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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88화 (189/226)

§ 188화

······이터니티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와 엔딩이 갈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어느 스토리에서도 영멸의 밤, 유진이 1학년 2학기에 깨어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의 유진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녀석은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막가파였으니.

노아를 만난 녀석의 심경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완의 기억을 통해 유진이 어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주 막 나가겠다는 거구만.”

녀석은 마인들과 협회를 상잔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 세력의 상잔이 유진의 목적은 아니었다.

녀석의 계획은 그보다 훨씬 더 막나가는 짓거리였다.

무려 이 이터니티라는 무대 자체를 개판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무대를 개판으로 만들어야 관람하는 이들의 심기가 언짢아질 테니까.

그러면 개판인 무대를 정리하기 위해 관리자가 올라오기 마련이었다.

유진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무대 밖의 이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죽이는 것.’

원래는 최소 2년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 일을 지금 실행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그만큼 진도를 빨리 빼버렸다는 이야기지.’

균열로 통하는 최심부의 비동에서 녀석은 느낀 것이다.

균열의 문을 여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 노아만이 아니라는 것을.

녀석에게는 문을 열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소피아, 그리고 서하린의 1팀에게 발목이 붙잡히는 대굴욕을 당했으니까.

뭐, 우리도 한세연이 도중에 오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이 날 뻔했지만.

아무튼, 녀석의 목적을 알았으니 나도 그에 따른 대비를 해야 할 차례였다.

“쉴 틈을 안 주네.”

내게서 빠져나온 스완의 영혼이 하늘로 승천했다.

“잘 가라. 다음엔 착하게 살고.”

띠링!

스완의 영혼이 사라지자 퀘스트 클리어 창이 떠올랐다.

[메인퀘스트 ‘기우는 달’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0SP가 지급됩니다.]

[보유 포인트 : 13000SP]

“엄청 쌓였네.”

교전 외에 SP를 따로 사용할 일이 없다 보니, SP가 상당히 쌓여있었다.

다만 내 슬롯 창은 꽉 차버린 상태였기에 새로운 능력의 습득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놀려만 두기도 아까우니······’

[융합력(S)를 강화합니다.]

[10000SP가 소모됩니다.]

띠링!

[축하합니다! 융합력(S)의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융합력(S) → 융합력(S+)]

*한 번에 빌려올 수 있는 대상의 능력이 2개로 늘어납니다.(단, 2가지 이상의 능력을 동시 사용 시 사용시간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보유 포인트가 현저히 줄어들며 융합력의 등급이 올라갔다.

“오우.”

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현재 내 융합력 리스트에 등록된 대상은 한세연, 아멜리아, 소피아 이렇게 3명이다.

그 대상을 늘리고자 강화를 시켰는데, 슬롯이 늘어나는 대신 한 번에 빌려올 수 있는 능력이 2개로 늘어난 것이다.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으나, 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오히려 좋지.”

가뜩이나 사기성이 다분한 세 사람의 능력이다. 그걸 조합까지 할 수 있다면 전무후무한 사기스킬이 탄생하는 셈이었다.

2개를 동시 사용하면 제한시간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유대감을 늘려야 되나.’

머쓱하니 뒷목을 긁적이며 스완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영혼은 사라졌으나, 그녀가 보유하고 있던 마기는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밥이다.”

“까악!”

말하기 무섭게 어깨에서 튀어나온 파랑이가 폴짝 뛰어내렸다. 녀석의 부리로 스완의 마기가 게눈감추듯 사라졌다.

[불사조가 경험치를 375를 획득했습니다.]

띠링!

[불사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불사조 Lv.8 → 불사조 Lv.9]

“아주 날로 먹네.”

내가 혀를 내둘렀다.

아나스타샤는 그 고생을 하고도 아직 레벨이 7인데 얘는 뭘 했다고 벌써 레벨이 9이나 되는지 참 보면 볼수록 불공평했다.

뭐, 나도 덩달아 경험치가 상승하니 불만이야 없다만.

“끄럭-”

마기를 배불리 먹은 파랑이가 짧게 소화를 하더니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는다.

툭- 떨어져 오는 오색 찬연한 원석.

“···이 정도면 날로 먹어도 인정이지.”

정령석을 챙긴 내가 씨익 웃었다.

수풀을 헤치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일단의 사람들이 황급히 화단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마경주님을 뵙습니다.”

선두에서 고개를 숙여 보이는 여인은 차시우의 부관인 소진이었다.

그들은 한가장에 결계를 치기 위해 온 협회의 초인들이었다.

소진이 내 발치에 쓰러진 스완을 힐끗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시신이······”

“예. 이번 사건을 주동한 마인입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가 숨을 죽인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단순한 마인이라고 했으나 스완은 협회에서도 용모가 널리 알려진 고위급 마인이었다.

그런 위험한 마인이 이렇게 죽어있는데 나는 멀쩡하기만 하니 놀랄 수밖에.

“나머지는 맡기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소진에게 시신을 인계한 나는 한가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한가장 쪽도 정리가 끝났는지 멀리서 소피아를 비롯한 일행이 달려왔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기다리래도.”

내심 혀가 차졌으나 입가로는 어쩔 수 없이 미소가 지어졌다.

***

······한가장의 사건은 협회가 개입하면서 신속하게 정리가 되었다.

애초에 사전에 계획하고 파놓은 함정이었으니, 정리 또한 일사천리였던 것이다.

짹짹─ 짹짹─

새가 지저귀는 한가장의 이른 아침.

“가시려는 겁니까?”

“예, 가봐야죠. 그쪽도 이제 바쁠 거잖습니까?”

“대접해드릴 여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제가 바빠서 어렵겠습니다.”

아카데미도 나가야 하는 데다 새로 강화된 융합력도 연마해야 되고, 무엇보다 유진의 계획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런 내 말에 한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더 붙잡지는 않았다.

참고로 그는 현재 가주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주상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뿐인 자식인 그가 임시적으로 가주대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윤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가문의 내부를 단속해야 할 시기였으니.

‘한주상하고 엮어서 싹 다 보내버린 것 같기는 하지만.’

한윤은 이번 사건을 빌미로 가문의 수뇌부를 전부 물갈이해버렸다. 그의 사람 외에는 살아남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게 고작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 들어온다고 노 저으랬더니, 아예 배를 바꿔버린 격이다. 한윤은 겉과 속이 무서우리만치 다른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신뢰가 가는 거기도 하지만.’

이런 부류는 얻어먹을 게 있다고 판단되면,상대를 거덜 낼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수지타산에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 바로 한윤이었다. 나야 한 술 더 뜨지만.

“그럼 가기 전에 계산부터 할까요.”

“하하, 보상이라면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내 말에 한윤이 여유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시원해서 좋네요.”

씨익 웃은 내가 한윤에게 종이 한 장을 넘겼다.

“마경주님, 이건···?”

“보상목록입니다. 너무 길어서 정리를 좀 해왔습니다.”

“······.”

에이프 용지 빼곡히 적힌 보상목록에 한윤은 잠시 얼이 나갔다.

자금조달, 배송호위, 특산물 홍보, 도로 형성, 인력 조달 등······

셀 수 없이 많은 조건이 눈을 어지럽혔다. 그중 의아한 목록에 한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도로 형성이라 하시면······”

“한가장에서 포장건설 하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한가장은 한국의 인프라에 여러모로 깊게 관여되어 있는 가문이었다. 건설업은 한가장을 지탱하는 가장 큰 사업이었고.

“그런데 어디에 도로를 깔려 하시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마경이지.”

“···마경에 도로를 말입니까?”

“예, 포장도로요.”

“······.”

“아, 위험할 건 걱정마세요. 마수는 다 배제할 테니까. 그냥 벌목 좀 하고 길만 깔아주시면 됩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급격히 피곤해져 옴에 한윤은 지그시 이마를 문질렀다.

***

······한가장을 떠나 마경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옆에서 나란히 걷는 한세연을 보며 물었다.

“아까 뭘 받은 거야?”

우리가 떠나기 전, 한윤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한세연은 그것을 본채만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내 물음에 한세연이 갸웃거리더니 주머니에서 하얀 목걸이를 꺼냈다.

“복마령이래.”

“······.”

그 대수롭지 않다는 말에 나는 잠시 어이가 없어하다 되물었다.

“그게 복마령이라고?”

“응.”

입을 벌린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한가장의 대문 앞에는 여전히 한윤이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 양반이 정말 미안하긴 했나 보네.”

복마령은 한가장의 가보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귀물이었다.

대상의 정신에 타인이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주변의 마력조차 빨아 들여버리는 녀석.

이게 있다면 나조차도 한세연의 정신에는 침입할 수가 없었다.

모르도조차도 그녀의 몸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위력이 뛰어난 만큼, 한 번 사용하면 100일의 재사용 기간이 존재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복마령은 충분히 귀한 물건이었다.

그 귀한 걸 넘겨줄 정도로 한가장이 한세연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실제로 그녀가 연루된 실종사건이 모두 한주상의 소행이었다는 게 밝혀진 뒤로, 지난 하루 동안 한세연에게 사죄를 하러 오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한윤 딴에는 나름의 투자를 한다는 계산도 저변에 깔려 있었겠지만······

‘이래서야 선물도 안 되겠네.’

한세연은 복마령에 아예 관심도 없어 보였다. 목에 차기는커녕 주머니에 넣어놓을 정도였으니······.

하긴, 나 같아도 평생 나를 인간취급도 안해온 놈들이 이제와서 선물이랍시고 준 물건을 차고 다니고 싶지는 않겠다.

‘그래도 저건 좀 차는 게 좋겠는데.’

괜히 아픈 기억을 들쑤시는 격이 될 것 같았기에, 나는 한세연에게 복마령을 차라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굳이 복마령이 아니더라도, 그 외의 방법이야 찾아보면 분명 있을 터였으니까.

그런데.

“···괜찮냐?”

“응.”

내가 떨떠름하게 묻자 한세연이 방긋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 눈을 마주한 그녀가 돌연 쿨하게 복마령을 차버린 것이다.

차고 싶어서 찼다기보다는 내가 차길 바래서 찬 게 분명해보였다.

왠지 억지로 강요해버린 것 같은 기분에 내가 내심 혀를 찼다.

“차기 싫으면 차지 마라.”

“내가 차지 말길 바래?”

“아니.”

“그럼 차야지.”

“···야.”

짐짓 인상을 찌푸리자 한세연이 방긋 웃어 보였다. 결국 헛웃음을 흘린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뭐, 괜찮아 보이니 된 건가.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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