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어째서 흑요가 여기에······!”
들판에 내려선 검은 용의 정체를 알아차린 요나스와 에보레가 경악한다.
달칵─
차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차에서 내린 한윤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한윤! 너 이 새끼!”
함정임을 깨달은 요나스가 죽일 듯이 노려보자 한윤이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접대를 준비했는데 마음에 안 드시나 보군요.”
“그걸 말이라고······!”
“요나스, 이리와라!”
그때, 차량에서 내린 에보레의 품에서 나온 마력석이 푸른 빛을 발했다.
그것이 워프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내가 손을 들어올렸다.
“모처럼 준비했는데 갑자기 가버리면 곤란하지.”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온 항마력이 워프석을 훑고 지나갔다.
“이런!”
순식간에 빛을 잃은 워프석을 보며 에보레가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다.
“크르르르······”
흑요의 으르렁거림에 요나스와 에보레의 얼굴이 흑빛으로 굳어졌다.
운전석에서 내린 내가 그런 둘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휘익─
흑요의 등 위에서 누군가 내 옆으로 날아내렸다.
“왔어?”
“응.”
고개를 끄덕여 보인 사람은 내가 마경에서 호출한 한세연이었다. 흑요로 누군가 좀 이리로 데려와달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내게 다가오던 한세연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몸 좋아졌네.”
“그런가?”
“응, 좋아졌어.”
내가 짐짓 모른 척 되묻자 한세연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금갑어의 내단으로 진액을 만들어 먹으며 소피아의 단련을 소화했더니, 내 빈약하던 몸에도 점차 근육이 붙고 있었다.
옷의 핏이 좋아져서 나름 만족 중이었는데, 한세연이 이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그렇게 약간 으쓱해진 마음에 살짝 웃고 있을 때였다.
내게 다가오던 한세연의 옆으로 얼음 송곳이 다발로 날아들었다.
흑요의 주인이 한세연이라는 것을 알아본 에보레가 불시에 그녀를 기습한 것이다.
“위험-”
놀란 나는 소리를 치려다 말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퍼버버버벙─!
시선과 걸음은 여전히 내게로 향한 채로 얼음 다발이 날아드는 곳으로 총을 쥔 팔만 쭉 뻗은 한세연이 그것들을 모조리 격추해버린 것이다.
‘노룩 샷’이었다.
“······.”
백발백중.
모조리 사라진 얼음조각들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진짜 사기네.’
아무리 천리안의 인지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미친 수준이었다.
인지하는 것과 별개로 저것을 모두 격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한세연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
옆에 눈이라도 달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구경만 한 내가 이 정도였으니, 당사자인 에보레의 반응은 아주 가관이었다.
마법을 쓰던 자세 그대로 입을 벌린 채 굳어져 있던 에보레는 날아드는 흑요의 발에 뒤통수를 얻어맞곤 기절해버렸다.
철푸덕─.
“·········.”
할 말을 잃은 내가 쓰러진 에보레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세연이 다가왔다.
“저녁은 먹었어?”
“···어? 아니. 아직.”
저쪽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한세연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그럼 먹으러 갈까?”
“그래, 그러자.”
뭔가 주제가 바뀐 듯싶었지만, 이미 다 처리되어버렸기에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배도 출출하던 차였으니.
“잠깐 기다려.”
물론 그 전에 처리할 일이 몇 가지 남아있었기에 나는 쓰러진 에보레에게 다가갔다.
“지지, 먹을 거 아니야. 입 치워.”
“크르르······”
주둥이를 들이대는 흑요의 콧등을 손으로 툭툭 때려서 치운 내가 에레스의 영핵을 밟아 부쉈다.
홀로 남아있던 요나스는 어느새 소피아에 의해 제압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내가 오기만을 줄곧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차를 몰고 오시는 거라면 저한테 맡기셔도 됐는데···”
“소피아도 좀 쉬어야죠. 많이 피곤할 텐데.”
한가장은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후미진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근의 워프게이트도 한가장의 소유였기에 사용했다간 기록이 남을 수 있어 소피아와 나는 마경에서부터 이곳까지 바이크를 타고 왔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때문에 소피아에게 운전을 맡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맡기기 불안하니까 안 맡겼지.’
평지에서도 풍파를 일으키는 소피아의 운전실력이야 내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바이크에서 차로 바뀐다 해서 그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신기한 건 저러면서도 사고 한 번 나지 않는단 말이지.
정확하게는 사고가 안 난다기보단, 혼마력으로 사고를 씹어먹는다고 봐야 했지만······
그런 점에서 보면 소피아는 효율성만으로는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한편 이런 내 평가를 모르는 소피아는 내가 자신을 생각해줬다고 여겼는지,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다음부터는 말씀만 해주시면 뭐든 몰아오겠습니다.”
“···바이크로 충분해요, 소피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소피아가 방긋 웃어 보였다.
···뭘 알겠다는 거지?
까닭 모를 불안함을 느끼는 그때, 흑요의 위에서 한 남자가 내려섰다.
마경에서 마인들의 은거지를 관리하다, 내게 붙잡혀 은가예의 대련 상대를 해주고 있는 십혈의 마인, ‘액터’였다.
“액터.”
“예, 마경주님.”
“변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내가 에보레를 가리키며 묻자 액터의 몸이 찰흙처럼 뭉개지더니, 이내 에보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액터의 기프트, [도플갱어]의 능력이었다.
누가 진짜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감쪽같은 변화에 내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감사합니다.”
액터가 깍듯이 머리를 숙여왔다.
처음에는 목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순응하던 액터였지만, 지금 액터의 태도는 굉장히 충성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액터가 내게 붙기로 마음을 먹은 탓도 있지만, 이렇게 나오도록 내가 먹이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 컸다.
“받아.”
휘익. 내가 던진 하얀색 단약을 액터가 받아들었다. 액터는 이를 마치 신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것은 요즘 일레인이 몸에 달고 사는 ‘신체 회복 단약’이었다.
신체 회복단약은 초인에게는 피로를 가시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게 마인에게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작용을 한다.
본디 마인이란, 마력을 취하지 못하면 마기에 이성이 서서히 잠식되다 이지를 잃은 괴물로 전락을 하는 존재다.
설령 마력을 취한다 해도 마기에 물들어 공격적으로 변한 이성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신체회복 단약을 취하면, 마기에 찌들었던 이성이 정화가 되었던 것이다.
액터가 저리 안달인 걸 보면 이게 마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시원함을 선사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단약을 챙긴 액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뭐.”
“그, 한 알만 더 주시면······”
“소피아, 얘네 좀 차에 옮겨주세요.”
“알겠습니다.”
액터의 말을 시원하게 무시한 내가 한윤을 돌아보았다.
그는 아까부터 멍한 표정으로 한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윤에게 있어서 한세연은 조카에 해당하는 아이였으니.
물론 핏줄이 그렇다는 거지, 두 사람 사이에 별다른 접점은 없었다. 한세연은 유년기 이후로 줄곧 격리된 채로 지내왔으니까.
“한윤씨.”
“예, 마경주.”
“언제가 좋을까요.”
내가 말하는 ‘언제’란 한주상을 가주위에 몰아내기 좋은 ‘적기’를 말함이었다. 한윤도 이를 바로 알아들었다.
“보름 뒤에 가문의 모든 이들이 모이는 연회가 열릴 겁니다.”
“연회라, 좋네요.”
고개를 끄덕인 내가 의견을 더했다.
“이참에 거기에 이놈들도 초대하죠.”
내가 기절한 에보레를 발로 툭 치자 한윤의 눈이 커졌다.
“······마인들을 말입니까?”
“성대한 연회를 만들어보자고요.”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
······가을의 단풍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의 하순.
한가장의 본관에는 이른 오전부터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본격적인 연회가 열리는 건 오후 6시부터에요. 그전까지는 자유시간이죠.”
“너 여기 와봤나 보다?”
“예전에 한 번이요.”
아멜리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한세연, 소피아. 그리고 아멜리아까지 이렇게 4명은 한가장에 들어와 있었다.
한세연의 손님이라는 명목이었다.
“있다 봐.”
“어.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응.”
작게 웃어 보인 한세연이 등을 돌린다.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인 한윤이 그 뒤를 따랐다.
한가장의 직계는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참여를 하지 못한다는 규율이 있던 것이다.
한세연이 격리되어 자란 처지라곤 하지만, 그 규율은 따라야 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겉치레 하나는 끝내주게 신경 쓰는 가문이었다
고개를 내저은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움직이죠.”
나와 소피아, 아멜리아는 한가장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구경했다.
내부에는 먹거리, 다트,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이벤트가 즐비해 있었다.
오늘의 연회에 한가장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해솔님, 저것 한 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야외를 걷던 도중, 소피아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눈을 반짝였다.
그것이 망치를 때려 점수를 내는 게임인 것을 확인한 내가 피식 웃었다.
“예, 한 번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저것은 단순한 망치게임하고는 달랐다.
3천점을 넘기면 배팅한 금액의 2배를 돌려주는 놀음이었으니.
‘최대 3억까지 배팅이라니.’
하여간 이 동네의 돈 액수는 단위부터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하, 아까웠습니다.”
“으,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소피아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첫 시도에 3천점에 근접한 2860점이 나온 것이다.
그렇게 연거푸 세차례나 3천점을 넘기는데 실패한 소피아가 입술을 삐죽이자 기계의 주인이 웃으며 제안을 해왔다.
“마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예, 대신 점수는 5천점으로 올리지요.”
그리 말하는 주인은 모처럼만에 만난 호구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소피아는 판당 3천만원씩, 벌써 9천만원이나 꼴아박고 있었으니.
통이 큰 걸 넘어서 금전 감각을 아예 상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주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통이 컸다.
“3억을 베팅하겠습니다.”
“사, 삼억을 말입니까?”
“어렵습니까?”
“아,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주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여태까지의 실패는 소피아의 힘이 약해서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이 기계는 애초에 해당 점수를 넘기려면 그 4배에 달하는 힘을 사용해야 하는 기계였으니까.
어깨를 푼 소피아가 망치를 부웅부웅- 돌리는 것을 보며 주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큭, 이건 2만점 이상이 떠야······’
까아아아아아아아앙──!
“어-엇?!”
순간 요란한 소리가 나며 7천점까지 치솟는 계기판에 주인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뭐, 뭘 어떻게 치면······!”
“음, 역시 낮습니까?”
생각보다 저조한 점수에 소피아가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최대 1만점까지 표기되는 계기판에서 고작 7천점 밖에 나오지를 않았으니까.
“그게 아니에요, 소피아.”
지켜보던 내가 혀를 차며 끼어들자, 주인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망치를 너무 함부로 다뤄서 그래요. 이 망치 한 번 쓰고 말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망치를 너무······ 응? 망치?
“그런 겁니까?”
“예, 다음 사람들도 써야죠.”
···지금 망치가 대수인가?
두 사람의 대화에 얼이 나가 있는 주인에게 소피아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망치를 휘어트려 죄송합니다.”
“···아, 예.”
***
“연회에 들어온 마인의 수는 총 50명입니다. 상격마인 둘에, 중급마인 스물, 하급마인 스물여덟 명입니다.”
“많이도 왔네.”
마인들 사이에 잠입한 액터의 보고에 내가 픽 웃었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의 마인을 사냥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후 6시가 되자, 사람들이 가득 찬 본관의 거대한 홀로 한가의 직계혈족이 속속들이 들어섰다.
그들이 들어설 때마다,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입장을 알렸다.
가주인 한주상, 그 손녀 한주아, 한문수 한윤 등······
그렇게 모든 직계가 다 들어섰을 때.
─한세연양과 일행 분이 입장하십니다.
“음?”
“한세연이라면······”
뜻밖의 이름이 호명되자, 연회장의 이들이 웅성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홀의 입구로 향했다.
그 열려진 입구를 통해 나와 한세연이 나란히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