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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7)화 (7/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7화

“아 해.”

화륜은 황당하다는 듯이 련을 쳐다보다가 잠자코 입을 벌렸다.

화륜은 련이 조금씩 떼어 주는 약과를 야금야금 잘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기 새 같아서 련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맛있어? 내가 아끼는 거야.”

“응, 뭐…… 맛있어.”

“근데…….”

“……?”

반의반쯤 남은 약과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련은 히죽 미소 지었다.

‘아무리 마천교 소교주라도 말이야. 2년이면 밥그릇 개수만 따져도 셋, 여섯, 아홉, 열둘… 2100개!’

련이 화륜의 정수리에 꽁 하고 알밤을 먹였다.

“어딜 누나한테 반말이야. 쪼끄만 게.”

“…….”

련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서 으름장 놓듯이 말했는데, 화륜은 그야말로 얼이 빠진 듯 놀란 얼굴이었다.

날벼락을 맞고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본 듯이, 아니, 본인이 날벼락을 맞은 듯이 놀란 화륜은 들고 있던 낡은 광주리도 손에서 놓쳤다.

그가 너무 놀라자 되레 련도 움찔했다.

“마…… 많이 아팠어? 살살 했는데…… 아주 살짝 딱콩 한 건데…….”

“……아니, 아픈 건 아니야…….”

“그래? 그런데 요게 또!”

“……!”

련이 한 번 더 꿀밤을 꽁 하고 때렸다. 화륜은 흠칫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정수리를 손으로 몇 번 매만지더니 기가 막힌단 얼굴로 련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화륜이 갑자기 웃는 것이 아닌가?

“……?”

그러다가 또 웃음을 뚝 멈추곤 그녀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련이 의아해서 고개를 기울일 때까지, 한참이나.

“음, 나 이제 가야 해요.”

반말하지 말라고 꿀밤을 먹인 탓인지 아니면 장단을 맞춰 주는 건지 화륜은 그렇게 말했다.

그가 갑자기 돌아가겠다고 하자 련은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깜박였다.

“어, 지금? 벌써?”

화륜은 고개를 끄덕이곤 떨어뜨렸던 광주리를 챙겨 들었다. 련은 그의 입에 남은 약과를 밀어 넣고는, 유모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까지 급히 달려가 우산을 가져와서는 얼른 말했다.

“일단 이거 받아. 비가 오니까…… 그리고 나 아침마다 여기서 닭 모이 주는 일 하거든. 이 시간에 여기로 오면 만날 수 있어. 알았지? 놀러 와야 해.”

화륜은 우산을 받지 않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련이 그의 손을 단단히 낚아채어 들려 주었다.

화륜이 그런 련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괜히 안절부절못하던 련은 뒤돌아서려던 소년을 한 번 더 잡아채어 그의 품에 가지고 있던 약과와 찹쌀떡을 다 안겨 주었다.

화륜은 이런 걸 왜 주냐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련이 등을 떠밀자 더는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련이 소년의 등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유모 장 씨가 얼른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기씨!”

“아, 유모.”

장 씨가 그녀의 손을 얇은 천으로 닦아 주고 머리 위로는 외투를 올려 비를 가려 주며 련의 얼굴을 살폈다.

“아기씨, 그 애가 마음에 드세요?”

련은 복잡한 표정을 삼키곤 애써 웃음 지었다. 마음에 드냐고? 그런 문제가 아니야…….

“……혹시라도 그 애 보이거든 잘해 줘, 알았지? 맛있는 것도 꼭 챙겨 주고.”

련의 신신당부에 유모 장 씨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 * *

요즘 단목천기에게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도무지 눈치라곤 볼 줄 모르는 그의 장손이었다.

“매일같이 찾아온다고 뭐 내 마음이 바뀔 줄 아느냐?”

“아니요?”

“……아니, 알면서도 찾아와서 무얼 하려고 해?”

“네? 할아버지 뵙고 싶어서요.”

손녀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로 말을 한 통에 단목천기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크흠.”

“아! 오늘 찻물은 제가 길어 왔어요. 요기 월영재 뒤에 있는 냇물이요.”

“물에 빠지면 어쩌려고…….”

“강립이 같이 가 줬어요. 오늘은 제가 차를 내려드릴게요, 할아버지.”

단목천기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고는 손을 내저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손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는 듯이 매끄러웠다.

‘아니……?’

단목천기는 찻잎을 갈무리하며 기묘하게 일렁이는 눈빛으로 손녀를 내려다보았다.

이 손녀가 깨어나고, 만년지극혈보에 대해 감사 인사를 올리러 왔을 때도 놀라기는 했다.

손녀는 자신의 얼굴에 자리 잡은 화상 흉터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깨어난 지 고작 몇 달밖에 안 되었으니 흉한 것과 흉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나 보다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것이다. 찾아와서 별달리 하는 것은 없었다.

한 시진 정도를 그와 함께 있으며 그가 내려주는 찻물을 홀짝이면서 시답잖은 얘기나 재잘거리다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앉아 있는 긴 시간 동안 자세를 흐트러뜨리지도 않았고 지루해하지도 않았으며 이따금 찾아드는 침묵을 어색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천하의 이치를 알아채는 것이 절정고수 아니던가.

하물며 부상을 입기 전까지는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었던 단목천기가 보기에는 범상찮은 자질의 싹이 엿보였다.

‘그렇다곤 해도 기가 막히는군. 벌모세수를 받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만…….’

다구를 차례로 배열하고, 개완(뚜껑이 있는 찻잔) 안에 찻잎을 덜어 내 뜨거운 물을 따르며 찻잎을 적시고 흔들어 향을 맡는 동작이 자신의 그것과 똑같았다.

벌모세수를 받아서 이런 건가 하는 허황된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어린 것이 자기 손만 한 찻잔을 쥐고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면 가슴께가 묘하게 흔들리고 만다.

“할아버지, 드세요.”

밤톨만 한 것이 온 신경을 다 집중하느라 입을 쭉 내밀며 우려낸 찻잔을 그에게 내미는데 팔이 작고 짧아 탁상의 반도 넘어오지 못했다.

단목천기는 무심결에 웃음이 터지려고 한 걸 헛기침으로 무마하곤 손녀가 내미는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단목천기는 눈을 내리감고 차를 음미했다.

맑고 깨끗한 수색, 그윽한 향에 자연스러운 단맛이 오래도록 입 안에 감돌았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맛이 좋았던가?’

몇십 년 전 세가가 한창 잘 나갈 때야 온갖 진귀한 찻잎을 맛볼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동안 단목천기는 오래 묵어 쾨쾨한 찻잎의 맛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는데, 손녀가 끓여주는 차는 자신이 가장 휘황찬란하던 시절 맛보았던 진귀한 차의 향기를 떠올리게 했다.

차의 맛은 언뜻 샘물이 떠오를 듯 맑은 것만 같고, 한 모금 마시자면 호흡과 속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엊그제 자신이 우려 마신 것과 똑같은 찻잎인데…….

“어떠세요?”

“…….”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그 향을 음미하는데, 몇십 년 전 혈라곡과의 전투 이후로 손상된 단전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통증도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느낌이…… 아닌데?’

고개를 들고 눈을 뜨니 손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 맛에 대한 감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네 솜씨가 썩 나쁘지는 않다.”

아비를 닮았는가?

그의 첫째 아들도 차에는 조예가 깊어 이따금 그와 마주 앉아 차향을 즐기곤 했다.

단목천기는 저보다 이르게 세상을 등진 첫째 아들을 떠올렸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들을 생각하면 심장에 대못이 박힌 듯하였으나, 그것이 아비 얼굴도 눈에 담지 못한 딸의 심정만 하겠는가.

“찹쌀떡 같은 것은 만들 생각 말고 다도나 연습하는 것이 옳겠구나.”

생각을 돌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어린 손녀의 얼굴 위로 그늘이 졌다.

단목천기는 내심 아차 했으나 말을 번복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은 손녀가 그에게 아침 문안을 오면서 찹쌀떡을 만들어 온 적이 있었다.

팥소는 너무 달아서 오히려 썼고 흰 떡은 거의 씹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 먹고 나자 입 안에서 묘하게 상쾌하고 시린 박하 맛이 났다.

그는 전쟁도 치른 적이 있는 옛사람이다. 먹는 것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것이었고, 그러니만큼 간식이나 식도락에는 취미가 없었다.

주어진 것이면 무엇이든 무던히 잘 먹는 게 그였다. 유일한 사치가 차를 마시는 것 정도다. 그마저도 가세가 기울어, 오래된 차를 조금씩 마시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손녀딸이 만들어 왔던 엉성한 모양의 단팥 찹쌀떡은 그런 단목천기에게도 실로 엄청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땐 아이가 어려서 뭘 못 만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차를 근사하게 우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그냥 요리만 못하는 게 분명했다.

단목천기는 손녀가 자라서 혼례를 올릴 날이 오면 반드시 절강성 제일의 숙수를 혼수에 넣어 보내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그래도 차는…….”

손녀가 웅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여기서 더 칭찬을 해서 교만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단목천기의 뇌리에 스쳤지만, 단목천기는 차마 엄하게 말하지 못했다.

“말했지 않으냐. 이만하면 잘했느니라.”

그제야 손녀가 얼굴에 그늘을 걷고 미소 지었다.

단목천기는 손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던 잠시 동안 자신이 차 맛을 잊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제야 다시 차 맛이 느껴졌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단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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