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마기에 물들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여러분이 알고 있던 가족이 아닙니다.
─질문 있습니다! 가족이 마인이 되었다면, 치료의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요?
─안타깝지만 없습니다.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요.
협회의 어울림관.
한 번 들었던 연설이 똑같이 이어진다.
“와, 저 아저씨, 쌔게 나가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해요?”
······모든 일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다만, 이를 자각한 이는 나밖에 없었다.
모두가 기억을 잃은 양, 지금의 상황에 아무런 의문점도 가지지 않았다.
정전과 기절, 그리고 이어진 대혼란은 없었다는 듯이.
당연했다.
그것이 몽마의 꿈이었으니.
“내가 알려준 마력 수련법 있지?”
“예, 그건 왜요?”
내 말을 받은 아멜리아가 갸웃거린다.
“그거 지금 해라.”
“?”
“그만 자고 빨리 일어나.”
“일어나라니, 무슨··· 뭐, 뭐해요?”
“야, 이해솔. 왜 일어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강단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그러니, 마인에 대한 인권은······
연설이 끊기고, 수백 쌍의 눈이 나를 향한다.
─거기, 무슨 일이시죠?
강연장이 술렁였지만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이어갔다.
─앉으세요.
뚜벅뚜벅─
─할 말이 있으면 자리로 돌아가 해주시길 바랍니다.
잔잔히 울리는 목소리가 족쇄가 되어 내 걸음을 제지해왔으나.
뚜벅뚜벅─
나는 태연히 강단을 향해 걸어갔다.
─무슨······
손정호. 아니, 몽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나는 이곳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녀석이 몽마라는 것을 알았다.
현실과 혼동되는 환경을 구축하고, 주변을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 둔갑하는 것. 그것이 몽마라는 족속이었으니.
“돌아가 앉아주십시오.”
“의원님이 연설 중입니다.”
건장한 요원들이 나를 저지하려는 듯 다가왔으나, 나는 그들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어? 이, 이게······”
“몸이 안움직여.”
제자리에 못처럼 박힌 이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멈추십시오.
뚜벅뚜벅─
─멈추라고 했습니다.
뚜벅뚜벅─
─내 말 안들려?
실시간으로 미쳐가는 사람처럼, 예의 바랐던 몽마의 목소리는 갈수록 거칠어지더니, 급기야 소름끼치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멈추라고오오오오오오오!
우르르르······!
지진이 난 것처럼 강연장이 뒤흔들린다.
─멈춰멈춰멈춰멈춰멈춰······!
폭풍이 몰아치고, 공간이 뒤틀리며, 예기가 사방을 난도질했다.
꿈의 폭주는 나를 파멸시키려는 듯 끊임없이 몰아쳤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공간에 시꺼먼 구멍이 뚫리고, 우박이 몰아치고······
괴멸적인 풍경이 연달아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걸음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뚜벅뚜벅─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태연히 강단의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오, 오지 마!”
두려움에 빠진 몽마와 나 사이의 공간이 무너져내린다.
꿈의 경계를 부숴버린 것이다.
완전한 공간의 분리.
이렇게 되면 녀석은 더 이상 꿈에 관여를 못하게 되나, 이쪽에서도 몽마에게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는.
뚜벅.
나는 태연히 무너진 공간으로 발을 디뎠다.
“하, 그건 넘고 싶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게······!”
순간, 몽마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어, 어떻게?”
“어떻게긴.”
무너진 공간을 넘어온 내가 싱겁게 말했다.
“걸어왔지.”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내게 몽마의 꿈은 통하지 않는다. 꿈의 분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몽마가 정한 것이지, 내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녀석에게는 꿈이 분리되었을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하나로 이어져 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컥!”
“말이 되니까 넘지. 새끼야.”
얼굴이 파랗게 질린 몽마가 켁켁거리며 바닥에 허물어진다.
녀석은 지금 숨을 못 쉬는 감각을 맛보고 있었다.
몽마의 폐부는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뜨거웠고, 피부는 혹한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이제 머리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나는 녀석의 ‘상상’을 거부할 수 있으나, 녀석은 내 상상을 거부할 수 없으니까.
그게 정신능력자 간의 격차라는 것이었다.
“······.”
이윽고, 몽마는 형체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다.
“쯧.”
녀석이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던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도망쳤네.”
몽마가 정신세계의 바깥으로 달아난 것을 알아차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나.”
몽마야 꿈에서나 힘 좀 쓰는 놈이지, 바깥에서는 별거 아닌 녀석이었으니까.
강연장에 혼란에 빠진 이들을 흘낏 돌아본 내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강연장의 천장이 나를 반겼다.
꿈이 아닌 현실의 강연장이었다.
모두가 기절해 있는 그곳에서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일어나고 있었다.
머리를 짚으며 비틀거리는 남자는 바로 몽마였다. 그러나, 몽마는 정신을 가눌 새도 없이 바로 몸을 굴려야 했다.
콰아앙──!
푸른 마력이 꽂히며 녀석이 있던 단상이 그대로 반파되었다.
“크아악!”
어깨가 한 움큼 날아가 버린 몽마가 비명을 질렀다.
“······.”
나는 마력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바로 옆.
금발을 찬란히 기른 여성이 흰 팔을 쭉 뻗은 채 서 있었다.
‘큰일인데.’
여자를 본 내 인상이 구겨졌다.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는 바로 ‘아멜리아’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멜리아이되, 아멜리아가 아니었다.
저것은 아멜리아의 인격이 아닌, 그녀가 지닌 ‘술식’의 인격이었으니까.
아멜리아가 위험에 처하자 술식의 인격이 깨어나 버린 것이다.
아멜리아가 기프트를 멀리하며 함께 봉인이 되어버렸던 인격이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아멜리아의 손에서 다시금 푸른 마력이 뻗어나왔다.
콰아앙─!
마력에 직격당한 단상의 남은 부분이 마저 무너져내렸다.
‘엄청나네.’
먼지조차 지워버리는 순수마력의 폭거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같은 순수마력이거늘, 아멜리아가 사용할 때와는 그 발현부터 발출까지의 속도와 위력이 천지차이였다.
“크으윽.”
이번에도 쥐새끼처럼 잘도 피한 몽마가 어깨를 움켜쥐며 일어났다.
그런 녀석은 무언가를 찾듯 품 안을 다급히 뒤적였다. 이어서 몽마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새빨간 마력석이었다.
마력석을 손에 쥔 녀석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사라졌다. 되려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 하핫! 다 죽어버려라, 망할 것들!”
나와 아멜리아를 보며 그리 소리친 몽마가 마력석에, 제 마기를 불어넣었다.
마기를 머금어 피처럼 붉어진 마력석이 요사한 빛을 흩뿌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
원하던 상황이 일어나지 않자 의아해진 몽마가 재차 마력석에 마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마력석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왜······”
그렇게 당황한 녀석이 애꿎은 마력석만 들고 씨름을 할 때였다.
“이거 찾냐?”
내가 품에서 꺼낸 물건을 본 몽마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그, 그게 왜 네놈 손에······!”
“내려갔는데, 있길래 해체했다.”
내가 몽마에게 보여준 것은 녀석이 지하에 설치해놓은 폭발물이었다.
녀석이 지닌 마력석은 이 폭발물과 연동되어, 발동 시 강연장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워프를 시켜주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항마력으로 내가 폭발물의 마력을 싹 지워버렸으니, 먹통이 되는 거야 당연했다.
우그극─!
기력에 뭉개진 폭발물이 바스라져 바닥에 떨어지자 몽마의 얼굴도 함께 새파래졌다.
이어서 아멜리아의 순수마력이 몽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하는데 도가 텄는지, 이번에도 바닥을 굴러 마력을 피한 몽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아······!”
그렇게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강연장에 난 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갈 때였다.
돌연, 창의 유리가 와장창 깨지며 누군가 날아들었다.
퍼어억──!
날아든 인영의 쭉 뻗은 발에 얼굴을 그대로 강타당한 몽마가 그대로 뒤로 두 바퀴를 구르며 쓰러졌다. 내가 창을 부수며 날아든 이를 바라보았다.
웬 거대한 갈색 곰 인형이었다.
그때, 곰 인형이 머리를 휙- 벗어 던지며 찬연한 은발이 드러났다.
옷에 끼인 은발을 시원하게 털어 보이는 미녀를 보며 내가 작게 웃어보였다.
“소피아, 오셨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깥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강연장 바깥에는 몽마가 쳐놓은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녀석이 아니면 들락거리지 못하는 결계를 소피아가 부수고 들어온 것이다.
“뭐, 다 끝났으니 괜찮아요.”
나는 소피아의 킥에 맞고 나가떨어진 몽마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혼절해버렸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의식이 날아간 몽마의 얼굴은 반쯤 뭉개져 있었고, 입에서는 피섞인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나저나.
‘저게 문제네.’
내가 옆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곳에는 아멜리아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몽마가 기절하자 상대를 잃은 그녀의 고개는 내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후.”
한숨을 내쉰 내가 아멜리아에게 걸어갔다.
‘그래도 효과는 있나보네.’
바로 마력을 쏘아댈 것만 같던 아멜리아는 몸을 미약하게 떨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아멜리아에게 가르쳐준 ‘술식의 제어법’이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금 아멜리아의 본 인격은 내가 말해준 것에 따라 꿈속에서 술식의 제어법을 계속해서 돌리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재빨리 아멜리아의 하복부에 손을 대곤 항마력을 일으켰다.
파직, 파지직──!
항마력에 반발하듯, 푸른 스파크가 일어났지만, 이내 잠잠해지며 기절한 아멜리아가 앞으로 넘어갔다.
쓰러지는 아멜리아를 받아든 내가 의자에 몸을 기대주었다.
띠링!
[몽마의 계약자로부터 강연장의 폭파를 막았습니다.]
[보상으로 3000SP가 지급됩니다.]
[기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가 독 이해력을 습득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에 따른 보상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마지막에 조금 이상한 문구가 하나 포함된 것 같기는 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끝났네.”
작게 숨을 내쉰 내가 몸을 돌렸다.
소피아가 곰 인형옷을 벗으려 등 뒤로 팔을 뻗은 채 낑낑대고 있었다.
그러나 인형 팔이 두꺼운 데다, 손가락조차 달려있지 않았기에 자크를 내리기엔 요원해 보였다.
“가만히 있어봐요.”
픽 웃은 내가 소피아의 등 뒤로 다가가 자크를 내려 주었다.
“후아, 고맙습니다.”
소피아가 살 것 같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늘에 가서 좀 쉬죠.”
흰 티가 속이 비칠 정도로 땀에 젖은 게 상당히 더워 보였기에 그리 권한 나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피아?”
“해솔님, 뒤에······”
“예?”
소피아를 따라 뒤를 돌아본 내 눈이 살짝 커졌다.
의자에 눕혀놓았던 아멜리아가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표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 일어난다고?”
항마력을 그리 듬뿍 먹였는데?
내가 바라보는 가운데, 시선이 마주친 아멜리아가 스르르-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복부를 건드렸더니, 방어기제가 아주 제대로 발동한 모양이다.
“······저거 잠잠해지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요?”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잠시 뒷목을 긁적이던 내가 말했다.
“일단 튀죠.”
“예.”
우리는 바깥에 세워놓은 바이크를 향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