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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81화 (182/226)

§ 181화

······붉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한세연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담긴 것은 ‘의아함’이었다.

그도 그럴 게 연회장에 모인 이들이 한세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수지체’는 직계혈족만이 아는 한가의 가장 어두운 일면이었던 것이다.

한가장에는 예로부터 마수지체를 타고난 이들이 드물게 나타났으며, 그들은 모두 ‘격리’를 당해 외부로부터 존재가 지워졌다.

마수를 끌어들이는 저주받은 아이를 사람들에게 내보였다가는 한가는 그날부로 악마의 핏줄로 낙인이 찍혀버릴 터였으니까.

죽이는 것이 가장 쉽겠으나, 체면을 중시하는 한가에서는 자신들의 치부를 아예 외면해버리는 쪽을 택했다.

죽이는 것은 그 치부를 인정하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물론, 한세연의 경우는 마수지체중에서도 특이케이스에 속했다.

그녀는 유아기 이후로는 전혀 마수를 끌어들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쉬쉬되기만 할 뿐, 완전한 격리를 당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데 누구지?

─직계라고? 한주아 말고 없지 않았나?

웅성이는 소리들을 들으며 가주인 한주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내 장손녀네. 공식적인 행사에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다들 본 적이 없겠군. 잘 좀 부탁하네.”

웃으며 그리 말한 한주상이 자리에 앉아 보였다.

─원주님에게 저런 손녀가 있을 줄이야.

─엄청 예쁘시다.

─방금 나 보면서 웃은 거 같은데?

연회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협회 원로원주의 장손녀라는 타이틀에, 눈이 번쩍 뜨이는 미인인 한세연은 화제를 일으키기에 차고 넘쳤으니까.

그런데 웃으며 한세연을 장손녀라 소개했던 한주상은 이 같은 분위기에도 표정이 좋지가 못했다.

한세연이 자신의 손녀임이 공개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로서는 썩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크흠.”

한주상은 언짢게 기침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한세연은 여지껏 가문의 어떠한 행사에도 자발적으로 참여를 한 적이 없던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 한주상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세연의 등장에 모두가 놀란 가운데, 유독 한윤만은 표정이 담담했다.

“네가 데려왔느냐.”

“예. 저 아이도 이제 곧 성인인데, 언제까지 감춰두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혀를 찬 한주상은 자신에게 오는 연회객들을 보며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한세연은 연회장 모든 이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터니티의 생도라니, 정말 대단하군요.”

“역시 가주님의 손녀분은 어딘가 다르네요.”

관심을 표해오는 사람들을 한세연은 사근사근 웃으며 일일이 받아주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며 공감을 해주는 것은 한세연의 주특기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원래 미인이 성격까지 좋으면 그걸로 끝인 법인데 심지어 한세연은 이터니티의 생도이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세연에 대한 관심은 자연 나에게까지 옮겨왔다.

“이터니티 생도분이시죠?”

“저 더 월드 헤드라인에서 봤어요!”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에 나는 그저 단답으로만 대답을 하며 한세연을 흘낏 보았다.

이런 걸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웃어주는 걸 보고 있자니, 새삼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머, 한세연 아니야? 오랜만이네.”

그때, 인파를 가르며, 한세연에게 접근하는 이가 있었다.

당찬 걸음에 눈꼬리가 올라간 여자는 바로 한주상의 손녀인 한주아였다. 그리고 사적으로는 한세연의 ‘이복동생’이었다.

***

‘이건 말도 안 돼!’

한주아는 한세연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자존심이 드높은 그녀로서는 고작 격리자 따위가 자신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원래 자신에게 갔어야 할 관심과 칭찬을 느닷없이 튀어나온 한세연이 모두 빼앗아 가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한세연이 대동해온 이터니티의 생도는 한주아의 그런 마음에 더욱 불을 질러놓았다.

불과 며칠 전 이터니티의 예비시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온 한주아였기에 그 모든 것들이 다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주제도 모르는 괴물 년이.’

사실 한주아가 한세연을 본 것은 몇 번 없었다. 그것도 제대로 본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단 한 번의 만남이 한주아에게 는 절대 지울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었다.

어릴 적 취미를 붙였던 사격. 그 사격장에서 한주아는 소질이 뛰어나다며 주변의 온갖 칭찬을 다 받고 자라왔다.

그런데 총을 한 번도 쥐어본 적 없는 여자아이가 들어오더니, 첫 사격에서 그녀가 맞히지 못한 표적들을 전부 명중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때 한주아는 제 선생이 짓고 있던 황홀한 표정을 잊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단 한 번도 지어 보인 적이 없는 표정이었으니까.

엄청난 재능의 격차에 절망한 한주아는 그날부로 총을 놓아버렸다.

첫 만남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한주아는 지금의 분위기를 바꿔놓기로 결심했다.

집안에서 외면받는 신세라는 걸 주변에 까발리면 한세연에게 향하는 관심도 싹 식어버릴 것이리라.

‘분수도 모르는 년.’

한주아가 입매를 비틀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어머, 한세연 아니야? 오랜만이네.”

“······.”

어째서인지 그녀의 인사를 받은 한세연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던 것이다.

왜 이러지? 의아함에 한주아가 눈을 깜박이는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세연이 고개를 모로 기울여 보였다.

그리고 나오는 말.

“미안, 누구였더라?”

“······.”

뜻밖의 대답에 당황한 한주아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얼어버렸다.

“나, 나 몰라?”

“응, 미안. 기억이 안 나네.”

어버버 거리며 되묻자, 한세연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냉정히 생각해보자면 유년기를 격리된 채로 보내온 한세연이 한주아를 못 알아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서로 본 적도 몇 번 없는 데다, 재능을 인정받은 한세연은 중등부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왔으니.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한주아가 받는 굴욕이 너무나 컸다.

─뭐야, 모르는 사이였어?

─응,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아는 척이야?

주변의 수군거림에 한주아가 입술을 악물었다.

그때, 우연찮게 한세연과 시선이 마주친 한주아의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다.

‘이 년, 설마 이거 일부러······’

그것은 모르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이 역으로 당한 것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한주아의 표정이 볼썽사납게 구겨졌다.

‘가만두지 않겠어.’

이를 까득 갈던 한주아의 시선에 쟁반에 와인잔을 받치고 지나가는 웨이터가 포착되었다.

‘창피나 좀 먹어봐라.’

비릿하게 웃은 한주아가 웨이터가 지나가는 경로에 은밀하게 마력을 이동시켰다.

“어, 엇?!”

마력에 발이 걸린 웨이터가 고꾸라지며 쟁반이 쏟아진다. 와인잔이 한세연의 방향으로 기울었다.

츄아악─!

“꺄아악!”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일어난 웨이터가 한주아에게 고개를 미친 듯이 숙여 보였다.

하지만 한주아는 그런 웨이터의 사과를 받아들일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된거지?’

졸지에 머리에 와인을 뒤집어 쓴 한주아는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분명 와인잔이 한세연의 방향으로 기울었건만, 자신에게 와인이 쏟아져버린 것이다.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한주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또옥또옥─.

턱선을 타고 레드와인이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그런 한주아의 앞으로 하얀 손수건이 내밀어졌다.

“괜찮아?”

“이, 이······”

손수건을 내민 상대가 한세연임을 확인한 한주아가 손수건을 짝! 소리나게 쳐냈다.

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일었으나, 머리가 하얘진 한주아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상당히 크게 났던 탓에 내가 다가오자 씩씩거리던 한주아가 버럭 소리쳤다.

“그쪽, 이 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어요? 알면 곁에 못 있을걸요?”

그녀가 한세연을 삿대질했다.

“이 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갑작스럽게 실종당해서 사람도 못 만나고 스스로 갇혀 지내던 여자에요. 가문에서 쉬쉬거려서 알려지지도 않은 거고요.”

한주아의 폭로에 사람들이 설마 하는 눈초리로 한세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표정이 가라앉은 한세연에게서는 아무런 반박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거봐요, 아무 말도 못하잖아요.”

신난 한주아가 입을 재잘거리자 사람들이 흠칫거리며 한세연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에 한주아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일 때였다.

“오히려 좋은데?”

“······예? 조, 좋다고요?”

내 대답에 한주아가 떠듬거리며 되묻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좋아.”

“어, 어째서죠?”

“사람들을 피했다는 건 스스로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했다는 거잖아.”

“······.”

“그리고 난 지금 멀쩡한데?”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한세연마저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내가 갸웃거렸다.

“이상한가?”

“···풋, 아니.”

작게 웃음을 터트린 한세연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

······한편, 한주아가 일으킨 소동은 가주인 한주상의 눈에도 들어왔다.

“끄응.”

한세연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한주아의 행동에 한주상은 골치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한세연과 연류된 사건은 한가장의 치부를 들추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짐짓 그 치부가 심각하게 비화될 수도 있는 것을 한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었다.

“한윤, 저 아이는 누구냐?”

“세연이의 동창입니다.”

“특이사항은?”

“이터니티의 수석생도라 하더군요. 연줄이나 가문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호오, 그래? 나쁘지 않군. 일단 주아는 내보내도록 해라.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입단속 철저히 시키고.”

“알겠습니다.”

이해솔을 보며 턱을 쓰다듬던 한주상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짝! 박수를 쳐 이목을 모은 한주상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하하, 즐겁자고 모인 연회에 잠깐 소란이 있었군요. 과거의 실종사건은 세연이와는 연관이 없다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주아가 다소 흥분해서 나온 소리인 듯하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뭐야, 아니었어?

─어쩐지, 그럴 리가 없지.

한주아가 사실이 아닌 말을 떠벌린 것이란 걸 알게 된 사람들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한주아가 억울한 표정으로 반박을 하려 했지만, 경호원들에게 붙들려 퇴장당했다.

“막내야.”

“예, 아버님.”

한주상의 셋째 아들, 한문수가 대답했다.

“흑해와 자리를 마련해라. 받기로 한 정령석도 아직 못 받았으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이해솔이라 했던가? 저 아이도 내가 따로 보잔다고 전해라.”

한세연과 함께 정원으로 나가는 이해솔의 뒷모습을 한주상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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