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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96화 (197/226)

§ 196화

······나는 기력을 이용해 소피아의 체내에 돌아다니는 불순물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불순물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그냥 마력인데?’

불순물은 이를 지닌 당사자에게는 방해가 되는 기운일지 몰라도 그것은 단지 속성이 조금 다를 뿐인 마력이었던 것이다.

여러 속성이 잡다하게 섞여 있어서 써먹지 못할 뿐인 거지.

이러한 마력을 그냥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아까운 짓이었다.

물론, 오염된 마력은 독기와 같았기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게 이터니티의 정설이었다.

수십 종류의 마력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것을 풀어내는 것은 암만 마력에 조예가 깊다고 해도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전제에서 오직 나만큼은 예외였다. 풀지 못하면 싸그리 녹여버리면 그만이었으니.

화르륵─

내 손에서 일어난 푸른 불길에 소피아에게서 빨려 나온 불순물이 녹아내린다.

그리고 그렇게 녹아내린 마력은 불길과 함께 내 어깨의 문양으로 흡수되었다.

불사조는 양질의 먹이를 선호하는 존재이지만, 기운에 관해서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 ‘잡식’이었으니.

[불사조가 경험치 185를 획득했습니다.]

‘이거지.’

어지간한 마인 하나를 잡은 것만큼의 경험치에 내가 만족스레 웃었다.

나는 의자에 기대 선잠에 빠진 소피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불순물이 빠져서 그런지 안 그래도 하얗던 소피아의 피부는 전보다 더욱 밝아져 있었다.

창가에 은은하게 비치는 은발에서는 윤이 흘렀고, 분위기도 눈에 띄게 환해졌다.

그 안에 흐르는 순도 높은 혼마력에 나는 저도 모르게 나직이 감탄을 터트렸다.

내가 만들어낸 작품이라지만 이는 정말 ‘사기급’이었으니까.

기운에 조예가 깊은 초인이 보았더라면 놀라 입을 벌릴 만큼 소피아의 기운은 정순하기 그지 없던 것이다.

이러한 짓을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이터니티에 오직 나밖에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기에, 전시안에 비친 소피아의 혼마력에는 아직도 불순물이 제법 끼어 있었다.

단번에 긁어내기가 어려울 만큼 불순물을 제거하는 건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저것들은 소피아가 평생 동안 쌓아온 때와 같았으니.

‘다 긁어내려면 3번은 더 해야겠네.’

그 말은 불사조의 경험치를 3번은 더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좀 노가다이긴 해도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기에 이 정도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만큼 소피아가 밝아지는 것도 나름 보는 맛이 쏠쏠했고.

그때, 창가를 통해 들어온 루시가 소피아를 보며 경악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말도 안 돼! 깨끗해졌잖아?!

소피아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루시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부산스럽게 떠들어댔다.

그 소란스러움에 소피아의 기다란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아우음······”

이상한 옹알이를 하며 오물거리는 입술이 귀여웠다. 작게 웃은 내가 소피아를 깨웠다.

“일어나세요, 다 끝났어요.”

“우으음-”

여운에 잠겨 있던 소피아가 슬며시 눈을 떴다. 멍하니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던 그녀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볍게 팔다리를 움직여 본 소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이······”

몸이 가벼웠다.

이전이 등에다 돌을 이고 다닌 것이라면 지금은 날개를 단 것처럼 상쾌했다.

소피아는 그것이 체내의 불순물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몸에 흐르는 혼마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해져 있던 것이다.

마력로를 타고 도는 혼마력이 막힘없이 쭉쭉 뻗어나갔다.

“해솔님, 이게······”

“어때요, 좀 가벼워졌죠?”

내 말에 소피아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예, 힘이 넘쳐흐릅니다.”

“좋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루시를 보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요정경에 갈 수 있냐?”

─어, 으, 응.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고개를 휘휘- 저어 보인 루시가 소피아를 가리키며 묻는다.

─대체 어떻게 한 건데?

“그야 불순물을 없앴지.”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거야?

“어, 나는.”

─아니, 무슨······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루시의 말에 더 이상 답을 해주지 않은 채 내가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나가서 세연이 좀 들어와달라고 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

······내가 전시안을 통해 불순물을 뺄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게 무턱대고 막 빼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섣불리 불순물을 건드렸다간 기운이 반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컸으니까.

몸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기에, 나와 유대감이 깊은 이들에게나 쓸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나와 유대감이 가장 깊은 건 융합력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이들이었다.

“나 불렀어?”

“어. 불순물 빼자고.”

내 방에 들어오기 무섭게 자연스레 침대에 앉아버리는 한세연.

소피아가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워서 탈이라면, 얘는 너무 대담해서 곤란했다.

이건 무슨 내 방이 아니라 자기 방에라도 들어와 있는 듯한 편안함이었으니.

“어떻게 하면 돼?”

“등 돌리고 앉아.”

“응.”

내가 등에 손을 얹기 쉽게끔 제 긴 머리를 가지런히 모아 앞으로 넘겨주기까지 한다.

“뺀다?”

“응.”

긴장조차 보이지를 않고 대답을 하는 한세연. 나는 괜스레 뺨을 긁적였다.

‘이거 날 너무 믿는 거 아니야?’

암만 그래도 자기 몸을 맡기는 건데 애가 도무지 걱정이란 게 없다.

이래도 되는 건지 내가 더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내심 고개를 저은 나는 한세연의 등에 손을 얹고 기력을 주입했다. 그렇게 불순물을 걸러내며 나는 조금 놀랐다.

‘별로 없네.’

한세연의 마력에는 생각보다 불순물이 적었다. 불순물이라 착각했던 것들은 거진 모르도의 마기였고, 나머지조차 생활하면서 쌓인 먼지 수준이었다. 그만큼 마력호흡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리라.

‘그러고 보니 총 쏠 때 빼곤 마력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네.’

남들은 일상에서 편의를 위해 마력을 사용하는데, 한세연은 일절 그런 것 없이 전부 몸을 움직이는 특이케이스였다.

일상생활에서 마력을 쓰지 않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한세연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이건 무슨 아날로그 인간도 아니고······

‘이러니 불순물이 쌓일 틈이 없지.’

내심 혀를 내두른 나는 불순물 제거작업을 끝마쳤다.

말은 짧았으나 걸린 시간은 대략 2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도중부터 잠에 든 한세연은 아예 내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세상 곤히 자는 게 무방비해도 어쩜 이렇게 무방비할 수가 없는 모습이다.

“다 끝났어. 일어나.”

“으음······”

한세연이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곤 고개를 뒤로 젖혀 졸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곤 몇 차례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몸을 기대버린다.

“끝났어?”

“어, 별로 뺄 것도 없더라.”

그제야 기지개를 쭉 피며 몸을 일으킨 한세연이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고생했어.”

“고생한 거 알면······”

순간 말을 하던 내 입가로 무언가 달콤한 게 밀려 들어왔다. 하얀 손에 잡혀 있는 그것은 빼빼로였다.

툭- 끊어먹자 그것을 또 내 입에 넣어주는 한세연.

“모이 먹이냐?”

“싫어?”

내가 빼빼로를 다시 끊자 그걸 제 입에 문 한세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입에 물린 빼빼로를 빼앗아 내 입에 다 집어넣었다.

“······.”

순간, 눈이 동그랗게 떠진 한세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괜시리 민망한 기분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잠 다 깨면 나와.”

***

······요정경에 가게 된 인원은 나와 한세연, 아멜리아, 소피아. 이렇게 4명이었다.

나야 수호자를 만나러 가야한다 쳐도 나머지 세 사람의 이유는 제각기였다.

소피아는 나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한세연은 내가 간다니까. 그리고 아멜리아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요정경이라니,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가볼 수 있겠어요?”

“그렇긴 하지.”

눈을 반짝이는 아멜리아는 꿈에 젖은 소녀와 같은 얼굴이었다.

확실히 요정경은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신비의 장소였으니.

참고로 우리가 요정경에 간다는 것은 리디아와 니엘외에는 이본느밖에 모른다.

우리만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자랑하는 것밖에는 안 되었으니.

─미리 말해두는데 요정경에 가게 되면 화가 난다고 해도 절대 공격을 하면 안 돼.

아멜리아가 갸웃거렸다.

“화가 날 일이 있나요?”

─가보면 알아.

으득, 이를 갈면서 말하는 루시. 왠지 본인이 화가 날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대충 짐작가네.”

“예.”

내 말에 소피아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들의 성격이 루시와 같다면 화가 날 일이야 잔뜩 있을 테니.

분명 놀래킨다면서 골탕을 먹이려 들게 뻔했던 것이다.

‘놀래키는 걸 좋아하는 건 종족 특성인가 보네.’

─준비됐지? 그럼 연다?

······마경의 저택 앞. 루시가 요정경으로의 통로를 개방했다. 풍경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내는 시꺼먼 아공간.

그것은 우리 네 사람을 집어삼켰고,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콰과과과과······

녹빛 폭포가 계단형의 언덕을 타고흐르며, 거대한 호수가 펼쳐진 숲.

붉고 파랗고 노란 색색의 나무들 사이로 요정들이 웃으며 날아다닌다.

루시와 같이 작은 요정들도 있었으나, 늑대와 호랑이처럼 동물의 형상을 한 요정들도 눈에 띄었다.

“······와.”

“신비한 곳이군요.”

주변을 둘러보며 일행이 나지막한 감탄을 터트린다.

─흥, 신비한 곳은 무슨.

소피아의 감상에 루시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이곳에 다시 오게 된 것이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우리의 등장을 알아차린 요정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인간이다! 인간!

─루시도 있어!

수호자 외의 인간은 처음 보는지 요정들은 우리의 주위를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날아다녔다.

그런데 우리를 대하는 요정들의 분위기가 어째 호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거리를 벌리는데 경계를 하는 기색이 다분히 느껴졌던 것이다.

─크르르······

어떤 늑대는 아예 대놓고 적개심을 표출하기까지 했다.

가출 요정을 데려다주면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던 나로서는 전혀 예상 밖의 분위기였다.

“야, 요정들은 환대를 원래 다 이런 식으로 하냐?”

─그, 글쎄, 왜 이러지?

루시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시의 분위기가 거짓이 아닌 걸로 봐서 이는 결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는 왜 요정들이 우리를 적대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노예상인!

─루시를 납치해간 인간들이야!

“······뭐?”

뜻밖의 이야기에 우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뻔뻔하게 잘도 이곳까지 들어왔구나!

콰아아아앙─!

인간 크기의 요정이 분노어린 얼굴로 우리의 앞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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