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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08화 (209/226)

208화

수호자들이 사라진 곳을 보며 소피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본느, 아렌, 최아린 등 마경의 모두가 비슷한 반응이었다.

녀석들이 사라진 것에 상당히 분해하는 모습이었다.

“돌아가죠.”

모두가 말을 꺼낸 나를 돌아보았다.

“다시 온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준비해야죠.”

“그렇군요.”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 목소리에서 굳은 각오가 엿 비쳤다.

기실 이중에서 가장 분한 사람을 뽑자면 바로 소피아였다.

오마의 앞에서도 공격 일변도의 스타일을 고수하던 그녀가 제대로 된 반격도 해보지 못한 채 묵묵히 방어만 해야 했던 것이다.

한세연을 지켜달라는 내 말이 없었다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싸우고 보았을 소피아였으니 그 답답함이 오죽했을까.

“다음에 오면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각오가 살벌한 게 어째 원한까지 생겨버린 모양이다.

‘그놈 죽겠네.’

소피아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인다는 뜻이었으니.

리첸이란 놈은 상대를 잘못 건드려도 아주 제대로 잘못 건드려버렸다.

“그렇네요, 저도 준비를 해야겠어요.”

이본느도 입꼬리를 올린다.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살기가 충만한 미소였다.

이쪽을 상대한 수호자는 모르긴 몰라도 곱게 죽지는 못하리라.

이본느는 저래뵈도 상대를 쉽게 죽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원한이 있다면 그걸 몇 배로 쳐서 돌려받는 사람이 바로 이본느였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어째 이야기가 수호자를 죽인다는 쪽으로 흘렀는데······

‘괜찮겠지.’

수호자는 이 세계의 부속품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그렇기에 수호자를 죽이면 세계에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이 가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어졌다. 마력의 사원. 그곳에 연결된 신과의 연결점을 내가 비틀어놓았으니.

그러니 세계는 더 이상 수호자를 부속품으로 인식하지 못하리라.

‘인식해도 상관이야 없지만.’

여차하면 수호자로 인해 생긴 균열을 내가 막아버리면 그만이었으니.

상당한 수고가 드는 작업이긴 했으나, 소피아가 당한 걸 생각하자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가죠.”

나는 마을로 몸을 돌렸다. 한세연의 상태부터 확인을 해봐야 했다.

***

마력의 사원.

“······.”

아이리스는 사슬에 묶여 떠 있는 마력의 돌을 올려다보았다.

마력의 돌은 여전히 찬연히 빛나며 푸른 마력을 무한히 뿜어내고 있었다.

그 마력은 사슬에 이르러 성력으로 전환되어 이면의 세계를 충만케 한다.

그런데······

“왜.”

아이리스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휘오오······

푸른 소용돌이를 이루는 물의 성력. 그 성력은 무엇이든 꿰뚫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세계의 가호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가호가 옅어져 가고 있음을 아이리스는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균열이 필요 이상으로 벌어졌을 경우 발생한다.

‘멸망의 사도.’

세간에는 영멸의 밤이라 불리는 그 사도의 짓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사도의 동향은 아이리스가 모두 꿰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남은 건 마력의 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인데······

“모르겠어.”

아이리스는 마력의 돌에서 아무런 이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떠한 이상이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마력의 돌에 침입자가 생기고 나서부터 이러한 이상현상이 시작되었으니까.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아이리스가 워프해왔을 때 상대는 마력의 돌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아이리스조차 다가갈 수 없는 마력의 돌에 어떻게 다가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남자가 저지른 일임은 확실했다.

이 이상 현상의 원인을 아는 것은 오직 그 남자뿐이리라.

아이리스는 절벽의 동굴이 무너지며 사라져버린 남자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사원에 돌아온 뒤에 알아차렸다.

우웅우웅──

마력의 관 입구에 세워진 사자상의 눈이 여전히 붉은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침입자에 대한 사원의 경계령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남자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 지금의 이상현상에 대한 원인을 물어야 하리라.

다만 그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사원에 대한 적대는 이터니티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였으니······.

“마경주.”

아이리스는 사원의 기록을 통해 확인한 남자의 신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로 부른 거지?”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짜증섞인 목소리에 아이리스가 등을 돌렸다.

이남일녀로 이루어진 세 사람이 마력의 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참 재미를 보고 있는데 불러서 흥이 깨졌잖아.”

“그래요, 갑자기 왜 부르신 거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그들은 바로 마경에서 복귀한 수호자들이었다.

사뭇 불량스러운 태도들이었으나 아이리스는 그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선을 넘으면 그때 제재를 가하는 것이 바로 집행자인 그녀의 역할이었으니.

저들은 행방이 묘연해졌다고만 알고 있는 한 명의 수호자 또한 사원의 지하에 수감이 되어 있던 것이다.

“아, 휴고새끼 부럽네. 지금쯤 막 놀고 있을 텐데.”

“······.”

불만을 늘어놓는 리첸을 가만히 응시하던 아이리스가 입을 열었다.

“세 분을 부른 건 마력의 돌에 이상이 생겨서입니다.”

“이상? 멀쩡한데?”

“어디가 문제인 거죠?”

“···잘 모르겠군.”

마력의 돌을 올려다보며 갸웃거리는 수호자들.

자신들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감한 모습에 아이리스가 답을 해주었다.

“가호가 옅어지고 있습니다.”

“어? 정말···”

“아이리스. 이거 괜찮은 거야?”

그제야 심각한 표정이 된 수호자들을 바라보며 아이리스가 용건을 꺼냈다.

“전날, 사원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현상은 그 침입자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세 분은 그 침입자를 잡아 오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침입자란 놈은 어디 있는데?”

“마경입니다.”

“거기 우리가 방금 다녀온 곳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던 차인데 마침 잘됐네.”

뜻밖의 장소에 입맛을 다시는 세 수호자. 하지만 그들이 놀랄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침입자의 외견입니다.”

“!”

아이리스가 침입자라며 띄어준 홀로그램의 외견을 본 세 수호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거 그 새끼잖아.”

“맞아, 그 남자야.”

가장 흥분한 반응을 보인 리첸이 아이리스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 새끼를 잡아 오면 된다고?”

“도망가지 못하게만 하셔도 좋습니다.”

“입을 열게 하려던 거 아니었어?”

의아해하는 리첸에게 아이리스는 예상을 뛰어넘는 답을 들려주었다.

“마경을 사원의 적으로 선포할 겁니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너무 심한 거 아니예요?”

긍정적이던 세 수호자마저 당황할 정도로 아이리스의 발언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사원의 적.

그것은 사원의 모든 힘을 총동원해 대상을 말살시키겠다는 뜻이었으니.

“이거 재밌겠는데?”

리첸의 웃음소리가 마력의 관을 울렸다.

***

마력의 사원의 움직임은 급진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마경에 대한 사원의 선전포고가 이터니티 전역에 알려졌고, 일주일이 되기 전에 수호자와 사제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마경을 도울 수는 없었다. 이 일에 개입하면 그 또한 사원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사원의 엄포가 있었으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협회는 물론이고, 마경과 교류를 취하던 여러 길드들이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일의 당사자인 마경의 반응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마력의사원에서 저지르고 온 일을 생각하자면 녀석들이 이리 나올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였으니.

그래도 이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빠른 행보이기는 했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여유시간이 있을 줄 알았으니까.

‘아이리스가 똥줄이 많이 탔나 보네.’

하긴, 신의 가호가 옅어지고 있으니 당황할 법도 하리라.

“녀석들이 마경의 외곽에 진영을 꾸렸습니다.”

“무력시위라도 하려는 모양이네.”

“예, 그런 것 같아요.”

라우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현재 마수들을 이용해 사원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 중에 있었다.

마경의 영역에 들어온 이상 사원의 움직임은 그녀에게 모두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는 기프트를 터득한 그녀는 마음을 먹으면 일대의 마수들을 모두 휘하에서 부릴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자였으니.

“지금이라면 마수들을 이용해 기습을 가할 수도 있어요. 어쩔까요?”

“라우라는 어쩌고 싶어요?”

나는 결정을 바라는 라우라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라우라의 백귀야행은 극비 중의 극비였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조차 외부에는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 불시에 마수들이 공격을 가한다면 사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필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으리라.

하지만 라우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하지 말죠.”

라우라의 의견에 동의한 내가 장내를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어때요?”

내 말은 조커를 버리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회의장에 있는 이들 중 내 말에 반대를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동의합니다. 그건 너무 쉽게 보내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소피아를 시작으로 이본느, 백건우, 리디아 등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라면 해야겠지만, 나도 찬성.”

원리주의자인 아렌마저 동의하며 내 의견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만큼 일전의 일을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리라.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

내가 소피아를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일주일에 불과했으나, 그동안 그녀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들였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 좋아하는 영화나 바이크마저 거른 채 하루종일 검에만 매달렸으니 말이다.

예리한 한 자루의 검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소피아의 상태는 극도로 단련이 되어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단련을 하다가 불려 나온 상태였으니까.

그건 이본느도 마찬가지여서 그녀는 아예 연락을 받고 마경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화염은 자칫하면 주변을 모두 태워버릴 우려가 있기에 따로 떨어진 장소에서 수련을 해야 했으니.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겠네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어 보이는 이본느는 상당히 무서워 보였다.

그런고로 마수로 사원을 쓸어버린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 모두가 회의장을 떠날 때, 내가 소피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소피아, 가기 전에 불순물 좀 빼고 가죠.”

“윽, 그건 나중에 끝나고 해도······”

“그래야 더 잘 싸우죠.”

“···알겠습니다.”

불순물을 뺄 때의 이상야릇한 감각이 떠올랐는지 소피아의 얼굴이 떨떠름해진다.

요 며칠 굳어 있기만 하던 얼굴이 풀리는 모습에 내가 작게 웃었다.

그렇게 소피아의 불순물을 빼고 시간이 흐른 늦은 저녁.

콰아아아앙──!

마경의 외곽에 자리한 사원의 진영에 거대한 불길이 떨어졌다.

사원의 진영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불기둥을 구경하며 내가 씨익 웃었다.

“리벤지 매치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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