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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20화 (221/226)

220화

“침입자는 배제하겠습니다.”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며 전투자세를 잡는 타샤 맥도웰.

“세 대상의 위험도를 재앙급으로 조정. 제한을 해제합니다.”

나와 한세연, 소피아를 보며 재앙을 언급한 그녀의 입에서 고대의 룬어가 흘러나온다.

───────.

마력의 언어를 읊는 그녀의 뒤로 다채로운 마법진이 무수히 떠오르며 오색의 향연을 이룬다.

“미친, 저게 술진이 몇 개야?”

내가 기가 차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공간을 가득 메울 기세로 전개된 무수히 많은 술진들은 보조마법부터 공격, 방어마법까지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도무지 한 사람이 펼쳐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광경.

우웅···.

온갖 보조마법으로 무장한 타샤의 몸이 푸른 마력으로 찬연히 빛난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마법적 연산.

“···전투모드에 들어갑니다.”

그게 바로 전투 인형, 타샤 맥도웰이 가진 진정한 능력이었다.

쿠아아앙──

사나운 마력의 광풍이 대기를 가르며 밀어닥친다. 하지만 그 마력의 광풍은 내게 다가서지 못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소피아?”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은 소피아의 대검에 산산이 깨져나간 것이다.

이형을 부수는 소피아의 분쇄자 앞에서 속성의 다양성은 빛을 잃기 마련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는 타샤 맥도웰이었다.

상대를 분석하고 순식간에 파해책을 찾아내버리는 노아의 가디언.

“······이형을 부수는 기프트를 확인. 마력의 출력을 최대로 올립니다.”

위이이이잉──

아니나 다를까 술진들에 맺힌 마법의 밝기가 위협적으로 올라간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위태로이 요동쳤다.

그러나 소피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를 돌아보며 물어왔다.

“시간이 없으신 것 아니었습니까?”

“······.”

나는 타샤의 술진에 맺힌 마력을 힐끗 바라보며 되물었다.

“소피아는 괜찮겠어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이 기뻐서였는지 소피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맺혔다.

“물론입니다. 괜찮지 않을 것 같으면 저도 남지 않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소피아의 대답에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맡길게요, 금방 올 테니까 무리는 하지 말고요.”

하지만 막상 발을 떼려니 역시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랬기에 경고를 해두었다.

“대신 다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치면 안 됩니다.”

”음, 그건······“

“아니면 안 갑니다.”

내 막무가내에 난감해하던 소피아는 내가 정말 가지 않을 것처럼 보이자 당황하며 대답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노력 말고요. 다치지 말라고요. 다른 건 상관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끝내 소파아에게서 알겠다는 말을 받아냈다.

나도 내 요구가 욕심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두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가자.”

“응.”

나와 한세연, 그리고 엔마는 소피아를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찰나, 푸른 번개가 우리를 향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번개는 내게 닿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

산란하는 번개의 파편. 대검을 휘두른 소피아가 나를 등진 채 말한다.

“가십시오.”

“맡길게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대로 은하수 너머의 균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은하수의 경계를 넘자 세상의 풍경이 뒤바뀐다.

별무리가 총총히 박혀있던 어두운 밤하늘에는 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이 자리하고, 따스한 햇살 아래 산들바람이 부는 고즈넉한 들판이 펼쳐진다.

마수가 득시글거리는 균열의 한복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

균열은 그 평화의 중심부에 고요히 자리해 있었다.

들판의 오솔길 너머로 지어진 자그마한 오두막. 그 오두막의 앞으로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틈이 벌어져 잇었다.

손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얇기 그지없었으나,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함은 유진에게서 느꼈던 바와 같았다.

바로 우르크의 기운이었다.

스스스스스스─

마치 생명체가 살아 숨을 쉬듯 커졌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는 균열.

마치 열리기를 갈망하는 듯한 그 균열은 어떠한 마력에 의해 억제당하고 있었다.

나와 한세연은 그 마력의 흐름을 따라 열려져 있는 오두막의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꺼진 지 오래인 재가 쌓인 벽난로와 낡은 탁자가 전부인 오두막.

그 한편에 놓인 침상의 위로 누군가가 곤히 잠에 빠져있었다.

마력의 흐름은 그 잠들어 있는 여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 은하에서 마주친 타샤 맥도웰과 아주 흡사한 외양.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성숙하며 온화해 보이는 여인.

“이렇게 생겼었네.”

“응, 고우시다.”

노아 맥도웰.

색이 바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바로 그녀였다.

한세기 동안 균열의 번짐을 막아온 검의 마녀의 ‘실물’인 것이다.

불같은 성격과 딴판인 온화한 외양에 의외라는 표정을 짓던 나는 이내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균열을 열기 위해서는 노아의 마력을 잠시간 비틀어놓을 필요성이 있었으니.

키이이잉──

아공이 열리는 기음과 함께 공간의 왜곡이 일어난다. 균열로 향하던 노아의 마력이 비틀린다.

이윽고, 오두막의 바깥으로 보이는 균열이 파문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균열의 틈에서 정체 모를 것들의 손이 바깥으로 뻗어 나온다.

수십, 수백의 손길, 혹은 누군가의 얼굴, 또 몸이 비쳐온다.

지옥에 갇혀 내보내달라는 아귀들의 혼란스러운 몸부림.

─그어어어···.

지저의 망령이 울부짖는 듯한 섬뜩한 아우성이 귓가를 차게 적셔온다.

나는 그 지옥과도 같은 균열의 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기실, 모든 준비는 갖춰졌다.

이제 내가 저 균열의 안으로 들어가 우르크의 영혼과 그 마력을 회수해 나오기만 하면 끝이 나는 일.

그러나 발길을 떼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까닥 잘못했다간 나 또한 저기서 아우성치는 아귀들에 휘말려 균열의 너머에 갇혀버릴 수가 있었으니······.

하물며 지금의 균열은 육체를 지니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있지 못했다.

오로지 정신으로만이 드나들 수 있는 비좁은 통로.

그 원혼이 득시글거리는 지옥의 구렁텅이로 뛰어드는 정신나간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물며 우르크의 영혼까지 받아들여야 했으니······

물론, 여기까지야 이미 예상한 바였다.

‘문제는 이곳이지.’

당장이야 평화로워 보이는 오두막이라지만, 이곳이 언제 지옥도로 뒤바뀔 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시공간이 시도 때도 없이 뒤틀리는 균열의 중심부였으니.

균열에 침입자가 발생한다면 어떠한 위험이 생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노아가 이곳을 마냥 무방비 상태로 놓아두었을 리 만무했으니까.

필시 지옥도로 뒤바뀌리라.

거기서 한세연과 엔마가 비어버린 내 육신을 지켜가며 기다리기란 분명 쉽지가 않은 일일 터였다.

“······.”

그렇게 내가 말없이 번져가는 균열의 파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다녀와.”

고개를 돌리니 한세연이 방긋 웃고 있었다.

내 고민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 시선이 마주치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녀의 그림자에서 그림자용과 여우가 나와 품에 안긴다.

“크르르······”

“끼이이······!”

흑요와 요호.

“이 아이들하고 같이 있을 테니까.”

녀석들을 본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갔다 올게.”

“응.”

탁자의 의자에 앉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더욱 선명하게 보여오는 균열의 틈.

─그어어어······

아귀들의 망욕에 찬 손길이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갈 듯 뻗어져 온다.

‘그래 맘대로 데려가 봐라.’

나는 그 어둠에서 뻗어져 오는 녀석들의 손길에 정신을 내맡겼다.

***

“······.”

한세연은 의자에 누워 잠이 든 이해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끼이이······”

품에 안긴 요호가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으나 반응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이해솔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해솔의 정신이 균열의 틈으로 사라지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이었다.

그그그그그그······

지진이라도 만난 듯 오두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환상처럼 허물어져 내리는 오두막의 너머로 비치는 풍경.

화르르륵──

새빨간 지옥의 불길이 온 세상을 태워버릴 듯이 거칠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마 속에서 일어나는 불의 거인.

“끼이이······”

거인을 마주한 요호가 기세에 눌린 듯 몸을 움츠린다.

흑요조차 크르르- 경계어린 울음만을 흘리며 섣불리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한다.

두 마수가 기세에서 밀릴만큼 거인이 내뿜는 불길은 어마어마했다.

“···수르트.”

불의 거인을 올려다본 엔마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노아가 균열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가두어둔 고대의 마정령이 지닌 이름이었다.

“······.”

그러나, 그러한 거인의 등장에도 한세연의 시선은 이해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두막이 사라지고 주위가 불바다로 변하고, 거인의 기세가 세상을 떨어울림에도 한세연의 시선은 오로지 이해솔에게 향해있었다.

주위의 상황 따위는 어떻게 되든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불의 거인이 노리는 것은 균열에 들어가 의식이 비어버린 이해솔이었다.

화아아악──!

거대한 불의 해일이 의자에 앉은 이해솔을 덮쳐들었다.

“!”

긴장한 엔마가 마력을 끌어올리고, 요호와 흑요의 마기가 일어난다.

그러나, 두 마수와 한 사람이 미처 대응을 할 새도 없이, 불의 해일은 그들을 앞에 두고 증발해버렸다.

“······.”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에 잠겨든 사위.

“뭐가······”

놀란 엔마의 시선이 한세연에게로 돌아갔다.그때까지도 한세연의 시선은 이해솔에게 고정이 되어있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그녀와 이해솔 주위의 지면에 어둠이 드리웠다는 것이었다.

스스스스스─

풍경을 집어삼킨 화마도 그 어둠이 자리한 공간만큼은 침범하지 못했다.

“꿀꺽.”

자신의 발치를 점령한 어둠을 본 엔마가 침을 집어삼켰다.

불의 거인도 어둠의 존재를 느꼈는지,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화르르륵─

어둠이 자리한 공간으로 불길에 휩싸인 거인의 발길이 침범한다.

그제야 이해솔에게 고정되어 있던 한세연의 시선이 어둠을 침범한 거인의 발길로 향했다.

“치워.”

나직한 한 마디. 그러나 한세연의 경고에도 거인은 발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서려는지 반대쪽 발을 움직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스아아악─!

지면에 자리한 어둠이 일어나 거인의 발길을 집어삼켰다.

「───!」

놀란 거인이 그제야 발을 치우고자 했으나, 어둠에 삼켜진 발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급기야, 발을 타고 올라간 어둠이 거인의 다리를 집어삼켜버렸다.

쿠아아아앙──!

다리를 잃은 거인이 뒤로 넘어가며 거대한 울림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이윽고, 쓰러진 거인은 그대로 불길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게 무슨······”

사라지는 거인의 형상에 엔마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지금의 장면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밖에 없었기에.

“···도망쳤어?”

불의 거인이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간 것이다. 그렇게 화마의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진 세상.

한세연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이해솔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러한 한세연을 엔마가 경이로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걸음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린다.

화마가 휩쓸고 간 들판. 그 사이로 유진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에게 다가온 유진이 한세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르트를 물러가게 한 건가? 대단하군.”

제아무리 불의 거인이라도 자신과 반대되는 속성인 모르도는 부담스러웠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유진의 칭찬에도 한세연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이해솔만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유진의 시선이 이해솔에게로 돌아갔다.

“그렇군. 들어간 건가?”

이해솔과 균열을 번갈아 본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린듯한 미소를 지은 그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그는 이해솔의 정신이 균열의 너머에 갔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이해솔이 우르크의 힘을 가지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리라.

하지만 유진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침상에 잠이 든 노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평온하던 유진의 표정이 깨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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