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하얀 구름이 물감처럼 퍼진 선선한 가을의 오후.
─설령 자신의 가족이 마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협회의 어울림관에서는 손정호의원의 대마인 연설이 한창이다.
─마기에 물들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여러분이 알고 있던 가족이 아닙니다.
이터니티의 1학년 생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중이 보는 가운데, 손정호의 열띤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진다.
“질문 있습니다! 가족이 마인이 되었다면, 치료의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손정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없습니다.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요.
“······와, 저 아저씨, 쌔게 나가네.”
껌을 씹던 은가예가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게 이곳에 초빙된 이들 중에는 가족이 마인이 되어버린 이들도 더러 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손정호의 발언은 너무도 극단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마인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했기에 손정호의 의견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해요?”
“개소리지.”
아멜리아가 묻는 말에 나는 더 물을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외네요. 해솔이라면 공감할 줄 알았는데.”
“마인이라고 해서 완전 글러 먹은 놈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
솔직히 나도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손정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터니티가 현실이 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암만 마기에 취하더라도 그 근본이 인간인 이상, 변하지 않는 점도 분명 있던 것이다.
언데몬이야 말할 것도 없고, 최아린이나 그의 부관인 이든만 봐도 내가 보기에는 어지간한 인간 쓰레기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손정호의 말들은 마인을 직접 마주해보지 못하고, 그림책으로 배운 이만이 내뱉을 수 있는 발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인이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마기를 지녔으면서도 성격이 좋은 애도 분명 존재했다.
“왜?”
“아니, 그냥.”
나도 모르게 한세연을 쳐다보았나 보다.
피식 웃은 한세연이 내 교복 넥타이를 고쳐 매주었다.
“···야.”
그 대담한 손짓에 내가 당황하고 있자니, 은가예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 부럽다. 부러워.”
“닥쳐.”
내가 노려보자 잽싸게 시선을 돌려버리는 은가예.
혀를 찬 나는 한세연을 보며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내 곤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긋 웃기만 하는 게 주위의 시선 따위는 전혀 의식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얘가 그런 걸 의식할 애였으면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이런 짓도 하지 않았겠지만.
어째 남들 보라고 일부러 한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들기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어. 너무 나간 것 같은 생각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자기 꺼라고 주위에 경고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한세연은 그렇게까지 계산적인 애가 아니었다.
─그러면 연설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강당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분을 위해 깜짝 게임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마인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준비한 게임이니, 아무쪼록 잘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손정호가 강단을 내려가자, 협회의 관계자가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알렸다.
“으아~ 졸려 죽겠네. 뭐야, 얘는 벌써 자네.”
공룡처럼 입을 쩍 벌리며 기지개를 펴던 은가예가 제 옆에서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 일레인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웃는다.
“하암- 저도 조금 졸리네요.”
아멜리아가 입가를 가리며 눈을 좁힌다.
연설이 어지간히도 지루했는지, 다들 반시체 모드였다.
나는 죽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는 일레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응, 다녀 와.”
한세연이 옅게 웃으며 배웅을 해주는 것을 뒤로하고 나는 강당을 빠져나왔다.
······강당의 화장실. 간단히 찬물로 세안을 마친 나는 건조기에 손을 말리며 입을 열었다.
“소피아, 들려요?”
─예, 해솔님. 들립니다.
“잘 들어오셨죠?”
─예, 물론입니다. 잠시만···
─꺄아! 곰곰이다!
─여기 같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
뭔가 상당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기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피아? 대체 뭘로 들어오신 거예요?”
─알바를 구해 들어왔습니다.
“알바요?”
─예. 아렌이 인형탈 알바가 잠입을 하기에 최적이라 하기에···
─곰곰! 불 뿜어봐!
─조금 있다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고생하세요.”
상당히 바빠 보였기에 나는 이어폰의 연결을 끊었다.
그녀는 현재 내 부탁으로 강연이 벌어지는 어울림관이 있는 협회의 지부에 잠입을 한 상황이었다.
지부는 관련자의 가족이거나 허가증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기에 일꾼으로 위장해 들어온 모양이었다.
유명인인 소피아가 본래의 모습으로 들어왔다간 이목을 끌게 될 터였으니.
‘그런데, 인형탈 알바라니.’
그것도 불곰이다.
소피아가 곰 탈을 쓰고 알바를 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것에 무지한 소피아를 놀리기 위해 아렌이 준비한 신분인 모양이다.
“······큼.”
혼자 실실거리고 있자니, 주변의 시선이 느껴져 내가 헛기침을 할 때였다.
티이이이이잉──
느닷없는 소음이 귓가를 먹먹하게 울리더니, 불이 나갔다.
“뭐, 뭐야?”
“정전인가?”
주위가 깜깜하게 암전되자 당황한 사람들이 웅성여댔다.
화장실뿐 아니라, 강연장 전체가 암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두웠던 불이 다시 들어왔다.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한 게임이니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뭐야. 게임이었어?”
“와 씨, 깜짝 놀랐네.”
천장에서 울리는 안내방송에 게임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술렁였다.
“흐아함~ 그런데,히끅. 뭔, 히끅, 게임이야?”
─몽마의 마기에 감염된 분은 이상반응을 보이니 주의해주십시오.
“어? 씨,히끅, 이거 왜 이래-히끅.”
말을 하지 못하고, 딸꾹질을 반복하는 생도를 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꺄하하, 뭐야. 저거.”
“저게 감염인가 본데?”
그때, 딸꾹질을 하던 생도가 하품을 길게 하더니, 스르륵- 기절하듯 허물어졌다.
“와, 리얼하다.”
“진짜 몽마 같은데?”
여전히 상황극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쓰러진 생도를 보며 웃거나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졸리다.”
“흐아함, 그러게.”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지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갔다.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 그렇게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러지자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거, 게임 맞아?”
“좀 이상해.”
─단순한 게임이니, 당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안내방송의 온순한 여성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맞아, 게임이지.”
“감염자만 피하면 돼.”
─침착해주세요. 단순- 히끅, 끄, 히끅, 히끅. 끄히히히히히.
“······.”
상냥한 목소리가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변하는 과정은 등골이 오싹한 광경이었다.
“꺄아아아악!”
“비켜!”
그게 시발점이라도 된 듯, 불안이 폭발한 사람들이 강연장의 밖으로 몰려 나갔다.
나는 밖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강연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밖으로 몰려가는 이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심지어는 생도들을 인솔해온 교수와 천우진조차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것이다.
저들은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물질계의 존재를 ‘꿈’으로 초대하는 것이야말로 ‘몽마(夢魔)’의 권능이었으니.
잠에 빠져든 이들은 자신들이 꿈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겠지만.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강연장의 한편에 마련된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뚜벅─ 뚜벅─
비상계단에 내 발걸음이 울려 퍼진다.
모두가 밖으로 향했기 때문인지, 비상계단은 한산하기만 했다.
그렇게 지하 4층으로 내려온 나는 상태창 메시지를 띄어보았다.
[몽마의 계약자로부터 강연장의 폭파를 막으세요!]
글귀의 아래로는 폭발물이 설치된 곳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건가 보네.”
강연장을 지탱하는 기둥에는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폭발물이 부착되어 있었다.
폭발물은 외부에서 손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지 보랏빛 물이 차오른 유리관 속에 잠겨 있었다.
척 봐도 나 ‘독액’이요 하는 듯한 흉험한 빛을 풍기고 있었기에 뒷목을 긁적이는데,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나는 곧장 아나스타샤를 소환했다.
“아나야. 이거 만져도 괜찮을까?”
“·········신경독. ·········생물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정령에게는 효과 없어.”
“···그러니?”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여 보인 아나스타샤는 총총 걸어가더니, 고사리 같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유리관을 매만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나스타샤한테는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행여나 독이 닿을 새랴, 멀찍이 떨어져서 아나스타샤가 유리관을 해체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빛을 레이저처럼 얇게 방사해 기둥에서 유리관을 조심히 분리해내는 모습에서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저런 것도 리디아가 가르친 건가?’
이제는 아나스타샤가 어느 계열의 정령인지 정체성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능숙한 손놀림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자니 유리관에서 폭발물을 꺼낸 아나스타샤가 미량의 독액마저 마력으로 말끔히 제거해 내게 건네주었다.
“·········여기.”
“어, 고맙다.”
얼떨결에 폭발물을 받아든 내가 피식 웃었다.
‘역시 우리 아나가 최고네.’
자, 그럼······
나는 폭발물을 내려다보았다.
복잡한 형식을 취한 폭발물이었기에 나는 이것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방식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이것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이상 해체방법따위야 알 필요가 없었으니까.
화아악──!
폭발물을 든 내 손에서 새하얀 항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
······폭발물을 무사히 제거한 나는 다시 강연장으로 올라왔다.
“휘유, 다 쓰러졌네.”
내려갔다 온지 고작 10분이 안 지났건만, 강연장에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몽마의 ‘꿈’ 속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아니, 단 한 명. 깨어나려 하는 사람은 보였다. 나는 의자에 곤히 기대누운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하복부 자리한 붉은 문양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를 지키는 방어기제가 활성화가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빨리 끝내야겠네.”
저게 활성화가 되면 그때는 정말 골치가 아파지니까.
“소피아, 들어오고 있죠?”
─예, 금방 가겠습니다.
소피아의 말과 함께 무언가 패는 소리와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뭐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연장 바깥에 방해꾼들이 있어서······
─우왓! 곰곰이 날았어!
아무래도 강연장 바깥에 몽마의 패거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뭐, 소피아가 알아서 하겠지.”
그보다 빨리 이 상황부터 해결해야겠다. 나는 근처에 널브러진 생도 한 명의 머리를 잡았다.
[몽마의 꿈에 진입을 시도합니다.]
[부동의 각인이 몽마의 결계를 넘어섭니다.]
······상태창의 메시지가 나열되며 내 정신이 몽마의 꿈속으로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