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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09화 (210/226)

209화

······전투가 벌어지기 얼마 전, 마경의 외곽.

마력의 사원이 진영을 친 공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정상에 나와 마경의 주력이 나와 있었다.

단순한 염탐을 위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교전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많이도 왔네요.”

막사를 설치하고 자리를 잡은 사원의 진영을 내려다보며 내가 혀를 내둘렀다.

공터에 자리를 잡은 초인과 사제의 수는 어림잡아도 오백을 가뿐히 넘겨 보였다.

저 정도면 내가 보았던 사원의 모든 병력이 총결집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물며 주위에 대한 경계도 소홀하지 않아서 진영의 주변으로 사제와 초인들이 이인 일조로 퍼져 기습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다. 하지만······

“행동만 빨랐지 마경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왔나 보네요.”

사원의 경계조를 보며 라우라가 고개를 저었다.

사원의 경계조는 사방을 경계하며 외부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마경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왔다면 저런 경계방식은 절대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원을 나누면 마수에게 기습을 당할 가능성도 높을 뿐더러, 마경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에 의한 기습이 아니었다.

바로 ‘마력’이었지.

지금 내 뒤에서는 이본느가 양손을 위로 뻗은 채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굉장하네요.”

그녀의 손 위로 모이는 방대한 마력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잘 나서지를 않아서 그렇지, 이본느는 칠악에 견주는 마경 최고의 실력자였다.

아니, 파괴력으로 따지자면 칠악마저도 뛰어넘었다. 그런 그녀가 작정하고 정신을 집중하니, 가공한 마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화르르륵──

태양처럼 떠오른 거대한 불의 구체가 야산을 태울 기세로 타올랐다.

일대의 수분이 메마르고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화력이었다.

그 존재감은 너무도 강렬해서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이상할 수준이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저녁이 순식간에 대낮으로 바뀔 지경이었으니.

이것이 사원의 진영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불지옥이 연출되리라.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력의 사원측은 경계조가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신들의 머리 위에 지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나스타샤가 불길의 빛을 차단시키고 있다곤 하지만 너무도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이는 바로 마경의 특수성에 의해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마수가 살아가는 마경은 마력의 흐름이 심하게 뒤틀려 있었기에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이를 감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비유하자면 안개의 너머를 내다보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경에는 유독 그런 마력의 뒤틀림이 심한 장소들이 몇몇 존재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야산의 정상 또한 그러했다.

여기서 약간의 은폐가 가미되면 지금처럼 아예 마력의 결집을 숨기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상대가 이러한 마경의 지리적인 특이점을 알고 있다면 이조차도 경계를 해서 찾아내겠지만, 마력의 사원은 그러한 정보에 대해 무지했다.

그리고 그 정보의 무지가 가져온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이본느가 손을 내리자 화마의 불길이 공간을 태우며 떨어져내렸다.

콰아아아앙──!

땅이 뒤흔들리며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

“구름이 없군.”

“그러게, 여기만 한 점도 없어. 신기하네.”

모닥불을 앞에 두고 포커를 치던 수호자들은 유독 이 지역에만 구름이 없는 것에 의아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을 제외한 다른 마경의 하늘은 먹구름이 끼인 듯 우중충했으니.

“어?”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던 리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느닷없이 하늘이 환해지더니 어마어마한 불덩이가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린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손 쓸 세도 없이 떨어져 내린 불덩어리에 땅이 뒤흔들리며, 달궈진 대기가 바깥으로 밀려나온다.

불기둥에 잡아먹힌 수백의 사람들이 타죽고, 공포에 질린 사제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갔다.

─으아악!

─사, 살려줘!

아무런 전조도 없이 떨어져 내린 불기둥에 지옥도가 강림했다.

“이, 이게 뭐죠?”

“적습인가?”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에 수호자들조차 이렇다 할 대처를 못하고 당황했다.

그렇게 모두가 불길을 피해 우왕좌왕대고 있을 때였다.

휘이이이이이이─

돌연 진영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물의 기류가 태풍처럼 솟구쳐올랐다.

사제들을 태우는 불길을 잠식하며 불기둥과 충돌하는 물보라.

그 물보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사원의 집행자, 아이리스였다.

그녀의 발 빠른 대처 덕에 불기둥이 더 이상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녀가 있는 방면뿐이었다.

천하의 아이리스조차도 이처럼 거대한 불기둥을 한순간에 잡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하물며 이곳은 태울 게 넘쳐나는 숲이었으며 사원의 진영은 사방으로 분포되어있었다.

화마가 번지는 속도는 말도 못하게 빨랐고, 거기에 타 죽어가는 사제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갔다.

그러나 아이리스의 대처에 정신을 차린 사제들이 하나, 둘 물의 성력을 일으키며 불길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길을 잡으랴, 도망치랴 지휘체계가 마비되어버린 탓에 바깥에 대한 경계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그 무너져내린 경계의 틈새로 불청객들이 찾아들었다.

“크아아악!”

비명이 연달아 울리더니, 숲으로 도망쳤던 사제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되돌아 나온다.

그곳을 돌아본 수호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호오.”

“왔네요.”

사제들이 도망쳐 나온 숲길. 그 너머에서 한 무리의 불청객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선 소피아를 본 리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아 올라갔다.

***

“불길은 어떻게 하지?”

“냅둬, 아이리스가 어떻게든 하겠지.”

수호자들은 불길을 막는 것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리스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은 불길보다 더욱 흥미로운 상대가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이 불은 너희들 짓인가 보군. 저번의 그놈은 어디 갔지?”

리첸이 누군가를 찾듯 소피아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찾던 이를 끝내 발견할 수 없자 리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런 리첸을 향해 소피아가 말했다.

“마스터는 다른 곳에 가셨다. 너희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허.”

“저거 지금 뭐라 한 거야?”

소피아의 대담한 발언에 세 수호자가 기가 차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일전의 소피아는 리첸에게도 쩔쩔메며 방어에만 급급했으니까.

그런데 저리 당당한 태도라니.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수련을 했나 보지?”

리첸이 비아냥대며 나서자 소피아가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 별 볼 일 없는 무위를 상대하는데 수련은 필요 없을 것 같군.”

“···이 년이 미쳤나!”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에 얼굴이 구겨진 리첸이 주먹을 내지른다.

그런 리첸의 주먹에는 성력의 덩어리가 맺혀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이전이었다면 소피아가 대검으로 막아서야만 하는 강렬한 위세.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소피아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대검조차 뽑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리첸이 내지른 주먹은 소피아가 내민 손아귀에 가볍게 잡혀버렸다.

“!”

놀란 리첸이 눈을 부릅뜨는데 순간 복부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아닥쳤다.

“커헉!”

허리가 기역자로 꺾인 리첸이 가슴을 움켜쥔 채 위태롭게 물러난다.

리첸의 주먹을 막은 소피아가 무릎으로 그의 복부를 찍어 올린 것이다.

“끄으······”

통증이 가시지 않는지 리첸은 허리를 숙인 채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소피아는 그런 리첸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뒤에 멍하니 굳어진 나머지 수호자들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셋 다 동시에 덤벼라.”

***

‘말도 안 돼!’

리첸은 눈앞의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무려 수호자 셋이 함께 달려들었음에도 소피아 하나를 상대로 제대로 된 싸움조차 벌일 수가 없던 것이다.

소피아가 대검조차 뽑아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리첸의 자존심을 짓밟아놓았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리첸의 전신에서 성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성력에 휩싸인 리첸이 소피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퍼억─!

“끄어어업!”

얼굴이 짓뭉개진 리첸이 달려들던 기세로 튕겨 나갔다. 하늘과 땅이 몇 번이고 번갈아 비추었다.

“대검을 뽑을 가치도 없군.”

소피아의 한심하다는 평가에도 리첸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으으으······”

그저 이가 빠져 소리가 새는 터진 입가로 피만 질질 흘려댔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보다 다시 덤벼들었다가 지금과 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그건 다른 두 수호자도 마찬가지였다. 리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무적이라 여겨왔던 억지력이 소피아에게는 전혀 통하지를 않고 있었으니까. 아니, 억지력이 발동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소피아님, 저놈은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그때, 자신을 가리키는 손짓에 멍하니 누워있던 리첸이 고개를 들었다. 뒤이어 그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자신을 가리킨 것은 일전에 그에게 맞고 나가떨어졌던 백건우였다.

“예, 그러시지요.”

“감사합니다.”

소피아의 허락을 받은 백건우가 씨익 웃으며 리첸에게 다가왔다.

“일어나라.”

“가미···!”

이가 빠져 새는 소리를 내며 리첸이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피아는 모르되 백건우에게마저 무시를 받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를 않았다.

눈앞이 붉어질 정도로 분노한 리첸이 백건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어······?”

리첸이 멍하니 주먹을 내질렀던 제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팔은 손목의 위가 사라진 채 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흐흐, 마저 끝내자꾸나.”

피가 묻은 짤막한 검을 흔들며 백건우가 잔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으욱.”

수호자, 오서연은 양팔이 잘린 채 처참하게 죽어가는 리첸을 보며 속이 뒤집혔다.

‘도, 도망쳐야 해.’

리첸은 물론이고 김주철마저 소피아에게 당하는 모습에 겁에 질린 오서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이건 장난이 아니고, 정말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억지로 뛰며 재빨리 사제들이 있는 쪽으로 도망갔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한다는 위기감이 그녀의 머리를 장악했다.

다행히도 김주철이 당하고 있는 와중에 도망쳐 나왔기에 그녀는 무사히 소피아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안도를 느끼며, 불길을 막는 사제들에게 향하려던 차였다.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실까요.”

상냥한 음성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오서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부채를 든 이본느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으, 으아아!”

오서연이 무작정 성력을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늘어나며 이본느를 노린다.

하지만 성력에 휩싸인 머리카락은 이본느가 부채를 휘두르자 여지없이 불길에 까맣게 타버렸다.

“왜 억지력이! 왜, 왜!!”

억지력이 발동하지 않는 상황에 오서연이 억울하다는 듯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후후, 저희 마스터가 무슨 짓을 한 모양이랍니다. 참 대단한 분이죠?”

이본느가 포근하게 웃으며 다가오자 오서연이 뒷걸음질을 치며 비굴하게 손을 모았다.

“미, 미안해요. 저도 시켜서 했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꺄아아아아악!”

불길에 휩싸인 오서연의 처참한 비명이 마경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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