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한주상은 신출귀몰하게 연회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초인들이 줄지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가 제아무리 날고 기는 고수라고 해도 그의 몸은 하나였고, 적은 넘쳐 났다.
손수 정리하자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한주상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가장의 결계로 통신은 막아 놓았으나, 당장 누구 하나라도 연회장을 빠져나가 바깥에 이곳의 상황을 알렸다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는 것이다.
상황을 빠르게 끝낼 필요성이 있었다.
“쯧, 어쩔 수 없나.”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찬 한주상이 품에서 다채로운 색의 구슬을 꺼내들었다.
정령석이었다. 그것도 한주상이 그동안 모아온 모든 정령석과 연동이 되어있는 녀석이었다.
그때, 멈춰 선 한주상을 향해 소피아가 달려들었다. 날 선 대검이 한주상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 찍어왔다.
한주상은 그에 아랑곳없이 정령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마력을 머금은 정령석이 찬연한 빛을 내뿜었다.
“웃!”
돌연 치닫는 마력풍에 소피아가 뒤로 밀려났다.
마력풍이 한바탕 연회장을 휩쓸고 지나가자, 곳곳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뭐, 뭐야?”
“정령의 길? 이렇게나 많다고?”
사방에서 나타나는 시꺼먼 균열. 그것은 정령이 드나드는 통로인 ‘정령의 길’이었다.
그 정령의 길을 통해 무수한 정령들이 나타났다.
입자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다채로운 불빛의 향연이 사람들을 홀렸다.
그리고,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한 이들을 향해 정령들이 쏟아져 내렸다.
“헛!”
“크악!”
달려드는 정령들로 인해 연회장에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정령과 사람이 뒤섞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연회장.
그곳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이는 한주상이었다. 이 정령들은 모두 그가 불러낸 소환체들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한주상이 정령사라는 것은 아니었다.
한주상의 정령에 대한 이해도는 바닥이었으며, 친화력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 한주상이 이렇게나 많은 정령들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모두 그가 지금 손에 지니고 있는 ‘정령석’에 기인했다.
정령석이란, 정령의 힘을 상승시켜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령의 자유를 구속하는 새장이 되기도 했으니.
그가 소유한 정령석은 모두 저마다 정령을 속박하고 있었다.
그 정령석들이 연동된 매개체가 바로 지금 한주상의 손에 쥐어진 녀석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령들을 속박했다고 해도 이렇게나 많은 정령들을 한꺼번에 부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방대한 마력이 필요하다.
지금 한주상이 지닌 마력의 대부분은 정령들을 소환하는 대가로 소모된 상태였다.
한주상의 눈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빠르게 연회장을 훑었다.
흡주력은 마력의 성질이 맞지 않으면 자연스레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한주상이 마력을 흡수하는 이는 거부반응이 적게 나타나는 이들이었다.
완전히 동일한 마력이 아닌 이상 조금씩의 거부반응은 감수해야 했으니······.
그런데.
“음?”
주위를 둘러보던 한주상의 눈이 커졌다.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이가 보였다.
정령들의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을 아무렇지 않게 가로질러 오는 이.
마치 정령들이 피해 가듯 그는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저것은 피해 간다기보다는······
‘같은 정령을 대하는 것 같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한주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경주, 이해솔을 주시했다.
주변의 난동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질적인 평온함.
하지만 이해솔이 한주상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부반응이 없군.’
이해솔에게서 한주상은 신기하리 만치 아무런 거부반응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좀 더 신중하게 확인을 해보았겠으나, 대량의 마력을 소모한 뒤인 한주상에게 이해솔은 좋은 먹잇감으로 비추어졌다.
그때, 눈이 마주친 이해솔이 불현듯 손을 휘저었다.
순간 위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유동.
무언가 날아듬을 직감한 한주상이 몸을 뒤로 물렸다.
콰앙─!
그가 서 있던 지면이 바스라져 내렸다.
‘마력?’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에 갸웃거리던 한주상은 옆에서 달려드는 소피아를 보곤 혀를 찼다.
“끈질기군.”
떼어내도 떼어내도 계속해서 달라붙는 게 성가시기 그지없는 년이었다.
심지어 소피아에게서는 거부반응이 진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저 혼마력을 빨아들여선 안 된다고 그의 몸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던 것이다.
효율을 생각해도 치유술사와 마법사를 먼저 정리하는 게 순서였다.
후아앙─!
짓쳐드는 대검을 본 한주상이 이해솔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손을 뻗은 한주상은 순식간에 이해솔과 가까워졌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일까? 이해솔은 멀뚱히 선 채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한주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뻗어진 그의 손이 이해솔의 어깨를 덥썩 움켜쥐었다.
“잡았······아니!?”
흡주력을 발동하던 한주상의 눈이 부릅 뜨였다.
“뭐냐, 너는?”
손아귀를 통해 아무런 마력도 들어오지 않음에 한주상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렇다고 이해솔이 마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항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한주상이 느끼는 이해솔의 내부는 텅텅 빈 ‘공허’ 그 자체였으니까.
‘······마력이 없다고?’
믿기지 않는 사실에 당황하는데, 문득 이해솔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왜 웃나 한주상이 의아해 할 때였다.
“!”
돌연 이해솔의 내부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마력이 뒤섞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반발하는 마력의 기류.
소름이 끼칠 정도의 거부반응에 놀란 한주상이 당장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런데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손은 이해솔의 몸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뭣······!”
흡주력의 흡입력에 더해, 마력의 폭풍이 그를 끌어당기고 있던 것이다.
저항을 하면 했지, 되려 적극적으로 마력을 빨리려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당황한 한주상이 미친 듯이 팔을 버둥거렸다.
“안 돼지.”
이해솔이 그리 중얼거린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몸을 거미줄처럼 옭아맸다.
콰과과과과─
마력의 폭풍이 그대로 한주상의 손으로 밀어닥쳤다.
***
“크아아아악─!”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한주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어깨를 붙잡은 한주상의 손이 흉측하게 부풀어 올랐다.
정령석의 혼탁한 마력이 내 몸을 통과해 한주상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주상의 발악이 너무 심했기에 오래 붙잡아두는 것은 무리였다.
한주상을 묶어 놓은 기력이 그의 발악에 의해 찢겨져 나가려 하고 있었으니.
“미친.”
혀를 찬 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손으로 주입되는 게 느리다면 아예 싹 다 한꺼번에 처박아주는 수밖에.
여러 가닥으로 분산된 기력이 정령석과 한주상의 전신을 연결했다.
그 사이, 기력의 속박에서 풀려난 한주상이 내게서 떨어졌다.
“엄청 빠르네.”
순식간에 수 미터나 거리를 벌려버리는 한주상의 기동력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과연, 원로원주다운 놀라운 실력이었다.
“그래봤자 헛수고지만.”
한주상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으나, 내 눈에는 그의 전신에 달라붙은 기력의 가닥이 훤히 보여왔다.
그것은 내가 쥔 정령석과 한주상을 고스란히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자, 들어갑니다.”
이내 기력을 타고 시원하게 쭉- 뻗어나가는 마력의 해일.
“크아아아아아-!”
달려가던 한주상이 휘청거리더니,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전신에서 핏줄이 징그럽게 돋아났다.
그럼에도 한주상은 제자리에서 난동만 부릴 뿐, 쉽사리 들어차는 마력을 떼어내지 못했다.
저게 바로 흡주력자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타인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빨아들일 수 있으나, 그만큼 쉽사리 떼어놓지도 못하는 것이다.
“아.”
생각을 하던 도중 기력이 끊어져 버렸다.
아직 정령석에 담긴 마력이 채 반도 빨려 나가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괜찮으려나.”
한주상의 몸을 본 내가 그리 중얼거렸다. 그의 몸은 현재 상당히 부풀어 있었다. 몸이 마력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주상쯤 되는 고수라면 시간만 주어진다면 알아서 가라앉힐 수 있겠으나, 그러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콰앙─!
“쿨럭!”
소피아의 대검을 막아낸 한주상이 피를 왈칵 쏟아냈다.
그동안은 무시로 일관해왔는데, 몸이 둔해지면서 무시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대검을 피하지 않고 막아선 것이 한주상의 가장 큰 실수였다.
파아아아─!
대검을 가로막은 손의 마력이 산산이 깨져나가더니, 손부터 가슴까지 대검이 깊숙이 긋고 지나갔다.
소피아의 기프트, [분쇄자]였다.
분쇄자를 알지 못한 한주상이 대검을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만 마력을 응용하는 바람에, 분쇄자에 마력이 깨지면서 대검이 그의 몸을 갈라버린 것이다.
“크학!”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한주상이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터져 나오는 마력을 대검으로 막은 소피아가 그 반동을 이용해 훌쩍 물러났다.
뒤이어 한주상의 몸에서 피가 후두둑- 쏟아져내렸다.
날뛰는 마력에 몸이 베이는 치명상까지 입어버린 한주상은 급히 연회장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 한주상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 이본느의 부채가 휘둘러진다.
화염의 칼날들이 무자비하게 한주상의 몸을 강타했다.
전신에 마력을 두른 한주상은 화염의 칼날들을 고스란히 맞으며 연회장의 입구로 돌진했다.
콰아앙─!
문을 박살내며 연회장을 빠져나간 한주상은 돌연 제자리에 멈춰섰다.
“크하하하하하!”
그러곤, 돌연 양팔을 벌린 채 하늘을 보며 미친 듯이 폭소를 터트렸다.
“···미친 건가?”
그 실성한 듯한 모습을 모두가 어이없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주상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물러나요!”
“피해!”
마력폭주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두가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
하얀빛이 번쩍! 터져 나왔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폭음이 울려 퍼지고, 연회장이 우르르 뒤흔들렸다.
광폭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흙먼지가 연회장을 뿌옇게 뒤덮었다.
이윽고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연회장 바깥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폐허였다.
한주상이 서 있던 곳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지반이 움푹 가라앉았고, 푸르렀던 정원은 헤집어진 흙무더기만이 나뒹굴었다.
“······죽은 거겠죠?”
“그렇겠지.”
아멜리아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폭발에서라면 제아무리 한주상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얼을 테니까.
하지만 마지막에 그 웃음은 대체 뭐지?
화장실을 나오면서 뒤를 닦지 않은 것만 같은 찝찝함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석연찮음을 곱씹을 시간은 없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남아있었으니.
“저것들부터 진정시켜야겠네.”
한주상의 폭주와 함께 날뛰기 시작한 정령의 무리를 보며 내가 혀를 찼다.
***
······녹빛의 조명만이 은은하게 들어찬 어느 어두운 암실.
그 중앙에 놓여진 돌침대에는 창백한 인상의 청년이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이윽고, 조용히 눈을 뜬 청년은 돌연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청년은 조금 전까지 연회장에서 날뛰다 폭발해버린 한주상이었다.
“성공, 성공했구나!”
그가 이렇게 다른 육체로 눈을 뜰 수 있던 이유는 한주상이 연구하던 ‘반혼의 술’의 능력이었다.
비어버린 그릇에 영혼을 옮겨 담는 술법.
이 반혼의 술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막대한 마력’이었다.
그리고 한주상은 연회장에서 그 막대한 마력이라는 전제조건을 본의 아니게 채울 수 있었다.
그가 연회장의 이들에게서 빼앗은 마력에 더해 마경주가 강제로 주입한 마력이 반혼의 술에 필요한 마력을 충족시킨 것이다.
물론 반혼의 술은 성공할 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기에 한주상조차 준비만 해놓았을 뿐 시도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도가 이리 보기 좋게 성공을 해버렸다.
“후후.”
기분 좋게 웃던 한주상은 돌상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그만 흠칫 굳어버렸다.
주위를 살펴보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는데 누군가 돌상 옆에 가만히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
전율에 가까운 소름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한주상은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상대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만 얼어버렸다.
“너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
그녀는 바로 한세연이었다.
뒤이어 한주상의 눈에 어둠이 들어찼다.
콰드드득─!
살이 뭉개지는 소리가 암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