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허억, 헉!”
수호자 김주철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입술은 터졌고, 얼굴은 부었으며 늑골이 부러져 제대로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로 죽는다는 위기감각이 그를 붙들었다.
“힘을, 힘을 넘기란 말이다, 이것들아!”
그가 뒤에 선 사제들을 향해 버럭 소리친다.
안색이 굳은 사제들이 김주철을 향해 성력을 퍼붓는다. 그럴수록 김주혁의 몸은 치유되고, 성력은 높아져 갔다.
“더, 더!”
그의 기프트 [집결]은 보조해주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능력이 강해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흐, 흐하하!”
온몸에 넘쳐흐르는 성력에 김주혁의 입가에서 웃음이 터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소피아가 묻는다.
“다 끝났나?”
“이런 기고만장한 년이!”
김주혁이 소피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아아앙─!
공기를 가르며 내리꽂히는 김주혁의 검. 성력의 불길이 대기를 태우며 짓쳐 든다.
소피아는 이에 아랑곳없이 대검을 힘있게 내리그었다.
서걱─
한줄기 예리한 절삭음이 공간을 울렸다. 뒤이어 사선으로 잘린 김주혁이 노면에 허물어진다.
대각선으로 그어진 소피아의 검격에 성력과 검이, 그리고 몸마저 통째로 베여버린 것이다.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소피아와 김주혁의 사이에는 성력을 빌린 것만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으니까.
그밖에도 백건우에게 당해 쓰러지는 리첸, 불길의 마력에 파묻히는 비명······
쓰러져가는 수호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내가 마력의 돌에 부여한 아공의 비틀림을 가속시킨 결과였다.
아공에는 거리의 개념이 존재치 않기에 사원에 열어놓은 아공의 비틀림 또한 얼마든지 내멋대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틀림이 수호자의 억지력을 봉해버렸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어딘가 망설임이 가득한 목소리는 아멜리아의 것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것은 옆에 있는 은가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눈앞에서 수많은 사제들이 불에 타 죽어버렸으니.
이러한 광경을 처음 보는 두 사람으로서는 충격이 상당하리라.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마력의 사원측에서 먼저 걸어온 싸움이기도 했으며, 내버려 두었다면 저쪽에서 먼저 우리를 공격했을 테니까.
그때, 사제들 사이에 있는 일단의 초인들을 본 아멜리아가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저건······”
.
“뭔지 알겠지?”
“······.”
아멜리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제들 사이에 있는 초인들의 마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안정했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멜리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폭발한다는 거예요?”
“정답.”
“폭발한다는 게 무슨 소리야?”
“저기 봐바.”
은가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내가 사제들 사이에 섞인 초인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왜?”
“저 사람들이 폭발한다고.”
“···뭐?”
“사원의 뜻에 거스르면 저렇게 만드는 거야.”
“그건 그냥 미친놈들이잖아.”
“어, 미친놈들이지.”
은가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의 사원은 미친놈들의 집단이었다.
자신들의 뜻에 반하면 불순분자로 지목해서 멀쩡한 초인을 인간 자폭기로 만들어버리니.
놈들은 그걸 ‘참회’ ‘순교’따위로 포장해 부르는 모양이었지만.
뭐, 놀랍지도 않았다. 자신들과 뜻이 다르다면 가차 없이 밀어버리는 독선적인 집단이 바로 마력의 사원이었으니.
반면, 사원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게 된 아멜리아와 은가예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설마 사원에서 사람을 저런 식으로 취급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죽어도 싼 놈들이네요.”
아멜리아가 사납게 읊조린다. 그녀 딴에는 심한 욕설이었으나, 너무 약한 말에 피식 웃은 내가 물었다.
“저거, 안정시킬 수 있겠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멜리아가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그 모습에 나는 잠시 혀를 내둘렀다.
저토록 불안정해진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나를 포함해,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으니까.
이는 오직 순수마력을 지닌 아멜리아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불안정한 마력도 순수마력에 닿으면 그 흐름이 안정되어버리니까.
‘도와줄 이유는 없지만.’
내버려 두었다가 터지기라도 하면 우리쪽에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당장 마경인들이 사원의 진영 곳곳에 투입되었으니까.
그러니 위험한 폭탄은 제거해야지.
“그럼 가자.”
내가 아공을 열었다. 그 안으로 우리는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뒤이어 아공을 넘은 우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제들이 모여있는 한복판이었다.
“웬 놈들이냐!”
느닷없이 풍경을 가르고 나타난 불청객들에 놀란 사제가 소리친다.
“웬 놈이긴, 여기 주인이지.”
“넌······!”
내 모습을 알아본 늙은 사제가 눈을 크게 뜬다.
“그때 그 침입자!”
“잡아라!”
우리를 포위한 사제들이 성력을 일으킨다. 그 숫자만 족히 오십이 넘어갔다.
고오오······
하늘이 꿀렁이며 성력의 물결이 대기를 장엄히 물들인다.
오십 명의 사제가 내뿜는 거대한 성력에 살갗이 찌르르 울려왔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쿠우웅──!
“끄억!”
“컥!”
느닷없이 몸을 짓누르는 중력에 일제히 지면으로 처박히는 사제들.
그들이 쓰러지며 대기에 일어났던 성력의 물결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내 옆에선 은가예가 어느새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우웅······
대보구 나겔링.
그것이 사제들에게 가해지는 중력을 수십 배로 가중시켜 버린 것이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사제들을 보며 내가 혀를 내둘렀다.
‘사기네.’
은가예는 나겔링을 얻은 뒤로 몰라보게 성장했다.
그동안 온전히 제어하지 못하던 ‘중력’을 완벽히 다룰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그 능력이 몇 배나 강해져 버린 것이다.
이를 성력만을 단련한 사제들을 상대로 사용하니 그 효과가 상상이상이었다.
육체 단련을 하지 않은 그들에게 이러한 중력은 쥐약이었으니. 당장 누구 하나 제대로 움직이는 녀석이 없었다.
예컨대, 상성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사제들이 무력화되자 나는 한쪽에서 영문을 모른채 서 있는 초인들을 가리켰다.
“아멜리아.”
“예.”
아멜리아가 초인들을 회복시키는데는 별다른 절차조차 필요없었다.
스아아아······
그녀가 손을 뻗자, 순수마력이 흘러나와 초인들의 몸으로 스며든다.
그 마력의 물결에 닿은 초인들의 요동치던 마력은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아갔다.
물론 임시적인 조치일 뿐, 당장 이것 가지고 완전히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폭발의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초인들이 사원의 진영에 전체적으로 퍼져있다는 것이었지만······
‘해볼까?’
나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한 차례 마력을 뿜어낸 탓에 달떠져 있는 얼굴. 하지만 나는 저것이 그녀의 전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방어기제를 발동하면 훨씬 어마무시해지니까.’
다룰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방어기제가 발동해 잠재력을 개화한 아멜리아의 순수마력은 파멸적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딱 아슬아슬한 정도로만 발동시키면 어떻게 될까.
“왜요?”
내 시선을 느낀 아멜리아가 나를 돌아보며 갸웃거린다.
“이들 말고도, 자폭인들이 있는 거 느껴지지?”
“예, 상당히 많아요. 그것도 진영 곳곳에 퍼져있어요.”
마치 눈에 보인다는 듯이 말하는 그 발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멜리아의 감각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암만 융합력으로 능력을 빌렸다 친들, 오리지널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따라가게 해야지.
“저번에 했던 거 한 번 더 하자.”
“저번에 했던 거요? 그게 무슨-”
아멜리아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내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이어서 기력이 아멜리아의 몸속으로 파고들며, 서로의 정신을 공유한다.
그러자 내게도 아멜리아가 느끼는 감각이 똑같이 전해져왔다.
진영 곳곳에 퍼져있는 불안정한 마력을 가진 자폭인들이.
‘다행히 완전히 퍼져있지는 않네.’
자폭인들은 사제들의 통제를 받는지, 열 명씩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다.
한 놈씩 퍼져있었다면 무리였겠지만, 저렇듯 뭉쳐있다면 얼마든지 해결방법이 있었다.
위이이이잉──
내 앞의 풍경이 갈라지며 시꺼먼 아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아공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로 곳곳에 파져 있는 자폭인들의 무리 모두와.
그들과 나의 거리가 얼마 멀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이능이었다. 하지만 이 다음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이러면 곤란한데.’
나와 정신을 일치시킨 반동 탓일까. 아멜리아는 눈을 감은 채 생소한 감각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정신능력자인 나와 달리 아멜리아에게 감각의 공유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문제는 내게 그걸 기다려 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공을 무한정 열어놓을 수도 없는 데다, 사제들이 눈치를 채서 자리를 옮겨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
‘어쩔 수 없네.’
“앗!”
느닷없이 복부에 닿는 감각에 아멜리아가 감았던 눈을 크게 뜬다. 하지만 그 푸른 눈은 다시금 흐릿해졌다.
아멜리아의 복부에 새겨진 술식을 내가 건드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술식을 건드리면 자연스레 방어기제가 깨어난다.
‘깨어나면 안 되지.’
나는 일전에 아멜리아의 술식에 새겨놓았던 ‘룬어’를 건들였다.
‘잠잠히’라는 의미를 가진 룬어가 발동되자 흐릿해졌던 아멜리아의 눈빛이 다시 밝아진다.
그리고, 다시금 술식을 건드리니, 눈빛이 흐려진다.
나는 그렇게 룬어와 술식을 번갈아 건드리며 적당한 지점을 찾았다.
잠재력은 어느 정도 깨어나되 방어기제가 일어나지 않는 지점을.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해가며 타협점을 찾은 나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결에 빠진 듯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멜리아.”
“······.”
나는 대답이 없는 아멜리아의 흰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앗!”
“야.”
“······예?”
의식이 깨어났는지 몽유병환자처럼 대답하며 나를 쳐다보는 아멜리아.
‘됐네.’
수면주사라도 맞은 듯한 반응에 내가 씨익 웃었다.
의식은 흐릿했으나 그녀의 마력은 잠재력이 개화되어 어마어마한 순수마력으로 차올라 있었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다 열려진 아공에 가져다 놓았다.
“여기에 마력을 부어.”
“·········마력을요?”
“어, 좋은 거야.”
스아아아아······
‘좋은 거’라는 말에 아멜리아는 별다른 반문 없이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아공을 넘어선 순수마력은 사원의 진영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
“이, 이게 뭐야?”
자폭인, 즉 참회자들을 관리하던 사제는 느닷없이 머리 위의 풍경이 갈리며 흘러나온 순수마력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순수마력에 닿은 참회자들이 느닷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차마 사제가 손을 쓸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털썩, 털썩······
참회자들이 쓰러지는 현상은 사원의 진영 전체에서 일어났다.
한편, 중력을 이용해 사제들을 정리하고 나겔링을 거두었던 은가예는 옆을 돌아보았다가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야, 너, 너네 뭐 하는 거야?”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아멜리아를 한 손으로 부축한 채 배를 슬슬- 쓰다듬고 있었으니까.
그 망측하다면 망측한 모습에 은가예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으나, 나는 거기에 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뜨거운 화마의 열기로 가득했던 대기가 어느덧 차게 식어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낯익은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눈치 한 번 더럽게 빠르네.”
“마력의 돌을 어떻게 한 것이죠?”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푸른 여인.
휘오오······
“뭐, 뭐야?!”
회오리치는 물의 감옥에 우리를 가두어버린 그녀는 바로 사원의 집행자, 아이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