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소피아와 내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실외 암벽등반이었다.
족히 수백 미터는 되어 보임직한 깎아지르는 절벽.
그 앞에 나무로 된 표지판이 박혀있었다.
적힌 내용은 아주 심플했다.
[마력을 배제한 채 오르시오.(등반을 한 높이에 비례해 총 20점이 부여된다.)]
“······이걸 오르라고?”
고개를 위로 젖혀야만 보이는 정상에 기가막혀 중얼거리자 표지판에 붉은색 ‘O’ 표시가 떠오른다.
“애초에 이건 액티비티가 아니라 그냥 놀이공원 뒷산 절벽인데?”
[오르시오.]
“이 정도면 50점 정도는 줘야-”
[오르시오.]
어휴, 양심 없는 요정 새끼.
물론, 요정이 하는 일이니만큼 떨어져 죽을 염려는 없겠다마는, 가성비가 바닥인 건 마찬가지였다.
왜 사람들이 액티비티를 내버려 두고 놀이기구만 타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겉으론 혀를 차면서도 속으론 만족스레 웃었다.
‘30점 먹었네.’
요정은 불가능한 난이도라 생각해 내준 것이겠지만, 이는 녀석의 착각이었다.
요정에게는 불행히도 암벽등반은 내 체력단련에서 적잖이 해왔던 일이기에.
‘기력을 쓰면 껌이지.’
제아무리 요정이라도 마력적 존재인 이상, 녀석이 기력을 감지할 우려는 없었다.
거기다가······
“소피아, 준비됐죠?”
“물론입니다.”
절벽을 오르기 위해 팔다리를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소피아.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그럼 묶습니다.”
휘리릭─
내 몸에서 뻗어 나온 기력이 밧줄처럼 소피아의 허리를 묶는다.
이윽고, 절벽에 올라타는 소피아. 정상까지 이어진 붉은 돌을 잡으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오르기 시작한다.
“휘유~ 엄청 빠르네.”
한 번에 돌을 두 칸씩 건너뛰며 순식간에 수 미터를 올라가 버리는 속도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소피아의 신체 능력 하나는 알아줘야 했다.
기력에 묶인 내 몸이 소피아의 뒤에 딸려 올라간다.
별다른 힘도 주지 않는데, 위에서 끌어당기니 몸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물론 내가 딸려 올라간다고 해서 마냥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소피아의 허리에 둘러진 기력이 그녀의 체력을 계속해서 보충해주고 있었으니까.
‘개꿀이네.’
3 4 5 6······
팔뚝에 새겨진 포인트의 숫자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소피아의 신체능력과 내 기력을 간과한 요정의 실수였다.
그렇게 10분도 안 되어 절벽을 반이나 오른 시점이었다.
아래서부터 절벽의 손잡이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소피아, 더 빨리!”
“예!”
발치를 위협하는 손잡이에 내가 절벽을 오르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오르는데 5분이 걸렸다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었다.
‘뭐 이런 거지 같은······’
그동안의 몫을 한꺼번에 몰아서 뛰듯 내가 미친 듯이 절벽을 기어올랐다. 하지만 이건 애교 수준이었다.
“음?”
문득 머리 위로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지는 느낌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던 내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시발.”
절벽의 정상. 거대한 돌덩이가 굴러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런 미친 요정 새끼야아아아아!”
쿠구구구구─!
***
“뛰어요!”
“예?”
“절벽에서 뛰어요!”
굴러떨어지는 돌덩이에 나는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소피아가 뒤따라 몸을 떼내기 무섭게 거대한 돌덩어리가 우리 앞을 지나간다. 하지만 그 바람에 절벽에서 몸이 멀어졌다.
추락이 시작되었다.
요정의 시험이니 떨어져도 죽지야 않겠으나, 처음부터 다시 올라야 했다.
‘그럴 수야 없지.’
억울한 것도 억울한 것이지만, 다시 올라도 돌덩어리가 떨어질 것은 뻔해 보였다.
그게 싫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그람에 기력을 칭칭 감아 묶은 나는 정상을 향해 그람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휘이이익──
번개처럼 날아간 그람이 절벽 위의 어딘가에 퍽-! 박혀 든다.
뒤이어 추락이 멈추며 소피아와 내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후우, 소피아, 괜찮아요?”
“예, 저는 괜찮습니다!”
어느새 내 아래로 떨어진 소피아가 소리친다.
“오를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다시 절벽으로 돌아온 나는 기력의 길이를 줄여갔다. 엘리베이터처럼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하는 몸.
‘진작 이럴 걸.’
대놓고 날아오르는 짓은 못하지만, 이 정도 꼼수는 오르는 시늉으로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했다.
그렇게 몸소 오르는 척, 정상까지 기력에 끌려 오르자 손목에 새겨지는 포인트.
[20]
“쉽네.”
피식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암벽등반의 뒤로 우리는 다양한 액티비티에 도전했다.
달리기, 멀리 던지기, 비트세이버 등.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점수를 쓸어 담았다.
“소피아, 날아오는 걸 색에 맞춰 쳐내기만 하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VR기기를 머리에 낀 소피아가 비장한 얼굴로 핸들을 양손에 나눠 쥔다.
등을 낮추곤 오른발과 오른손은 앞으로 내민 채, 왼손의 광선검을 비스듬히 내려 몸을 보호한 자세.
······참고로 이건 음악게임이다.
“저기, 소피아.”
“예?”
“음, 아니에요.”
지적을 하려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악게임에 자세야 크게 상관이 없었으니까.
어깨를 으쓱인 내가 게임을 스타트했다. 이윽고 날아드는 건반들을 광선검으로 쳐내는 소피아.
“챠앗!”
“하압!”
“타핫!”
기합을 질러가며 건반 하나하나를 온 힘을 다해서 쳐내는 모습에 내가 뺨을 긁적였다.
‘저거 저렇게 열심히 안 쳐도 되는데······’
그저 맞추기만 하면 사라지는데, 마치 적을 베어내듯 있는 힘껏 건반들을 쳐내는 모습이 심히 색다로웠다.
근데 문제는 미친 듯이 잘한다는 거다.
단 하나도 흘리지를 않는 게 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올 수준이다.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뭐, 잘하면 됐나.’
피식 웃은 내가 VR기기를 벗는 소피아에게마실 것을 건냈다.
“수고했어요.”
“아, 고맙습니다.”
살짝 숨이 찬 듯 상기된 표정을 지은 소피아가 상쾌하게 웃어 보인다.
“이 핸드세이버라는 게임, 굉장히 유익하군요.”
“···그런가요?”
“예, 한꺼번에 몰려오는 적들도 흥미로웠지만, 손에 걸리는 감각이 색다로워 아주 좋았습니다.”
음, 뭔가 감상이 굉장히 독특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한 번 더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챠앗!
─타핫!
─하앗!
소피아의 기합이 VR룸에 울려퍼졌다.
***
······한 바탕 VR룸에서 격전을 치루고 나온 소피아와 내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실내양궁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았다.
[Lose]
“웃, 다시!”
과녘에 화살을 빗겨 맞춘 소피아가 재차 활을 겨냥한다. 문제는 저게 벌써 10번째 시도라는 거다.
“소피아, 이제 그만해도 돼요.”
“그치만 저 인형이······”
소피아가 옆을 보며 볼멘소리를 낸다.
그녀가 보는 곳을 돌아보니, 활을 든 인형이 소피아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있었다.
‘묘하게 빡치긴 하네.’
사람처럼 생겨서 불쾌한 골짜기를 일으키는 놈이었다.
하물며 녀석은 소피아보다 월등히 잘 쏘는 것도 아니고, 간발의 차이로 조금씩 점수를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길 때마다 고개를 돌리며 비웃음을 흘려대니, 소피아가 약이 오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승부욕이 강한 소피아는 저런 도발에 쉽게쉽게 넘어가니까.
“제가 한번 해 볼게요.”
“···예, 여기 있습니다.”
볼이 부푼 소피아에게서 활을 넘겨받은 나는 100m 전방의 과녁에 시위를 겨냥했다.
그런 내 자세는 매우 엉망이었다.
궁술을 배우기는커녕 활을 쏘아본 경험조차 어릴 때 장난감 세트로 놀아본 게 전부였으니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당연하게도 과녁의 한참 옆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화살이 과녁을 지나치려던 순간, 돌연 화살이 곡선을 그리며 과녁으로 빨려들어갔다.
퍽─!
[Nice Shot!]
전광판에 10점이 떠올랐다. 놀란 소피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솔님, 궁술도 배우셨었습니까?”
“아니요, 당연히 능력이죠.”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활이 둥실- 떠오른다.
이기어검(以氣馭劍).
Lv.13에 들어선 이기어검은 이러한 사물 하나쯤은 가벼이 다룰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어디까지나 변수일 뿐, 실전에서의 위력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이런 게임은 쉽지.’
[10점]
[10점]
[10점]
내가 시위를 놓을 때마다 전광판의 점수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이대로라면 양궁을 클리어하고 포인트를 쌓는 건 따 놓은 당상이었다. 딱 1번의 10점만 더 기록하면 끝이었으니까.
그런데.
“얼씨구?”
돌연 과녁이 옆으로 움직이며 화살이 지나쳐갔다.
[0점!]
끼긱-
9점을 맞춘 인형의 고개가 나를 향해 돌아가더니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린다.
“아주 대놓고 반칙하네.”
인형의 과녁은 멀쩡한 걸 본 내가 혀를 찼다.
한편, 내 쪽은 무슨 바위며 나무 등 별 잡다한 것들이 다 생겨낫다.
이거 맞추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궤적을 떠나 아예 표적마저 가려버리는 장애물에 기가 막혔다.
룰이 이따구니 소피아가 계속 졌지.
어쩐지 한 판을 못 이기더라.
···뭐, 이러는 게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저은 나는 하늘을 향해 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쏘았다.
휘이익─!
파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화살.
[0점!]
화살이 인식 범위를 넘어서자, 기계가 0점을 가리켰다.
인형의 고개가 내게로 끼긱- 돌아온다.
입꼬리를 들고 비웃는 녀석에게 내가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었다.
“끝났어, 새끼야.”
퍼억─!
[10점!]
어느새 내 과녁의 중앙에는 화살이 박혀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화살이 장애물들을 넘어 과녁에 박혀 든 것이다. 동시에 내 손목의 포인트가 차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포인트가 100을 가리킨 순간.
쿠구구구······
땅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급격하게 뒤흔들렸다.
“나가보죠.”
“예.”
소피아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웅성이고 있었다. 그 웅성이는 곳을 바라본 우리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기구가 바뀌었군요.”
“그러네요.”
우리가 처음 탔던 롤러코스터. 그 레일이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비유하자면 처음보다 10배쯤은 복잡해졌다고 할까?
레일의 일정 부분은 지반이 가라앉아 물이 차올라 있었고, 지하로 이어진 구간까지 보였다.
레일의 색도 붉은색에서 시꺼먼 검은색으로 변한 것이 위압감이 어마어마했다.
‘이게 놀이기구라고?’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는데, 상공에 커다란 창이 떠올랐다.
===
[던전 포인트 100점이 채워졌습니다. 요정의 인정에 도전이 시작됩니다.]
[참여 인원 : 2인 이상]
===
‘2인?’
소피아를 돌아본 내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네.’
기구를 보며 딱딱히 굳어져 있는 게 벌써부터 타지 못할 거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리디아나 니엘은······’
내가 그리 떠올리기 무섭게 창에 추가되는 문구.
*노약자, 임산부, 만12세이하 어린아이는 입장이 불가합니다.
“뭐야?”
이거, 지금 내 생각 읽고 추가한 건가.
기가 막혀 입을 벌렸던 내 머릿속에 돌연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기구정도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탈 수 있는 사람. 오히려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
‘오늘 일이 있다던데······’
일단 전화라도 걸어볼까.
스마트폰을 꺼낸 나는 곧장 한세연에게 통화를 연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