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79화 (180/226)

§ 179화

다크우드가 우거진 마경의 한가운데. 한윤은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박사박······

풀을 밟는 소리에 한윤의 시선이 돌아갔다.

“제가 안 나왔으면 어쩌러고 이렇게 서 계십니까?”

“돌아가려던 생각입니다.”

한윤의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미련이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 눈에 비친 한윤의 영혼은 탐욕이란 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여기 왔다는 건 결정을 내렸다는 거군요.”

“말해두지만 가문을 바로 잡기 위해서입니다.”

“예, 압니다.”

한윤은 ‘반란’이라는 단어를 결코 입에 담지 않았다.

지금 나누는 대화가 반란을 도모하기 위함이란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반란으로 비추어지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겉치레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람을 죽일 때도 그에 합당한 이유를 붙이는 인물이 바로 한윤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한윤을 택한 것이기도 했다.

자신을 감추는 데 능한 인물일수록 일 처리 하나는 확실했으니. 그래도 짚고 넘어가기는 해야겠다.

“한주아씨는 어떻게 할 겁니까?”

“불쌍한 아이입니다.”

한주아는 바로 그의 조카이자 최근 가주인 한주상에게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여자였다.

영멸의 마인의 세력인 흑해를 한주상에게 소개시킨 원흉이기도 했다.

한윤은 그런 제 조카를 불쌍하다고 표현했다.

“불쌍하다는 말은······”

“나쁜 이들에게 속아 넘어갔을 뿐이지요. 분명 주아의 허영심을 자극했을 겁니다.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제 분수에 비해 욕심이 많았거든요.”

마치 한주아를 대변하는 듯한 말에 내가 물었다.

“용서해주시겠다는 겁니까?”

한윤이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죄값은 치러야겠지요.”

그러며 짐짓 안타깝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돌려 표현하긴 했으나, 한주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쓰레기네.’

그 위선자다운 면모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한윤의 말투나 행동을 보고 있자면 사탄도 울고 갈 지경이었으니까.

이런 인간이 세간에서는 현대판 협객이라 불리고 있었으니······

‘말세다. 말세야.’

내심 고개를 저은 나는 이윽고 한윤과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논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한윤이 정중히 인사를 하곤 마경을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괜찮겠어?”

“뭐가?”

“너네 집이잖아.”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한세연을 보며 내가 말했다.

한세연이 갸웃거린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에 대해 별다른 애착이 없어 보였다.

아니, 반응만 보자면 오히려 모르는 남이라고 보아도 좋을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나.’

한가에서 한세연을 대하던 취급을 생각하자면 이런 남을 대하는 듯한 반응이 오히려 낫다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마수지체를 타고난 한세연을 괴물이라 두려워하며 줄곧 격리를 해왔다고 하니.

유아기 이후론 스스로 마력을 억제해 마수를 불러들인 적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한세연에 대한 한가의 두려움은 필요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한세연이 자신의 가문을 남처럼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주칠 때마다 괴물이라며 거리를 두는 인간들을 가족이라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행여나 마음에 걸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해 다행이었다.

“배고프다. 들어가자.”

“응.”

***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늦은 오후.

협회의 대회의장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마경을 협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시기상조라니요, 현재 마수 퇴치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곳이 마경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반마인이었던 자들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협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음?”

지목당한 차시우가 뒤를 흘낏 돌아보자 소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경을 협회에 받아들일지를 논의 중이었습니다.

귓가로 소진의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협회장님?”

“···음, 미안하네. 저쪽에서 들어온다곤 하는가?”

“협회에서 권유하는데 당연히 들어와야지요.”

“설마 거절을 하겠습니까.”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쳐다보는 수뇌부.

그러니까 이 인간들은 지금 가입승인도 아니고, 권유를 가지고 이렇게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기에 차시우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알아서들 하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안건을 넘긴 차시우가 오늘 회의의 본론을 꺼냈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울림관 사건에 대해서나 말해보지.”

“······.”

“······.”

어울림관이라는 말이 나오자, 잘만 떠들어대던 의원들의 입이 꿀 먹은 병아리처럼 다물렸다.

‘하여간 밥통들이.’

차시우가 나직이 혀를 찼다.

물어뜯고 싸울 때는 언제고,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할 주제가 나오자 모두 시선을 피해버린다.

“소진.”

“예.”

앞으로 나선 소진이 차분히 안건을 이야기했다.

“저번 주 금요일. 어울림관에서 마인들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저희 협회에서는 이번 사건에 내부에서 동조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보고 있습니다.”

“내부자라니.”

“그런······”

침음을 흘리며 서로의 눈치롤 보기 바쁜 의원들.

조용히 그들의 반응을 확인하던 차시우가 맞은 편에 앉은 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유독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차시우가 노인을 불렀다.

“원주님.”

“뭔가?”

노인, 원로원주 한주상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울림관은 원로원이 주관하는 곳이지요?”

“그렇네.”

“그런데 범행의 증거들이 말끔히 없어졌다 하더군요. 맞나, 소진?”

“예. 영상 기록물, 잔류마력, 지문, 모두 말끔히 지워졌습니다.”

“테러범들의 소행이라고 자백을 받아냈네.”

“흐음, 그렇습니까.”

차시우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딱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어울림관에서의 사건은 너무나 깔끔했으니까.

내부자가 없는 이상, 협회의 보안이 이리도 쉽게 뚫리는 일은 드문 경우였다.

하물며 목격자가 1명도 없는 것 또한 사전에 누군가가 주변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뒤처리가 깔끔해도 너무 깔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원로원의 앞마당에서 벌어졌음에도 흐지부지 넘어간다는 것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한주상도 이를 알았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인가?”

“설마요. 원주께서 수색을 철저히 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고맙군.”

한주상은 불쾌하다는 기색을 여실히 풍기며 대답했다. 차시우도 그쯤에서 말을 끝냈다.

뒤처리가 다 끝난 마당에 들쑤셔봤자 빈집에서 먼지털이를 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회의는 이렇다 할 소득도 없이 지지부진 이어지다 끝이 났다.

회의장을 나서는 한주상을 가늘어진 눈으로 응시하던 차시우가 입을 열었다.

“한주상이 했을 가능성은?”

“백프로라 보고 있습니다.”

“짜증나게 하는군.”

머리를 벅벅 긁은 차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안 되겠어.”

그동안 차시우는 한주상이 어떤 행동을 하건, 잠자코 지켜보아 주었다.

그가 선을 넘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다 넘어가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옛 영웅인 ‘푸른 날개’의 일원이었던 한주상에 대한 ‘예우’였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 예우의 유통기한도 끝이 나버렸다.

초인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면서까지 지켜져야 할 예우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으니.

“물갈이를 할 때도 되었지.”

스마트폰을 꺼낸 차시우가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

······협회에서 회의가 있던 그날 밤. 한가장의 가주실.

“손녀가 데려온 놈이라 잠깐 상대를 해주었다만, 역시나 쓸모가 없군.”

한주상의 앞에는 그의 아들인 한윤과 두 남자가 서 있었다.

”네놈들이 일을 그르치는 바람에 회주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를 어찌 보상할 생각이지?”

“가주님. 그건 받은 정보가 상황과 달라서······”

“넌 입 닥치고 있거라!”

한주상이 버럭 소리치자 한윤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듣고만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나섰다.

“듣고 있자니 그냥 넘어갈 수 없겠군요. 원로원에서 내어준 정보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흥, 고작 곰인형 하나가 끼어들었다고 오류라는 말인가?”

“고작 곰인형이······”

남자가 반문하려 하자, 그의 사수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피해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보상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흠. 덜떨어진 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놈도 있군.”

사수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자 한주상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좋다, 중급 정령석 100개를 받는 것으로 용서해주도록 하지.”

“100개씩이나······”

“알겠습니다.”

불만스레 서 있던 남자가 경악했으나, 허리를 숙인 사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음에 드는군. 나가봐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한주상이 손을 내젓자, 두 사람이 가주실을 나섰다.

“에보레님, 어째서 저 늙은이한테 정령석을 주시려는 겁니까.”

불만을 품은 남자, 요나스는 제 사수의 행동이 영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저 늙은이에게 이런 수모를 받으면서까지 비위를 맞춰주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던 것이다.

거기다 정령석 100개라니.

그건 그들이 속한 단체에서도 쉽사리 구할 수가 없는 방대한 양이었다.

정령석은 정령을 유혹하는 돌로,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면 정령을 포박하는 것 또한 가능한 귀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나스의 불만에도 사수인 에보레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너는 저 늙은이가 누구라 생각하지?”

“한가의 가주 아닙니까.”

“그 한가의 가주는 우리 정도는 가볍게 눌러 죽일 수 있는 괴물이다.”

“그럴 리가···”

요나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느끼기에 한주상은 과거의 영광에 젖어 사는 늙은이에 불과했다.

느껴지는 마력조차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하로밖에 보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설마······’

일부러 마력을 숨기고 있다고?

한주상을 제거하려던 마음까지 먹었던 요나스의 턱 끝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빨이 빠졌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

에보레의 경고에 요나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을 때였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한윤.”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조금 전 한주상에게 질책을 받았던 한윤이었다.

그가 에보레와 요나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결례를 범했군요. 가주님이 최근 일이 많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우십니다.”

“그래도 그렇지, 중급 정령석 100개는 너무하다 생각하지 않나?”

“죄송합니다.”

요나스의 투덜거림에 한윤이 고개를 숙이자, 에보레가 나직이 물었다.

“손정호의원을 죽이는데 실패했더군.”

“변수가 있었습니다.”

“싸우는 법도 모르는 의원을 고작 변수가 있었다고 놓쳤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제 욕을 함에도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우지 않는 한윤을 보며, 에보레가 인상을 찌푸려보였다.

“신경 푸시지요, 제가 약소하나마 두 분을 위해 작은 접대 자리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순간, 에보레는 물론, 요나스의 눈까지 반짝였다.

한윤은 ‘작은 접대 자리’라고 했으나,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대접을 해주는 한윤이니만큼, 결코 작은 접대일 리가 없던 것이다.

“그럼 가실까요?”

작게 웃은 한윤이 앞장서자, 두 사람이 마지못해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세 사람을 태운 벤츠가 한가장을 벗어났다.

***

“···저기 한윤.”

“예, 왜 그러십니까, 요나스님.”

“이거, 어디로 가지?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군.”

요나스가 창밖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접대를 받는다는 들뜬 마음에 눈치채는 게 조금 늦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외진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다 왔다니?”

그들이 있는 곳은 숲길의 한복판이었다.

‘대체 여기의 어디에 접대 장소가 있단 말이지?’

요나스와 에보레가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끼이익──

달리던 벤츠가 멈추더니, 앞좌석의 운전수가 입을 열었다.

“내려, 새끼들아.”

“···뭐?”

요나스가 반문한 순간, 차창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크르르······

바깥에 내려선 검은 용을 본 요나스와 에보레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뭐 해, 접대받아야지.”

그리 말하며 뒤를 돌아보는 운전수는 바로 이해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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