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노아의 고성은 마치 중세시대로 타임워프라도 한 것과 같은 착각이 일게 하는 오래된 건축물이었다.
크기는 아카데미의 본관에 견줄만한 수준이었으며, 고성 전체가 농도 높은 고밀도의 마력으로 넘쳐 흐르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부자유스럽다. 이만한 마력의 밀도는 필드의 최심부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마력은 순전히 단 한 사람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이었다.
피가 얼어붙을 것만 같은 혹한의 냉기.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으나, 나는 이것이 누구의 마력인지 알 것 같았다.
‘노아.’
그녀의 마력은 푸른 죽음이 어울리는 불길이었으나, 그 마력의 성질은 차디찬 냉기로 변질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화신체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위중한 상황이라는 것이겠지.
그 냉기의 마력 탓에 고성 전체는 얼음왕국처럼 살얼음이 잔뜩 끼어 있었다.
필드에 형성된 안개의 무리도 노아의 마력이 일으킨 현상이리라.
‘생각보다 심각한가 보네.’
노아는 평소에 자신의 마력을 완전히 갈무리하고 다닌다.
그렇기에 이처럼 주변에 마력적 현상을 일으키는 일이 일절 없었다. 오죽하면 아카데미의 교수들조차 노아가 마력을 지녔는지 헷갈려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노아가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외부에까지 신경을 쓸만한 여력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가라는 거야?”
고성을 돌아다니며 나는 혀를 찼다. 노아의 취향이 괴팍한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고성의 내부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어려우리만치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노아의 마력이 고성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것은 확실한데, 문제는 그 중심까지의 길을 찾기가 어렵다는 거다.
공간확장마법까지 걸려 있어 쓸데없이 넓기만 한 고성의 내부는 미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음···”
내가 벽을 앞에 두고 미간을 찌푸리자니 한세연이 갸웃거린다.
“왜 그래?”
“이 너머로 마력이 이어지는 건 알겠는데, 길이 어디 뚫려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급한 거야?”
“어, 늦으면 노아님이······”
콰앙─!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이 시원하게 개였다. 복도에 내려앉은 돌가루와 잔해. 벽이 뚫려 나간 것이다.
벙찐 내가 옆을 돌아보니 베레타의 달궈진 총구에 후- 바람을 분 한세연이 방긋 웃어 보인다.
“급한 거면 빨리 가야지.”
“···응.”
항상 느끼는 거긴 하지만, 한세연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파격적이었다.
***
벽을 부수며 나아가니 10분을 헤매며 나아간 거리를 불과 3분도 안 되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까지 고심하며 나아간 10분이란 시간이 허탈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래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힐끗 뒤를 돌아보니 무너져내린 서너 개의 벽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품이라 봐야 하는 고풍스러운 벽이었는데, 한세연이 이를 일말의 고민도 없이 파괴해버린 것이다.
“해솔아, 이제 어디로 가면 돼?”
애써 뚫린 벽을 외면한 내가 길을 묻는 한세연에게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쭉 앞으로.”
그 순간이었다.
콰광─!
돌연 내가 가리킨 벽이 박살 나며 누군가가 날아들었다. 길게 뻗은 다리가 한세연을 노렸다.
급작스러운 상황이었으나 한세연은 당황하지 않고 날아드는 상대를 향해 베레타를 연사했다.
침착한 대응이었으나 쏘아진 두 발의 마탄은 상대의 발끝이 움직이며 모두 튕겨 나갔다. 연이어 발끝이 한세연의 이마를 노린다.
한세연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마를 찰 것만 같던 발은 돌연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졌다.
파악─!
들어 올린 한세연의 팔이 발끝을 막으며, 그녀가 뒤로 주욱- 밀려났다.
“······.”
한세연을 발로 밀치며 내려선 상대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해솔.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음. 규격외 위험분자로 지정.”
내가 밀려난 한세연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
“응.”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상대의 발끝이 한세연의 이마를 가격하려던 찰나, 내가 기력의 막을 펼쳐 그 발의 움직임을 막은 것이다.
그렇게 움직임이 느려진 찰나 팔을 들어올린 한세연이 공격을 막은 것이었고.
“한세연. 전투등급을 B-에서 A+로 상향조정합니다.”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인은 내가 아는 누군가와 굉장히 닮아 있었다.
노아 맥도웰. 그녀가 어른이 되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판박이었던 것이다.
“침입자는 배제하겠습니다.”
전투자세를 잡는 상대를 보며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타샤 맥도웰.’
노아가 가문의 마력석을 이용해 탄생시킨 마법 생명체.
노아의 가디언이자 최강의 전투인형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타샤 맥도웰이었다.
팟─!
타샤가 한세연을 향해 쇄도했다. 이에 맞추어 한세연 또한 베레타를 연사하며 전투가 시작된다.
난사되는 마탄, 이를 뚫고 섬전처럼 치닫는 주먹과 발길질.
천리안을 발동한 한세연은 몰아치는 타샤의 공격들을 놀라울 정도로 잘 흘려내며 마탄을 쏘아내고 있었다.
다만 조금씩 밀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제아무리 놀라운 동체시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사수는 어디까지나 원거리에 특화되었지, 근접전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세연이를 공략하는 법을 완전히 꿰뚫고 있다.’
한세연의 천리안과 사격능력은 분명 놀라운 수준이었으나, 그녀의 진정한 능력은 바로 모르도의 ‘마기’였다.
모르도의 마기를 이용한 마탄은 마력의 탄환보다 위력이 더욱 뛰어났으니.
그런데, 타샤는 그걸 알기라도 하는지 한세연이 마기를 쓸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 바람에 한세연은 마기를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타샤는 한세연을 몰아치는 와중에도 나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세연을 몰아치면서도 나를 주시하는 시선이 계속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무언가 하려는 동작을 취하기라도 한다면 즉각 반응하겠지.
‘이미 나에 대한 조치도 취해놓았고.’
아닌 게 아니라, 내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마력의 응어리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한세연에게 달려들기 직전 타샤가 내 주위에 은밀하게 배치해둔 마력의 함정이었다.
그 마력의 함정은 고성에 퍼진 고밀도의 마력에 가리어 여간해서는 분별해내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력이었으니.
다만······
‘잘 보이네.’
내 눈에는 그 은밀한 마력의 응어리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왔다.
타샤는 내가 눈치채지 못하리라 예상했겠지만, 전시안을 사용한 내 시야에서 마력을 감춘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붉은 도화지에 분홍 물감을 뿌려 놓고 구분하는 정도의 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폭발 계열.’
닿으면 쾅! 하고 폭발하겠지.
‘이건 뭐, 보이지 않는 이상 무조건 닿을 수밖에 없겠네.’
나를 에워싸고 마력을 쳐놓은 것이, 모르고 나갔다간 무방비로 폭발에 휘말렸을 게 분명해 보였다.
전시안을 키지 않았다면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심지어 항마력으로 지워내는 것도 무리네.’
내가 항마력을 사용한다는 점까지 고려했는지, 마력의 응어리는 외부의 기운이 닿으면 자동으로 폭발하게끔 설계가 되어있었다. 그 치밀함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과연, 노아가 자랑하는 최강의 전투인형 다운 준비성이었다.
물론 은밀함에 치중한 탓에 무방비로 맞았을 때나 치명상이지, 기력을 몸에 두르고 나간다면 조금의 부상만으로도 통과할 수 있을 듯해보였다.
‘하지만 알고도 부상을 입는 건 마음에 안 들어.’
그렇다고 이대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았고. 그러니······
‘옮겨줘야지.’
키이이잉──
내 주위의 풍경이 갈라지며, 시꺼먼 아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
내 예상대로 타샤는 나와 한세연에 대한 공략법을 모두 완성해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인물에 대한 공략법을 모두 짜놓는 타입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내 주위에 마력을 배치해 항마력을 봉인하고, 한세연을 몰아세워서 마기를 발동하지 못하게끔 억누르고 있던 것이다.
내가 폭발에 당해준다면 좋고, 아니면 한세연부터 정리하고 상대하면 그만이었으니.
타앙─!
쏘아지는 마탄을 손등으로 쳐낸 타샤가 한세연을 향해 돌진한다.
그녀의 주먹이 한세연의 안면을 노리고 번개처럼 질러진다.
그에 맞추어 한세연의 고개가 옆으로 틀어지며, 타샤의 주먹이 허공을 가격한다.
하지만 주먹이 빗나간 것에도 타샤는 개의치 않았다.
─그대로 돌진.
달리던 속도 그대로 타샤의 어깨가 한세연의 몸을 강타했다.
콰앙─!
마력의 충돌이 공간을 울리며, 한세연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훨훨 날아간다.
타격을 받는 와중에도 충돌을 역으로 이용해 몸을 뒤로 날려버린 것이다.
타다다당─!
뒤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베레타를 쏘아내는 한세연.
빗발쳐오는 마탄들을 쳐내며 타샤가 한세연을 향해 질주했다.
한세연이 몸을 뒤로 빼냈다지만, 날아가는 속도보다 그녀가 달려드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으니.
콰앙─!
지면을 부수듯이 박찬 타샤가 한세연을 향해 빛살처럼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속도. 타샤의 시야에 한세연이 순식간에 커져 온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돌연, 거대한 충격이 타샤의 복부를 엄습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
“나이스 샷.”
한세연에게 달려들던 타샤가 튕겨 나가는 것을 보며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녀를 튕겨 보낸 것은 바로 나였다. 내 주위에 쳐진 마력의 응어리들을 아공을 열어 그녀의 앞으로 이동시켜 버린 것이다.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타샤가 쓰러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타샤가 무방비로 복부를 맞은 탓도 있지만, 그녀가 달려드는 속도가 워낙에 빨랐기에 그 속도만큼이나 충격이 배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타샤는 제 힘에 제가 당해버린 격이었다.
그나저나.
‘괴물이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죽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타격을 입고도 다시 일어나려는 타샤를 보며 내가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내구도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수준이었다.
스스스스······
그때, 한세연의 오른손 심연의 반지에서 어둠이 스멀거리며 피어오른다.
공세가 멎었기에 드디어 마기를 피워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타샤도 다시 자세를 잡는다.
“잠깐 멈추지.”
내버려 두면 그대로 2차전을 시작할 것 같은 두 사람의 태도에 내가 제동을 걸었다.
한세연에게서 피어오르던 어둠이 사라져버린다. 타샤는 자세를 풀지 않았지만, 고개만은 내게로 돌아왔다.
“우리 싸우러 온 거 아니야. 오히려 도와주러 왔지.”
“?”
도와주러 왔다는 내 이야기에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떠올리는 타샤.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았기에 내가 얼른 말을 이었다.
“지금 노아가 쓰러졌지?”
“······.”
타샤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나는 씨익 웃었다. 그녀의 몸이 순간적이나마 움찔하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마력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상태야 보나마나 뻔하지.”
고성에 퍼진 노아의 마력을 둘러보며 말을 하니, 타샤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연다.
“용건만 말해주십시오.”
“그거, 내가 고칠 수 있어.”
“불가능합니다.”
타샤는 제고의 가치도 없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균열의 가속화로 인한 증상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고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듯했다.
“아니, 고칠 수 있어.”
“······.”
내 반박에 입을 다물어버리는 타샤. 나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답을 해보였다.
키이이잉─
순간, 내 앞의 풍경이 갈리며 시꺼먼 아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타샤의 눈이 살짝 커진다. 이를 본 내가 입을 열었다.
“균열, 그거 내가 좁힐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