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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화 (10/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화

단목현우는 련이 그렇게 된 게 자신이 그날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이 번잡해지고 칼끝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심마가 깃든 것이다. 주화입마까지 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단목현우는 아직도 심마를 이겨 내지 못했다. 그래서 폐관 수련을 끝마치고도 련에게 빙당호로며 약과며 온갖 간식을 보내면서도 정작 그녀를 찾아오지 못하다가, 단목천기로부터 글공부 명령을 받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했다.

“배운 글자를 잘 익히기 위해서는 자주 써 봐야 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네!”

“오늘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 서로 편지를 주고받도록 하렴. 한 줄만이라도 좋으니까.”

단목비는 요즘 누이와 함께 뭐든 배우는 데 심취해 있어서 신이 나 고개를 끄덕였다. 누이 련과 화륜의 답신을 기대하는 것이다.

글자 수업이 끝나면 다도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련이 끓인 차를 마시는 시간으로, 련이 꼭 함께하자고 주장했다.

단목현우는 조카에게 매번 차 대접을 받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만류하려고 했지만 련은 할아버지에게 배운 다도를 연습하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밀어붙였다.

‘어디 보자…….’

련은 소맷자락을 매만졌다.

단목련

조화 : 7성 -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심안 : 4성 - 단점을 볼 수 있다.

정화 : 2성 - 생기를 정화할 수 있다.

체력 : 6 / 100

영기 : 52 / 100

도움말 : 정화의 성취를 높여 봅시다. 영기를 50 이하로 유지하세요. 이 상태로 한 달 아흐레 이상 시간이 흐를 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쳇. 말이 쉽지!’

영기라는 이 힘을 어떻게 쓰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녀 혼자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영역이었다.

매일같이 차를 우려서 주위에 먹이고 환경을 정화하며 영기를 사용해도 다음 날이면 차 있고 다음 날이면 차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초조함이 이런 거겠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생명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중이었다.

련은 이렇게 한 번에 세 사람에게 차를 먹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게 더운 날씨에 헥헥대면서도 찻물을 끓이는 이유였다.

련이 나란히 네 잔을 우려서 내려놓자, 단목현우가 빙긋이 웃으며 소년들을 바라보았다.

“너희 누이가 직접 우려 준 것이니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마시도록 하거라.”

“네! 감사합니다, 누이.”

“감사합니다, 누이.”

매일 글공부를 하고 매일 마시는데 단목현우는 매일 똑같은 소리를 했고 소년들도 매일 감사하다는 소리를 했다. 련은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쭉쭉 마시고 쭉쭉 자라렴…….’

“항주 사람들이 이 차 한잔을 마시러 천금을 가지고 찾아올 것 같구나.”

차를 홀짝 마신 단목현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련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럴 리가요.’

찻잎 중에 올해 새로 사 온 것은 아무것도 없고, 전부 몇 해나 묵은 것들이다.

간신히 사람 먹을 만한 맛이 나는 게 다일 것인데 단목현우는 항상 련을 추켜세우곤 했다.

그러면 이 다도 시간이 지겨워 몸을 비틀며 벌컥벌컥 차를 들이켜던 단목비가 짧은 어휘로 누이의 차에 찬탄을 덧붙였다.

엄청 맛있다, 어제 먹은 약과만큼 맛있다, 신선이 와서 마시고 갈 것 같다, 이런 말을 사흘마다 돌려쓴다.

그런 동생이 귀여워서 웃고 있으면 그런 비 곁에서 말없이 쌕 웃고 있는 화륜이 눈에 들어온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선만으로 그녀를 놀리고 있다.

아무렴 차가 맛이 좋아도 여덟 살짜리가 꼬물거리며 내린 것이 신선의 그것만 하겠는가?

‘이 녀석이.’

“으레 하는 말이 아니다, 련아. 네 손끝이 야무지고 마음이 깊은 것이 차 맛으로도 느껴지는구나. 앞으로 네가 태상가주님께 검을 배울 때도 그 성취가 남다를 것이 눈에 보인다. 형님도…….”

말을 잇던 단목현우가 황급히 말끝을 흐렸다.

잠깐 분위기가 어색해질 찰나에 단목비가 왈칵 끼어들었다.

“누이! 할아버지한테 검을 배우는 거예요?”

부러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잠깐 굳었던 단목현우의 얼굴이 금방 부드럽게 풀렸다.

“천자문을 다 외우면 그리하기로 했단다. 비야, 너도 글자를 다 외우면 태상가주님이 검을 가르쳐 주실 거란다.”

“네! 저도 다 외울 거예요!”

“그래그래. 다 외우면 나도 상을 주마. 너희 셋 모두.”

상이라는 얘기에 단목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련은 단목천기에게서 지금과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가 이 글공부를 하게 됐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흘끗 옆을 바라보았다. 단목현우의 말에 반가운 시늉을 하다 말아 시큰둥한 얼굴이 된 화륜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쌕 웃었다.

* * *

매미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이 크게 울려 댔다.

련이 더위에 색색대며 침상에 깐 대나무 자리 위에 늘어진 채 산처럼 쌓아 놓은 책을 하나씩 읽어 가는 중이었다.

‘혈라곡 이 자식들을 다 쓸어버리려면 나도 뭘 좀 알아야 해.’

십여 년만 지나면 혈라곡이 창궐할 미래를 살다가 죽었는데, 이걸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글자 공부를 핑계로 서가에서 관련된 책을 전부 끌어다 왔는데…….

‘혈라곡의 혈공. 파괴적이고 잔혹하다. 갈퀴로 긁어내는 듯한 상처가 특징. 심법에 관련된 건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이 기본적인 토납법—토고납신(吐古納新), 즉 낡은 기운을 뱉고 신선한 기운을 들이마시는 단전 호흡— 을 통해서 60년간 쌓은 내공을 일 갑자라고 한다.

좋은 심법을 익히면 더욱 빨리 쌓을 수 있겠으나 몇십 년의 세월을 한두 해로 축약시킬 수는 없었다.

그 어떤 영약을 먹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먹은 영약의 영기를 내공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심법과 운기조식이 일정 시간 이상 필요했다.

그런데 혈라곡의 무사들은 그런 게 없었다.

검을 익힌 모양새를 보면 고작해야 한두 해 수련한 것 같은데, 내공은 일 갑자를 넘게 가진 놈들이 끊임없이 우르르 나와서는 미쳐 날뛰는 것이다.

사악한 무공인 것이야 지각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다 알 것이고, 그래서 이게 어떻게 사악한지 알아내 격파해야 하는데 이걸 알 수가 없었다.

혈라곡의 곡주가 서너 번은 바뀌었고 무림맹에서 세 개의 세력이 모두 달려들어 파헤치려 했는데도.

특히나 세상에서 다소 환영받지 못하는 수단이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흑천련에서는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뒤졌다는데도 밝혀내지 못했다니 말 다 했다.

‘그렇게 빠르게 내공을 쌓는 심법이란 게 존재할 수 있긴 한가?’

영약을 엄청나게 먹인 게 아닐까 하는 논의도 있었으나 격파되었다.

그만한 자금력이 뒷받침된다면 무력이 아니라 황금으로 무림을 지배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제갈세가의 계산 덕분이었다.

‘어쨌거나 방법은 모르지만 그들의 내공 특성상 오래지 않아 광기가 깃들고…… 그 광기는 사람의 생피를 마실 때만 누그러뜨릴 수 있다.’

련은 책장을 슬슬 넘겼다. 심안 덕분인지 책을 한 번씩만 훑어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았다.

‘혈공을 익힌 자들의 비정상적인 생명력. 심장을 찔려도 반 시진은 움직일 수 있다. 거기다 혈라곡 곡주는 무림의 보물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물? 뭐지?’

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물’에 대해 곱씹어보다가, 더위에 지쳐 책을 덮었다.

혈라곡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살고 난 뒤의 일 아닌가?

그때 조용히 처소의 문이 열렸다.

“으응? 륜아야?”

“더워서 누워 있다더니 정말이에요?”

왠지 련을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화륜이었다. 련은 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련의 처소는 세가 안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긴 했지만, 련은 잠깐 밖을 나돌아 다니고 오면 금방 더위를 먹고 쌕쌕대곤 했다.

더위에 약한 것은 선대부터 이어진 이 집안 여자들의 내력이라 그런 듯하다며 유모 장 씨가 련을 보며 무척 안타까워했다.

“겨울만 되어 봐.”

여름엔 이렇게 곤죽이 되지만 겨울이 되면 쌩쌩해지는 것도 내력이다.

련이 씩씩대는 모습을 보고서도 화륜은 눈썹만 으쓱하더니 련이 아무렇게나 펼쳐놓은 책들을 훑어보았다.

“웬…… 혈라곡이에요?”

괜히 뜨끔한 기분이 든 련은 슥슥 책을 덮으며 말했다.

“너 혹시 혈라곡 본 적 있어?”

혈라곡과 격돌했던 동정혈사(洞庭血事)가 정말 큰일이기는 했으나 그것도 이십여 년 전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두 번이나 변하고도 남음이니, 요즘 혈라곡이란 어르신들의 비속어를 대체하는 말로 간혹 쓰일 뿐이었다.

주로 나이 지긋한 노인이 술 한 동이 자신 뒤 ‘이 혈라곡도 먹다 뱉을 놈!’이라고 외치면 칼부림이 나는 식이다.

“…본 적은 없어도 알죠. 피 빨아먹는 놈들.”

“그랬구나…….”

“누이는 왜 이걸 알아보는데요?”

“우…… 우리 집은 백도 무림의 한 축이니까. 장손인 나도 역사를 알아야지.”

화륜이 조금 놀랍다는 눈으로 련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도 얘네 때문에…….”

단목현성이 사망한 건 금가장과의 비무 때문이었지만, 그 전에 동정혈사에서 입은 부상이 그의 생명을 태우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천고의 기재라고 불린 단목현성이 항주의 신생 무가인 금가장과 비무하다 죽음에 이를 턱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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