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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13화 (214/226)

213화

······아이리스가 돌아간 이후, 나는 내게 들이치는 성력을 해소한다.

“하긴, 쉽게 끝날 리가 없지.”

마력의 돌에 이어진 신의 고리를 비틀어 한세연에게 부여된 수호자의 운명을 거두는 데 성공한 나였다.

허나, 신의 고리란 단순히 비틀었다고 해서 끝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자신을 비튼 대상을 쫓게 되어있던 것이다.

그 대상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러나 다행히도 이는 내 신체가 아닌 정신에 작용하는 형태였다.

정신능력자인 내게는 매일 들이치는 성력을 해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되려 이는 내게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성력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내 정신력은 미약하나마 강화되어가고 있었으니.

“······.”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침대에 잠이 든 한세연이 보인다.

얼굴에 내려앉는 달빛이 눈이 부시지도 않는지 세상 곤한 모습이다.

이마를 덮은 머릿결을 넘겨주던 나는 무심결에 그녀의 볼을 콕 찔러보았다.

제 볼이 들어간 것도 모르는지 여전히 감겨만 있는 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그녀의 볼을 슬쩍 잡아당겼다.

내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별 거 아닌 장난임에도 한세연의 얼굴이 망가진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붉은 입술에 대범하게도 손가락을 얹어보았다.

나는 살짝 놀랐다.

“···부드럽네.”

촉촉한 감촉이 내가 아는 그 어떤 감촉보다도 부드러웠다.

처음 느껴보는 그 신비한 감촉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슬쩍 눌러볼 때였다.

“······.”

문득 조용해진 숨결에 시선을 올린 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붉은 입술에 시선이 팔린 사이 눈을 뜬 한세연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깼냐.”

“응.”

입술을 내리누르던 손가락을 아닌 척 재빨리 치운 나는 괜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유독 똘망해 보이는 한세연의 눈에 의아해졌다.

어째 지금 일어난 것치곤 목소리며 눈이 너무 맑았다.

“언제 일어났어?”

“해솔이가 내 이마 넘겨줄 때.”

“······.”

이마를 넘겨줄 때부터라는 것은 처음부터 깨어있었다는 소리다. 나는 멋쩍으면서도 한편으로 살짝 어이가 없어졌다.

“그런데 계속 자는 척을 했다는 거야?”

“해솔이가 뭘 하려는지 궁금해서.”

대체 뭘 기대했는지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세연.

그 행동에 멍해져 있자니 그녀가 내 이마와 제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음, 역시 뜨겁네.”

그녀가 뜨겁다 하는 것은 자신의 이마가 아닌 내 이마였다.

기실, 내 육체는 현재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기력과 아공을 무리하게 운용한 것도 있고, 아멜리아와 감각을 공유한 탓에 육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

정령체에 가까워졌다지만, 근본이 인간인 내 육체는 그리 뛰어난 편이 못되었으니.

나는 피로한 육체를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아이리스와의 대화가 막 끝난 시점이었기에 쉴 틈이 없던 것이다.

그래도 내색을 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한세연은 나를 보자마자 이를 너무도 쉽게 눈치를 채버렸다.

하여간, 이상한 데서 날카롭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더 자. 밤이야.”

나는 이마에 얹어진 한세연의 손을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어?”

정신의 통제를 벗어난 듯, 일어나던 몸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찰나, 제방의 둑이 터진 것처럼 피로가 물밀듯 쏟아지며 탈력감이 엄습했다.

다리가 비틀거리며 힘이 풀린 몸이 제멋대로 기운다.

맥없이 무너져내리는 나를 한세연이 품에 안아 들었다. 그게 편해서일까. 신기하게도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잠깐만 쉴게.”

“잘 자.”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나는 밀려드는 수마에 빠져들었다.

***

······다음날 오전, 한세연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마경인들은 모두가 그녀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한세연은 이미 마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한세연의 회복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눈가까지 훔치며 기뻐하는 이리나의 귓가로 웨인의 조소가 들려왔다.

─흥, 과장이 심하군.

“닥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웨인을 비롯한 주요 마인들은 멀리서 한세연의 회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날 사원과의 전쟁에서 누구보다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은 바로 그들이었으니.

사원은 만일을 대비해 ‘환수’ 부대를 후방에 대기시켰는데 이를 타격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여기에는 아렌이 길잡이로 동행했다.

아무튼, 이리나는 항상 자신은 한세연을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데 이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니 마인들은 기가 차다는 반응이었다.

한세연 또한 이런 이리나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방긋 웃어 보였다.

“응, 고마워.”

한편, 정원의 벤치에 앉은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른한 하품을 했다.

“흐아함-”

“간호한다고 들어가서 환자 침대 뺏어서 자고 나오니 좋아요?”

눈을 비비는 나를 아멜리아가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나는 한세연의 침대를 뺏어 여지껏 자다가 느지막이 나와서 눈꼽을 떼고 있는 차였으니······.

고의는 아니었으나, 까일 수밖에 없는 행태이기는 했다.

그나저나.

‘쟤가 한 거겠지?’

나는 방긋 웃으며 마경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내 몸은 한계에 다다르더라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몸이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지 않는 이상에야, 나는 이를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지탱할 수가 있었으니.

전날의 피로가 극심하기는 했으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마치 정신과 육체의 연결이 끊어진 듯한 생소한 감각이었다.

한세연이 내 이마를 만졌을 때 무언가를 한 것이리라.

내가 갑작스레 무너져내림에도 쟤는 조금의 당황도 보이지를 않고 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시선이 마주치자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맞네.”

“뭐가 맞아요?”

나는 아까부터 옆에서 앙칼진 반응을 보이는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입을 삐쭉 내민 그녀의 눈 밑에는 검은 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안 잤냐?”

“누가 술식을 건드리는 바람에 못 잤어요.”

“···아.”

그제서야 이유를 깨달은 나는 멋쩍게 뒷목을 긁적였다.

아멜리아의 잠재력을 사용한다고 그녀의 복부에 새겨진 술식을 내멋대로 주물렀는데 그로인해 부작용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하기사, 방어기제를 통하지 않고 잠재력을 억지로 끌어냈는데 멀쩡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기도 했다.

‘깜빡했네.’

기력으로 후속케어를 해준다는 것이 그만 아이리스와 밀회를 한다고 잊어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자신을 이리 만든 장본인은 잘 자다 하품이나 하고 있으니······

‘앙칼질만도 하네.’

온몸이 결리는지 아멜리아는 제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자라.”

“학교가야되는데 어떻게 자요?”

“가서 자.”

“그럼 수업을 못 듣잖아요.”

순진무구한 눈으로 그리 말하는 아멜리아.

잊고 있었지만 쓸데없이 우등생인 아멜리아는 수업에 진심인 생도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주머니의 정령석을 SP를 소모해 단약화했다.

정령단. 신체 회복단보다 훨씬 상위의 단약이라 할 수 있는 이 녀석은 복용시 몸살기나 피로가 싹 가시는 것은 물론이고, 마력을 증진시켜주는 효능마저 갖추었다.

무려 SP 3000씩이나 잡아먹기에 평소에는 아예 만들지도 않는 값비싼 단약이었다.

그것도 열화판이 아닌 내가 SP로 직접 빚은 오리지날 버전.

정령단처럼 순수한 영단이라면 순수마력이 주력인 아멜리아에게는 그 효능이 배는 뛰어나리라.

“먹어.”

아멜리아도 정령단의 범상치않음을 알아보았는지, 내가 이를 건네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저한테 주시겠다고요?”

“어. 대신 그거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노력해라.”

“아, 알았어요.”

내가 자신의 복부를 기리키자 아멜리아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요.”

정령단을 받아들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내가 피식 웃었다.

3000이나 되는 SP를 소모하는 건 아까웠으나, 아멜리아에게 하는 투자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

······시간이 흘러 오후 아카데미의 자율시간.

벤치에 앉은 나는 같은 학급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한다.

─다시! 앞으로 한 번만 더 하고 끝내겠어요, 모두 준비하세요!

운동장 한편에 세워진 단상. 마이크를 든 아멜리아가 외치니 마법부 학생들이 공연을 준비한다.

매학기 벌어지는 마법을 이용한 환상연. 무대의 감독겸 단장은 마이크를 들고 활발히 지휘를 하는 아멜리아다.

아침에는 그리 죽겠다며 몸살을 앓더니 정령단을 한 알 먹었더니 날아다니신다.

운동장에서는 남녀가 혼합된 축구가 한창이고, 천우진은 오늘도 홀로 검에 매진하러 떠났다.

성령을 상대하고 왔더니,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나 뭐라나······

내버려둬도 혼자 알아서 잘 크는 놈이었다.

“······.”

나는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일레인이 아까부터 나를 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를 알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손.”

샤샥-

양손을 잽싸게 모으는 일레인.

“올치.”

고사리같은 손에 하얀 단약을 올려주자 일레인은 이를 양손으로 잡은 채, 호빵처럼 냠냠- 베어먹는다.

“그런데, 넌 뭐 안 하냐?”

“아무도 안 껴줘.”

“···아, 미안.”

그러고 보니 얘 몸치였지.

축구야 당연히 안될 테고, 마법도 저주계열 위주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껴주질 않는다.

그렇게 각자가 저마다 취미활동을 하거나 일레인과 나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이와중에도 학급 일로 바쁜 생도는 있기 마련이었다.

“쟤는 쉬지도 않네.”

벤치 바깥으로 이어진 가로수길. 수업용 프린트를 한아름 든 한세연이 교실로 향하고 있다.

암만 반장이라지만 너무 혼자 일을 다 처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터니티의 생도들은 개인의 성장이 중요하지, 저런 학급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으니.

그런데 한세연의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생도가 접근하는 게 보인다.

어깨에 걸친 로열케이프는 학생회의 임원임을 상징했다.

“요즘 자주 보이네.”

“···응. 스카우트 하려는 모양이야.”

냠냠─

일레인이 단약을 먹으며 대꾸를 해준다.

나는 그런 일레인의 말에 동의했다. 학생회의 입장에서야 한세연처럼 우등생인데다, 학급 일에 성실한 생도는 단연 스카웃 대상 1순위일 테니.

······꼭 그런 의도로 접근하는 생도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지만.

훤칠하게 잘생긴 선배가 한세연의 옆에서 따라 걸으며 이런저런 말을 붙인다.

딱 봐도 스카우트 외의 흑심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크게 이상할 게 없는 광경이었다.

한세연이야 어딜가나 인기몰이를 할 만한 아이였으니. 환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이를 멀뚱히 쳐다보던 나는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내가 신기해보였는지 일레인이 의아해한다.

“···질투 안나?”

“질투? 글쎄.”

나는 다시 한세연 쪽을 보며 턱을 긁적였다.

“질투할 게 있나?”

프린트물을 대신 들어준 채 한세연을 에스코트하는 선배. 그 뒤로 임원들이 따른다.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이 다정한 한 쌍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셔틀이네.’

한세연은 겉으로 상냥히 웃으며 일일이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선배쪽은 한세연이 사소한 농담까지 웃으며 잘 받아주니 벌써부터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킨 듯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게 단순히 ‘공감하는 척’이라는 것도 모르고선 말이다.

저런 반응으로 봐서는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을 확률이 백프로다.

“불쌍하네.”

“불쌍해?”

“그런 게 있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일레인이 갸웃거릴 때였다.

“해솔아!”

나를 발견한 한세연이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돌연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근데, 저 상황에 이리로 오면···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를 하다 버려진 학생회 선배와 임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음.”

쏟아지는 이목에 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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