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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18화 (219/226)

잠에서 깬 한세연이 말똥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데?”

말똥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한세연. 나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협회 의뢰.”

협회에서는 내게 마수 토벌 건으로 종종 연락을 취했으니 이상할 게 없는 답이었다. 실제로도 의뢰가 들어와 있었으니. 한세연도 이를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소피아를 돌아본다.

“그, 그렇습니다. 협회에서 의뢰를······”

시선이 마주친 소피아가 몸을 움찔 떨더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어색해도 너무 어색하잖아.

누가봐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소피아는 얼음처럼 경직된 채로 말을 더듬거렸다.

뭐, 소피아 잘못은 아니다. 소피아가 거짓말에 심각하게 서투르다는 것을 간과한 내 실책이었지.

멋쩍게 뺨을 긁적이던 나는 나를 쳐다보는 한세연을 보며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균열에 갈 거야.”

“균열?”

“어, 저번에 갔던 이터니티 필드 최심부.”

사실대로 답한 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너는 오지 마.”

내가 한세연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녀가 짐이 돼서도, 무리를 할까봐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도라면 균열의 문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노아의 안배를 돌파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퇴학당한다.”

이터니티 아카데미에는 각 학생 마다 고유의 식별코드가 존재한다.

초인이 지니고 있는 마력은 개개인마다 달랐고, 아카데미에서는 이를 수집해 상대를 특정지을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나야, 애초에 마력이 없으니 아카데미에서도 나를 특정지을 수 없다지만, 한세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노아로 인해 어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지만, 이번에는 노아를 적대시하게 될 테니 그조차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내가 이번 일에 한세연을 비롯한 생도들을 대동하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이터니티에서의 퇴학은 그동안 쌓아 올린 커리어 전부를 버려버린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중등부부터 이터니티의 정규과정을 밟아온 한세연에게는 무엇보다 치명적일 터.

하물며 균열의 개방에 관여되는 것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알았어.”

내 경고에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의외로 순순히 넘어가는 모습이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사실 이게 당연했다.

이쯤 말하면 한세연도 이번 일에 관여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았을 테니까.

그런데.

찌익──

“······야?”

한세연이 다음 보인 행동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찌익찌익─

이터니티의 학생증. 신분명패나 다름없는 그것이 눈앞에서 조각조각 찢어지고 있었다.

이내 검은 마기에 잿더미가 되어 증발해버리는 학생증.

“학생이 아니면 되는 거지?”

“······.”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대담한 선택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알았다는 게 그쪽이었냐?

얼이 나갔지만 나는 결국에는 한세연의 동행을 허락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안 데려갈 수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찢어버렸네.’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학생증의 존재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저거 어쩌냐······.

***

······이터니티의 주말, 필드의 지하.

수많은 기둥이 신전처럼 떠받치고 있는 그 지하의 터널에서 영멸의 밤 유진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왔군.”

“그쪽은 기다린 것 같은데.”

“가슴이 벅차 잠을 이룰 수가 없었네.”

전날부터 기다렸다며 잔잔히 웃어 보이는 유진.

아무리 염원하던 일이라지만 밤을 지새우며 기다렸다는 것을 보면 유진의 집념은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그런 유진의 옆에는 ‘엔마’라는 젊은 여인이 묵묵히 자리해 있다.

“일전에 봤던 이들이군.”

내 곁의 소피아와 한세연을 보며 유진이 약간의 흥미를 보인다.

“균열까지 동행만 할 거니까 신경 꺼.”

“알겠네.”

내 날이 선 반응에 유진이 관심을 거두었다.

그저 있기에 말을 해 본 것일 뿐, 그의 정신은 온통 균열에 쏠려있었으니.

“그럼 가지.”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유진이 터널의 어둠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이터니티의 최심부로 향하는 지하의 터널.

그곳은 온갖 마수들이 우글대는 던전이었다.

소피아와 이본느가 합심을 하고서도 돌파를 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던 복마전.

저벅저벅─

유진은 그러한 터널의 한복판을 태연히 거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지금쯤 수십의 마수들이 덤벼들고도 남았을 터임에도 말이다.

마치 처음부터 마수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터널에는 마수의 자취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이 세계에 와서 지독히도 많이 맡아왔던 것이었으니까.

“······마수의 피비린내.”

그것도 한두 놈이 아닌 셀 수 없이 많은 놈들이 뒤섞여야 날 수 있는 썩은 악취였다.

이런 내 말이 정답이라는 듯 유진이 싱긋 웃어 보였다.

”기다리기가 지루해 정리해뒀다네.“

화르륵──

푸른 불이 피어나 사위를 밝힌다. 어둠이 걷히며 드러나는 참혹한 광경.

터널의 너머까지 넝마처럼 찢겨진 마수의 사체가 쓰레기더미처럼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마수라지만 너무도 잔인한 방식에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소피아는 물론이요, 감정표현이 잘 없는 한세연조차 표정이 가라앉을 정도.

하지만 유진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이를 기가 차 바라보자니 유진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물어왔다.

”내가 미친것처럼 보이는가?“

“잘 아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긍정의 말에 유진의 웃음이 더욱 짙어진다.

“그대는 마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갑자기 무슨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없어져야 하는 괴물이지.”

“맞네. 없어져야 되는 괴물이지.”

말과 함께 유진이 마수의 사체를 짓밟는다. 짓이겨지는 살점.

찰나, 벽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마수가 유진을 덮치고.

푸하아악──

푸른 피가 흩뿌려진다······.

“하지만 없어지지 않는 괴물이지.”

조각 난 마수의 사지가 노면을 나뒹군다.

유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소피아와 한세연이 갸웃거린다.

하지만 나는 유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마수란, 없어지지 않는 괴물이었으니.

“없애도 다시 생겨나지. 마수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네.”

“······.”

유진의 말대로였다.

이터니티라는 세상에서 마수란, 없어지면 다시 자동으로 생겨나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였으니.

그렇기에 필드가 존재하고, 마수 토벌은 끝나지가 않는다.

죽었던 녀석들은 다른 형태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환구조였던 것이다.

“나는 마수를 없앨 거네.”

“어떻게?”

”우르크의 힘을 이용하면 간단하네.“

크아아······

유진의 발치에 밟혀 꿈틀거리던 마수가, 재가 되어 증발해버린다.

그것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유진에게 이어진 우르크의 마력이 마수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내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 짓을 했다간 다 끝날 텐데?“

”다시 시작하면 되네.“

”미쳤네.“

나는 유진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르크의 힘을 이용해 마수라는 존재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시스템을 붕괴시키겠다는 이야기였으니.

그리고 시스템의 붕괴는 이터니티의 ‘파멸’을 의미했다.

유진은 마수를 없앤 뒤 이터니티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원한다면 그대는 보존해주도록 하지.“

”사양할게.“

나는 일말의 재고 가치도 없이 유진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터니티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역사를 맨땅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였으니까.

유진처럼 어지간히도 뒤틀린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해준다 해도 안 할 끔찍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당신 뭐 하나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뭐지?“

”마수는 없앨 수 있어.“

그리고 그 방법이란, 유진에게는 안타깝게도, 그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르크가 사라지면 마수의 순환도 끝나거든.”

마수의 순환은 이터니티의 게임이 지속되는 한 계속된다.

플레이어와 초인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바로 마수였으니. 이는 시스템의 보정이었다.

그리고 우르크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터니티의 엔딩을 의미했다.

그렇게 되면 마수가 순환하는 고리도 자연히 끝나게 되리라.

기존에 있던 마수들이나 놈들이 새롭게 낳는 녀석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을 수 없군.”

“믿으라고 말 안 해.”

유진이 믿던 말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마수 하나 없애자고 사람을 다 죽이겠다는 인간을 설득할 자신은 없거든.”

그게 되는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저런 정신나간 발상을 떠올리지도 않았을 테니.

그리고.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잖아.”

“그대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네.”

“무조건 맞으니까 걱정 마.”

“······.”

“얼른 가서 보자고. 그쪽이 틀린 걸.”

“그랬으면 좋겠군.”

피식 웃은 유진이 걸음을 떼었다.

***

균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들을 거쳐야만 한다.

우선, 지룡 키아브리스가 지키던 동굴에 자리한 균열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첫 단계다. 그렇게 문을 열면 그 안에는 노아가 풀어놓은 수많은 이형(異形)의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존재들을 넘어서, 노아가 안배해 놓은 것들을 통과해야지만 비로소 균열에 다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관은 바로 노아 본인이었지만······.

‘뭐, 그쪽이야 알아서 잘 하겠지.’

고개를 저은 나는 거대한 공동에 자리 잡은 균열의 문을 바라보았다.

두터운 사슬에 칭칭 감겨 굳게 봉인되어있는 문.

일전의 유진은 생도들의 마력을 이용해 이 문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절차가 불필요했다.

겉모습은 문의 형상을 취하고 있을지 몰라도 이는 실제 문이 아닌, 균열로 향하는 길을 비틀어 막아놓은 것이었으니.

그리고, 그러한 공간의 비틀림은 내게 무용지물이었다.

키이이잉─

시꺼먼 아공이 열리며 균열의 문이 일렁인다.

비틀렸던 공간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사슬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춘다.

끼이이─ 쿵.

열리는 균열의 문. 그 너머로 공동과는 전혀 다른, 해가 내리치는 광활한 사막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죠.”

내가 먼저 사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

한편, 그 시각 이터니티의 최심부로 향하는 지하의 통로.

마수의 사체들이 널린 그곳으로 무시무시한 마력을 흩뿌리는 여인이 나타난다.

노아 맥도웰.

그녀의 표정은 분노로 달아올라 있었으며, 눈가는 얼음처럼 시리게 식어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 균열의 문을······!”

그녀가 거친 걸음으로 최심부를 향해 성큼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해 제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선생님, 잠깐만 멈춰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녀의 앞을 두 사람이 가로막았기에.

그 두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한 노아의 눈이 사납게 치떠졌다.

차시우, 고르고프.

그녀의 앞을 막아선 것은 현 협회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인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노아의 손을 거쳐 간 인재들이기도 했다.

“비켜라!”

노아의 분노한 외침에 차시우가 곤란한 듯 머리를 매만졌다.

“음,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굳은 표정으로 고개숙여 사죄를 표하는 고르고프.

“이것들이······!”

노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르르──

분노를 형상화하듯, 그녀의 전신에서 푸른 마력이 노도처럼 타오른다.

공간을 태우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기류에 고르고프와 차시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거 힘들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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