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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화 (18/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화

삼매진화(三昧眞火)는 절정고수나 되어야 간신히 쓸 수 있는, 맨손에서 불을 피워내는 수법이다. 당연히 아직 풋풋한 호위무사인 정영에게는 무리였다.

“아니, 농담이야…….”

“아닙니다. 제가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 아냐.”

“이거 진짜로 봉황인 거 아니에요?”

화륜의 물음에 그 자리의 모두가 침묵했다.

지금까지는 봉황 운운하는 것이 반은 진담이어도 반은 농담이었다면, 이런 기현상까지 마주하고서는 마냥 농담이기 어려웠다.

‘진짜 봉황이라고?’

“아니, 진짜 봉황이라고 해도……. 어떻게 갑자기 키우던 닭이 봉황이 돼. 종이…… 종이 다르잖아. 새라고 다 같은 새는 아니지 않아?”

사실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본디 영기라는 게 축적되면 영물이 되는 법이고, 자신은 온몸에서 파도처럼 영기를 끌어내면서 그걸 먹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일 아닌가. 자신이 봉황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그저 화륜의 농담이었을 뿐인데.

“그도 그렇긴 한데…… 여기가 터가 좋은가?”

화륜이 중얼거렸다. 그 역시 진지하게 련이 봉황을 만들어냈다고 믿는 건 아닌 듯했다.

‘근데 이렇게 되면…….’

련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의 영기를 주변인에게 먹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 중에서 이와 비슷한 걸 생각한 적이 있기는 했다.

영물을 키워서 그 내단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고 닭이 봉황이 되는 경지는 상상조차 못했지만.

‘이거 영 못 하겠는데?’

그러나 막상 진지하고 상세한 상상을 해보려니—가령 흑월의 내단 같은 걸 먹는 상상—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애정을 갖고 밥을 주며 키우던 걸 잡아먹는다는 게 보통 마음가짐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냥 떠나가기만 하는 건데도 마음이 이렇게나 서운하지 않은가 말이다.

‘영물 내단 계획은 폐기다.’

련은 마음을 접고 산을 내려오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봉황(?)의 광채는 아직도 숲 너머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두 아이를 이끌고 앞장서는 정영 역시 놀람을 꾹 삼킨 얼굴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흑월…… 잘 살겠지?”

“어딜 가도 그 녀석이 왕일 것 같지 않아요?”

“그래도…… 아니야, 빨리 가자.”

련은 괜히 헛헛한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헛헛한 건 헛헛한 것이고, 화륜의 말대로 얼른 산을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영기가 차는 속도가…….’

산에 오른 뒤부터 영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다 싶었는데 영기가 차는 속도가 정말 빨라졌다고 선경이 말해주었다.

영기 : 45

도움말 :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는 영기가 더 빠르게 차오릅니다.

지난 생에 괜히 요양하겠다고 깊은 산속 암자 같은 곳을 가려다 피나 토하고 기절하고 그랬던 이유가 다 이거였다!

‘으아아아! 내려가! 내려가!’

련이 상태창이 떠오른 소맷자락을 흔들며 속으로 외쳤다. 그런다고 수치가 내려갈 리는 없지만.

“어?”

그때 련은 걸음을 멈추고 한 번 더 소매를 흔들어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소매 너머의 풍경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애옹…….”

“어어?”

“어어.”

반쯤 죽은 나무 밑, 덤불 아래에 새하얀 털 뭉치 같은 게 있다. 정영이 먼저 조심스레 다가갔다.

련이 그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눈길을 기울였다.

“고양이?”

정영이 검집째로 덤불을 살짝 걷어 내자 비쩍 마른 새끼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울음소리가 거의 삐악거림으로 들릴 정도로 작은 고양이었다.

때가 탄 흰 털, 둥그런 귀가 푹 수그러져서는 가냘프게 울며 파란 눈을 들어 그녀와 눈을 맞췄다.

정영이 동정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아마도 약해서 버림받았나 봐요.”

“어떡하지……?”

련이 안타까워하는 사이에 아기 고양이가 힘겹게 발을 옮겨 그녀의 손 가까이로 다가왔다.

“어, 어어…….”

갑자기 다가오는 고양이의 모습에 놀란 련이 화들짝 움직이자 고양이가 더 애달프게 울었다. 그 작고 얄팍한 몸 어디에 울음소리를 낼 기력이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아, 아앗…….”

련은 울상을 지으며 정영과 화륜, 그리고 고양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대로 두고 가도 괜찮을까?”

“……두고 가면 죽지 않을까요?”

정영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련은 울상을 지은 채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고양이가 련의 발치에 꼭 붙어 왔다.

“아, 아이쿠…….”

“그냥 내버려 둬요. 이런 애는 데려가도 십중팔구 오래 못 살걸요.”

그런데 화륜의 목소리가 들은 적 없이 냉랭했다. 련이 조금 놀라서 화륜을 돌아보자, 소년은 련의 손을 직접 붙잡아 고양이에게서 떼어 냈다.

“닭 한 마리도 보내질 못해서 여기까지 왔다가 훌쩍거리고 있잖아요. 이런 새끼 고양이 돌봐 주다가 얘가 정말로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매몰찬 표현이었지만 오히려 련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련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마음을 굳혔다.

“그래, 그렇겠다…… 그건 어쩔 수 없지.”

“네?”

화륜은 련이 제 말을 들었으면서도 조심스레 아기 고양이를 품에 안아 들자 눈썹을 치떴다.

“누이!”

“나중에 죽는 걸 못 보겠다고 지금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나중에 저 녀석이 정말 잘못되면 뭘 어쩌려고요?”

“어쩌긴, 울고불고하지 뭐.”

화륜의 눈썹이 휙 치켜 올라갔다가, 입술이 비죽 나왔다.

“맘대로 해요. 눈이 붕어가 되도록 울면 실컷 놀려 주지 뭐.”

“륜아야. 벗이라면 위로를 해 줘야지. 그리고 하양이가 잘못될 거라고 지금부터 그러지 마.”

“벌써 이름도 지어 줬어요?”

련은 자신의 소맷자락으로 파고드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심조심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영기를 좀 넣어 주니까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하, 참나…… 아, 아니 이보세요, 련아 소저! 고양이 말고 앞을 보면서 내려가셔야죠. 누이! 누이! 앞에 봐!”

“아기씨! 아기씨!”

“보고 있어! 앞 보고 있다니까!”

* * *

련은 눈을 크게 깜빡이며, 앞선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봉황이 나타났다니, 진짜야? 그걸 봤어?”

“봤지! 봤으니까 이 난리지! 허, 정말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니까.”

“세상에, 단목세가에 봉황이 나타나다니. 이거 천하제일 세가가 될 거라는 징조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설레발치지 말어. 괜히 대사를 그르칠라.”

“아니 나는 무슨 말도 못하나? 내가 말하면 다 망치기만 해?”

“너 이 자식아! 지난번에 야바위할 때 네가 됐다고 됐다고, 이건 됐다고 난리 쳤다가 어떻게 됐어?”

“아니 그건…… 아 닥치고 있으면 될 거 아냐.”

온 세가 사람들이 봉황의 그림자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유모 장 씨마저도!

“세상에. 봉황이 나타났대요, 아기씨. 아기씨가 무탈히 장성하실 수 있게 보살펴 주실 건가 봐요.”

련의 옷가지며 여기저기가 흙투성이인 것을 보고 아침 일찍부터 정원에서 장난을 쳤느냐며 웃었던 유모 장 씨가 은근한 어조로 말을 붙였다.

“……봉황? 진짜?”

“예. 황금빛 깃털이 아침 해 사이로 번쩍이는 걸 세가 식구들이 전부 봤다지 뭐예요.”

“……전부 다 봤다고?”

련은 뭐라고 말을 해 보려고 입술만 달싹이다가 그만두었다.

처소를 지키는 무사로 돌아간 정영을 흘끗 돌아보자 그가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 예. 얘길 들어 보니 항주 전체가 시끌시끌하다던 걸요. 그런…… 어머! 이 애는…….”

말을 잇던 유모가 뒤늦게 련의 품에 있는 하얀 고양이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사이에 련이 깨끗하게 닦고 이것저것 먹여 재워 둔 아기 고양이였다.

“아! 유모. 부모가 버리고 간 아기 고양이인가 봐. 내가 키우려고.”

흑월처럼 이 고양이도 덜컥 영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 숨이 넘어갈까 봐 걱정이 되어 영기도 살살 불어넣어 준 참이었다.

침묵하던 유모 장 씨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고양이…… 맞나요?”

“응? 응!”

련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모 장 씨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윽고 눈을 접고 미소 지었다.

‘고양이지 그럼 설마 뭐, 호랑이겠어?’

새벽에는 세가의 뒷산에서 봉황이 나타나고 아침에는 주인 아기씨의 품에 백호가 나타나는 그런 일이 있으려고.

“잘 돌봐 주셔야 해요. 아기씨가 없으면 금방 죽을지도 몰라요.”

련은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월영재 주방의 전 씨마저 봉황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닭 한 마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건 새까맣게 잊은 눈치였다.

하지만 모두가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어린아이들의 관심사는 정해져 있는 법이다.

“누이, 누이!”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어린아이 둘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했다.

“비아야, 륜아야, 왔어?”

주위를 휙휙 두리번거린 단목비가 얼른 누이의 침상 위로 기어 올라가선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누이, 오늘 글자를 잘 외웠다고 숙부님이 용수당(龍鬚糖) 주셨어요.”

“그래? 맛있게 먹었어?”

단목비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얇은 천으로 감싼 것을 풀자 거기에 새하얀 용수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탕을 녹여서 얇게 뽑아낸 실을 둘둘 말아 둔 용수당 세 개가 가지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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