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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화 (5/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화

“아, 아기씨. 어찌 이런 천한 일을 직접 하시겠다고…….”

“세가의 일에 천하고 귀한 게 어디 있어! 다 똑같이 귀한 거야. 그리고 이 닭은 할아버지가 드실 달걀을 낳는 닭이잖아. 나도 돌보고 싶어.”

작은 소녀가 가주를 운운하니 유모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전 씨도 왜인지 모르게 살짝 기가 죽었다.

거기다 모든 일이 다 똑같이 귀한 것이라는 말이 조금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아! 그, 그 들깻묵은 조금만 넣으시면 됩니다.”

“이것보다 더 적게?”

“예, 예에. 그건 많이 먹이면 산란량이 줄어드는 것이라.”

“그럼 요 정도만?”

“예, 딱 그 정도만…….”

전 씨가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소녀는 야무지게 나무 주걱을 손에 쥐고, 커다란 대야에 여러 가지 재료를 열심히 뒤섞었다.

뺨에는 들깻묵을 묻힌 채…….

“이 정도면 될까?”

태어나면서부터 몸져누워 있다는 세가의 장손에 대해서는 모두 오며 가며 안타깝다는 둥 한마디씩 했는데, 이번에 어마어마한 대법을 받고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도 시끌벅적했었다.

다 허물어 가는 세가 사정에 마지막 남은 걸 박박 끌어모은 한 수가 성공했다며.

그 당사자가 주방에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단지 얘깃거리일 따름이었다.

소녀와 함께 만든 모이를 한 대야 짊어지고 닭장으로 향하며 전 씨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소녀만이 천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저 닭은 아주 새까맣네.”

“아! 저 오골계 말씀이시군요. 부리부터 뼛속까지 새까만 녀석이지요. 아주 맛이…… 아니 그, 건강한 녀석이랍니다.”

전 씨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래? 그럼 까망이라고 불러야겠다.”

까망이…….

유모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 그러며는 흑월(黑月)은 어떻습니까? 월영재의 검은 닭이니.”

“흑월? 그게 더 나아?”

소녀가 묻는 말에 주방 전 씨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닭 이름치곤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싶긴 했지만 ‘까망이’보다는 나은 것도 같았다.

“모, 모이는 모이통에 넣어 주면 됩니다.”

나무를 깎아 길쭉하게 만든 모이통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전 씨는 소녀가 만든 모이를 한 국자 퍼 올려 모이통에 넣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침에 배불리 먹였기 때문에 아마 별로 반응이 없을 겁니다. 모이가 맛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

그런 게 아니니 상심치 마시라고, 그런 말을 하려고 했으나.

푸드더덕!

푸드득!

푸더덕!

모이를 크게 떠올려 모이통에 놓기가 무섭게 닭장 안의 열댓 마리 되는 닭들이 동시에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의 눈에 아주 천천히 들어왔다.

닭도 맹수의 하나였던가?

그 순간 전 씨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닭들은 모이통으로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치열하게 싸웠다. 모이를 한 입이라도 더 많이 먹으려는 격렬한 날갯짓에 깃털이 펄럭펄럭 날리고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애들이 배가…… 배가 고팠나 봐.”

“그…… 그러게…… 말입니다요…….”

한 줌 남짓 넣어 줬던 모이를 모이통 쪼갤 기세로 다 먹어 치운 닭들은, 그릇이 비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돌아가 모래를 쪼아 댔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조그만 소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묘시쯤에 밥을 주면 된다고 했지? 앞으로는 내가 잘할게!”

전 씨는 받잡기 어렵다는 표정을 애써 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팔자가 어찌 되려고…….’

하지만 천지신명도 그에게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 * *

련이 닭에게 관심을 준 건 단목천기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멀리서 닭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그 닭 울음소리가 월영재 소속 주방에서 챙기는 닭장에서 난 소리라는 걸 알고, 련은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다.

누워 있는 동안 주야장천 해 온 게 어떻게든 영기를 많이 쓰는 법을 찾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도움이 되는 건 주위에 이 영기를 나눠 주는 거였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에게 무턱대고 영기를 밀어 넣는 건 민물고기에게 바닷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자신의 그릇이 위태로운 것이 그 때문 아니던가.

최대한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정제해야만 사람에게 무탈히 전해 줄 수 있었는데, 련은 그 정제법을 얼마 전에 깨우쳤다.

어려울 것도 없이 그저 ‘여러 단계’를 거치면 된다!

물을 한번 정화한 뒤에 영기를 불어넣고 그걸 끓여서 뭔가를 만드는 식이다. 단숨에 많은 양을 먹일 순 없어도 안전했고 그녀의 영기도 소모할 수 있다.

그러니 련의 눈에 닭 모이가 얼마나 빛나 보였겠는가?

모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기를 쓸 수 있어서 좋고, 단목천기가 이 영기가 깃든 모이를 먹고 큰 닭이 낳은 달걀을 꾸준히 먹을 테니 그의 건강에도 좋고,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효손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니 또 좋고.

그런데…….

‘닭이…… 잘 자라도 너무 잘 자라는 것 같은데.’

부슬비가 내리며 더위를 식혀 주던 이른 새벽.

련은 유모가 씌워 주는 우산 아래에서 넋을 놓은 얼굴로 닭 모이를 국자로 떠서 흩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첫날에는 광기에 차서 모이를 먹겠다고 달려들던 닭들도 며칠이 지나자 제법 안정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나자, 닭들 중에서 깃이 새까만 오골계 한 마리의 눈빛이 나날이 총명해지는 것 같았다.

“음, 흑월아, 맛있어?”

오골계가 고개를 끄덕였다. 련은 자신의 말과 닭의 움직임이 우연찮게 맞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해 준 것만 같았다.

“닭들도 아기씨가 주는 모이를 유난히 좋아하네요.”

련의 곁에 선 유모가 흐뭇하게 말했다.

“내가 밥 주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뭐.”

“아니에요. 전 씨가 줄 때랑은 반응이 전혀 다른걸요.”

련은 배시시 웃으며 닭들을 바라보았다. 유모 장 씨 말을 듣고 보니 그런 듯도 했다.

“닭 모이 다 주시고 월영재 들르시는 건가요?”

“응!”

단목천기는 얼마 전 감사 인사를 올리러 갔을 때 매섭게 반응을 한 것치곤, 아침마다 들이닥치는 련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오래 살고 싶은 것뿐인데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자신의 몸, 주변인들 건강, 가문 상황. 이제 앞으론 동네 상황, 무림 상황까지 살펴야 할 판이다.

‘거기다 혈라곡도 어떻게 해야 해.’

다른 걸 다 해결해도 혈라곡을 못 잡아내면, 자신이 스물이 될 때쯤엔 불타는 무림을 바라보며 닭 모이 뿌리는 사람이 될 터였다.

련이 그렇게 고민하며 월영재로 걸음을 돌릴 찰나였다.

닭장 끝과 맞닿아 있는 담벼락의 작은 문 쪽으로 작은 누군가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어 련이 그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바로 그 순간.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 때문에 들어서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 심안 4성 성취(1▲) *

단점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해당 능력은 영기를 추가로 소모합니다.

심안 4성이 조화 4성과 어우러집니다.

시야에 빛이 번지며 번쩍 문자가 떠올랐다. 련은 이제 낯익은 문자를 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심안의 성취가 이렇게 오를 때가 있긴 했다. 바로 자신의 조부를 봤을 때였다.

그때 련은 ‘심안’이라는 능력이 뭔가를 보는 힘이니만큼 강맹한 것, 거대한 것, 위대한 것을 볼수록 빠르게 경험이 쌓이는 게 아닌가 하고 추측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보다도 작은 남자애를 본 것뿐인데 단숨에 4성이 된 것이다.

‘이게 대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심안이 4성까지 올라간 덕분에 단점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조화 4성과 어우러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확인해야 했다.

련은 서둘러 소매에서 선경을 펼치고는 자신의 능력 중에서 ‘조화’를 확인했다.

1성 : 모나지 않게 잘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2성 :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3성 : 본 것을 체화할 수 있습니다.

4성 : 어긋남을 깰 수 있습니다.

5성 : 어긋남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6성 : 눈에 띌 수 있습니다.

7성 :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안 4성은 단점을 볼 수 있는 능력이고 조화 4성은 어긋남을 깰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다는 게 무슨 의미일지 잠시 고민하던 련이었으나 마지막 줄에서 불현듯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조화 7성.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무도 모른 거구나……!’

마음 한편에서 계속 의아해하던 것이었다.

백년쯤 묵은 산삼 정도 되면, 심법 익혔다 하는 사람은 눈으로만 봐도 범상치 않은 걸 알아챌 수 있는데 왜 아무도 자신이 가진 영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과거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쓰러지고 혼절하고 피를 토하는데 그 와중에 영기를 감지할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목숨 줄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처지라곤 해도 겉으로 보기에나마 건강을 찾아가고 있는데, 세가의 그 누구도 자신의 영기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더라니.

‘조화 때문이었어…….’

조화만 7성까지 성취한 것도 의아했었는데 아마 살아남으려는 몸의 발악이 아니었을까, 련은 추측했다.

무공 좀 익혔다 하는 사람들이 슥 보기만 하는 걸로 그녀의 체질을 알아챈다면?

이 살아 걸어 다니는 영약을 얻기 위해 강호에 새로운 피바람이 불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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