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핏빛의 날개를 펴고 상공을 비행하던 스완은 얼마 가지 않아 한가장의 한적한 공터에 내려섰다.
시야가 탁 트인 상공으로 이동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던 탓이다.
거기다······
‘추적자가 따라붙었군.’
제법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내려섰건만, 상대는 정확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추적장치라도 달아놓은 것마냥.
‘피 냄새를 맡는 건가.’
액터에 의해 뚫렸던 스완의 복부는 어느새 피가 멎어있었다.
혈술을 다루는 그에게 상처의 지혈 정도는 식은죽 먹기였으니까.
그러니 혈향이 심하지 않을 것임에도 이 먼 거리에서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올 정도라니······.
꼬리를 달고 갈 수는 없었기에 스완은 공터에 서서 나타나는 상대를 주시했다.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아래 모습을 드러낸 상대를 확인한 스완의 눈이 살짝 커졌다.
“호오, 도망가지 않았네.”
그리 말하며 입꼬리를 올려 보이는 상대는 바로 마경주였다.
“나를 없애고 가려고?”
스완은 말 대신 손끝에 맺힌 피를 튕겨 보냈다.
피이이이잉──
손끝에서 뻗어진 붉은 궤적이 마경주의 이마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피의 궤적은 채 이어지지 않고, 도중에 무언가에 막혀 뚝- 떨어져 버렸다.
“······무슨.”
알 수 없는 현상에 스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력을 일으키는 조짐도 보이지 않았건만, 자신의 공격이 막히다니?
아니, 그보다······
‘혈술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의 혈술은 무언가에 막혔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으로 막았다면 마력에 스며들며, 마기로 막았다면 마기에 스며든다.
마치 물감이 번지듯, 섞여들어 내부를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그게 바로 혈술의 무서운 점이었다. 그런데 그 혈술이 물방울처럼 흘러내렸다.
잘못되었나 싶어서 재차 튕겨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왜, 피가 떨어지는 게 이상한가 보지?”
“······.”
속내를 읽힌 스완의 표정이 차게 가라앉았다. 손톱을 세운 스완이 제 팔뚝을 뜯듯이 찢었다.
츄아악─!
봇물처럼 쏟아져나온 피가 방울져 떠오른다.
피의 방울들이 스완의 주위를 위성처럼 맴돌았다.
푸스스······
문득, 핏방울에 스친 나무의 밑동이 녹아내린다.
스완이 자랑하는 능력, 혈계(血界)였다.
혈계는 그가 조금 전 튕겨낸 핏방울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스치기라도 하면 중독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번진 부위까지 녹아내려 버린다.
지금 우지끈 쓰러져 내리는 나무처럼.
이거라면 녀석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술로도 막아내지 못하리라.
온전히 전개된 혈계를 보며 스완은 약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때였다.
“······뭐?”
스완의 눈이 부릅 뜨였다.
마경주가 핏방울이 몰아치는 혈계의 영역으로 다가서고 있던 것이다.
저벅저벅─
“······이걸 들어온다고?”
미친 건가?
스완은 마경주의 생각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기회였다.
스완이 빠르게 양손을 교차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허공을 유영하던 수백 개의 핏방울이 마경주를 노리고 빛살처럼 쇄도했다.
물샐 틈없이 사방을 점하고 날아드는 피의 향연.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핏방울들은 순식간에 마경주의 전신에 박혀들었다.
“됐다!”
스완의 얼굴이 환해졌다.
웃음이 솟구쳤다.
마경주의 피부를 얼룩하게 물들인 붉은 반점. 일명, 죽음의 문양.
한 번 피부에 스며든 붉은 반점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물감처럼 번져서 체내의 마력을 파괴하고, 녹아내리게 만드는 것이다.
단 하나의 점만으로도 건장한 남성을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극독이 바로 붉은 반점이었다.
하물며 마경주는 그런 붉은 반점을 하나도 아니고 무려 수백 개씩이나 뒤집어썼다.
저건 칠악이 아니라, 오마라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이제 전신이 붉게 변해 한 줌 핏물로 녹아내리리라.
스완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과연, 붉은 반점은 마경주의 피부에 스며들어 번져나가더니······
“뭐 이런······”
스완의 눈이 불신으로 흔들렸다.
붉은 반점이 번지는가 싶더니,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화르륵──
마경주의 전신에서 푸른 불길이 일었다.
이윽고 불길이 멎었을 때 반점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린 뒤였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린 스완에게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마기가 잘 안 통하는 체질이거든.”
파랑이에 아나스타샤, 항마력까지. 성속성으로 떡칠을 한 내게 마기의 반점 따위가 통할 리 만무했다.
지룡의 영혼을 흡수한 뒤로는 그 특성이 더더욱 상승해버렸다.
거기다 애초에 파괴될 마력이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되니까 이러지.”
저벅저벅─
다가드는 나를 향해 스완의 벌어진 팔뚝에서 혈액이 울컥이며 쏟아져 나왔다.
한군데 뭉쳐진 피의 덩어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꿀렁인다.
치이이······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땅이 하얀 연기를 피워낸다.
다가서면 녹여버리겠다는 듯 섬뜩한 독기가 살갗을 찌르르 울렸다.
그 경고를 무시하며 내가 한 발을 내디딘 순간.
──────!
핏빛 덩어리가 폭사되었다.
하얀 도화지에 붉은 물감이 터지듯, 인지를 벗어난 피의 파도는 공간을 순식간에 붉게 물들였다.
가로등, 동상, 수풀, 자갈, 교목······
공간을 이루던 온갖 것들이 뭉뚱그려 핏물에 섞여들었다.
선혈에 잠긴 풍경이 녹아내린다······.
그 흘러내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스완의 눈이 여지없이 흔들린다.
저벅저벅─
붉게 물든 세상. 여전히 제 색을 유지한 내가 태연히 걸어왔기에.
단 한 점의 핏방울조차 기력을 두른 나를 침범할 수는 없었다.
스완의 손 위로 다시 피가 맺혀드는 걸 본 내가 혀를 찼다.
“소용없다니까.”
스완은 내 말에 아랑곳없이 피를 모으더니, 그것을 나를 향해 던졌다.
아니, 돌연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폭음이 일대를 울렸다.
노면이 무너져내리며, 뒤집힌 땅거죽이 용솟음쳤다. 모래를 실은 피보라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피안개였으나, 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피 안개가 걷혔을 때, 스완이 있던 곳에는 부숴지고 녹아내린 노면만이 존재했다.
“쓸데없는 짓을.”
피식 웃은 내가 스완이 사라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은 무척이나 느긋했다.
한가장에 들어선 이상 스완이 도망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파랑아, 찾아.”
“까악.”
***
······피안개가 퍼지기 무섭게 스완은 필사의 도주를 감행했다.
혈계가 통하지 않은 시점에서 스완은 자신이 마경주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마기에 마경주가 녹아내리는 광경이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벌써······’
뒤를 흘낏 돌아본 스완이 신음했다. 얼마 가지도 않았건만 피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하지만 스완의 안색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마경주가 따라붙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포기한 건가?’
한 줄기 희망을 가지려던 찰나, 자신을 바라보던 마경주의 눈빛이 떠올랐다.
도깨비불처럼 광망하던 검은 눈.
그 안에 담긴 탐욕을 떠올리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피식자가 포식자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이었다.
‘놈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것은 까닭 모를 확신이었다.
우선 이 쓸데없이 넓은 한가장부터 벗어나야 했다.
스완이 노면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더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헉, 헉, 허억······”
피를 너무 많이 소모했기 때문인지, 금방 숨이 차올랐다.
다리가 풀려 몸이 휘청였으나, 스완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달리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확인했으나, 마경주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어딘가에서 나타날 것만 같은 불길함.
그 미지(味知)에서 오는 두려움이 스완의 내면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강한 공포가 되어 정신을 갉아먹었다.
‘빨리 도망쳐야 된다.’
무작정 마경주에게서 멀어져야만 한다는 강박이 머리를 지배했다.
공터를 지나, 넓게 펼쳐진 정원 가로지르고, 두어 개의 울타리를 넘자 잘 닦여진 돌길이 나왔다.
스완의 눈이 반짝였다.
‘보인다!’
돌길의 너머. 한가장의 담이 보여왔다.
그 뒤로 너른 들판과 가로수길이 펼쳐졌다. 꺼졌던 희망이 피어올랐다.
스완이 미친 듯이 뛰었다.
휘익─!
돌길을 지나 부푼 기대를 안고 너른 들판을 향해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아니, 스완은 담장 앞에 멈추어 섰다.
‘뭐, 뭐야, 이건?!’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몸을 엄습했다.
그것이 결계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파츳─!
담장에 닿은 손끝이 그대로 튕겨나가 버렸으니.
그것은 마기를 온전히 끌어올렸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저택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자, 아득한 절망감이 차올랐다.
“······이것이었나.”
스완은 그제야 왜 마경주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쫓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이 저택은, 처음부터 놈의 뱃속이었다.
한가장을 둘러싼 결계는 수백의 초인이 동원되어야 비로소 펼칠 수 있는 대결계였으니.
그리고 이러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집단은 이터니티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집단은···
“···협회.”
자신은 처음부터 협회의 계략에 빠져있던 것이다.
사박사박······.
풀잎을 헤치는 소리.
스완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경주가 화단을 느긋하게 걸어왔다.
“더 안 도망치나?”
“도망칠 수는 있나?”
마경주가 싱긋 웃었다.
“어렵겠지.”
스완이 도망치기 위해서는 대결계의 유지시간인 3시간 동안 나를 피해 다니거나, 결계를 부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몸에서 혈향을 풍기는 스완이 파랑이로부터 숨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계를 부수기란 더더욱 무리였고.
“그렇군.”
찰나, 스완의 동공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그러곤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죽어버린 것이다.
“금제네.”
심지(心地)가 꺾이자, 녀석의 머릿속에 내제되어있던 금제가 발동해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비밀이 유출될 것을 우려하는 단체가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이러한 금제는 내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니까.
내 눈에 죽어버린 스완의 영혼이 비춰들었다. 육신을 떠나려는 듯 하늘로 스르륵- 날아오르는 희끄무레한 영체.
내가 그것을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
두려움에 질린 영체가 내 손안에서 부르르 떨어댄다.
“아는 건 불고 가야지.”
좋은말 할 때.
소멸당하기 싫으면.
뜻을 전한 나는 스완이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냈다.
스완의 영혼이 자발적으로 내 몸에 쏘옥- 들어가더니, 의식이 동조되었다.
순간, 물밀 듯이 빨려 들어오는 기억의 홍수.
“···크흠.”
여자였어?
헛기침을 한 나는 범람하는 기억 속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뽑아냈다.
흑해의 존재 의의와, 유진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호오, 재미있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내 눈이 파랗게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