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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화 (6/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화

새삼 가슴을 쓸어내리던 련은 우선 눈앞의 소년에 대한 것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이름 :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무공 :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자질과 오성 :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고민 :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어? 이게…… 뭐야?’

왜 아무것도 제대로 뜨지 않지? 련은 당황했다. 동기화 실패?

하지만 소년을 보고 심안의 성취가 올랐으니 그가 범상치 않은 인재인 것만은 분명했다.

가세가 기울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이때, 인재란 더더욱 소중했다.

가문이 살아야 련도 편히 살 수 있다. 련은 망설이지 않기로 결심하곤 유모에게 속삭였다.

“유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잠시만.”

“예? 아, 아기씨?”

유모를 닭장 뒤에 밀어 넣은 련은 소년에게로 달려가 팔부터 붙잡았다. 부슬비가 내려 눈썹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기, 얘!”

소년은 련의 기척에 전혀 놀라지 않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련은 그만 할 말을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자신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릴까 싶은 소년이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과 낡은 옷가지가 사람이라기보다는 작은 짐승처럼 보였지만 이목구비만은 먹으로 그린 듯이 뚜렷했다.

거기다 왼쪽 눈 아래에는 눈물점이 하나 있어서 한번 보면 웬만해선 잊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소년의 주위로 은은한 빛이 맴도는 것만 같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그녀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이도 분명 대단히 미려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가 지금 이 소년처럼 딱 왼쪽 눈매 아래 눈물점이 있었는데, 그게 누구였지?

그 순간 그녀가 겪은 미래의 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숲의 나무 내음이 피비린내에 묻히고 맑은 햇볕이 야속하게 나뭇잎 사이로 비치던 날.

그녀의 영기가 역류하여 피를 왈칵 토하며 휘청거릴 때, 무심하게 잡아 주었던 손이 있었다.

나이가 차면서 몸은 계속 나빠졌고, 련은 요양하기 위해 항주를 떠났을 때였다. 작은 암자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하필 그 아래쪽 마을에 혈라곡의 잔당들이 쳐들어왔었다.

그때 련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영기는 역류해 몸이 좋으면 휘청거렸고 몸이 나쁘면 피를 토하는 나날, 쓸 줄 아는 무공은 없지…….

그러다 때마침 그녀의 암자 근처를 지나는 무림인 일행이 있었다.

일행의 주인이 휘청거리는 그녀를 붙들어 주기에 련은 염치 불고하고 도와 달라고, 혹여 그게 어렵다면 바로 아래쪽에 제갈세가가 있으니 그쪽에 말이라도 전해 달라 부탁했는데…….

─ 이, 이 노리개를 드리겠습니다. 대신 이 산 너머에 커다란 세가가 있는데 거기에 말씀만 전해 주시면…….

병든 몸을 애써 굽혀 애원했지만 자신을 멀거니 바라보던 남자의 눈길이 선명했다.

─ 이쪽도 갈 길이 멀다.

‘그러더니 그냥 갔지.’

무슨 개가 짖는 걸 보듯이 멀거니 내려다보다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그를 붙잡을 새도 없이 그대로 혼절했다가 눈을 뜨니 자신은 대청마루에 누워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간병해 주고 있었다.

다행히 제갈 세가에서 항상 순찰을 돌던 사람들이 혈라곡 잔당들을 알아보곤 늦지 않게 찾아와 물리쳐주었다고 했다.

그 순간 벼락이 관통하는 것처럼, 자신을 흘끗 쳐다보고 갔던 그 남자가 이 아이의 얼굴 위로 겹쳐 보였다.

‘마, 마, 마천교 소교주! 천화륜!’

“…누구?”

소년의 앳된 목소리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련은 혼비백산한 얼굴로 소년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 그게, 너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얘가 이때 여기에 있었어? 항주에 있었다고? 아직 마천교로 가기 전인가?’

자신이 붙잡으려고 했던 그 남자가 마천교 소교주였다는 건 제갈세가 사람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그때 차라리 조용히 지나가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련이 입술만 한참 달싹이고 있자 소년이 불쑥 말했다.

“나 다니는 사찰 따로 있는데.”

예상치 못한 만남에 너무 놀라서 어버버하던 련은 소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왜 갑자기 자기가 다니는 사찰 얘기를…….

그 순간 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사, 사교 전도하는 거 아니야!”

정작 자기가 장래에 마천교 소교주가 될 거면서 지금 사람을 사이비(似而非) 종교인으로 몰다니!

“정말, 정말 아니야. 아닌데, 그게…….”

정신이 혼미했다.

상대가 그냥 어린애가 아니라 마천교 소교주라고 생각하면…….

‘어라? 마천교…… 소교주?’

마천교 소교주가 누구던가.

약관이 되기도 전에 소교주의 자리에 올라 교주를 대신해서 마천교의 모든 일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하며 무림에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압도적인 무위로 인해 이름이나 별호조차 없이 ‘소교주’라는 지위만으로도 통했던 그는 련이 본 미래 속에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남자였다.

약 30년 전 혈라곡을 상대하기 위해 흑천련, 마천교, 백도맹이 손을 잡고 결성한 무림맹에서도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며, 그 동정혈사(洞庭血事) 이후 본거지에 칩거한 교주를 대리하면서도 흑천련이나 백도맹의 장로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았다던가…….

그리고 그때에 비하면 한참 어린 지금,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련의 심안 성취를 곧장 한 단계 끌어올릴 정도의 강렬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련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재능이다.

검, 도, 창, 활, 그 무엇을 쥐더라도 눈부신 성취를 약속하는 천재성!

거기까지 생각한 련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너는 이름이 뭐야?”

“그러는 넌 이름이 뭔데?”

비쩍 마르고 조그만 소년이 은근히 맹랑하고 기개가 있었다. 련은 눈초리를 씰룩했다.

“난…… 련. 너는?”

소년은 입술을 살살 다물었다 풀었다 하며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곤 대답했다.

“화륜.”

“음, 화륜? 그냥 화륜?”

마천교의 교주 이름이 천혜담이었으니 아마 천 씨는 마천교에 가서 받은 성씨인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미래의 소교주일 거라고 예상했으면서도 이름을 듣자 마음 한구석이 선득해졌다. 진짜 소교주가 맞았다.

소년의 눈길이 그녀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수상쩍은 걸 보듯 의심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련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륜아 너 몇 살이야? 나는 이제 여덟 살.”

“……아마도 여섯 살.”

그 순간 련이 멈칫했다.

여섯 살이라고?

한 손으로도 나이를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어린애인 소교주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여섯 살, 여섯 살, 여섯 살…….

‘마천교 소교주가…… 나보다 두 살 어렸구나…….’

그와는 사적으로 말을 섞을 일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두 살이나 어렸는데 그만한 성취를 이뤘었다니.’

워낙 무공이 출중하다 보니 열 살은 연상인 줄 알았다. 련은 자신의 소맷자락을 흘낏 내려다보았다. 글씨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화륜

무공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자질과 오성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고민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이름을 들었기 때문인지, 이름만은 ‘화륜’이라고 떴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일부 동기화 실패’ 상태다.

‘상태창에 뜨지 않을 정도로 자질이 끝내준다는 얘기인가? 할아버지보다 더?’

그녀가 죽어서 삼도천에서 물장구를 칠 때, 련은 많은 것을 보고 거쳐 왔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천당, 선계, 열반, 천국, 지옥이라고 불러온 곳.

그리고 미래, 계시, 예지라고 표현하는 것들.

거기서 련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누워 있던 시간 동안의 기억과 아팠던 이유, 죽었다고 생각한 이후의 미래, 이번 삶 이전의 삶, 이 세상이 만들어진 방법, 시작과 끝, 빛과 어둠, 어제와 내일, 죽음과 삶에 대한 것들 전부에 대해서.

련이 세상을 직관하고 해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녀의 혼백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것들 중 대부분을 도로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지워 냈기 때문에.

그녀가 보는 이 정보는 그녀가 세상의 끝에서 얻은 것들을 그녀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그녀가 받아들이기 쉬운 모습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정보라는 걸까?’

거기다 화륜의 주위로 미약하지만 은은한 금빛이 어른거렸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련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화륜의 눈을 마주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다시 살폈다.

련은 화륜이 들고 있는 허름한 광주리가 그와 지독하리만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치 위장용으로 주워온 것 같달까.

‘설마 나중에 어린 시절 모습을 봤다는 이유로 날 죽여 버리겠다고 달려들진 않겠지?’

사람들 중에서는 간혹 자신이 힘없던 시절을 상기하기 질색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이 어색한 침묵을 타파하기 위해 련은 얼른 품에 챙겨 왔던 걸 꺼냈다.

“아! 이거 먹어 볼래?”

엉뚱하고 뜬금없는 화제 전환이었으나 소년은 잠깐 고민하다가 응해 주기로 한 듯했다.

“그게 뭔데?”

“약과인데, 오늘 탕약 잘 먹어서 받은 거거든.”

련은 핑계를 대며 기름종이에 싸 온 약과 꾸러미를 꺼냈다. 그때 화륜이 광주리를 든 양손을 들어 보였다. 흙먼지가 이리저리 묻은 손이었다.

약과를 손에 쥐지 못하겠다는 그의 행동에 련은 기꺼이 그의 입가에 약과를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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