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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05화 (206/226)

§ 205화

나는 쓰러진 한세연을 일단 마경으로 옮겼다. 한세연을 고치자면 안전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으니.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기절한 한세연을 보며 이본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성력입니다.”

나는 마인들에게 해주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를 이본느에게도 해주었다.

기존의 수호자가 사망함으로써 한세연이 새로운 수호자로 낙점을 받았고, 이로 인해 성력이 한세연의 정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성력을 보내오는 곳을 없애야 했다.

정신을 파고드는 성력을 없애더라도 결국 성력을 보내오는 근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새로운 성력이 계속해서 다시 보내져 오는 것이다.

“세연이 좀 보고 계셔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잘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내 표정이 좋지가 않아서일까. 이본느가 나를 안심시켜주듯 말한다.

“······.”

나는 침상에 잠이 든 한세연을 잠시 바라보곤 방을 나섰다. 방문 앞에 서 있던 소피아가 나를 따라붙는다.

“소피아도 여기 남아주세요.”

“하지만 그러면 해솔님이······”

“괜찮습니다. 그리 위험한 일은 아니거든요. 위험하기로 치면 여기가 더 위험하기도 하고요.”

설명을 바라며 쳐다보는 소피아에게 내가 답을 해주었다.

“제가 성력을 한 번 태웠으니 수호자들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수호자의 각성이 방해를 받고 있는데 신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만무하다.

같은 수호자가 움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 것이다.

“소피아니까 믿고 맡기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세연씨는 제가 책임지고 확실히 보호하겠습니다.”

맹세하듯 말한 소피아가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잇는다.

“그러니, 해솔님은 아무 걱정마시고 무사히만 돌아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올게요.”

따듯함이 묻어나오는 말에 작게 웃으며 화답한 나는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갑시다, 셀라피네.”

“알았다.”

셀라피네. 요정왕의 기사가 내게 따라붙는다. 그녀는 한세연의 방문 앞을 철벽처럼 지키고 선 소피아를 힐끗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괜찮겠나?”

“뭐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지 않나?”

“아니, 실제로 위험하지 않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이터니티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이 세상에 기프트라는 이능을 처음으로 전파한 곳이자, 초인의 기원이 시작된 곳.

‘마력의 사원.’

그곳이야말로 수호자를 만들고, 이터니티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그런 곳의 보안이 보통일 리가 없으니 셀라피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마력의 사원의 보안은 철벽을 자랑했으니······.

이터니티의 존재가 아닌 이방인인 내게도 철벽은 아니었지만.

***

마력의 사원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원이었으니.

마력의 사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이 필요하며, 그 입장권은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그조차 단 ‘1회’에 한정하지만.

요정왕의 기사인 셀라피네는 그 소수에 속하는 존재였다.

나는 지금 그런 셀라피네의 도움으로 마력의 사원에 가려는 것이다.

입장권을 가진 이는 마력의 사원에 사람을 추천할 수 있는 추천권 또한 주어지니까.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써도 괜찮겠어?"

"상관없다. 어차피 네가 아니었다면 평생 들리지도 않을 곳이었으니."

요정에게 있어 마력의 근원은 요정경이고, 세계수다.

그래서인지 셀라피네는 마력의 사원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수호자와의 직접적인 적대는 피하고 싶군."

"그거야 상관없어. 들어가는 것만 도와주면 되니까."

"브로커라는 건가? 재미있군."

자신의 역할에 흥미가 있다는 듯 눈을 반짝인 셀라피네가 노란색 티켓을 들어 올린다.

"그럼 가지."

찌익─

티켓을 찢자 노란 빛무리가 터져 나와 공간을 물들였다.

이윽고 빛이 걷혔을 때 우리는 광활한 들판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새벽의 백야를 보듯 하얀 하늘, 온화로운 공기, 화폭처럼 펼쳐진 꽃들······

"요정경이 훨씬 낫군."

"동감이야."

셀라피네의 감상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동감이 살아 숨 쉬던 요정경과 달리 마력의 사원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정체된 느낌이었으니.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고나 할까.

특히 대기 중에 가득한 성력은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았다.

선하게 느껴지는 바와 달리 성력이야말로 무엇보다 가장 독선적인 기운이었으니.

“빨리 끝내고 가자.”

마력의 사원은 들판 한복판에 펼쳐진 거대한 호수 위에 지어져 있었다.

백색의 거대한 사원.

그 앞으로 두 줄의 하얀 기둥이 호수의 위로 길게 늘어서 있었으며, 우리 앞에는 타라는 듯 작은 나룻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앞장서 나룻배에 올랐다. 뒤이어 셀라피네마저 오르자 나룻배가 스르르- 기둥을 따라 움직인다.

“인간들이 만든 것치고는 제법이군.”

마치 살아 움직이듯 자연스러운 나룻배의 이동에 셀라피네가 나직이 감탄했다.

"글쎄, 인간만 있는 건 아닐 거야."

"인외의 존재가 있다는 거냐?"

"가령 저런 여자지."

놀라는 셀라피네에게 내가 옆을 지나가는 나룻배 위의 푸른 머리 여인을 가리켰다.

시선을 느낀 여인이 내 쪽을 돌아본다.

눈이 마주치자 여인은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며 고개를 숙여 보이곤 지나갔다.

“범상치 않은 것 같기는 하다만 평범한 인간이었다만?”

“수호자야.”

“그럴 리가.”

셀라피네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수호자의 얼굴은 내가 모두 알고 있다. 그중에 저런 여자는 없었어.”

“바뀌었을 수도 있지.”

“고작 1년 사이에 말이냐?”

“불가능한 건 아니지, 당장 세연이만 해도 각성 단계에 빠졌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으나, 나는 조금 전의 여인이 수호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내 눈에 비친 여인의 영혼은 성력으로 물들어 있었으니.

‘얼굴로 먼저 알아봤지만.’

집행자 아이리스.

사실 여인은 수호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직책은 마력의 사원에 소속된 ‘집행자’.

수호자가 잘못을 저지르고 탈선을 범했을 시, 그것을 제재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이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이리스는 수호자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수호자를 제재하고 그 능력을 갈취했다.’

기실 아이리스는 게임에서도 수호자가 방만하면 이를 제재하고 그 능력을 갈취하는 여인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시기가 훨씬 앞당겨졌다.

‘수호자들이 왜 요정경을 나온 지도 알겠네.’

율법자인 아이리스는 마력의 사원에만 머물며 수호자들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으나, 수호자인 아이리스는 직접 움직이며 그들을 관리까지 하니까.

요정경에서 수호자들을 빼 온 것은 바로 아이리스이리라.

‘귀찮게 됐네.’

수호자가 요정경이란 뒷배를 잃은 줄만 알았더니 마력의 사원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일 뿐이었다.

“마력의 사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생각을 하는 사이 나룻배가 사원에 이르렀다. 새하얀 회랑의 앞. 백색의 수도복을 입은 사제가 우리를 맞이했다.

“한 분은 요정이신 셀라피네님이시고, 이쪽은······”

“내가 추천하는 인재다. 마력의 사원을 둘러볼 만한 자라 판단했다.”

“그러시군요. 그럼 두 분 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앞장 서 걸음을 옮기는 사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호수 밖에 다다른 아이리스가 나룻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를 힐끗 본 나는 사제를 따라 사원의 회랑으로 들어섰다.

***

······마력의 사원은 전시품을 모아놓기라도 한 듯 보구가 길마다 전시되어 있었다.

“눈치채셨겠지만 세간에서 영웅이라 칭송받던 이들의 보구입니다.”

다 저희 마력의 사원에서 배출해낸 인재들이지요.

젊은 사제는 사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지 사원에 대한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뭔가 보여주지 못해서 안달인 기분이랄까.

그리고······

“이게 신의 유산입니다.”

사원의 중앙. 탁 트인 상공에 사슬로 매달아 놓은 푸르게 빛나는 돌덩어리를 가리키며 사제가 자랑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력의 돌이라 하지요.”

“······.”

내가 그것을 말없이 올려다보기만 하자 사제가 씨익 웃는다.

“대단하지요?”

사제의 말처럼 사슬에 묶인 돌덩어리에서는 순수한 마력이 물결처럼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슬을 통해 성력으로 승화되어 마력의 사원을 물들인다.

저벅─

“하하,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답니다. 그 안으로는 누구도 들어설 수가 없거든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사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력의 벽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마력, 마기. 요정.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이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성역이지요.”

벽을 매만지며 말한 사제가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다는 듯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다음 관으로 가실까요? 이 앞에는 저희 사원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보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는 잠깐만 좀 더 보다가 가겠습니다.”

“마력의 돌에 꽂히셨나 보군요. 가끔 그쪽과 같은 분들도 계시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이 앞에도-”

“천천히 보고 와라. 우리는 먼저 앞에 가 있지.”

사제의 말을 끊은 셀라피네가 내게 눈인사를 한다. 분위기로 내 목적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면 다음 관으로 가지.”

“···음, 그러시죠.”

사제는 나를 혼자 놓고 가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 듯했지만, 괜찮다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셀라피네를 따라 다음 관으로 이동한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의 인기척이 모두 없어지자 나는 창공의 돌에 다가갔다.

우웅······

자연스럽게 다시 일어나는 성력의 벽.

피조물의 범접을 허락지 않겠다는 듯, 견고하게 짜인 결계는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을 듯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안으로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성력의 결계는 잠시 요동치기만 했을 뿐, 온전히 나를 받아들였다.

이 세계에 있어 이방인인 나는 피조물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으니.

“끊기는 어렵겠네.”

상공에 매달린 마력의 돌을 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보는 것은 마력의 돌이 아니었다.

마력의 돌은 단순한 껍질일 뿐, 본질은 따로 있었으니.

성력으로 이루어진 선. 오직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그것이, 저 상공 너머의 어딘가로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수호자와 그 신을 잇는 계약의 선이리라.

그 계약의 선은 흔한 선과 달리, 그 줄기가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끊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될 만큼.

다만······

“비트는 건 가능하겠어.”

키이이이잉──

내 손이 상공으로 향하자 마력의 돌이 자리한 공간이 갈라진다.

아공(我空).

시꺼먼 구멍이 열리며 계약의 선이 갈 길을 잃고 비틀려 버렸다.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이──

돌연 귀를 울리는 경고음과 함께 내 전신에 붉은 빛이 칠해진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마력의 관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 내 눈앞에 공간이 이지러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도 오네.”

나타난 상대를 보며 내가 혀를 찼다.

아이리스.

사원의 집행자인 푸른 머리 여인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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