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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22화 (223/226)

222화

은하수의 바다가 펼쳐진 별의 세계.

공간을 가득 메운 마법진에서 무수한 마법이 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그 마법의 향연은 휘둘러지는 대검의 앞에 가로막힌다.

───────.

소피아 가 휘두르는 대검을 따라 분쇄의 마력이 일어나 공간을 출렁인다.

그 출렁임의 물결에 닿은 마법의 무리는 삭풍처럼 부서져 내렸다.

어떠한 파괴적인 마법도, 복잡한 고위술식도 물결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이형(異形)으로 이루어진 이상 분쇄의 마력 앞에서는 평등하게 무너져내릴 뿐이었다.

아무리 복잡하고 대단한 마법인들, 괘념치 않고 순수무력으로 바꾸어버리는 일방적인 능력이 바로 소피아의 기프트, ‘분쇄자’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전환된 마법들은 모조리 소피아의 대검 앞에 허무히 부서져 나갔다.

암만 술식을 통해 파괴력을 올린다 한들, 힘으로 치환되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

타샤가 지닌 고도의 술식능력은 소피아의 분쇄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오직 마력의 고하로, 힘으로 승부를 겨루어야 하는 부조리함을 타샤는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알았음에도 타샤의 마법은 멈추지를 않는다.

쏟아져 내리는 마법, 시야를 현란하게 적시는 마력의 향연이 소피아의 눈을 어지럽힌다.

그러는 한편, 타샤는 소피아의 사각으로 몸을 빼냈다.

애초에 타샤의 목적은 소피아를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를 지나쳐 균열로 향하는 이해솔을 저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타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하지만 타샤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

폭죽처럼 산란하는 마법의 명멸 사이로 타샤의 눈이 소피아와 마주친다.

“······.”

대검을 휘둘러 마법을 부숴가면서도 소피아의 시선은 타샤에게 고정된 채 떨어지지를 않고 있었다.

그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과 마주한 타샤는 깨달았다.

저 철벽과도 같은 여인을 마냥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은하수에 퍼져 있던 마법진들이 모래처럼 부숴져내렸다.

화아아아······!

푸른 마력의 결정들이 타샤의 앞으로 모여들며, 거대하고도 복잡한 마법진을 형성한다.

아니, 그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거기에 모이는 것은 어떠한 기술도 내포되지 않은 순수한 마력이었다.

힘의 대결을 강요하는 소피아에게 마법의 사용은 무의미했으니까.

쿠웅──!

마력의 구체가 크기를 키워가며 퍼지는 기운의 파동이 별의 세상을 뒤흔든다.

그 거대한 기운 앞에 위축이 될 법도 하건만, 소피아는 조금의 주눅듬 없이 대검을 겨눠 올렸다.

그렇게 소피아가 타샤의 마력에 맞서 기운을 끌어올릴 때였다.

“?”

돌연, 잦아들기 시작하는 타샤의 마력에 소피아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타샤는 그런 소피아의 의문에는 아랑곳없이 마력을 완전히 거두어들였다.

이내 타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린 소피아는 뒤늦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은하수의 경계가 되는 부근의 풍경이 물감처럼 번지며 이지러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풍겨오는 불길한 기운에 소피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것은 소피아도 전에 느껴본 적이 있는 유진의 기운이었으니.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불길함은 유진의 마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보다 훨씬 짙고 음산하며 불길한 기운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린 소피아의 입가에 시원한 미소가 걸렸다.

“성공하셨군요.”

***

스아아아······

내 손의 위로 핏빛의 붉은 마력이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우르크의 마력. 그 불길한 마력의 등장에 세상이 뒤흔들렸다.

쿠웅───!

마력에 짓눌린 노면이 움푹 주저앉고 오두막의 잔해가 무너져내린다.

타는 듯한 노을이, 물감처럼 번지는 균열의 어둠이, 무너져내리는 세상이······

모든 것들이 비명을 지르는 한복판에서, 우르크의 마력은 불길하게 타올랐다.

녀석의 영혼을 담은 채로.

“뭐해? 가져가.”

“······.”

내밀어진 내 손과 그 위에 타오르는 우르크의 마력을 유진은 의문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설마 여기에 우르크의 영혼이 들어있다는 것을 들켰나?

내가 괜한 생각에 사로잡힌 찰나, 유진의 입이 열렸다.

“걱정이 되지 않나 보군.”

“뭐가?”

“이 마력을 내가 가져가면 이터니티는 붕괴하네.”

난 또 뭐라고.

피식 웃은 내가 말했다.

“말했잖아, 우르크를 없앨 거라고.”

“그 전에 그대를 죽일 수도 있다만?”

“아니, 못 죽여.”

“······?”

의아해하는 유진에게 나는 검게 일렁이는 균열을 가리켰다.

“저게 닫혀버리면 곤란하잖아?”

“그렇군.”

유진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불필요한 것들, 특히 마수를 없애버리겠다는 계획을 지닌 유진이었다.

그런 유진에게 균열이란 꼭 필요한 것이었다.

세계가 재편이 되더라도 마수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유진에게는 그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내다버릴 쓰레기통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균열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균열을 영구히 닫아버릴 수 있는 능력자인 나를 유진이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살려야 한다면 모를까.

지금 균열이 열려있는 것은 순전히 내 힘에 의존한 것이었으니.

이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우르크의 마력에 손을 가져다 대는 유진.

그런 내게는 보여왔다.

─그어어어······

이지가 무너져내린 우르크의 망령이 유진을 향해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 새로운 육신을 바라고 있는 것이.

“조심해,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걱정은 고맙지만 마력에 잡아먹히지는 않을 거네.”

그쪽이 아닌데.

우르크를 조심하라는 말이었으나 내 충고를 오해한 유진이 우르크의 마력을 받아들인다.

─그어어······

그 영혼까지 함께.

이어서 우르크를 흡수한 유진에게서 불길한 마력이 퍼져 나와 공간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가자.”

정신을 잃은 듯 눈이 감긴 유진을 뒤로하고 나는 한세연의 손을 잡았다.

***

“···하아, 하아. 장난이 아니군.”

검을 땅에 꽂아넣은 채 숨을 몰아쉬던 차시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내두른다.

그들이 있던 지하의 공동은 무너지고 녹아내려 원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으며, 곳곳에서 푸른 화염이 타올랐다.

노아의 마력이 고요하던 공동을 단숨에 지옥도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어이, 괜찮나, 고르고프?”

“너나 걱정해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내뱉는 고르고프. 그런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언제나 단정하던 코트는 찢어지고 그을려 넝마가 되어버렸고, 땀에 절은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다.

거칠게 이마를 훔친 고르고프가 걸리적거린다는 듯 넝마가 된 코트를 내팽개친다.

숨을 몰아쉬는 고르고프의 모습은 굉장히 지쳐 보였다.

그가 코트까지 내팽개치는 모습은 차시우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남 말할 처지는 아닌가.’

차시우는 쓰게 웃으며 손아귀에 눌어붙은 핏물을 털어냈다.

그의 상태는 고르고프보다 더하면 덜했지 못한 상태는 아니었다.

마력은 바닥을 보이고, 육체는 슬슬 한계에 가까워져 왔다.

죽음의 위기다.

그러나 차시우는 상황에 맞지 않게 감탄이 나왔다.

정상급 초인인 그 둘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노아의 능력이 그저 놀랍기만 했기에.

“튀는 건······ 무리겠군.”

볼품없이 줄행랑이라도 쳐볼까 싶었으나, 자신을 주시하는 노아의 시선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났다.

그 차가운 시선에선 그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으니.

등을 보인 순간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리라.

‘곤란하게 됐군.’

이미 원하는 시간은 다 끈 뒤였기에 이 상황을 어찌 벗어나야 할 지 차시우가 머리를 굴릴 때였다.

문득 땅에 꽂힌 그의 검, 광락이 넘실거리는 화염에 반사되어 푸르게 번뜩여왔다.

어쩔 수 없나.

혀를 찬 차시우가 광락을 손에 거머쥐었다.

치이이······

검병과 맞닿은 손에서 살이 익어가는 매캐한 소리가 공동을 울려왔다.

노아의 청염에 휩싸인 광락은 도저히 사람이 쥘 수 없는 극도의 초고열까지 올라가 있던 것이다.

그러나 손이 녹아내림에도, 살점이 눌어붙어도, 차시우는 아무런 내색없이 광락을 지면에서 뽑아 올렸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고르고프의 전신에서는 뜨거운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무표정하게 쓸어보며 노아가 입을 열었다.

“죽을 각오는 되었나 보구나.”

“그냥 보내주신다면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

“···역시 안되는군요. 그럼.”

순간, 차시우의 눈에서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저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요.”

“어디 한 번 발버둥 쳐 봐라.”

후아아악──!

노아에게서 피어오른 푸른 화염이 공동을 휩쓸어왔다.

덮쳐오는 화염의 파도를 향해 차시우의 검이 휘둘린다.

찬연한 광휘를 동반한 검격. 검격이 지나간 공간의 온도가 안정을 되찾는다.

동시에 고르고프의 버디슈가 바람을 일으켰다.

시원한 바람을 휘감은 광휘의 마력은 열기를 휩쓸며 화염의 마력과 충돌했다.

─────────!

거대한 마력의 충돌에 귀를 먹먹케 하는 굉음이 지하공동을 뒤흔들었다.

미친 듯이 흔들리며 무너져내리는 천장.

광풍에 휩쓸린 화염이 암석을 실은 채 휘몰아치고, 찬연한 빛이 명멸한다.

그러나, 그 마력의 충돌은 오래가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역시 이렇게 되는군.”

푸른 겁화가 차시우의 시야를 푸르게 물들여왔다. 뜨거운 열풍에 살이 익는다.

뒤이어 닥쳐올 겁화를 바라보며 차시우의 몸이 자신의 그림자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는 이럴 줄 알고 도망갈 수 있는 여분의 마력은 남겨 놓았던 것이다.

애초에 노아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멍청했으니까.

볼썽이 사납더라도 목숨만은 부지하는 것이 차시우의 방식이었다.

고르고프야 뭐, 알아서 해야겠지만.

그러나, 차시우는 그림자로 가라앉던 도중 멈추어야만 했다.

“음?”

그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두 사람을 덮칠 것만 같던 불길이 돌연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왜?”

불길을 거두어들이는 노아를 보며 차시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아는 노아는 봐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

그런데, 불길을 거두어들인 노아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공동에 열려진 문 쪽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

“기어코······”

그리 중얼거리던 노아의 신영이 돌연 두 사람의 앞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느닷없는 노아의 증발에 눈을 깜박이던 차시우는 시간이 지나도 노아가 나타나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 죽는 줄 알았군.”

“도망가려던 놈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군.”

고르고프가 코웃음을 쳤다.

그때, 균열로 통하는 문을 돌아본 차시우가 씨익 웃음 지었다.

“아무튼 성공한 모양이군.”

“그렇군.”

차시우를 따라 시선을 돌린 고르고프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균열의 문. 그 입구를 통해 이해솔을 비롯한 소피아와 한세연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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