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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01화 (202/226)

§ 201화

[아공의 조율자]를 얻어 세계수로 돌아오니, 요정왕 엘리아드가 나를 반겼다.

“샤린님은 잘 만나고 오셨습니까?”

그는 내가 세계수의 정령인 샤린을 만나고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화신체가 바로 엘리아드였으니.

“보기야 봤는데, 한 마디도 못 나눠봤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원래 그런 분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잘 알겠다는 듯 쓴웃음을 짓는 엘리아드의 모습을 보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사, 제 화신하고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정령이었으니.

‘소통능력이 제로라는 건가.’

그 정도면 요정왕의 자리를 내팽개칠 법도 하다. 뭐, 나야 고맙게도 아공의 조율자마저 받았으니 크게 불만이야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대만족이었다.

아직 사용해보지는 않았으나 아공의 조율자는 단순히 균열을 조절하는 데만 사용되는 기프트가 아니었다.

아공을 열어 상대를 가둔다던가,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동시킨다던가······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재주를 가능케 하는 사기적인 기프트가 바로 아공의 조율자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루시는 어디 있습니까?”

“가시려는 겁니까?”

”예, 볼 일은 다 봤으니 가야죠.“

아공의 조율자를 얻었다지만 아직 수호자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균열이 가속화되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수호자가 죽지 않게 하는 것이었으니.

‘아니면 수호자 자체가 쓸모없어지게 만들거나.’

물론 후자의 경우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는 했다.

뭐가 됐건 수호자를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였지만.

그보다 지금 가장 궁금한 점은 샤린이 마치 내가 미리 올 것을 알고 있던 것 같은 태도였다는 점이다.

그저 능력을 빌리려는 생각뿐이었건만, 아공의 조율자를 넘겨준 것 또한 굉장히 당황스러웠으니.

‘아공의 조율자’라는 균열의 열쇠를 수호하는 것이 세계수의 정령이 지닌 사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정말 예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던 것이다.

“엘리아드님. 세계수의 정령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까?“

“호오, 샤린님으로부터 무언가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엘리아드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예, 조만간 자신에게 받은 능력을 사용할 일이 있을 거라더군요.”

“그렇다면, 그건······”

그때였다.

파즈즛─!

돌연 엘리아드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몸에서 응어리진 마력이 회오리쳤다.

“으음···”

신음을 흘린 엘리아드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수호자가 죽었습니다.”

***

엘리아드로부터 수호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나는 곧장 마경으로 복귀했다.

마경에 돌아왔을 때는 놀랍게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무렵이었다.

우리가 요정경으로 향한 게 오전 일찍이었으니, 반나절도 흐르지 않은 셈이다.

“전 피곤해서 좀 자러 가봐야겠어요.”

“그럼 저는 밀린 영화를 좀 보겠습니다.”

아멜리아가 졸린 표정으로 저택의 방으로 들어가고, 소피아도 여가를 즐기러 간다.

“너는 어디 안 가냐?”

홀로 남은 한세연을 보며 묻자 그녀가 나를 멀뚱히 올려다보며 말한다.

“지금부터 뭐 하러 가려는 거 아니야?”

······하여간 눈치도 빨라.

얘는 내가 뭐를 하려 하는지 기가 막히게 잘 알아 맞춘다. 거짓말이 아예 통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가끔은 독심술이라도 익힌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뭐, 상관없나.’

데리고 다녀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기에 나는 한세연의 동행을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사안이 중대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수호자의 죽음. 그것은 균열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으니.

그리고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노아.’

균열을 막는 그녀야말로 수호자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사람이었다.

“어쩐 일이야, 해솔아? 세연이도 왔네.”

마경의 한복판. 피 묻은 검을 거둔 천우진이 나와 한세연을 반갑게 마주한다.

나는 천우진 앞에 쓰러진 거대한 마수를 흘낏 바라보았다. 독수리의 상반신에 사자의 하반신을 가진 마수.

‘그리폰.’

5성 마수 중에서도 오크 워리어 다음간다는 최상위 개체. 그런 녀석이 도륙이 난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반면 천우진은 어떠한 부상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다.

‘역시 성장이 빨라.’

마경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리폰을 잡는 수준이 되다니. 정말 놀라우리 만치 빠른 성장 속도였다.

천우진 외에도 일레인, 은가예도 각기 마수를 사냥하며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내심 고개를 끄덕인 내가 천우진을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노아님이랑 연락 좀 할 수 있을까?”

“노아 선생님?”

“어, 중요한 일로 물어볼 게 좀 있어서.”

“가능할 거야. 잠깐만.”

검을 집어넣은 천우진이 손을 닦곤, 노아에게 통화를 건다. 그렇게 얼마간 통화음이 이어지다 끊기니 천우진이 갸웃거렸다.

“안 받으시는데? 무슨 일 있으신가?”

역시.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아차린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안 되면 됐어, 먼저 가볼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리 말하고 천우진과 헤어진 우리는 곧장 이터니티 아카데미로 향했다.

“노아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있어?”

자초지종을 몰라 의아해하는 한세연.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이유를 말해주었다.

“아카데미에 균열이 생겼는데, 그걸 노아님이 막고 있어.”

균열에 관한 것은 극비라 할 수 있는 사항이었으나, 앞으로도 함께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될 것이었기에 나는 가르쳐주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한세연이 어디 비밀을 발설할 만한 성격도 아니었고.

과연 그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수호자의 죽음이 차원의 균열로 직결된다는 것이야 그녀도 엘리아드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마경을 빠져나온 우리는 도심의 워프진을 통해 아카데미로 이동했다.

***

아카데미에 도착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학년주임 정해준이었다.

내가 알기로 교수들중에서는 정해준이 그나마 노아와 가장 친분이 두터워 보였으니.

“일요일에 학교엔 어쩐 일이냐.”

“노아님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노아선생님?”

내 물음이 의외였는지 나를 바라보던 정해준이 이내 알겠다는 듯 씨익 웃는다.

“드디어 가르침을 받아보기로 결심을 한 것이냐.”

“그건 차차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보다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글쎄, 노아선생님이라면 북쪽동에 가면 계실 거다. 그보다 내일 특기수업 말이다만, 일이 없다면······”

“감사합니다.”

노아가 어디 있는 지를 확인한 나는 붙잡으려는 정해준의 말을 끊고, 학년 주임실을 빠져나왔다.

북쪽동이란 것 외에는 자세히 들은 게 없었으나 그것만으로도 나는 정해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 수 있던 것이다.

‘북쪽동이면, 고성인가.’

노아는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터니티에 갇혀 지냈다.

한 사람이 그 긴 세월 동안 줄곧 한 공간에 갇혀 지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노아처럼 자유분방하게 방방곳곳을 누비며 살아오던 사람에게는 말이다.

이터니티가 넓다곤 하다지만, 그것은 학교로 쳤을 때고, 한 사람이 백년이란 시간을 보내기에는 좁디 좁은 공간이었으니.

그랬기에 노아는 이터니티의 곳곳에 자신만의 공간들을 만들어두었고, 본인의 기분에 따라 거처들을 옮겨다녔다.

북쪽동은 그런 노아의 거처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거처였다.

그나저나.

‘데려오길 잘했네.’

나는 내 옆을 얌전히 따라오는 한세연을 보며 내심 좋은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북쪽동은 노아의 진짜 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했으니까.

마경에서도 깊숙이 들어가서야 볼 수 있는 고위급 마수들을 엄선해서 모아놓은 곳이 바로 북쪽동이었던 것이다.

노아의 허락 없이 안으로 들어선다면, 그 대상이 누가 되었건 마수들의 먹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세연을 대동하고 온 것은 신의 한수였다.

그녀가 있는 것만으로도 마수들의 접근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었으니.

‘문제는 노아가 기르는 것이 마수만이 다가 아니라는 거지만.’

이터니티의 북쪽동이라 불리는 필드의 어느 깊은 수림.

들어오라는 듯 숲의 가운데에 길게 난 길을 향해 한세연과 내가 걸음을 옮겼다.

위이이잉──

그런데 길목에 들어서니, 붉은 마력의 선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근처에 돌멩이를 하나 주워다 던져보니 결과는 끔찍했다.

타닥─!

불똥을 튀기며 먼지로 바스라져 버리는 돌멩이.

‘이거 닿으면 죽겠는데.’

문제는 선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통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걸 통과하려면 최소한 팔다리 한 짝씩은 내줘야 하지 않을까.

혀가 차졌지만 나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는 내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니까.

내가 위에서 아래로 손을 내리그으니, 풍경이 갈라진다.

키이이잉──

시꺼먼 아공(我空)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아공의 출구가 마력의 선들 너머로 열린다. 기프트, [아공의 조율자]의 공능이었다.

“가자.”

“응.”

이를 이채 띈 눈으로 쳐다보던 한세연이 내 손을 잡고 아공을 건넜다.

그렇게 첫 번째 관문을 가볍게 넘어선 우리는 여유롭게 숲길을 거닐었다.

양옆의 숲에서 수십 쌍의 샛노란 눈이 번득였으나, 그 어느 놈도 우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힘의 역학이 뚜렷한 마수의 특성상 모르도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한세연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

다만 말했다시피, 북쪽 동에는 마수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이 평화로워보이는 숲의 땅속에는 수백의 환수들이 ‘잠들어’ 있었으니까.

주위를 지나가면 잠에서 깨어나는 이놈들은 마수와 달리 사정없이 달려드는 놈들이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마력적 생명체인 이놈들은 한놈 한놈의 위력이 4성급 마수에 비견되었으니까.

그러한 녀석들이 길의 끝까지 잔뜩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잡는 것은 무리고 천천히 나아가며 깨어난 놈들부터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내가 알기론 그랬다.

탕─! 탕─! 타앙─!

양옆 전방의 땅이 파헤쳐지며 무언가가 터져 나간다.

그것은 ‘환수’였다.

녀석들은 잠에서 깨어나 보지도 못한 채, 사정거리 밖에서 쏘아대는 한세연의 마탄에 잠든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땅을 파고 들어간 녀석들의 위치는 표가 났고, 천리안을 피해 갈 수가 없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걸음을 늦추는 일 없이 길목의 끝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한세연이 너머의 환수들을 모조리 정리했으니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도 간단했다. 여기 분명 극악의 난이도인데······

‘그나저나 이거 다 안 죽여도 되는데.’

노아가 키워온 경비병들을 남김없이 모조리 없애는 게 너무 죽이는 거 아닌가 싶어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걸리적거리는 것을 모두 없애고 길목의 끝에 다다르니 수증기처럼 뿌옇게 낀 안개 너머로 낡은 고성(古城)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테마파크같은 게 아니라, 노아가 과거부터 살아왔던 성을 아카데미에 고스란히 옮겨온 그녀의 거처였다.

그때, 고성의 앞에 세워져 있던 기사형 동상의 눈이 붉게 빛났다.

[환영한-]

타앙─!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머리가 터져 나가버리는 동상.

“·········.”

···방금 그거 전령 아니었나?

분명 환영 인사를 건네려던 것 같은데.

‘뭐, 어때.’

사소한 건 넘어가기로 하자.

생각을 포기한 내가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자.”

“응.”

그렇게 한세연과 나는 노아의 고성으로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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