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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94화 (195/226)

§ 194화

······이유나와 한세연은 서로 3분씩 번갈아가며 겁을 줄 차례를 가지기로 했다.

하지만 공포에 잠식당한 이유나는 자신의 차례가 와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3턴이 지나갔고, 한세연의 일방적인 차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다음은 당신 차례인데······ 기절해버렸네요.”

한세연이 총을 내리자 주위는 정적에 잠겼다.

그만큼 이유나의 상태는 처참했다.

바닥은 축축했고, 눈과 코, 벌어진 입가에서는 분비물이 질질 흘렀다.

처음의 화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추한 몰골이었다.

그 모습은 말끔한 한세연과 비견되어 더욱 굴욕적으로 보였다.

미녀 앞의 오물 같다 해야 할까.

화려하니 예쁜 여자였는데······

“윽, 누린내.”

“···뭐야, 설마 지린 거야?”

이유나에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에 사람들이 코를 막으며 거리를 벌렸다. 스마트폰을 들어 촬영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한세연은 그런 이유나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는지 눈길도 주지 않고 내게 다가왔다.

“많이 기다렸지?”

“아니, 얼마 안 됐어.”

나는 뒤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어색하니 대답했다.

─막아!

─찍지 마!

이유나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달려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유나의 굴욕적인 모습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보아버렸고, 찍힐 만큼 찍혀버린 뒤였다.

“갈까?”

“···어, 그래.”

한 여자의 평판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보내버린 한세연이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긴다.

뒤에서는 난리가 났건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 놀이공원에 왔다는 사실 때문인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저건가 보네.”

요정이 준비한 정신 나간 롤러코스터를 보며 한세연이 기대감에 눈을 빛냈다.

“엄청 재밌겠다.”

예상하던 반응이었으나 언제 들어도 놀라웠다. 저게 재밌겠다니······. 애가 도무지 겁이란 게 없었다.

‘이래서 부른 거긴 하지만.’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자니, 소피아가 다가왔다.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놀고 계세요.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비트세이버를 하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VR기기에 맛이 들렸는지 눈을 반짝여 보이는 소피아. 피식 웃은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녀오세요오!””

파라솔에 앉아 솜사탕을 먹는 리디아와 니엘의 배웅을 받으며 나와 한세연은 롤러코스터의 입구로 향했다.

***

‘취미 한 번 고약하네.’

롤러코스터의 입구로 들어선 나는 혀를 찼다.

요정은 아예 우리를 겁주려고 작정을 했는지 입구부터 벼랑길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발을 디딜 수 있는 좁은 길에 아래로는 시뻘건 용암이 부글거렸다.

물론 저 용암이 진짜는 아니겠으나, 피부로 느껴지기로는 ‘진짜’였다.

이곳은 요정의 영역이기에 오감조차도 녀석 멋대로 조종을 하는 것이다.

그 탓일까.

아무런 능력도 쓸 수가 없었다.

‘그람?’

─······.

그람에게서도 답이 없는 데다, 기력까지 발동하지를 않았다.

‘완전 맨몸으로 오라는 거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내 정신 깊이 새겨진 부동의 각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작부터 용암길이 펼쳐진 것으로 보아 부동의 각인이 없었다면 나도 도전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아무튼 이렇게 모든 능력이 사라진 상태라면, 제아무리 뛰어난 초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용암길을 맨정신으로 건너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네.’

한세연은 마치 평지를 걷듯 용암이 펼쳐진 낭떠러지를 태연히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따라오지를 않자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주는 여유까지 보인다.

쟤한테는 겁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었다.

“해솔아, 안 가?”

“어, 갈게.”

내심 혀를 내두른 내가 낭떠러지를 거닐었다.

길게 이어진 용암길을 건너자 2개의 좌석이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화려하게 반짝이는 간판.

[지옥 열차]

─자리에 앉아주세요!

순간, 잔뜩 신이 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10초 내로 앉지 않으면 땅이 사라져버려요?!

쿠르르르릉···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왔던 벼랑길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십구팔칠육오사삼···

10초라면서?

무서운 속도로 숫자를 세어버리는 요정의 목소리. 이건 뭐, 순 지멋대로였다.

얼른 자리에 앉자, 진짜로 모든 땅이 용암으로 가라앉았다.

쿠구궁···

─그럼 열차 출발할게요!

요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자가 수십미터 상공으로 부웅- 떠오르기 시작했다.

레일따위는 없었고, 파란 하늘과 구름이 펼쳐졌다. 발밑으로 지상의 놀이공원이 내려다보였다.

“풍경 좋다, 그치.”

“···어? 응. 좋긴 좋네.”

하얗게 펼쳐진 운해를 가리키며 상쾌하게 웃어 보이는 한세연.

머리를 휘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미소를 짓는 그녀는 정말로 신이 나 보였다.

······이걸 마음 놓고 즐겨도 되는 건가?

‘지금도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를 태운 의자는 어디까지 올라가려는지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끝도 없이 올라가던 의자는 놀이공원이 자그마한 점처럼 보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상승을 멈추었다.

─그리곤 돌연 사라졌다.

“···뭐?”

여기서 떨군다고?

내가 멍하니 중얼거림과 동시에 나와 한세연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나운 강풍이 얼굴을 때리고,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인다. 순간 내 오른손을 무언가가 꽉 쥐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친 한세연이 방긋 웃어 보인다.

의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그녀가 내 손을 깍지 껴 잡은 것이다.

이윽고 반대 손마저 붙잡은 순간, 하얀 구름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었다.

구름의 영역을 통과하자 지상이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져 왔다.

─아하하!

그 와중에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한세연의 맑은 웃음소리.

왠지 모르게 진정되는 웃음에 내가 피식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돌연 의자가 다시 생겨나며 추락이 멈추었다. 그리고 예의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하하, 어때, 재밌지? 재밌지?

내가 어이없어하는데, 옆에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재밌어.”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에 요정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얘 당황했네.’

한세연을 아는 나도 적응이 안 갈 정도인데 처음보는 요정이라면 오죽할까.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요정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럼 진짜 제대로 간다?

말과 동시에 레일이 펼쳐졌다. 그 위를 의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엉덩이가 아파올 정도로 요동치며 레일 위를 질주하는 의자.

“···미친.”

레일의 너머를 바라본 내 입에서 나직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소피아와 내가 올랐던 미아랜드의 뒷산 절벽. 그 절벽이 순식간에 가까워져 오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이번엔 아까처럼 멈추는 것도 없었다.

─돌진이었다.

콰아아아앙─!

의자가 절벽과 부딪히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산산조각 박살 난 의자의 잔해가 레일의 아래로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 살 떨리는 광경을 나는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의자가 박살나기 바로 직전 상공으로 이동된 것이다.

뿅! 나타난 요정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껴보였다.

내 손바닥 크기에 잠자리 같은 날개가 달린 여자아이였다.

─어때, 이-

“아하하! 재미있다.”

순간 요정의 목소리를 끊으며 울리는 웃음소리. 한세연이 눈가를 훔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하려던 말을 잊어버린 요정이 어버버 거렸다.

─조, 좋아. 그럼 다음 거야!

후아앙─

복구된 의자가 나와 한세연을 태우고 달려나간다.

─레일이 끊어져 있어! 어때, 무섭지?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요정이 한세연의 귓가에 대고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진짜 떨어질 거야!

그 조급함으로 미루어봤을 때 요정 본인이 정해놓은 ‘룰’을 우리가 깨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요정이 아무리 겁을 주어도 우리 둘 중 겁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야 부동의 각인으로 인해 정신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 한세연은 오히려 스릴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요정의 시험은 점점 기상천외하고 아찔해져 갔으나, 그것은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열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실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불구덩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한세연은 이를 너무도 즐거워했다.

─···뭐, 뭐야. 너? 미친 거야?

결국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요정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한세연과 내 주위를 뱅뱅 돌아대며 제정신이냐고 따져 묻는 요정.

“이제 다 끝났냐?”

─흥, 아직이야.

내 물음에 당혹감을 멈춘 요정이 코웃음을 쳐보이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이어서 주변의 공간이 바뀌었다.

사방이 물결치며 반사되는 공간이었다.

여기가 어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요정의 통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거울 속이야.

“거울 속?”

─응, 너희가 탈락할 공간이지.

“통과하면?”

─그럼 던전을 클리어한 것으로 인정해줄게.

“진짜지?”

─요정은 거짓말을 안 해.

“그런 것치곤 아까부터 계속 기구 떨어진다고 거짓말한 것 같은데.”

─그럼 시작할게.

내 말을 시원하게 묵살해 버린 요정이 곧장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순간 내 옆에 서 있던 한세연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

수십, 수백에 달하는 한세연이 내 주위에 나타났다.

─어때, 구분할 수 없겠지?

“···어, 못하겠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뺨을 긁적였다.

아닌 게 아니라, 주위에 나타난 이들 중에 나는 누가 진짜 한세연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가짜들에게는 한세연의 특징을 넘어서 영혼마저도 똑같이 반영이 되어있던 것이다.

─구분을 하면 너희의 승리야.

망할 요정새끼.

신이 나 재잘거리는 것이 확 모가지를 잡아다가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나저나.

‘진짜 모르겠네······.’

암만 주위를 둘러봐도 누가 진짜 한세연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고심이 무색하게도 나는 한세연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타다다다다당─!

한세연들(?)이 서로를 쏴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붉은 피가 물감처럼 거울의 세상을 수놓는 그 광경을 나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기절초풍할 광경에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 어? 이, 이게 뭔······!

요정 또한 얼이 나갔는지 어버버 거리며 할 말을 잃었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서로간의 무자비한 총살전이 이어지고 한세연이 하나, 둘 쓰러져갔다.

그렇게 숫자가 두자리로 대폭 줄어들었을 때 나는 진짜 한세연이 누군지 분간할 수 있었다.

타앙─! 타앙─!

주위의 가짜들을 사정없이 쏴죽이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자.

그녀가 홀로 남자 주위에 쓰러져있던 가짜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잠시 이를 말 없이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이제 끝났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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