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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91화 (192/226)

§ 191화

······붉고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고원지대. 높다란 회색의 성벽이 나타난다.

성벽의 앞으로는 무척이나 긴 목조 다리와 그 아래로 물이 고인 해자가 펼쳐져 있었다.

“우와아-!”

“미아랜드!”

따분하다는 듯 졸고 있던 니엘과 리디아가 눈을 번쩍 뜨니 좌우의 창가로 달라붙는다.

“위험하니까 몸 내밀지 마. 그러다 떨어진다.”

“네에!”

“알겠어여!”

대답은 우렁차면서도 여전히 창밖으로 몸을 쭈욱- 내밀고 있는 리디아와 니엘.

충고를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게 분명해 보였다. 저것들을 그냥 밀어버릴 수도 없고···

생각해보니 얘네가 민다고 해서 다칠지도 의문이었다. ···괜히 충고했네.

이윽고, 다리의 앞에 이르러 차가 정차했다.밖으로 내리니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경주님. 이번 미아랜드의 안내를 맡게 된 이윤학이라 합니다.”

자신을 협회 소속의 초인이라 밝힌 이윤학이 우리를 다리로 이끌었다.

다리로 총총- 뛰어가 해자를 내려다보는 니엘과 리디아.

“아래 물고기 있어!”

“어디, 어디? 어?! 정말!”

그 지극히 아이다운 반응에 이윤학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런 이윤학을 위해 작은 충고를 주었다.

“저쪽은 그만 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예? 그게 무슨······ 어엇?!”

의아해하던 이윤학의 눈이 이내 부릅 떠졌다. 돌연 해자에서 암석이 일어나고 물이 솟구치더니 물고기들이 우르르 튀어 오른 것이다.

“와아!”

“엄청 많아!”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리디아와 니엘.

내 충고를 무시했던 이윤학의 입은 물이 튀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쯧, 그러게 보지 말래도. 작게 혀를 찬 내가 옆에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내려다보며 내심 안심했다.

아나스타샤가 이렇게 얌전한 성격이어서 다행이었다.

쟤들처럼 날뛰는 성격이었으면 하루하루가 피곤했을 테니.

그냥 평범한 것만으로도 고마워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뭘 보는 거지?

아나스타샤는 아까부터 무언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니, 낡은 다리에 쳐진 거미줄에 나비가 묶여 퍼득이고 있었다.

거미는 그런 나비의 몸통에 거미줄을 칭칭 감아가고 있었고.

나비를 도와주려는 건가?

거미야 어쨌건, 도와주려는 마음씨 자체가 대견했기에 내가 기특한 미소를 지었다.

“······.”

“······.”

“?”

나비의 숨통이 서서히 조여지는 것을 지켜만보고 있는 아나스타샤. 의아해진 내가 갸웃거렸다.

“도와주려는 거 아니었어?”

“·········자연에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아.”

“···그렇지. 거미도 먹고는 살아야지.”

지극히 옳은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인 내가 되물었다.

“그럼 왜 지켜보는 거야?”

아멜리아는 대답 대신 한쪽에서 물을 말아올리는 리디아를 돌아보았다.

“아.”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갔다.

“물이 거미한테 튈 까봐, 그걸 지켜봐 주고 있는 거니?”

“·········응. 간섭은 좋지 않으니까.”

“나비가 아니라 거미를 도와주는 거였구나.”

끄덕끄덕.

“······.”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머쓱하니 뺨을 긁적인 내가 한편에 굳어있는 이윤학을 재촉했다.

“윤학씨, 가죠.”

“아, 예.”

***

[모험과 환상이 가득한 미아랜드~ 모두 함께 떠나요 신비한 세계~]

다리를 지나 어두컴컴한 성벽의 입구로 들어서자 안쪽에서 신나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전기는 안 꺼놨나 보죠?”

“그게······”

이윤학이 리디아와 니엘을 보며 말해도 되는지 난색을 표한다.

“괜찮으니까 말하세요.”

“전기는 끊었는데, 노래가 계속 나옵니다.”

“요정의 짓이군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입구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아랜드에는 우리 외에도 여러 길드에서 의뢰를 받고 오가고 있었으니.

내 등장에 술렁이는 주변을 지나 우리는 미아랜드에 들어섰다.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아기자기한 놀이동산이 나타난다.

드롭타워, 회전목마, 바이킹 등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야외에 늘어서 있었다.

“신기한 곳이군요.”

소피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흥미를 보이자 의아해진 내가 물었다.

“소피아, 놀이공원 처음 와 봐요?”

“예, 집이 가난해서 이런 곳하고는 연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TV로 볼 수는 있잖아요?”

“전기가 자주 끊겨서 TV는 주말에만 틀어봤습니다.”

“······.”

사정이 안 좋았었다고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쩐지 영화가 들어왔을 때 그리 좋아하더니만······

한편, 먼저 뛰어 들어간 리디아와 니엘은 어느새 회전목마에 올라 저들끼리 잘들 놀고 있었다.

─이랴이랴!

말의 목을 때리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리디아. 그런 리디아의 노력을 비웃듯 니엘이 소리친다.

─내가 더 빨라!

그야 너가 앞에 탔으니 당연히 더 빠르겠지.

두 아이를 구경하고 있자니, 이윤학이 던전의 설명을 시작했다.

“각 기구는 클리어 시, 최소 3포인트에서 많게는 10포인트까지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포인트는 손목에 표시됩니다.”

팔을 들어보자 내 손목에 붉은색으로 숫자 ‘0’이 새겨져 있었다.

“100포인트를 쌓으면 던전 클리어의 자격을 갖추게 되죠.”

“쌓아야대는 점수가 높군요.”

“예, 100포인트를 쌓으려면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자격일 뿐, 던전의 클리어와는 크게 연관이 없습니다.”

“왜죠?”

“100포인트를 얻고 난 후 요정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뭡니까, 그게?”

“쉽게 말해, 100포인트를 얻어도 요정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클리어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내심 어이가 없어져서 중얼거렸다.

“그냥 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거군요.”

“···음, 예. 맞습니다.”

그니까, 어렵사리 100포인트를 쌓아서 자격을 갖추어도 요정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정을 어찌 할 수도 없는 게, 요정이 만든 던전에서 요정의 ‘룰’은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룰을 정한 요정 그 자신에게도.

즉, 녀석이 정한 ‘인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 조건이라는 게 요정의 입맛에 따라 매번 바뀌는 모양이었다.

‘골치 아파졌네.’

쿠구구구구──

인상을 찌푸리는데 땅이 흔들리며 내 옆으로 롤러코스터가 지나갔다.

─살려줘어어-!

─으아아아아악!

─우웨에엑!

파랗게 질려 비명을 지르고 토악질을 뿌리며 사라지는 탑승객들.

순식간에 지나간 열차에 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저건 뭐죠?”

“내리질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이곳에서는 흔히 생기는 일입니다.”

······롤러코스터가 멈추질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나 보다.

왜 굳이 저런 걸 타나 싶겠지만 타는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저게 점수를 가장 많이 줍니다.”

“그렇군요.”

여전히 비명이 들려오는 롤러코스터를 보며 나는 뺨을 긁적였다.

그때, 마침 회전목마가 끝이 났는지 리다아와 니엘이 돌아왔다.

“으, 시시해.”

“너무 빨리 끝나.”

잘만 놀 때는 언제고 다 타고 나오니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 두 아이를 보며 씨익 웃은 내가 입을 열었다.

“회전목마보다 열 배는 빠르고 재미있는 거 있는데 안 타볼래?”

“탈래요!”

“니엘도요!”

금새 실망을 지우곤 눈을 반짝이는 두 아이에게 내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두 아이는 내가 기리키기 무섭게 달려가 버렸다.

“마경주님, 저건···”

떨떠름해 하는 이윤학에게 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윤학씨도 봤잖아요? 저 아이들이 보통 아이들이 아니라는 거.”

“아, 그랬었죠.”

이윤학이 금새 불안을 지운다. 내가 가리킨 것은 바로 번지드롭였다.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낙하해버리는 놀이공원의 상징 같은 존재.

자고로 애들 눈물 빼놓기에는 저만한 놀이기구가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끝나고 연락을 주시면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리 말한 이윤학이 떠나가고, 내가 소피아에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죠.”

“예.”

나와 소피아는 벤치에 앉아 델리만쥬를 먹으며 주위를 구경했다.

끼아아아아아─

상공 높이 떠올랐다 낙하하는 번지드롭. 두 아이의 비명이 아련하게 들려온다.

“소피아는 안 타요?”

“해솔님이 타면 그때 함께 타겠습니다.”

“그럼 쟤네 돌아오면 아무거나 하나 타보죠.”

10포인트를 채우려면 나도 기구를 타긴 타야 했으니까.

벤치에 앉아있자니 번지드롭을 탄 리디아와 니엘이 돌아왔다.

“히끅, 히끅!”

“힉!”

영혼이 달아난 얼굴로 하얗게 질린 채 딸꾹질을 해대는 두 아이.

후들거리는 두 다리가 겁에 질린 듯해 내가 내심 만족스러워할 때였다.

“끼하하하하-!”

“재, 재밌어!”

딸꾹질을 하던 두 아이가 돌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다시 번지드롭을 타러 뛰어간다.

예상 밖의 반응에 얼이 나간 나는 번지드롭에 앞다퉈 앉는 두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쟤네 뭐야?”

***

······리디아와 니엘이 둘이서 놀게 내버려 둔 나는 소피아와 기구를 물색했다.

우리 둘이 제일 먼저 탄 것은 좀 전에 보았던 롤러코스터였다.

“기대되는군요.”

가장 앞좌석에 앉은 소피아는 천천히 위로 상승하는 열차를 흥미로워했다.

그렇게 상승을 멈춘 열차가 레일의 꼭대기에서 정차하자 소피아가 좌석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그녀가 무엇을 찾는 것인지 알아차린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소피아, 여기에는 운전대가 없어요.”

“예? 제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럼 누가······ 우아앗-!”

예고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열차에 소피아가 비명이 파묻혔다.

***

안전불감증이 심한 소피아는 자신이나,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신기하게도 겁이 많았다.

그건 비단 마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온 이후로는 그 불감증 리스트에 놀이기구도 추가되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파라솔에 꼭 붙어 앉은 소피아가 바이킹을 타러 간다는 나를 배웅한다.

“진짜 안 탈 거예요?”

“예, 사양하겠습니다.”

괜스레 물어보니, 소피아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한다.

고집스럽게 앙 다물린 입가에서 단호함이 묻어 나온다.

피식 웃은 내가 다시 파라솔에 앉자 소피아가 갸웃거렸다.

“안 가십니까?”

“예, 놀이기구 말고, 다른 거나 하러 가요.”

바이킹을 탄다는 건 그냥 장난스레 해 본 말이었다. 미아랜드에는 비단 놀이기구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귀신의 집, 암벽 등반, 달리기, 야구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의 소피아는 몸 쓰는 일의 달인이었다.

'점수나 채우러 가볼까.'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소피아가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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