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노아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하는 길은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가면서 무려 아홉 차례나 길을 꺾어야 했던 것이다.
그 복잡한 길을 타샤는 마치 쭉 뻗은 복도를 걷듯이 자연스럽게 앞장섰다.
‘벽 부수고 안 갔으면 영영 못 찾았겠네.’
이건 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미아가 되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당장 타샤조차 우리가 3번째 벽을 부수고 들어온 통로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면 대응도 안 했을 거라고 했으니······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우리를 복도에 세워둔 타샤는 벽에 나 있는 방중 한 곳에 들어가더니, 우스꽝스러운 복장이 되어 나왔다.
무슨 우주인처럼 두터운 패딩을 위아래로 껴입고, 털 귀마개와 개 주둥이처럼 튀어나온 안면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팽귄마냥 뒤뚱거리며 나온다.
“발열 술진이 새겨진 방한 의류입니다.”
우리에게도 방으로 들어가 같은 차림을 하고 나올 것을 권한 타샤는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다시금 복도를 걸었다.
그녀가 이러한 복장을 권한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노아의 방에 가까워질수록 마력의 밀도는 짙어졌고 그에 따라 기온이 급격히 낮아졌다.
한겨울 밤의 산중처럼 벽이나 지면에는 하얗게 서리가 끼었고, 입가로 김이 어렸다.
“그냥 왔다간 동사했겠네.”
발열마법까지 뚫고 들어오는 냉기에 몸이 절로 떨려왔다.
그 냉기의 발원지로 추정되는 노아의 방문은 숯제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고오오오······
타샤가 문을 여니 차가운 대류가 복도로 쏟아져 나온다.
“······.”
마치 중세 귀족의 방처럼 꾸며진 노아의 처소는 모든 게 새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노아는 그 방의 중심에 있는 대형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투명한 얼음에 갇힌 채로.
“최대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발열 마법을 상시 가동 중입니다.”
타샤의 말처럼 방안의 곳곳에는 발열 마법진이 마력석에 의지해 가동되고 있었다.
그에 의해 얼음이 녹아내리는 듯도 했으나, 그보다 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래서야 하나마나네.”
발열마법진이 하나같이 얼어붙은 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본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얼음에 갇힌 노아를 바라보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피부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것이 평소의 생기발랄하던 노아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화신체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되리라.
‘그래도 늦진 않은 것 같네.’
이처럼 맹렬히 마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신호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아직 화신체가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조차 간당간당해 보이긴 했지만.
“타샤, 이곳의 발열마법진들. 열기를 더 올릴 수는 없습니까?”
“가능은 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오래 가동할 수가 없게 됩니다.”
“상관없으니 올려주세요.”
잠시 망설이듯, 가만히 서 있던 타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방을 나선다.
“너도 나가봐.”
“알았어.”
이내 한세연마저 타샤를 따라 나가고, 방 안에는 나와 노아만이 남게 되었다.
우우웅······
타샤가 발열마법진의 출력을 올리는지, 마력석들의 빛이 강렬해지며 표면을 덮은 얼음층이 녹아내린다.
하지만 노아를 가둬둔 얼음을 녹이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순간, 내 어깨의 문양이 푸르게 빛나며 파랑이가 나온다.
“할 수 있겠냐.”
“까악.”
노아를 가리키며 말하니 파랑이가 자신감에 찬 울음을 토한다.
녀석의 루비빛 눈동자가, 붉게 빛난다. 이윽고 길게 펼쳐진 화염의 날개가 날개짓을 시작한다.
화르르륵─!
날개짓을 따라 푸른 화염이 퍼지며, 방 안으로 번져나간다.
스아아아······
방 안을 가득 메운 얼음이 녹아내리며 하얗게 바랬던 세상이 또렷한 색을 되찾아 간다.
그에 따라 발열마법진의 열기도 강해지며 방이 순식간에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노아를 가두어 둔 얼음의 감옥은 여전히 녹을 줄을 몰랐다.
저벅─
나는 개의치 않고 노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내 걸음을 따라 얼음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아니,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얼음이 ‘지워지고’있었다.
노아를 가둔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으나, 이 얼음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마력에 의해 발현된 마법적인 현상.
내가 없애는 것은 얼음이 아닌, 그 얼음을 발현시키고 있는 ‘마력’이었던 것이다.
우우웅······
이카루스의 반지가 하얗게 발하며 항마력이 냉기의 마력을 지워간다.
그에 따라 유지력을 잃은 얼음이 푸른 불길에 증발해 사라진다.
“······.”
손쉽게 노아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창백하기만 할 뿐, 특별한 증상이 없어 보였으나, 전시안을 발동한 내 눈에는 보여왔다. 그녀의 명치에 벌어져 있는 시꺼먼 구멍이. 그것은 ‘균열’이었다.
차원의 균열은 이터니티 최심부, 균열의 문 너머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본체와 연결된 노아의 화신체는 균열과도 통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 작게 벌어진 구멍을 덮듯이 손을 얹었다.
이내 내가 손을 치웠을 땐 거짓말처럼 구멍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변화가 일어났다.
스아아아······
고성을 메웠던 마력의 기류가 노아에게로 수렴되어 갔다.
창백하던 노아의 피부가 혈색을 되찾고, 그녀를 가두었던 얼음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렇게 모든 마력이 거두어졌을 때, 노아는 새근새근 곤한 잠에 빠져있었다.
화르르륵─!
푸른 불길이 한 차례 방안을 휩쓸고 지나가며, 물에 젖은 침상이며, 테이블, 카펫 등을 말리고 사라졌다.
“이제 들어와도 됩니다.”
밖을 향해 말하니 문이 열리며 타샤와 한세연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완전히 변한 방 안의 분위기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내 곤히 잠든 노아를 본 타샤가 눈을 크게 떴다.
“노아님은 이제 괜찮은 겁니까?”
“지금은요.”
“?”
내 애매한 말에 타샤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균열을 완전히 없애야 괜찮아지겠죠.”
혹은 아예 열어버리거나.
“!”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타샤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말은 균열을 닫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해봐야 알겠죠.”
거기까지 말한 나는 노아의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당장 벌어진 균열을 막아두었으니 노아는 괜찮을 터였다.
물론 영멸의 밤이 또 다른 수호자를 사냥한다면 사태가 더욱 커지겠지만. 나도 마냥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에 대한 대비책도 다 세워두었으니.
그건 그렇고······
“너 어디 아프냐?”
내가 한세연을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 한세연은 아까부터 안색이 좋지가 못했던 것이다.
“응, 조금 현기증이 나네.”
한세연이 갸웃거렸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타샤와의 싸움을 하긴 했다지만, 그녀의 부상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내가 봐도 그 때문에 현기증이 났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현기증을 느낄 리는 없고,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럴 텐데······
‘요정경에 다녀와서 그런가?’
요정경의 중심인 세계수는 모든 부정한 기운을 물리치는 항마력으로 떡칠된 나무였다.
그렇기에 마기를 지닌 존재가 세계수에서 머무른다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세연이야 순수한 초인이고 그녀가 다루는 마기는 모르도의 마기이기에 한세연이 세계수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모르도는 평소에 타차원에 존재하므로 의도적으로 마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마기가 새어나갈 염려는 없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세연의 상태가 좋지 못한 걸로 봐서는 내가 모르는 사이 미미한 마기라도 흘린 게 아닌가 싶었다.
그 후유증이 타샤와의 전투로 인해 도져버린 것이고.
“돌아가면 좀 쉬어라.”
“응.”
한세연도 딱히 심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고, 내가 봐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기력을 넣어주는 것으로 관심을 거두었다.
보통 이런 후유증이야 한숨 푹 자면 괜찮아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 가벼운 생각과 달리 다음날에도 한세연의 증상은 계속되었다.
······마수들을 처리하며 그 대처능력에 점수를 매기는 아카데미의 개별평가 시간.
달려드는 늑대무리를 수월하게 처리한 한세연이 지척까지 다가온 마지막 남은 늑대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타앙─!
푸른 마탄이 늑대를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그 마탄은 늑대를 빗겨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허엉!”
괴성을 지르며 한세연에게 뛰어든 다이어울프가 아가리를 벌린다.
그러나 뒤이어 쏘아진 마탄에 녀석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야! 조심해야지!”
“예.”
간발의 차이로 늑대를 물리친 한세연을 보며 아연실색한 교수가 버럭 소리친다.
생도들의 수준을 고려해 배치한 하급마수이기에 사고가 난 적이 없는 수업인데, 그 사고가 날 뻔했으니 깜짝 놀랐으리라.
생도들도 그 아슬아슬한 장면에 웅성거렸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다르게 한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총만을 내려다보았다.
“너 진짜 괜찮아?”
“응. 실수했나 봐.”
내가 다가와 묻자 한세연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분명 제대로 겨냥했는데 왜 빗나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혀를 찼다.
얘는 다 좋은데, 제 몸 상태에 관해서는 은근히 둔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마탄이 빗나간 걸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는 전날의 일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전시안을 키고 한세연을 본 나는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이상한 건 없는데.’
영혼의 색이 하얀 것이 모르도가 침투한 기색은 없어보였다.
마력의 흐름도 불순물이 제거되어 전보다 더욱 좋아지면 좋아졌지, 문제 될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의무실에 가보자.”
“응.”
담임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한세연을 데리고 의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의무실에서의 검사 결과도 정상이었다. 마력의 흐름, 신체 능력 모두 이상 무.
그렇다면······
‘진짜 실수라고?’
주사를 맞은 새하얀 팔뚝을 솜으로 꾹 누르고 있는 한세연을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너도 실수하는 날이 있긴 있구나.”
“응, 그런가 보네.”
방긋 웃어 보이는 한세연을 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실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한세연이었기에 하급마수를 빗맞췄다는 게 지금도 얼떨떨하긴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하긴, 이게 정상이긴 했다.
한세연이니까 안 어울리지, 인간인 이상 평생 실수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사람 놀래키지 좀 마라.”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수가 앞까지 와서야 쏘는 애가 어디 있냐?”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 쪽에서는 한세연이 먹히는 것처럼 보였기에 정말 식겁할 뻔했다.
“응, 주의할게.”
이런 내 핀잔에 한세연은 미안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게 짤막한 해프닝이 있고 난 뒤, 한세연은 내 핀잔을 받아들였는지 이어진 나머지 실습 수업을 모두 정상적으로 마치었다.
그리고 찾아온 방과 후, 블랙마켓의 4층 저택.
“······.”
이제는 고위 마인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한세연은 창가를 내다보며 느긋이 커피를 기울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한세연의 손에 쥐어진 커피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대리석 바닥에 부딪힌 커피잔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