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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7)화 (17/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7화

화륜의 말에 뭐라도 한마디 톡 쏘고 싶은 련이었지만, 그의 말이 아주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아니, 그냥 아주 맞는 말이지 뭐…… 역시 내가 강해져야 해. 나도 강해지고. 우리 세가도 좀 더 강해지고.’

그래야만 무사고 무재해 무병장수할 수 있다!

‘그리고 얜…….’

련은 복잡한 표정으로 휘황찬란한 눈빛을 빛내는 흑월을, 아니 검은 봉황을, 아니 오골계를 바라보았다.

오골계가 우아하게 고개를 움직여 남아 있는 모이를 한번 톡 건드리고는 철창 너머로 부리를 조금 내밀었다. 련은 저도 모르게 그 새까만 부리를 살살 훑어 주었다.

오골계가 아프지 않게 련의 손끝을 살짝 물었다 놓았다. 련은 그 끝에서 온화한 빛을 느꼈다.

“진짜 영물이면 이미 도망갔지 않을까? 이런 데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밥 주는 사람이 여기 있잖아요.”

“아……!”

그 말이 옳다!

련이 속으로 한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영기를 먹어서 영물이 되고 있는 거라면 당연히 여기에 비비고 있지 가긴 어딜 간단 말이야?

“그래도 닭장을 좀 분리해 줘야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다른 닭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둘 일이 아니었다.

* * *

“뭐? 그새 닭이 도망을 쳐?”

“새 닭장을 짓는 도중이라 잠깐만 분리를 해 뒀는데 이놈이 힘이 좋아서…….”

주방의 전 씨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련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반쯤 박살이 난 임시 닭장을 쳐다보았다.

목재로 울타리만 세우고 뚜껑만 겨우 올린 닭장이긴 했지만 보통 닭이라면 절대 부수지 못했을 것이다.

오골계가 거칠게 날아간 쪽을 따라가 보자 남쪽 담벼락까지 다다랐다. 담벼락에 얹어 놓은 기와 하나가 박살이 나 있는 게 아마 거길 어떻게 박차고 올라간 모양이었다.

전 씨가 머리를 싸매는 사이에 련은 우선 그를 돌려보내고, 담벼락 앞에 서서 탄식을 삼켰다.

‘산으로 갔나? 그럼…….’

“누이, 무슨 생각 해요?”

“밥 주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기어코 도망갔구나 하는 생각일까…….”

“…….”

말을 걸어온 화륜이 멋쩍은 표정으로 눈길을 피한 채 련의 곁으로 다가왔다. 련은 그런 화륜을 돌아보지 않은 채 이어 말했다.

“아무래도 흑월을 찾으러 가야겠어.”

“……이상한 생각 하고 있었잖아요.”

“이상한 생각이 아냐. 저 산으로 도망간 것 같다잖아. 흑월이 밤길 헤매다 산짐승들에게 잡아먹히면 어떡해.”

“걔가 누굴 잡아먹으면 잡아먹었지, 잡아먹히진 않을걸요. 그만한 덩치를…….”

“그 덩치 유지하려면 먹기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평생 닭장에서만 살던 애가 저 산에서 뭘 먹겠어.”

“그럼 뭐 아무나 시켜서 찾아오라고 해요.”

“그게, 내가 볼 땐 아니긴 하지만 포악한 구석도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도 되고. 애가 생긴 게 범상치 않아서 그것도 불안해. 혹시라도 말이야.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

“세가의 닭을 훔쳐 가다니, 죽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화륜이 웅얼거렸다. 그 얘기를 들은 련은 화들짝 놀라서 화륜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닭을 훔쳐 갔다고 사람을 죽일 것까지야 있나?

‘이게…… 장래 마천교 소교주의 그릇……?’

어려서부터 이렇게 범상치 않았던 걸까?

련의 그 눈길에 화륜이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딴청을 피우다가 황급히 말했다.

“그럼 어떡하게요? 정말 누이가 찾으러 갈 거예요?”

“응. 까망이가 돌아오는 길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극적인 오골계─봉황 추정─ 구출대가 결성되었다.

직접 가겠다는 련과 그런 련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화륜, 병약한 아기씨가 산을 타겠다는 소리를 듣고 대경실색한 호위 무사 정영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 * *

련은 희미하게 느껴지는 오골계의 기척을 따라가며 언덕을 올랐다. 때아닌 등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앞이 어질할 때도 있었지만 애써 견뎠다.

‘여긴…… 자연의 힘이 너무 강하네. 아이고, 죽겠다. 난 절대 자연과 벗해서 살지 말아야지. 무조건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곳에서 살 거야.’

안 그래도 영기 때문에 힘이 달리는 몸을 이끌고 있는데 숨 쉬듯 영기가 주위를 오가는 산을 오르니 그냥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단풍이 들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턱까지 차오르는 숨, 슬슬 빨간 불이 켜지려는 영기, 모든 게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그렇게 헤매다 이제 정영과 화륜이 포기하자는 말을 꺼낼 찰나였다. 마침내 커다란 나무 아래에 까맣고 붉은 깃이 불꽃처럼 일렁이는 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흑월!”

오골계는 련의 기척을 알아채곤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련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무 곁에서 우아한 자태로 서 있을 뿐이었다.

“흑월……?”

“쟨 여기로 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요?”

련은 화륜에게 손가락을 들어 ‘쉿’ 하고는, 옷깃을 싸매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오골계는 그녀가 가까이에 오자 그 소매에 뺨을 비벼 왔다.

“흑월,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안 힘들었어? 이제 집에…….”

하지만 련이 끌어안으려고 하자 부드럽게 유영하듯 날아올라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날개 펄럭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우아한 동작으로.

련이 놀라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이에 화륜이 곁으로 다가왔다.

“흠. 그냥 갈 건가 본데요?”

“넌 진짜 조용히 좀 있어 보라니까.”

련은 얄밉게 구는 화륜을 쏘아보고는 다시 오골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무어라 말을 잇지는 못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볕이 닿으면서 그 오골계는 정말 신령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어, 정말 갈 거야?”

련의 물음에 새가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무 뒤의 풀숲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련은 망연히 그 모습을, 정확히는 오골계가 사라지고 없는 나무 아래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거야? 나한테 간다고 하곤 정말 간 거야?”

“그런가 봐요.”

“이렇게 간단하게?”

밥을 먹여 주고 키워 준 보람도 없이, 허망하게 사라진단 말인가?

“닭이 도망치다 말고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부터 그렇게 간단하진 않은데요…….”

넋이 나가 있던 련이 정신을 차리곤 황급히 나무로 향해 다가갔다.

그런다고 사라진 닭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만 내려가요.”

화륜이 망연히 서 있는 련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누이가 쓰러졌던 게 엊그젠데 또 내가 약초 찾게 온 산을 다 뒤지게 둘 건 아니죠?”

“아니야, 아닌데…….”

아끼던 닭이었는데, 그게 사람 말 좀 알아듣는 듯이 고갯짓 좀 하고 풀쩍 사라졌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미련을 버릴 수 있겠는가?

련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춤거릴 때였다. 멀리서부터 공기가 찢어지는 듯 갈라지는 듯 알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왔다.

쉬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환하고 상서로운 오색 빛이 번쩍 퍼졌다. 그러면서 그들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거대한 새의 형상이었다. 뒤에서 비치는 환한 빛 때문에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그것만은 분명했다. 산을 덮을 만큼 커다란 날개와 긴 꼬리, 아름다운 볏을 가진 온갖 빛깔의 커다란 형상이 한참이나 하늘 위에 형형히 빛이 나다 스르르 사라졌다.

련은 저 멀리서 아련하게 닭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깃털 몇 개가 팔랑팔랑 날리며 천천히 떨어지다가 련이 내미는 손 위에 안착했다. 완연히 타는 듯이 새빨간 깃털이었다.

“…….”

“…….”

그쯤 되자 련도 미련을 정리했다.

“음. 주방장 아저씨한텐 닭이 봉황이 되어 날아갔다고 하면 되겠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겠네.”

“……누이, 현령한테 안 잡혀가게 조심해요.”

“관무불가침이라고 하지 않아?”

“관에서 마음을 바꾸면요? 거기다 봉황쯤 되면 관만 문제가 아니라 백도맹 흑천련 할 것 없이 달려들 텐데.”

“만약 내가 봉황 만들었다고 잡혀가면…… 당과 넣어 주러 들러야 해.”

“당과만 있으면 돼요?”

“빙당호로도. 우리 숙부가 만든 거 말고. 그리고 백도맹 흑천련만 올까? 마천교도 오겠지.”

마지막 말은 하면서도 조금 떨렸다.

‘괜히 떠봤나? 혼백의 이끌림 같은 걸 느끼진 않으려나?’

하지만 화륜은 코웃음 칠 뿐이었다.

“거긴 너무 멀잖아요. 여기서 만 리는 떨어져 있는데.”

“맞아! 멀어, 머니까…….”

련이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고 여기서 오순도순 천년만년 지내자고 말을 해볼까?’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련의 손 안에 있던 깃털에 확 불이 붙었다.

“우, 우와아앗!”

“!”

“아, 아기씨!”

그 자리의 세 사람 모두 화들짝 놀라면서 천으로도 감싸 보고 가져온 수통의 물도 부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와…… 앗……. 안 뜨거운데? 앗. 불 꺼졌다…… 없어졌네?”

세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모아 련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수통의 물을 부어 축축해졌을 뿐, 재조차 남지 않은 깨끗한 손이었다.

“괜찮, 괜찮으십니까? 화상은…….”

련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없어. 괜찮아. 진짜 멀쩡해. 영, 혹시 삼매진화 같은 거 쓴 거 아니야?”

딴에는 농담이었는데 정영이 묘하게 상처받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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