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화
무림 세가에서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산다는 건, 몸속에 심장 대신 죄책감을 심어 두고 그 피로 호흡하는 것과 비슷했다. 단목련의 그리 길지 않은 평생이 그랬다.
어른들의 등은 항상 멀기만 했고, 뒤에 서 있던 동생은 시간이 흘러 그녀를 두고서 앞서 나갔다.
그러나 다시 창궐하는 혈라곡의 손에 무림이 흔들리고 가문이 허물어져 가는 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땐 오히려 반가웠다.
몸의 곳곳에 송곳으로 구멍이 뚫린 듯 괴로운 이 고통과도,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가족들이 고난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모두 끝이다.
드디어 끝이다…….
끝이었는데.
* * *
“이해가 안 되네…….”
어린 소녀가 침상 위에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병색이 완연하여 창백하고 가냘파 보이는 소녀였지만 눈동자는 그 속에 별이 뜬 듯이 각도에 따라 반짝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다시 살아났지? 그것도 그냥 살아난 것도 아니고 시간을 역행해서……?’
소녀, 단목련은 자신의 짧아진 팔다리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싸맸다.
죽었다. 죽은 기억은 분명했다.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고통이 천천히 멀어지며 그 영원히 이어질 긴 잠에 빠지는 순간. 그러다 흙에 묻혔고, 그대로 자신은 오랫동안 세상을 부유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서 지나치게 많은 걸 보다가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더니 지금이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보고, 이곳과 저곳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보고, 없던 곳과 알던 곳을 보고.
‘그리고 그동안 나는…….’
흐릿한 기억을 되짚듯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던 련의 입에서 벼락처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하지만 련이 방금 떠올린 것을 고찰할 새도 없이 밖에서 사람이 들어왔다.
“아기씨, 일어나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련이 태어났을 때부터 돌봐 준 유모 장 씨였다.
장 씨는 그녀만 보면 웃는지라 눈가에 부드러운 주름이 져 있었다.
“유…… 모.”
“아기씨, 오늘은 약과도 있답니다. 약을 다 드시면 상으로 드실 수 있어요.”
거의 새카만 색으로 보이는 탕약이 담긴 흰 자기 그릇 옆에는 설탕을 얇게 입힌 약과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탕약의 맛을 익히 아는 련은 울상을 지었다.
“……약과 안 먹고 약도 안 먹으면 안 돼?”
“그런 말씀 마세요.”
유모 장 씨가 엄격하게 말했다. 그 말에 련은 어쩔 수 없이 탕약 그릇을 받았다.
유모 장 씨는 언제나 그녀를 살뜰히 챙겨 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누워 있는 일곱 해 동안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유모가 그간 얼마나 마음 졸이고 걱정해 왔는지 빤히 아는데 약을 먹지 않겠다고 뻗댈 수는 없는 일이다.
꿀꺽꿀꺽 탕약을 전부 마시며 힘껏 찌푸렸던 눈을 겨우 뜨자, 유모 장 씨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반쯤 눈물을 글썽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눈을 뜬 후, 련이 본 집안사람들은 전부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련이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릴 때, 쓴 탕약을 먹고 이맛살을 찌푸릴 때, 달콤한 곶감을 먹고 표정이 녹아내릴 때마다 다들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7년이나 거의 혼수상태였으니까. 이때로 돌아왔구나.’
이유는 모르지만 련은 태어나자마자 혼백이 튕겨 나갔다.
그리하여 7년간, 껍데기만 남은 몸은 누가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하염없이 누워 있었고 억지로 먹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세가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벌모세수라는 대법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도 참…… 벌모세수가 통할지 안 통할지도 모르는데 그 비싼 대법을 무작정 해 보겠다고 달려드셨으니.’
‘벌모세수’는 보통 갓 태어난 아이를 대상으로 시전하는 대법이다. 빠르게 단전의 터를 잡고 탁기를 태우며 근골을 바로잡아 무공을 익히기에 좋은 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병을 낫게 하는 치료법도 아닌 것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행했는데 놀랍게도 그 방법이 통했다!
대법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련이 기적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작은 아이가 드디어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고, 말을 하기 시작했으니 그걸 지켜보는 어른들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어머니는 정신을 차린 련을 두고 울다가 반쯤 혼절한 통에 이렇게 유모가 대신 챙겨 주고 있었다.
유모 장 씨 역시 그새 맘이 벅차올랐는지 얼른 눈물을 훔치고는 련의 앞에 약과를 내려놓았다.
“아휴. 어찌 이리 의젓하실까.”
련은 쓴 약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약과를 우물거리며 슬쩍 유모 장 씨의 눈치를 살폈다.
“유모, 있지. 나 밖에 나가 보고 싶어. 여기 앞에 정원에만.”
“그럼 제가 어르신들께 여쭈어보고 허락을 받아 올게요, 아기씨.”
유모가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어르듯 안아 들고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7년간 인형처럼 지냈던 어린아이는 일곱 살이라기엔 너무 작았다.
* * *
자신을 재웠다고 생각한 유모가 조용히 밖으로 나가자마자, 련은 벌떡 일어나 거울을 붙잡고 손끝에서 피어오른 푸르스름한 기운을 주입했다.
그와 동시에 거울 위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 장면을 봤다면 이 신묘막측한 술법에 놀라 까무러쳤을 것이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 단목련]
[편의에 맞추어 보기 방식이 변경됩니다…… ■■□□□]
그 아래로 한 문장이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갔다.
[사용자가 관조할 수 있는 정보를 출력합니다.]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보기 방식으로 출력됩니다.]
보기 방식이 변경된다고 적힌 칸이 하나씩 하나씩 칠해지더니 이윽고 다섯칸이 전부 다 찼다.
[■■■□□]
[■■■■□]
[■■■■■]
[변경 완료!]
[선경(仙鏡)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용자가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
아무리 봐도 자신이 이 상황을 후딱후딱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그 모습이 꼭 게임 혹은 컴퓨터의 모니터 같다는 점이 련을 조금 수치스럽게 했다.
‘제, 젠장. 내 깜냥이 그거밖에 안 된다는 건가?’
그건…… 차마 부정할 수가 없다.
“죽었다 돌아오는 것도 할 만하네…….”
죽어서 혼백으로 구천을 떠도는 동안 많은 걸 보고 그보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안다는 건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건 다시 펼쳐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과거로 돌아오며 그녀의 몸이 감당할 수 없는 대부분의 것들을 잊었지만, 사람이 한 번 몸에 익힌 것은 영영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련도 혼백에 새겨진 앎을 통해 관조할 수 있었다.
다만 그녀에게 가능한 만큼만,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게 바로 지금 이 방식이었다.
련은 창피함을 억누르고 거울을 굳건하게 노려보았다. 곧 거울 위에 먹으로 쓴 듯한 글씨가 사르르 떠올랐다.
바로 이렇게.
단목련
특성 : 무한한 영기의 샘 / 반쯤 알게 된 / 악의 추모를 받은 / 온실 속 병든 화초
조화 : 7성
심안 : 2성
정화 : 1성
체력 : 3 / 100
내공 : 습득 불가
외공 : 미습득
자질 : 측정 오류
오성 : 측정 오류
영기 : 76 / 100
주의 : 영기를 50 이하로 유지하세요. 이 상태로 두 달 이상 지속될 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가능한 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거울…….’
하지만 볼 줄 아는 것과 가진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대부분의 능력치가 참으로 단출했다. 체력은 100에 3, 외공은 미습득 상태.
‘내공은 아예 습득 불가라니.’
련은 머리를 싸맸다. 그 와중에 영기 항목만은 혼자 하늘을 뚫을 지경으로 치솟아 있다.
이것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난관이었다.
외공만으로는 결단코 지고의 경지에 이를 수 없는 이 무림에서 내공을 쌓을 수가 없다는 것.
인간으로서는 기이할 만큼 지나치게 뿜어내는 영기 때문에 육신의 그릇이 깨져 죽었던 건 어떻게 피한다고 해도, 이대로 무림인으로 살아남는 게 정말 가능할까?
지난 생에는 무공을 배울 수 없어서 이런 걸 알지도 못했다.
자질과 오성은 측정 오류라고 하니 알 수도 없고, 그 와중에 영기는 아주 새빨간 색으로 깜박거렸다. 그 밑엔 ‘주의’까지 떠 있다.
주의 : 영기를 50 이하로 유지하세요. 이 상태로 두 달 이상 지속될 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두 달 남은 자신의 생명이었다.
‘영기를 50 이하로 유지하라고?’
그래도 수치가 명확하게 보이니 막막한 와중에도 마음은 조금 편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50까지만 낮추면 된다는 얘기니까. 어떻게 낮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특성은 또 뭐야…….”
‘악의 추모를 받은’이라든가, ‘반쯤 알게 된’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무한한 영기의 샘’, ‘온실 속 병든 화초’는 알 만했다.
회귀하기 전 그녀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던 이유! 바로 넘쳐흐르는 영기를 주체하지 못한 몸이 끝없이 삐걱거린 탓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련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은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왔다.
그간 왜 아팠는지도 알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건강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반드시 무사고, 무재해, 무병장수해 보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