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07화 (208/226)

207화

······마경의 숲속에 때아닌 금속의 울림이 울려 퍼진다.

“어떻게 된 거냐?”

리첸은 성력의 주먹을 연신 내지르며 소피아의 대검을 두들겼다.

“처음의 공격은 어디 갔지? 그 대검은 장식품인가?”

리첸의 조롱에도 소피아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방어만을 이어갔다.

그러니 살맛이 난 것은 리첸이었다.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일방적으로 소피아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수세에 몰린 소피아는 침착하게 방어에만 전념할 뿐, 반격을 하지 않았다.

리첸에게서 나오는 억지력이 소피아의 혼마력을 억누르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기프트인 분쇄자조차도 발동을 하지 않았다.

소피아로서는 손발이 묶인 채로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리첸이 소피아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소피아의 기량이 리첸보다 높기 때문이었다.

“하하! 이제 그만 비키-”

웃으며 소리치던 리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 묵직한 통증이 엄습한다.

고개가 돌아간 뒤에야 리첸은 자신이 얼굴을 맞았고, 이를 때린 것이 소피아의 주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리첸의 공격을 대검으로 막은 소피아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친 것이다.

찢어진 입가를 닦은 리첸이 손에 묻은 붉은 피를 보고 있자니 소피아의 냉소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만 살았지. 무위는 별것 아니군.”

“이 년이······!”

리첸의 얼굴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소피아의 평가가 리첸의 자존심을 건드려버린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오른 리첸의 주먹에 맺힌 성력이 크기를 불렸다.

쾅─! 콰앙─!

대검을 때리는 충격이 거세지며 소피아가 뒤로 크게 밀려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따분하게 바라보며 손톱을 정리하던 수호자, 오서연의 시선이 두 사람의 뒤를 향한다.

“흐음.”

그곳에는 소란을 듣고 나타난 마경의 주민들이 모여있었다.

그중 선두에 선 붉은 머리 여인을 본 오서연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여인을 향해 움직이자 상황을 지켜보던 수호자 김주철이 입을 연다.

“적당히 해라. 우리 목적은 싸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수호자를 데려가는 것이니까.”

“나도 알고 있어.”

한편, 소란을 듣고 달려왔던 이본느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오서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오서연이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심심한데 그쪽은 제가 상대해드릴게요.”

스스스······

중력을 거스르듯 오서연의 긴 장발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

“···저게 수호자구나.”

탐욕의 마녀 최아린은 싸움이 일어난 장내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이해솔로부터 수호자의 억지력에 대해 듣기는 했으나 솔직히 와닿지 않았었다.

항마력처럼 마력을 지우는 것도 아니고, 모든 기운을 억누르는 능력이라니?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권능’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그런데 직접 눈앞에서 그것을 보게 되니, 이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당장 소피아는 방어에 전념을 하고 있었고, 이본느조차도 상대의 머릿결이 늘어나니 그것을 피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공격은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끼어들 수도 없었다.

‘마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그녀만이 그런 게 아닌지, 아렌을 비롯해 소란을 듣고 온 마경인들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아린이 저 너머에서 싸움을 구경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수호자로 보이는 이의 뒤로 하얀 수도복을 입은 일단의 사제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사제의 손 위에는 하얀 촛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 빛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무기력증이 몰려왔다.

사제들은 저 촛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들의 발을 묶어 놓는데 주력하고 있는지 사제들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켜보는 수밖에 없나.’

최아린이 다시금 싸움이 일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인지 소피아와 싸우던 리첸이 거리를 벌리곤 성력을 모으고 있었다.

소피아도 이에 지지 않고, 대검에 혼마력을 끌어올린다. 먼저 공격을 가한 쪽은 바로 리첸이었다.

“그만 끝내지.”

리첸이 손을 뿌리치자 새하얀 성력의 덩어리가 소피아를 향해 날아든다.

표정을 가라앉힌 소피아가 신중히 대검을 들어 올린다.

우웅······

성력이 가까워져 오니 대검에 맺힌 혼마력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거칠게 흔들린다.

그 기세는 평소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이에 동요하지 않고, 가까워져 오는 성력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그녀가 대검을 내리그으려던 찰나였다.

“!”

성력을 바라보던 소피아의 눈이 크게 떠진다. 놀라기는 공격을 가한 리첸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야?!”

돌연 시꺼먼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의 성력을 잡아 먹어버린 것이다.

휘이이익──

그때,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에 리첸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두운 수풀을 뚫고, 푸른 불길에 휩싸인 십수 자루의 비도가 날아들고 있었다.

리첸이 비도를 향해 억지력을 발동했다. 하지만 비도는 조금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은 채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

놀란 리첸이 다급히 성력을 방사해 비도를 막아섰다. 이내 성력의 위를 때리며 튕겨 나가는 비도들.

휘리릭─

튕겨나간 비도들이 어디론가 회수된다. 리첸의 시선이 비도들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소피아의 곁. 그곳에는 어느새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나 있었다.

***

“제가 조금 늦었네요.”

“아닙니다, 제때 맞춰오셨습니다.”

숲길을 헤치고 나오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소피아가 이내 반갑게 웃어보였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예,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완전 엉망이구만.”

가까이서 소피아의 상태를 살핀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검을 쥔 손은 부르트다 못해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옷이 찢겨 드러난 오른쪽 어깨는 맞기라도 했는지 잔뜩 부어 있었다.

“정말 괜찮- 웃!”

부은 어깨를 움켜쥐자 소피아가 말을 잇지 못하고 신음을 토한다.

“봐봐요, 안 괜찮네.”

“······.”

할 말이 궁해진 소피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 우직함에 혀를 찬 내가 기력을 넣어주려던 때였다.

“해솔님!”

소피아의 눈이 커진다. 내 등 뒤로 성력의 파도가 들이닥치고 있던 것이다.

“괜찮아요.”

내가 등 뒤로 손을 휘둘렀다.

후아악─!

손길을 따라 일어난 푸른 불길이 성력의 파도를 지워버린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를 발출한 리첸에게로 밀어닥쳤다.

“흡!”

아연실색한 리첸은 불길을 막을 생각도 못한 채 다급히 노면을 굴렀다.

콰아앙─!

그가 있던 자리가 푸른 불길에 녹아내린다.

자신이 흙바닥을 굴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리첸의 얼굴이 처참히 구겨졌다.

그의 전신에서 성력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이-”

“넌 좀 닥치고 꺼져 있어.”

내가 손을 휘젓자 시꺼먼 아공이 벌어져 달려드는 리첸을 집어삼켰다.

아공이 닫혔을 때 그곳에 더 이상 리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솔님?”

소피아의 벙찐 목소리에 내가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없애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에요. 잠깐 멀리 날려버린 것뿐이지.”

리첸은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녀석이 지닌 성력의 총량은 무시 못 할 수준이며 이를 한점으로 모으는 기프트는 그 위력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더욱이 끔찍한 것은 녀석이 억지력을 일으켜 상대의 능력을 억눌러버린다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내 기력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상성이 최악이었다.

세계의 오류를 걸러내는 억지력 앞에서 이 세계의 힘이 아닌 기력은 무조건 배척해야 하는 대상이었으니.

소피아가 고전을 한 것도 그녀가 지닌 혼마력이 기력에서 발원한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신수인 불사조의 불길만큼은 억지력 앞에서도 자유로웠기에 내가 리첸을 상대할 수 있던 것뿐이다.

‘그래도 까다로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랬기에 나는 아공을 열어 리첸을 치워버렸다. 물론, 아공의 특성상 상대를 멀리 날려버릴 수는 없다.

아마 마경의 어딘가에 떨어졌을 거다. 짜증나서 홧김에 치워버린 것이기에 어디로 떨궈버렸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지만.

뭐, 그런 놈이 어디 떨어졌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피아의 치료가 우선이었다.

“이리 와봐요.”

소피아의 어깨를 쥔 내 손에서 푸른 불길이 일어난다.

화르륵─

잔뜩 부어 있던 어깨는 불사조의 불길에 닿자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손.”

“···예.”

대검을 내려놓은 소피아가 부르튼 양손을 내민다.

“완전 터졌네. 이러고도 괜찮다 한 거예요?”

“······.”

보기보다 더욱 심한 상태에 혀를 찬 내가 그 손에도 불길을 일으켰다.

수호자와 사제를 비롯해 수많은 시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으나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피아의 치료를 이어갔다.

“해솔님, 이제 됐습니다. 괜찮······”

“팔 들어봐요.”

소피아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내가 그녀의 팔꿈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어깨부터 시작해 소피아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다 치료한 내가 그제야 손을 내려놓았다.

“대충은 끝났네요, 어디 아픈 데 없어요?”

“예, 완전히 다 나았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돌아가서 레오니한테 한 번 더 보여 보죠.”

말을 마친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이를 구경하던 수호자 김주철이 입을 열었다.

“치료는 다 끝난 건가?”

“일단은.”

“···그렇군.”

고개를 내저은 김주철이 앞으로 나선다.

리첸이 사라졌으니, 머릿수를 맞추려면 그가 직접 나서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주철은 여유로웠다. 무슨 수를 써서 리첸을 날려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피아와의 대화를 통해 리첸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렇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조금 전의 푸른 불길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성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싸우지.”

“아, 잠깐 기다려.”

“?”

화르르륵─

순간, 소피아의 전신에 갑주처럼 푸른 화마가 둘러졌다. 놀라 눈이 커지는 김주철에게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형평성이 맞지.”

불사조의 불길은 억지력에 위배되지 않는 힘이다.

그 불길을 두른 소피아는 혼마력을 사용할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자유롭게 싸우는 것이 가능했다. 소피아도 이를 느꼈는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선다.

그때, 돌연 김주철의 발이 멈췄다.

“여기까지 하지.”

한쪽에서 이본느와 싸우고 있던 수호자 오서연도 싸움을 관두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소피아가 의아해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응이 왔나 보네.’

마력의 사원. 그곳에 연결된 신과의 연결점을 내가 비틀어놓았으니······ 그 신호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리스가 수호자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리라.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오겠다.”

한세연이 있는 쪽을 일별한 김주철이 일행과 함께 워프로 사라졌다.

제지하고 뭐고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튀었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