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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15화 (216/226)

215화

마경주가 차시우를 보자고 한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이터니티의 이면에 존재하는 기이한 세상. 성력으로 넘치는 그곳은 바로 마력의 사원이었다.

“여기는 다시 오기가 싫었는데 말이지.”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차시우를 보며 소진이 갸웃거렸다.

“왜입니까?”

“봐바라, 이 몸으로 스며드는 성력이 기분 나쁘지 않냐? 꼭 종교에 귀의하라고 강요하는 광신도 같단 말이지. 이 정신병동처럼 하얗기만 한 인테리어도 그렇고.”

“······.”

지나치게 생뚱맞은 해석에 소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람이 얼마나 감성적이면 고작 기운 하나에도 저런 해석이 나오는지.

하여간 유별난 사람이다.

반면, 소진은 성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활력을 불어넣어줘서 좋은 것 같습니다만.”

성력은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기운이다. 이런 곳에 오래 머무른다면 필시 장수하리라.

차시우는 그런 소진을 보며 쯧쯧 혀를 차 보였다. 그 안타깝다는 반응에 소진의 눈썹이 한 차례 씰룩인다.

“너는 너무 효율만 따진단 말이지.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그렇게 팍팍하게 살면 평생 혼자 산다?”

“신경 꺼주시죠.”

평소처럼 쌀쌀맞은 반응을 보인 소진이 차시우를 빤히 바라본다.

“뭐냐, 그 기분 나쁜 눈빛은.”

“아닙니다.”

소진이 고개를 저었다. 기실, 그녀는 차시우가 왜 마력의 사원을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정체된 공간은 어딘가 얽매임을 강요하는 느낌이었으니.

자유를 사랑하는 이 남자에게 사원의 분위기는 그 성향이 맞지 않으리라.

그래도 차시우의 반응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꺼려하시는군요.”

“겉으로는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 고고한 태도를 보이는 녀석들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

사원의 신도는 이터니티 전역에 퍼져 있다. 당장 협회만 해도 마력의 사원과 관계된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

그렇기에 사원이 마경에 패퇴했을 때, 협회에서는 ‘마경 응징론’까지 대두될 정도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을 제지한 것은 차시우가 아닌 마력의 사원, 바로 그들이었다.

무슨이유에서인지 전날까지 치고 박았던 마경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것이 차시우는 못내 의심스러웠다.

마력의 사원은 보이는 것처럼 관대한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마경주와 만남을 가지는 장소마저 마력의 사원이라니.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면 알 수 있으리라.

차시우가 나룻배에 올랐다.

***

마력의 사원은 기도를 올리는 사원이다. 하나, 그 기원과 역사는 이터니티와 함께한다.

단연, 그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방대한 지식이 마력의 사원에는 쌓여있다.

초인에 대해서 그 어느 곳보다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원에서 규정할 수 없는 초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은 뭘 하면 되지?”

눈앞의 남자를 보면 볼수록, 접하면 접할수록 아이리스는 어쩌면 그게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끝입니다. 더 이상 당신을 테스트할 도구는 이곳에 없습니다.”

이 남자는 마력의 사원이 쌓아 올린 지식의 산물을 허탈하리만치 가볍게 뛰어넘었으니.

“그래? 싱겁네.”

“······.”

싱겁다며 물을 마시는 이해솔을 아이리스는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현재 그들이 있는 이 사원의 지하에는 정신을 단련할 수 있는 수많은 시설과 도구들이 존재했다.

처음 접하면 단 몇 초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어버리는 암흑부터, 익사의 고통, 죽음을 경험하는 진법, 유체이탈 등.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그것들은 사람의 정신을 벼랑으로 몰아세운다.

그 38가지의 술식, 도구 시설을 통틀어 칭하는 명칭, 번뇌.

아이리스조차 3개 이상의 번뇌에 연속해서 도전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데 이해솔은······

‘38개.’

38가지의 번뇌를 이해솔은 모두 통과해버렸다. 채 2시간도 안 되어서. 심지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말이다.

“그래도 이 팔찌는 재미있네.”

“······.”

제 손에 차인 거무튀튀한 팔찌를 매만지며 이해솔이 눈을 빛낸다.

─끼아아아······

지저의 망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름끼치는 절규를 토하는 그것은 바로 [악몽의 절규].

착용자의 정신을 파괴해버리는 끔찍한 저주가 서린 마도구였다.

그런 흉물을 보고 재미가 있다니.

“이방인은 모두 당신과 같은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럴 리가. 내가 좀 특별한 거지. 그래서 시험 결과는?”

“가능하겠습니다.”

아이리스는 이해솔이 우르크의 영혼을 운반할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노아 맥도웰입니다.”

노아는 균열을 지키는 수호자다.

균열을 개방하고 그곳에서 우르크의 영혼을 꺼내오는 것을 그녀가 허락할 리 없었다.

“사원에서 협조를 구하면 되잖아?”

“노아 맥도웰은 사원에 적대적인 인물입니다. 감시 대상 1순위로 올라와 있습니다.”

“···너넨 사이가 순탄한 사람이 있긴 하냐?”

“균열의 관리를 두고 마찰이 생겨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쪽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해왔기에······”

이해솔이 혀를 찬다.

어떻게 된 지야 안 봐도 뻔했다.

일 처리에 유두리가 없는 사원과 다혈질의 노아가 만나면 대화가 통할 리 없었으니.

“뭐, 노아가 문제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

노아를 신경쓰지 말라는 이야기에 아이리스의 눈에 의아함보단 불신이 어렸다.

검의 마녀 노아 맥도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 이터니티의 정설이었으니.

수호자의 억지력조차 통하지 않아 사원이 균열에서 후퇴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녀였다.

오죽하면 집행자인 아이리스조차 노아하고는 대적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 봐야 했으니.

그런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뒀거든.”

이해솔이 자신 있게 웃어 보인다.

그 확신어린 미소에 아이리스가 몇몇 초인들을 떠올려 볼 때였다.

끼이이······

지하의 문이 열리며 사제가 들어섰다.

“집행자님. 협회장님이 방문을 하셨습니다.”

“······.”

예고에도 없던 협회장의 방문에 아이리스의 시선이 이해솔에게 돌아간다.

“타이밍 맞게 왔네.”

이해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사원의 접객실. 나와 아이리스의 맞은편으로 차시우와 소진이 마주보며 앉는다.

내 뒤에 시립한 소피아를 힐끗 쳐다본 차시우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분쟁이 있었다 들었는데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금방 이겼거든요.”

내 말에 차시우가 아이리스를 쳐다본다. 하지만 그녀가 부정하지 않자 차시우의 눈에 놀람이 어린다.

세간에서는 마력의 사원이 물러갔다는 사실만 알 뿐, 자세한 내막이 어찌 된 건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 말은 ‘대승’이라는 이야기였으니 놀랄 수밖에.

“호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균열을 해결할 방법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차시우의 말을 자르고 소진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말을 끊긴 차시우가 아쉽다는 듯 쩝 입맛을 다셨으나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당사자인 아이리스를 앞에 두고 이를 묻는 것은 결례였으니.

차시우의 이런 돌발적인 언행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바로 소진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본론으로 돌아간 주제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게 뭔가?”

“균열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입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는지, 시종일관 느긋하던 차시우의 얼굴에 당황이 번진다.

“지금 균열을 닫는 게 아니라 연다고 한 것 같다만 진심인가?”

“예. 진심입니다.”

나는 아이리스와 일전에 나누었던 방안을 두 사람에게도 들려주었다.

영멸의 밤이 우르크의 영혼을 얻어 스스로 자멸하게 한다는 계획을.

“···확실히, 계획대로만 된다면 말이 되는 이야기이군.”

뜻밖의 방법이었는지 눈을 휘둥그레 뜬 차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아이리스와 같은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그런데 노아님은 어떻게 하려는 건가? 분명 이번 계획을 반대하실 텐데.”

노아는 균열에 관해서는 가차가 없었다. 대화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막아야죠.”

“막아?”

“예.”

“무슨 수로?”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을 하는 차시우를, 나와 아이리스가 빤히 쳐다본다.

“······내가?”

“예, 그래서 불렀습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던 차시우는 내 대답에 멍하니 입을 벌리더니,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노아님을 막지 못하네.”

그가 신검이라는 위명을 지닌 협회장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초인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노아와 견주기에는 손색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노아의 발을 잠시라도 붙잡아 둘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혼자 막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

내 대답에 차시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끼이익······

접객실의 문이 열리며 누간가가 들어선다. 그 인물을 본 차시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너······”

“뭐냐, 그 얼빠진 표정은.”

시니컬하게 쏘아붙이며 들어서는 사나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

백금발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그는 바로 고르고프 오볼렌이었다.

협회의 부회장이자 차시우가 유일하게 승부를 가리지 못한 남자.

하지만 차시우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네가 여기 왜 왔냐?”

고르고프 오볼렌은 바로 노아의 손에 길러진, 노아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였으니까.

***

······고르고프 오볼렌의 태생은 불우하다. 그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고아였으니.

그런 고르고프를 주워다 지금의 고르고프로 키워낸 장본인이 노아 맥도웰이다.

고르고프에게 있어 노아는 생명의 은인이자, 부모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고르고프는 노아의 말을 절대 거스르지 않는다.

당연히 이곳에 나타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의문을 품는 차시우에게 고르고프는 귀찮은 듯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대로 가면 선생님이 죽는다.”

“호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거군.”

마마보이치곤 대단한 결정이라며, 차시우가 고개를 주억인다.

“이 정도면 되겠죠?”

“해 볼 만은 하겠네.”

내 물음에 차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고르고프와 차시우가 함께라면 그 노아라도 제지하는 것이 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협회에서 규정한 100대 초인 가운데서도 최정상급에 속하는 최강자였으니.

“하지만 길게 끄는 것은 어려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균열을 개방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곳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지.

그때, 고르고프가 나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균열을 개방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한 건가?”

“그쪽만 잘하면 무조건.”

내가 자신 있게 웃으며 공간을 휘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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