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요정경의 탐색을 마치고 세계수로 돌아오니 소피아가 운해를 바라보고 앉아서는 뚱한 표정으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아침의 요정경 탐색에 소피아만을 뚝 떼어놓고 다녀왔으니까.
요정경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운해의 위를 날아다녀야 하는데, 소피아의 체질 상 그게 어려울 듯했기 때문이다.
“삐졌어요?”
“아닙니다. 제가 해솔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삐졌네.’
아니라는 말과 달리 소피아의 볼은 여전히 작게 부풀어 있었다. 무릎을 감싸 쥔 손도 그대로고. 저거 안 데려가서 삐진 거다.
괜히 신경 쓰일까 봐 아예 말도 안 하고 다녀왔으니.
“먹어요.”
“이건 뭡니까?”
소피아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파란 구름’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구름사탕이에요. 요정경의 구름으로 만들었다더라고요.”
요정들은 신기한 재주를 다양하게 부릴 줄 알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구름사탕이다. 요정경에 남아도는 구름을 가져다가 요정술로 빚어낸 거라고 하니.
그러한 신비한 제조법 때문일까. 구름사탕은 솜사탕과는 차원이 달랐다.
솜사탕은 설탕 탓에 먹으면 입 안에 텁텁함이 남아버리는데, 이 구름사탕은 먹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서 구름사탕을 받아 한 입 먹은 소피아의 눈이 동그레졌다.
“···오. 이건 정말 신기한 사탕이군요. 뒷맛이 깔끔합니다.”
소피아는 언제 삐졌었냐는 듯, 풀어진 얼굴로 구름사탕을 즐겼다.
그렇게 하나를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해치운 소피아가 휑하니 남은 막대만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피식 웃은 내가 구름 사탕을 하나 더 내밀었다. 저럴 줄 알고 몇 개 챙겨왔으니까.
”감사합니다.“
환한 표정이 된 소피아가 행복한 얼굴로 구름사탕에 취한다. 그렇게 이러한 상황이 몇 번쯤 반복되었을까.
“해솔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소피아를 지어 보였다.
“그 마지막이 지금 여섯 번째인 거 아시죠?”
“······.”
할 말이 궁색해진 소피아가 멋쩍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모습에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무슨 흡입 괴물이네.’
나중에 생각날 때 먹으려고 구름사탕만 13개를 챙겨왔는데, 그중 9개가 벌써 소피아의 입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문제는 저게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라는 거다. 소피아는 한 번 꽂히면 한 없이 먹어버리니.
참고로 전에 함께 들렸던 협회 앞 붕어빵 가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 소피아가 자주 다녀갔는지 가게 아주머니가 소피아의 모습을 멀리서만 봐도 바로 알아보신다. 그걸 보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피아가 구름사탕의 막대기를 노려보며 결심한 듯 말한다.
전장에 나설 때보다 더욱 각오가 어린 비장한 표정에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
······세계수는 현실로 치자면 거대한 고층 아파트라 할 수 있었다.
크기는 하나의 나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방대하며, 요정을 탄생시킨 모체답게 수많은 요정이 기거하는 주거구역이었으니.
“무서우면 안 나오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어제처럼 해솔님이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는데, 혼자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소피아가 고집스레 앙다문 입으로 신념을 표출한다. 그러곤 바로 어깨를 움츠리며 대검을 움켜쥔다.
“으으······”
‘이래서 안 데리고 나오려 했는데······’
내가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현재 우리는 모래배를 타고선 세계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낮의 탐방이 요정경을 돌아본 것이었다면, 이번엔 세계수만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소피아가 이번에는 자신도 동행하겠다며 구태여 모래배에 올라탔다.
그런 소피아를 나는 말리지 않았다. 의외로 고집이 쌔서 한 번 한다 하면 어지간해서는 뜻을 꺾지 않는 소피아였으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무서워하고 있다······.
“그, 그만하십시오! 모래배가 기웁니다!”
셀라피네로부터 조종권을 넘겨받은 아멜리아가 신기해하며 모래배를 이리저리 마구 움직여보자 소피아가 기겁하며 만류한다.
“한 번만 기울여봤어요.”
“지금도 기울어 있지 않습니까!”
조종에 맛들린 아멜리아와 소피아가 실랑이를 벌이는 한편, 나는 세계수를 오가는 요정들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이중에 전대의 요정왕이 있을지도 몰랐으니.
이런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한세연이 물어왔다.
“뭐 찾아?”
“어, 세계수의 정령.”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가 찾고자 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지금의 요정왕은 화신체이며, 내가 찾는 것은 그 본체라는 것을.
“흐음.”
한세연은 그 말을 듣고는 날아다니는 요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본체를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은 채 말이다.
기실, 내가 요정왕의 본체인 세계수의 정령을 찾으려는 이유는 이터니티에 벌어진 균열과 연관된 능력을 그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호자를 죽여서 균열이 벌어져도 세계수의 정령이라면 다시 메꿀 수 있으니.’
반대로 균열의 번짐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는 아주 무서운 힘이었기에, 세계수의 정령은 그 힘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늦네.”
벌써 오후가 되었건만, 아침나절에 나갔던 아나스타샤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곳에 정신이 팔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나스타샤였기에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여태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했다.
나와 약속한 바는 꼭 지키는 착실한 아이가 바로 아나스타샤였으니까.
뭐, 급할 건 없었기에 나는 세계수를 돌아보며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우리가 세계수를 모두 둘러볼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나스타샤가 많이 늦네요.”
“음, 그러네.”
결국 일행까지도 의아해자 나는 아나스타샤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와 아나스타샤는 영혼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든 것이 얽힌 존재였으니.
그저 아나스타샤가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래배를 탄 우리는 운해를 내려와, 아나스타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풀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즈음에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연결이 흐릿하다.’
서로가 가까워지면 느껴지는 존재감 또한 또렷해져야 하건만, 내가 느끼는 아나스타샤의 존재감은 세계수에서 느꼈던 그대로였던 것이다.
“해솔아?”
“빨리 가자.”
아나스타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나는 빠르게 수풀을 벗어났다.
그러자 수풀의 바깥으로 까마득한 절벽이 펼쳐졌다. 내가 그 절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아래야.”
아래에서 아나스타샤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 말한 나는 문득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허.”
내가 돌아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행은 물론, 심지어는 수풀까지도.
대신······
“지랄을 해라, 아주.”
─크아아아!
지룡, 키아브리스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본 내 입에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
······내가 지룡과 조우할 무렵, 모두가 걱정했던 아나스타샤는 의외로 안락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꽃밭의 오두막. 그곳에서 아나스타샤는 녹음의 여인과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맛없어.”
그릇에 놓인 풀떼기를 포크로 뒤적이며 아나스타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런 아나스타샤의 투정에도 녹음의 여인은 되려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맛이 없구나.”
“·········응. 풀만 먹으면 안 좋아.”
“하지만 너와 나는 정령인 걸?”
“·········무슨, 정령?”
“음, 분류하자면 드라이어드일까?”
순간 아나스타샤의 금안이 별처럼 반짝였다.
“·········드라이어드, 친척.”
“푸훗, 그래. 친척이구나.”
그때 돌연 아나스타샤가 창밖을 돌아보더니,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그러니?”
“·········해솔, 왔어. 가봐야 해.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올게.”
드라이어드를 보며 아나스타샤가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게 아나스타샤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
아나스타샤의 앞으로 수많은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영상을 보는 아나스타샤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나가면 힘들 거야. 그래도 나가고 싶니?”
“·········상관, 없어.”
“이곳을 나가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데?”
“·········또 봐.”
자리에서 일어난 아나스타샤가 오두막의 문고리를 거머쥐었다.
드라이어드, 세계수의 정령 샤린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다행이구나.”
“·········?”
그 의미 모를 말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샤린이 아나스타샤에게 다가가 그 노란 정수리에 손을 얹는다.
“세계수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하길.”
샤린의 손이 은은한 녹빛에 잠들었다 사라진다.
“가보렴.”
끄덕.
아나스타샤가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나선다. 그러자, 펼쳐지는 다채로운 색의 꽃밭.
그곳의 한쪽에서는 이해솔이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그쪽으로 향하자, 샤린이 배웅하듯 뒤따른다.
***
······내가 마주한 것은 정신에 작용하는 일종의 환영진이었다.
그 수준은 내가 여지껏 보았던 그 어떤 환영보다도 완성도가 뛰어났다.
오죽했으면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나조차도 실제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실제처럼 느껴질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이상 내 정신에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그것이 정신능력자의 특권이었으니.
“사라져.”
──────!
기둥처럼 내리꽂히던 황금색 브레스가, 키아브리스와 함께 눈이 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주위가 바뀌며 눈앞에 화려한 꽃밭이 펼쳐졌다.
저 멀리, 오두막을 열고 나오는 아나스타샤가 보였다.
사박사박.
꽃밭을 가로질러 온 아나스타샤가 내 손을 붙잡는다.
“일찍 좀 다녀라.”
“·········응.”
왠지 모르지만, 내 손을 꼭 붙잡는 모습에 피식 웃은 내가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선 여인을 본 내가 눈을 빛냈다. 녹빛의 머리에, 녹안을 지닌 여인은 바로 내가 찾던 정령이었기에.
“요정왕.”
그녀는 바로 세계수의 정령, 샤린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내 용건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샤린이 내게 자신의 능력을 넘겨준 것이다.
[기프트, 아공의 조율자를 습득했습니다.]
상태창에 추가되는 기프트.
마치 내가 이것을 가지러 왔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넘겨주는 모습에 얼떨떨해 있자니, 샤린이 입을 열었다.
“조만간 그것을 쓸 일이 생길 것입니다.”
예언이라도 하듯 말하는 그 모습에 내가 그 일이 무엇이냐 물으려 했다.
하지만 뭔가를 물을 새도 없이 나와 아나스타샤는 처음 왔던 절벽의 위로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힘찬 기합성.
“하아앗-!”
내 머리 위로 내리꽂히던 대검이 도중에 움직임을 멈춘다.
“해솔님!”
나를 발견한 소피아가 대검을 내리곤 눈을 크게 뜬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걱정했습니다.”
“검은 왜 휘두르고 계셨던 거예요?”
“결계가 있다면 부수려고······”
“해솔아!”
순간, 내 품으로 한세연이 뛰어들었다. 그 뒤로 아멜리아가 보인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는 어느새 일행에게 돌아와 있었다.
***
한편, 내가 요정경에서 세계수의 정령을 만난 사이, 바깥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필드의 어느 지하 주차장.
“엔마, 이 자가 맞느냐?”
“맞습니다. 수호자 ‘라셀’입니다.”
차 문을 열던 남자, 수호자 이호진은 자신을 가리키며 대화를 나누는 한 쌍의 남녀를 보곤 표정을 굳혔다.
그중 엔마라 불린 여성은 라셀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요정경과 척을 진 5인의 수호자 중 유일하게 종적이 묘연해진 여자였으니.
“어디 갔나 했더니 이상한 놈하고 빌붙어 다니고 있었군.”
이호진은 차에 타려던 것도 잊은 채 엔마에게 다가갔다.
그 옆의 남성은 이호진의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수호자 외의 인간은 경계해야할 대상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 인간이 하는 말은 이호진의 심기를 크게 건드려버렸다.
“그저 넘겨받은 힘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구나.”
“넘겨받은 힘이라···”
이호진이 사납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남자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때론 그 넘겨받은 힘이 세상의 전부일 때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나?”
“그렇기에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거네.”
“억울하면 너도 받던지.”
순간, 이호진의 손에서 일어난 순백의 불길이 남자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하, 별것도 아닌 것이.”
별다른 대항조차 못하고 불길에 타오르는 남자를 이호진이 비웃었다.
이랬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수호자가 지닌 ‘억지력’앞에서는 기운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호진은 같은 수호자 외에는 누구도 경계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불길에 먹힌 것까지만을 보고선 엔마에게 고개를 돌려버렸으니.
그런데 엔마는 일행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그것에 이호진이 의문을 느끼기도 전이었다.
“컥!”
순간, 목에 가해지는 압력에 이호진의 숨이 턱 막혔다. 눈알을 굴려 옆을 바라본 이호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
불길의 속에서 뻗어 나온 손이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것이다.
저벅─ 저벅─
불길을 가르고 나오는 남자를 보며 이호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남자는 그 흔한 그을음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대는 균열을 열기 위한 제물이 되어줘야겠네.”
남자, 영멸의 밤이 이호진을 마주 보며 나직이 말해 보였다. 그리고 이호진의 목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