것도 뽑아냈겠지.
그런데.
“이걸 왜 나 줘?”
“보나마나 그쪽은 그냥 먹었을 거잖아요.”
“······.”
뭐라 반박하고 싶었으나 아멜리아의 말이 맞았기에 할 말은 없었다. 저런 사리까지 생각한 적은 없으니. 뭐, 알았다 해도 그냥 먹었겠지만.
엑기스라곤 하나, 이런 쪼매난 거 한 알 가지고 그리 큰 효과는 없었으니.
“고맙다.”
“같이 잡았는데 저만 먹을 순 없어서 주는 거예요.”
“어, 그래.”
얘는 항상 줄 때마다 꼭 무슨 변명을 하듯 사족을 달아댄다.
그러면서도 콩 한 쪽이라도 함께 잡은 거면 나눠 먹으려 하는 점이 아이러니했지만.
양심이 찔리면 잠자리가 뒤숭숭해서 잠도 못 이루는 타입이랄까.
“뭐, 뭐예요?”
“가만 있어 봐.”
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니 화들짝 놀란 아멜리아가 주춤거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로 붙잡아 놓은 채, 하복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흠, 이 정도면 할 만하네.’
내 선각자의 눈에 아멜리아의 영혼에 새겨진 어떠한 술식의 회로가 보여왔다.
아멜리아에게는 전용 보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녀 자체가 이미 하나의 보구였다.
그녀는 사람을 ‘보구화’하기 위한 로마노가의 연구에 의해 영혼에 술식을 지닌 채 태어난 존재였으니.
영혼에 각인된 이 술식이 ‘보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술식의 구조는 마법적으로 풀이하자면 무척이나 복잡한 것이었기에 이를 ‘의식적’으로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멜리아가 위험에 처하면 터져 나오는 ‘방어기제’쯤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영혼’이 보이는 내게는 그 술식의 본질적인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것은 마법적으로 풀이한 것보다 훨씬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것이었다.
복잡한 계산이나 술식 따위가 필요없는 일종의 ‘회로’였다.
“니엘, 종이하고 펜 좀 가져와 봐.”
“네에~”
옆에서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땋아주며 놀고있던 니엘이 어딘가로 두두두- 달려간다.
그런데 얘넨 대체 뭘 하는 거야?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마치 인형이라도 되는 듯, 아나스타샤의 머리는 4갈레나 땋여져 있었다. 전부 니엘이 한 짓이다.
‘뭐, 귀엽긴 한데······’
문제는 리디아였다.
「세계의 마수독사전」이라는 두터운 사전을 펼쳐놓은 리디아는 아나스타샤에게 이상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니, 저건 이미 가르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테트로신은?”
“·········테트로신은 주로 크라켄과의 해양마수, 서펜트와 자라탄같은 친수성 생물이 가지고 있어.”
“마, 맞아!”
“·········독성은 청산가리의 30배에 달해. 몸무게 70kg의 하격 초인이 테트로신에 노출될 경우, 10초이내에 사망해.”
“어, 으, 응.”
“·········참고로 해독제는 없어. 빠른 이송과 응급처치가 매우 중요해.”
“······.”
책을 든 리디아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보아 본인도 모르는 지식을 문제랍시고 낸듯하다.
아니, 그럼 아나스타샤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우, 우와, 아나야. 너 진짜 똑똑하다.”
“·········별것 아니야.”
리디아의 칭찬에 아나스타샤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겉보기에는 순수한 아이들의 대화같으나, 그 주제라는 것이 마수독이라는 게 상당히 떨떠름했다.
그나저나 저 마수독 사전은 관련학과 교수들이나 참고용으로 보는 초고등 서적인데, 그걸 막힘없이 술술 말하다니. 아나가 생각보다 많이 똑똑한 듯하다. 주제가 마수독이라는 게 문제지만······
‘이거 좋아해야 하나?’
내가 약간의 고민에 빠져있자니, 니엘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있어요!”
“잘했어.”
“헤헤.”
리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내가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려 나가자 옆에서 지켜보던 아멜리아가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뭘 그리시는 거예요?”
“선물.”
“네?”
여전히 영문을 모른 채 갸웃거리는 아멜리아를 내버려 두고 나는 그녀의 영혼에 새겨진 술식을 본뜬 회로를 그려 나갔다.
***
······회로를 완성한 나는 아멜리아에게 내가 완성한 회로대로 마력을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아멜리아는 내가 이것을 왜 시키는지 의아해하했으나, 별다른 의심없이 회로대로 마력을 움직였다.
이윽고,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신기하네요, 마력이 활성화되고 있어요. 마력 수련법인가요?”
“어, 비슷해.”
아멜리아에게 이건 마력 수련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하복부에 새겨진 술식이 미약하나마 활성화되면서 마력이 더욱 원활히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조금 어렵네요.”
“그래도 꾸준히 해라.”
“예? 왜요?”
“하다 보면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갸웃거리던 아멜리아는 내 표정이 나름 진지해 보이자 흠칫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러면 해보죠. 뭐.”
이윽고 눈을 감고 회로대로 마력을 움직이는 아멜리아를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우리도 수련하러 가죠.”
“예, 해솔님.”
소피아가 내 뒤를 따랐다.
***
······기력이 늘어난 이후로, 내 능력의 활용도는 놀라울 만치 늘어났다.
대략 300m 거리에 있는 암벽을 향해 손을 슥 뻗자, 기둥처럼 두터운 기력이 번개처럼 뻗어나간다.
퍼억──!
망치로 못을 박듯 암벽에 구멍을 뚫으며 기력이 단단하게 박힌다.
속도, 위력, 강도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진보했다. 하물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타다다다닥─!
암벽을 향해 뻗어진 기력의 위를 소피아가 내달린다.
흰 반팔티에 짧은 청바지. 길게 뻗은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낸 소피아는 무척이나 탄력적이었다.
파앗, 팟─!
기력을 뻗을 때마다, 한 마리의 새처럼 곡예를 타는 소피아.
머리 위쪽으로 기력을 뻗으면 몸을 거꾸로 반전한 소피아가 기력을 박차며 지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그렇게 지면에 부딪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뻗어진 기력이 소피아를 튕겨 올린다.
호흡이 잘 들어맞는 것을 넘어서 서로를 완전히 신용해야지만 할 수 있는 곡예였다.
물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완벽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휘릭─
“앗!”
내가 사방으로 뻗은 기력을 비틀자, 자신 있게 나아가던 소피아가 균형을 잃곤 떨어진다.
무슨 거미줄에 휘감긴 것처럼 기력에 온몸이 엉겨버린 소피아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역시 변칙이 너무 심하면 소피아도 반응하기는 무리네.’
뭐,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조율하면 되었으니까.
“···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잘하셨는데요, 뭘.”
허공에 매달린 채 울상이 된 소피아를 내가 피식 웃으며 달랬다.
물론 마냥 달래기 위해서 꺼낸 말은 아니었다. 소피아의 신체 능력에는 정말 놀라고 있었으니까.
내가 머리로만 상상했던 거의 대부분의 연계기를 소피아와 함께라면 구현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내 속성을 감안했을 때 상대가 칠악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기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은근히 귀엽네.’
그토록 시원스럽고 멋지게 움직이는 소피아인데, 정작 기력에 묶여 울상을 짓고 있는 게 갭이 커서 그런지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큼.”
헛기침을 한 내가 얼른 기력을 거둬주었다.
“수고하셨어요.”
지면에 내려선 소피아가 다가오자 내가 수건을 건네주었다.
“해솔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저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뭘.”
소피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땀에 흠뻑 젖은 소피아와 달리,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것이다. 기력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그런데 수고했다는 말을 듣자니 살짝 양심이 찔렸다.
위이이잉──
그때,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번주 금요일 협회 어울림관, 손정호 의원 대마인 연설, 1학년 생도 전원 참여]
“······왔네.”
문자를 본 내 입가가 살짝올라갔다.
대마인 연설을 알리는 문자.
기다리던 메인 시나리오가 찾아왔다.
***
······한편 그 시각, 이리나의 저택.
이제는 한세연의 소소(?)한 계획을 위한 쉼터가 된 그곳에서 한세연 또한 아카데미에서 온 연설 문자를 받았다.
“···손정호 의원?”
한세연의 옆에 서서 문자를 힐끔거리던 이리나가 놀라 중얼거렸다.
한세연의 고개가 그녀에게 돌아가자 찔끔한 이리나가 대답했다.
“그냥 조금 알아. 조만간 배신을 당할 거라는 첩보가 있어서.”
“배신?”
한세연이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이리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인규제법을 만들려는 사람인데, 곧 배신당할 거야. 규제법을 통과시키는 희생양으로 지목되었거든. 이번 연설 때 희생시키려나 보네.”
이리나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모든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마인규제법’이란 초인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규제하는 법을 뜻한다.
거기에는 혼마력을 사용하는 ‘마경’을 비롯해, 초인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마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인 법이었기에 마인규제법은 통과가 되지를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협회의 원로원 진영에서 손정호를 희생양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손정호가 마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빌미로 동정여론을 몰아 규제법을 통과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자기네들이 죽이고 마인한테 뒤집어 씌우려는 수작이야.”
“잘 아네.”
“응. 원로원 쪽에 돈을 대준 사람이 있거든. 문제는 손정호만이 아니라 연설을 듣는 사람들까지 희생시키려는 것 같아. 그래야 파급력이 커지니까.”
말을 하던 이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생도들도 포함이네.”
그리고 그 아카데미 생도 중에는 한세연도 속해 있었다.
“······.”
뒤늦게 연설의 ‘희생양’에 한세연이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리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았다.
불과 며칠 전에 대형 사고를 한 번 쳤다가 죽다 살아난 그녀는 아직도 배가 불룩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데 한세연이 엮인 뉴스를 여태 전달하지 않은 것에 심장이 철렁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세연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조용히 차를 기울였다.
‘휴우.’
오늘은 다행히 그냥 넘어가려는 듯해 이리나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이리나.”
“으, 응?”
“차가 식었네.”
방긋 웃은 한세연이 찻잔을 내밀었다.
그 안에 어둠이 넘실거리는 것을 본 이리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