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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21화 (222/226)

221화

한 줄기의 빛조차 투과하지 못하는 칠흑의 어둠.

수천 아귀들의 손길에 붙잡힌 내 정신이 그 칠흑의 균열로 끌려들어간다.

그어어어어─

흉악하게 입을 벌린 아귀들이 서로 내 정신을 잡아먹겠다는 듯 벌게진 눈을 번뜩인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말했다.

“이제 됐으니까 놔.”

파스스스······

순간, 내 정신을 잡아끌던 아귀들의 손길이 재처럼 부서져 나갔다.

“······.”

아귀들의 울부짖음이 뚝 멎으며 일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내 정신에 손을 뻗어오는 아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듯 움츠린 몸을 버둥거리며 내게서 멀어지기 바쁘다.

정신으로 존재를 유지하는 녀석들에게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내 존재는 천적이었으니.

내 주위에 몰려있던 아귀들이 물러가며 어두웠던 시야가 개인다.

어둡기만 하던 균열의 세상은 잡다한 잔해물이 어지러이 떠다니는 파란 공간이었다.

“뭐, 찾을 필요도 없네.”

주변을 휘- 둘러보던 내가 어느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란 세상에서 오직 그곳만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농밀한 마력이었다.

아귀들의 어둠이 자리한 곳에서 그 붉은 마력은 물감처럼 번져나와 세상을 피처럼 물들이고 있었다.

저것이 무언인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르크의 마력.”

나는 그 마력으로 물든 공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공간을 떠다니는 부유물들이 핏물이 되어 녹아내리고, 수천의 아귀가 점령한 그곳의 한복판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선다.

─크아아아아!

영역을 침범당한 아귀들의 포효가 귓가를 메아리친다.

사람의 형상을 한 아귀들이 몰려드는 광경은 흡사 지옥의 단편과도 같았다.

수백의 아귀가 해일처럼 몰아치고, 수천의 시꺼먼 손들이 나를 으스러트릴 듯 감싸온다.

──────!

원한에 사무친 안광이 영혼을 헤집고 증오로 적셔진 이빨이 정신을 물어뜯어온다.

셀 수 없는 아귀가 영혼을 뒤집고 저주어린 속삭임이 정신을 어지러이 울려왔으나······

뚜벅뚜벅─

내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범람하는 아귀들의 틈바구니를 태연히 거닐었다.

우르크의 힘이 퍼져나가는 붉은 마력의 근원지로 다가선다.

─크르르르······

아귀들로 뭉쳐진 거대한 늑대가 경계어린 울음을 흘린다. 그러나 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껏 내 정신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나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 불사의 괴물처럼만 보이리라.

“아프네.”

그렇기에 내 이 한마디는 아귀들의 원혼을 일제히 흔들어놓았다.

─······.

아귀들의 울부짖음도, 늑대의 으르렁거림도 그치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나는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니.

아귀들의 공격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으며 수천의 저주를 모두 감내했다.

그런 내 감상은 이러했다.

“두 번은 못해먹겠네.”

거짓이 아니라는 듯 내 얼굴은 심하게 찡그려져 있었다. 미치도록 아파서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투덜거리는 내 상태는 지극히 멀쩡하기만 했다.

아귀들에게 타격을 입는 것보다 그것을 수복하는 속도가 배는 빨랐으니까.

고통은 고통대로 받고 정신은 정신대로 회복되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러니······

“빨랑 끝내자.”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것일까.

─크허엉!

녀석이 달려들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정신에 박혀든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재가 되어 흩날렸다.

스아아아아······

사라지는 늑대의 형상 뒤로 우르크의 마력이 보여왔다.

허공의 한가운데서 마력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피처럼 붉은 홍옥.

다가가 그것을 손에 쥐자 홍옥은 마치 물처럼 스르르- 내 정신으로 흡수되었다.

─······.

찰나, 내 주위를 시끄러이 채우던 아귀들의 울부짖음이 씻은 듯이 잦아들었다.

수천 아귀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그것은 이전의 경계와는 달랐다. 거기에 담긴 의미는 명백한 ‘복종’이었다.

우르크의 기운을 받아들인 이상 녀석들에게 나는 더 이상 적대해야 할 침입자가 아닌 따라야 할 숭배의 대상이었으므로.

그러나 우르크의 마력을 얻었음에도 내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완전 독이네.”

마력에 담긴 사념에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이 용솟음치듯 터져 나와 가슴을 물들인다.

계속 지니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벌써부터 참지 못한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했으니······.

“쯧.”

혀를 찬 나는 손을 털었다.

“이제 영혼만 찾으면 되나.”

우르크의 영혼을 찾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리스가 내게 불어넣은 신의 가호가 우르크의 영혼에 반응할 테니.

“이렇게 였던가.”

우웅···

내 몸에서 하얀 서광이 퍼져나오며 균열의 세상을 밝힌다.

─────!

자신을 추방한 신의 기운에 우르크의 마력이 끓어오르며 내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뒤틀린다.

나는 그것을 감내하며 더욱 더 가호의 기운을 키워 올렸다. 그러자 보여왔다.

“저건가.”

하얗게 밝혀진 균열의 세상.

몸을 움츠린 아귀들의 뒤로 시꺼먼 영혼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

영혼에서 풍겨오는 사념은 너무도 강렬해 여지껏 보지 못한 게 이상한 정도였다.

[경고 : 영혼의 사념에 부동의 각인이 흔들립니다.]

우르크의 영혼에 다가가자 상태창이 위험신호를 보내온다.

물론 상태창이 아니더라도 이미 나는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르크의 마력이 요동치며 내 정신이 재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

파스스스······

내딛는 걸음이 재가되어 사라지고, 무릎이 모래처럼 흘러내린다.

정신이 형상을 잃고 무너져 내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리가 없으면 팔로, 팔이 사라지면 이로, 잇몸으로 꿈틀거리며 기었다.

그렇게 뭐가 남았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마모되어갈 즈음, 나는 간신히 우르크의 영혼에 닿았다.

“···됐다.”

내 입가로 씨익 웃음이 맺혔다.

바로 그 순간.

─────!

우르크의 영혼이 나를 향해 덮쳐들며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

타닥, 타닥.

재가 휘날리고 불똥이 튀는 무너져내린 오두막.

유진은 침상에 잠든 노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묻어 두었던 감정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유진의 가슴을 먹먹히 적신다.

“······노아.”

유진에게 있어 노아란 과거의 연인이요, 선망의 대상이었다.

변변찮은 배경조차 없던 그를 이끌어주었던 영웅.

유진이 균열을 열려는 것 또한 그런 노아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그의 얼마 남지 않던 짧은 시간으로는 결코 노아와 함께할 수 없었으니. 그 기나긴 외로움을 채워주고 싶었기에.

하지만 그 소망이 되려 노아의 시간을 부수고 있다는 사실을, 유진은 침상에 잠든 노아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균열을 막아두는 것만으로 노아의 수명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이를 알게 된 유진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노아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은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저벅─

“유진님, 균열을 손대시는 건 위험···”

유진의 걸음이 균열로 향하는 것을 본 엔마가 이를 제지하려다 흠칫 말을 멈추었다.

“기다리기는 어렵겠구나.”

유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에 땅이 쩍쩍 갈라지고 대기가 뒤틀린다.

공간을 메운 마력이 균열에 부딪히며 연신 붉은 스파크를 튀겨댔다.

퍼엉! 퍼엉!

스파크가 튄 나무며 풀, 돌멩이 따위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버린다.

공간이 비명을 지르고 풍경이 괴멸하는 가공한 광경.

유진은 그 위험천만한 균열을 향해 다가갔다.

피빗, 핏-

스파크에 스친 살갗에서 피가 튀기며 머리가 나부낀다.

마력에 휩싸인 유진의 손이 균열의 틈을 벌리기 위해 뻗어졌다.

하지만 그 손은 채 반도 뻗어지기 전에 멈칫, 움직임을 멈추었다.

“!”

균열을 바라보는 유진의 눈이 커다래진다.

스아아아아······

절대 벌어질 리 없을 것만 같던 균열의 어둠이 그 공간을 넓히고 있었다.

타원처럼 보이던 틈은 서서히 벌어지더니, 급기야 사람 하나가 드나들 수 있는 거대한 구멍이 되었다.

“균열이······!”

놀란 엔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러나 그것은 유진이 한 일이 아니었다.

균열은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스스로 벌어진 것이었으니까.

무언가를 짐작한 유진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기다리라니까 뭘 들어가려 하고 있어?”

“······.”

어느새 눈을 뜬 이해솔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유진이 이채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나왔군.”

“찾는 게 쉬웠거든.”

물론 찾기만 쉬웠지, 우르크의 힘을 받아들이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지만. 영혼을 받아들일 때는 정말이지, 죽는 줄만 알았다.

지금도 티만 안 낼 뿐이지 정신이 쿵쿵 울려대는 탓에 오래 지니고 있기는 어려웠다.

독방에 갇힌 죄수가 철창을 두드려대는 것만 같은 지독함이었으니.

빨리 넘겨주고 손을 털어버려야지.

“별일 없었어?”

“응.”

곁에 서 있는 한세연에게 무심코 묻자 웃는 얼굴과 함께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말을 꺼내놓고 나서야 별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타닥, 타닥···

불에 타버려 뼈대만 앙상히 남은 오두막, 풀 대신 재로 뒤덮인 들판, 지금도 이따금 불씨를 피워내는 나뭇조각 등···

내가 균열의 너머로 가 있는 사이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던 듯하다.

이건 무슨 전쟁이라도 한바탕 일어난 듯한 풍경이었으니.

그 와중에 내가 앉은 의자의 주변만 깔끔한 것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이상했지만···

‘괜찮으니 됐나.’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 한세연의 모습에 사소한 것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지금은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당장 우르크의 영혼을 받아들인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으니.

뒤에 남겨두고 온 소피아도 신경 쓰였고.

“일단 그 전에······”

내가 유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내 손에서 피처럼 붉은 마력이 해일처럼 일어나 유진을 향해 쏘아졌다.

“!”

유진의 눈이 살짝 커지고, 놀란 엔마가 황급히 몸을 날리려는 시늉을 취한다.

그러나 유진을 덮칠 것만 같던 마력은 그를 지나쳐 그 뒤의 공간을 강타했다.

퍼어어어엉──!

“방해꾼부터 치워야겠지.”

아무도 없던 공간에 마력이 막히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에 휘말린 수많은 불씨들이 공간에 흩날렸다. 이를 본 유진은 침묵을 지켰다.

불씨가 흩날리기 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 불로 이루어진 거인이었으니.

불의 거인, 수르트.

내가 날린 단 한 번의 마력에 숨어있던 녀석의 존재가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도랐네.’

내가 저지른 짓이라지만 정말 미쳐버린 힘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것은 가공함을 넘어 섬뜩한 무언가였으니.

“빨리 가져가.”

그리고 그것을 미련 없이 넘기려는 내 모습에 유진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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